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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이야기

로하스보다 더 유구한 청빈낙도의 삶

by 한사정덕수 2025.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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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하스보다 더 유구한 청빈낙도의 삶

▲한국민들레 / 민들레가 서양민들레와 토종민들레 두 종류로 기본적으로 나뉜다는 건 대부분 안다. 하지만 토종이라 하기 보다 한국민들레로 불러야하지 않을까. ⓒ 정덕수

 

오래전부터 조상 대대로 밥이 보약이다는 말씀들을 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들의 식습관과 관련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밥상을 보면 주식인 밥 외에도 육류와 생선이 귀하던 시절에도 다양한 산야초로 반찬을 조리해 식사를 하여 영양의 균형을 맞췄습니다. 자연히 요즘으로 말하면 건강식을 통해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체력을 유지하였으니 밥이 보약이란 말은 당연했습니다.

 

좀 더 깊이 이야기를 들어가 보도록 하면 그리 오래지 않은 근대에 이르러서야 배추와 무를 재배해 김치를 담가 먹게 되었던 반면, 오래전부터 조상들이 널리 이용했던 산야초는 이를 대체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무치고 찌고 절이는 방법은 물론이고, 데쳐 말려두었다가 한겨울에도 반찬으로 조리해 영양소를 보충했을 정도로 이용법에도 능했습니다.

 

지금이야 다양한 종류의 채소를 재배하는 밭은, 이런 시대엔 반찬을 만들 채소를 재배할 공간으로서 활용되기엔 주식으로 이용할 다양한 곡물을 재배하기에도 부족했지 싶습니다. 그랬던 만큼 들과 산에서 채취하는 다양한 산야초를 이용해 반찬을 조리해 먹어야 되었으리라 보는 건 지극히 타당한 가설이 됩니다.

 

여기에서 밥이 보약이다는 말은 밥과 함께 먹는 다양한 산야초로 조리한 반찬이 건강에 문제가 생겨 병이 들었을 때 치료의 목적으로 복용하는 약의 원재료이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치료를 목적으로 한 약은 치료제에 그칩니다. 하지만 사람은 무언가 원기가 부족하다 느끼면 보약을 찾는데 산야초를 고루 섭취하는 것만으로 보약 이상의 효험을 보게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산야초를 일반적인 산야초에 대한 이야기나 요리지침서와 다르게, 이번 기회에 발행할 책을 통하여 산야초의 생김에 대한 부분부터 채취하는 장소와 이용방법, 건강에 이롭게 작용하는 부분에 대해 비교적 쉽게 이해되도록 소개하려 합니다.

 

들에서 흔하게 만드는 들풀 하나하나가 모두 고유의 성분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들풀이 우리의 음식문화로 전승되어온 사실만큼 전 세계적으로 자랑해도 충분하다 생각됩니다. 스위스를 다녀 올 기회가 있어서 2020311일 오전에 취리히에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아르가우즈의 할빌이란 곳에 도착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그곳에 우리가 정말 귀하게 여기는 명이나물(산마늘)이 들은 물론이고 숲에만 들어가면 어디나 넘치도록 자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먹지 않기에 그저 샐러드나 소시지를 만들 때 분쇄해 첨가하는 수준으로 이용하더군요.

 

그런 반면 우리는 꿀풀은 물론이고 돌담 사이에 핀 제비꽃, 도랑가에 너풀거리는 소루쟁이와 둔덕 가득 연초록의 잎이 돋아나던 원추리와 쑥까지 국거리로도 이용하고 곡물의 가루와 버무리거나 섞어 떡을 만들어 먹을 정도로 산야초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잘 이용하는 민족입니다. 때때로 부족한 곡물을 대신해 주린 배를 채울 의도였겠지만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였으나 자연스럽게 점진적으로 그만큼 건강한 음식문화를 갖추었다는 이야기가 성립됩니다.

