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이 시작되었습니다. 들녘 볕이 좋은 자리엔 냉이와 달래가 기지개를 켜고 봄을 먼저 시작합니다.
본격적으로 산을 찾는 시기가 아니라면 대체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잠에 든 시간에 글을 쓰거나 책을 읽습니다. 그만큼 정신을 집중하기 좋은 시간이어서 그런가 생각되지만, 낮엔 이런저런 일로 연락이 오거나, 가끔 멀리서 찾아온 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느라 그렇기도 합니다.
늦은 밤, 창밖에 트럭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운전기사가 도로를 달려오는 도중에 잠을 쫓기 위해 틀어놓았음직한 트로트 가락의 노래가 울립니다. 그와 함께 먼데서 도착한 조간신문 배달차가 다녀가면 새벽 2시 무렵이란 걸 자연히 알게 됩니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나면 창이 환하게 밝아지고 햇살이 좋은지, 날이 흐리거나 비 소식은 없는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이른 아침이라고 부르기엔 어색한 시간에 식사를 한 뒤 잠시 시간을 보냅니다. 수면을 취하지 않고는 또 다른 일을 할 수 없기에 이때부터 몇 시간 잠을 청합니다.
설을 전후하여 영동권에 자주 눈이 내리는 이 무렵은 어쩌다 마트에 필요한 물품을 사러 나서거나, 들녘에서 달래 한 줌, 냉이 한 줌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일이 아니면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하는 시기입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온갖 양분을 흡수하며 서서히 넓은 잎을 펼쳐 태양으로부터 광합성을 준비하는 식물계도 경이롭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명을 키운 식물들을 섭취함으로써 땅과 태양으로부터 받아들인 다양한 원소들을 생명을 유지할 에너지로 얻어 종족을 번식하는 다양한 생물들이 마침내 시련을 이겨내고 움츠렸던 몸을 일으키는 3월, 그것도 하순으로 접어드는 춘분 이후부터는 어떻게든 이른 시간에 움직이기 시작해야 됩니다.
▲ 얼갈이배추로 끓인 된장국에 한줌의 쑥을 넣고 살짝 데치듯 끓이면 부드럽고 향긋한 쑥국이 됩니다.
그러다 4월 하순이 되면, 모두가 잠든 새벽 3시 무렵에 잠에서 깨어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기로 접어듭니다. 이때는 거의 매일 한 줌 쑥을 미리 끓여둔 얼갈이배추된장국에 넣어 살짝 데치듯 끓여 식사를 하고, 먼동이 트기 30분 전에 산길로 접어들 수 있게 맞춰 집을 나섭니다. 참취가 나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취나물된장국을 아침식사에 준비하는 걸 빠트리지 않습니다.
처음엔 그리 높지 않은 야트막한 산비탈이나 산의 골짜기 몇 개를 둘러보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면 점차 산을 오르는 높이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게 됩니다. 600여 미터 높이부터 시작해 1000미터가 넘어서면 들판 너른 밭에는 일찌감치 심은 감자가 시퍼렇게 밭고랑을 채워가는 5월 초순이 됩니다.
▲ 산행은 온갖 꽃들과 함께 동행하며 시작하고 꽃이 피는 시기와 위치에 따라 마감하며 1년을 지냅니다.
산행에는 진달래와 산철쭉도 함께하지만, 그보다 지면에 바짝 몸을 붙이듯 무리지어 자라는 금마타리와 바위능선에서 만나는 개회나무가 함께 산에 오를 시기를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개회나무는 한국전쟁 직전인 1947년, 미국 적십자 소속으로 왔던 식물 채집가 엘윈 M. 메더(Elwin M. Meader)가 북한산 백운대에서 개회나무 종자를 채취해 미국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들은 이를 개량해 ‘미스김라일락(Miss Kim Lilac, Syringa patula “Miss Kim”)’이라는 품종을 만들었는데, 그는 당시 식물 자료 정리를 도왔던 한국인 타이피스트 미스 김의 성을 따서 ‘미스김라일락’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종자를 채취해”로 기록되어 있지만 실상은 개회나무를 그대로 채집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개회나무는 제법 큰 나무도 있지만, 한 뼘 남짓 되는 작은 크기라도 제법 곱게 꽃을 피워냅니다.
개회나무는 두 종류가 있는데, 이는 산의 높이에 따라 달라집니다. 조금 낮은 지대에서는 개회나무로, 보다 높은 대청봉과 같은 곳에서는 잎 면에 솜털이 있는 모습으로 털개회나무라 부릅니다. 개회나무와 같은 향기를 지닌 꽃이 피는 정향나무도 있습니다. 이 정향나무는 설악산 권역에서도 오색1리 백암마을의 위쪽 백암폭포를 오르는 길 초입에서 단 한 그루 만났습니다. 정향나무의 잎은 개회나무의 잎에 비해 5배가량 더 큽니다.
해발 500미터 정도에 개회나무가 꽃을 피우면 점봉산 자락의 볕이 잘 드는 숲에서 산나물 채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대청봉 주변에 털개회나무가 꽃을 피우면 나물을 채취하는 철이 끝납니다.
이제 설을 넘겼으니 서서히 본격적으로 봄이 시작되겠지요. 서서히 그동안의 습관을 바꾸어야 할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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