 

지독히 가난했던 1970년를 넘어서고 올림픽을 개최하며 놀라울 정도로 경제성장을 이루어 생활환경이 바뀌며, 우리 사회에도 일정부분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에 해당되는 웰빙(Well-being)’ 바람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공동체 전체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소비생활을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친환경 중심으로 전개하자는 생활양식행동양식사고방식을 뜻하는 로하스(LOHAS)’라는 문화가 일부에서 시작되어 알려졌습니다.

 

웰빙족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이를 참살이라는 우리말로 표기하기에 이르렀으나 다소 개인주의적인 모습에 거부감을 지닌 이들도 있었고, 미국의 내추럴 마케팅연구소가 2000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의 약자인 로하스(LOHAS)’가 주목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로하스는 환경보전과 웰빙뿐 아니라 후대에 물려줄 소비기반의 지속성을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스스로는 물론이고 가족의 건강과 관련해 현재 시점의 다소 개인적인 소비행위에 대해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경제발전과 소비활동을 연결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부분이 사회참여운동으로서 자연의 중요성과 보전의 당위성을 강조하는데 그치는 친환경주의와는 분명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람이 서서히 분다.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최소한의 것으로 살자는 얘기다.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47~ 1850423)의 시구 생활은 검소하게, 생각은 고상하게(plain living, high thinking)’ 또한 이런 문화와 뜻이 일맥상통하게 통합니다.

 

우리에겐 이미 오래전부터 윌리엄 워즈워스의 생활은 검소하게, 생각은 고상하게이상으로 삶의 품격을 높이고자 하는 문화가 있었는데요, 청빈낙도淸貧樂道의 삶을 추구한 선비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지요. 가난하지만 맑고 즐거우며 옳은 길을 가고자하는 모습이야말로 진실로 참된 삶의 방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상 이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탐욕스럽게 비쳐질 수도 있는 삶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포기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더 좋은 차를 소유하고 좋은 집에 살아야 하며, 기름지고 영양가 높은 좋은 음식으로 배불리 먹고자 하는 욕망을 지니고는 불가능한 세계인 겁니다.

 

물론 자연주의 음식을 먹고자 하는 행동도 자칫 또 다른 욕망으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이나 직장 동료들과 나들이를 갔을 때를 조용히 그려보면 쉽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여기 소개한 산야초들에 대해 이해하고 제대로 구분할 줄 아는 안목만 길러지면 현장에서 근사한 만찬을 즐길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로서 로하스적인 삶과 청빈한 삶의 기본적인 발걸음을 떼었다고 보이지 않겠는지요.

 

산과 들에 좋은 이들과 어울려 나가며 김치와 쌈채소를 가져가지 않아도 산과 들에서 채취한 산야초로 쌈을 싸고 겉절이와 샐러드를 만들어 나누고 즐길 수 있다면 말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경험들은 쌓여 좀 더 그런 삶의 세계를 확장시키게 되고 일상에서도 연중 자신이 채취한 몸에 이로운 산야초를 즐길 수 있는 대견한 스스로를 만나게 됩니다.

 

개복숭아와 솔순으로 청을 만들어 두면 샐러드에 요긴하게 사용하거나 청량음료를 대치할 수도 있고, 생강나무 잎이나 초피순을 찹쌀풀을 발라 말려두었다가 연중 튀김으로 즐길 수 있기도 합니다. 또한 박쥐나물이나 취나물을 데친 상태로 냉동고에 넣어두었다가 된장국을 끓여도 숙취해소에도 좋고, 한 그릇의 국으로도 그저 그만인데 이런 조리법도 오래 생활에서 적용하며 터득했습니다.

 

명이로 만두를 빚어 한 번 찐 다음 냉동을 시켜두면 한겨울에도 명이만두를 즐길 수 있는 세상이니 조금만 생각을 전환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활을 추구하는 스스로를 만나게 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이번에 기획해서 발행할 책에는 이러한 삶을 즐길 수 있도록 산야초를 이용하는 방법까지 밝혀두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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