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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14

소설 한계령 7 ‘새로운 경험과 아침’ 7.그날 밤, 언제 잠이 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꿈속에서 엄마를 만났다. 분명 엄마인데, 손을 뻗어도 가까워지지 않는다. 부르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 흐릿한 형체 속에 엄마가 서 있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희미한 윤곽만이 어둠 속에서 아른거렸다. 손끝에서 빠져나가는 안개처럼, 닿을 듯 닿지 않는 거리에서 머물렀다.한 걸음 다가가려 하면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애타게 부르지만 메아리처럼 흩어지는 소리. 엄마가 맞는데, 온전히 볼 수 없는 얼굴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한순간이라도 선명해지기를 바라며, 안개 너머를 필사적으로 응시했다.어느 순간, 또 다른 꿈에 휩싸였다. 모든 것이 일그러지고, 공간이 한순간에 흔들린다. 바닥이 솟구치고 벽이 녹아내리듯, 세상이 비.. 2025. 3. 7.
소설 한계령 4 ‘할머니도 떠나신 설’ 4.저녁 식사를 마친 아버지는 건너 마을에 일이 있다고 나가셨다. 형과 나, 그리고 장수와 인자는 화롯불을 가운데 두고 할머니와 함께 둘러앉았다. 불꽃은 서서히 부옇게 재를 뒤집어쓰며 흔들렸고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부젓가락으로 화롯불을 다독이며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얼마나 지났을까. 부젓가락을 화로 한쪽에 꾹 눌러 꽂으시고 할머니는 형을 바라보며 물었다.“창연아, 니 엄마는 그 뒤로 여태 아무 연락도 없니?”그 말을 듣는 순간 가만히 할머니가 돋워놓은 화롯불이 내는 빛을 바라봤다. 가물거리며 숯은 또 다시 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장수와 인자도 아무 말 없이 불을 바라보고 있었고, 형도 대답 없이 손에 뻗어 부젓가락을 집더니 화롯불을 휘저을 뿐이었다.말하지 않았지만 속이 저릿했다. 엄마에 대한 .. 2025. 3. 7.
권혁재 기자가 촬영한 김영옥 배우… 권혁재 아우가 촬영한 이 사진을 보는 순간 미치겠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저 헛헛한 웃음으로 감췄던 감정이 드러났지 싶습니다.소설 한계령도, 다소 직설적으로 문장이 바뀐 글도…언젠가 상상을 했습니다. 한계령을 소설로 쓰고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면 내가 찾는 그 엄마 역은 김영옥 배우라고요.그런데 엄마 역을 맡기고 싶을 정도로 엄마를 닮은 배우도 늙었네요.참말로 오래 버텼는데, 정말로 엄마도 세상 떠난지 오랜데, 이젠 김영옥 배우도 늙어서 제 기억 속 마흔살 엄마가 되지는 못하겠군요.하지만 여전히 김영옥 배우라면 또 다른 어머니의 역을 멋지게 소화해 낼 거란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눈물 많은 나에겐   흑백 사진 한 장에묻어난다, 지난날의 그림자웃고 있었던가, 울고 있었던가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선명했.. 2025. 3. 7.
소설 한계령 3 ‘할머니와 따뜻한 밥’ 3.아버지는 이른 아침, 할머니가 지으신 밥과 시래기 된장국으로 아침을 드셨다. 밥 한 숟가락을 크게 떠 된장국에 말아 후후 불어 드시던 아버지는 몇 번 씹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겠어.” 문풍지가 부웅 소리를 내며 찬 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들어 오는 거 같았다. 나는 두려움에 몸을 움츠렸다. 아버지는 마당을 내다보며 중얼거렸지만, 그 말이 꼭 바람에게 대고 하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바깥일을 미리 짐작하는 시골 어른의 감각— 나는 그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무서웠다. 아버지는 마치 바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할머니는 아버지의 밥그릇에 반찬을 하나 더 얹어주며 말했다. “배 든든히 채우고 가야 힘쓰지.” 아버지는 말없이 밥을 마저 비우고 물 한.. 2025. 3. 6.
소설 한계령 2 ‘어머니가 떠난 겨울’ 2.겨울은 유난히 길고 매서웠다. 어머니가 떠난 후 처음 맞이하는 겨울은 더욱더 추웠다. 바람이 문풍지를 흔들 때마다 집 안까지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었다.그해 겨울은 눈이 많이 내렸다. 아침이면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였고, 장작더미 위에도 눈이 쌓였다. 하지만 그 하얀 풍경과는 다르게 우리 집안은 점점 더 황량해져 갔다.어느 날, 아침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형이 아무 말 없이 밥을 내주지 않았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가만히 기다렸지만, 형은 끝내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밥상이 올라오긴 했으나 그릇에는 겨우 옥수수죽이 담겨 있었고, 살점 하나 없는 맑은 국물만이 허기를 채워주려 했다. 밀가루까지 다 떨어졌는지 덩어리진 반죽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속이 텅 비어가는 듯한 허전함이 가슴 깊숙이 밀려들었다.그.. 2025. 3. 6.
소설 한계령 1 ‘어머니와의 이별’ 오색령!누군가 물었다.“오색에도 한계령 말고 또 다른 고개가 있어요?”아마도 한계령의 또 다른 이름을 묻는 걸까?그렇다면 ‘한계령을 한동안 오색령이라 부른 적이 있었고, 소솔령이나 소동라령으로도 불렸다고 한다.’고 말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답하면 사람들은 대개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나에게 한계령(오색령)은 단순히 여행길의 목적지나 여정의 한 부분에 그치는 곳이 아니다.누군가에게는 그런 곳이 하나쯤 있지 않을까?삶의 이유가 되고, 존재의 가치를 부여하는 그런 특별한 대상 말이다.나에게 한계령은 그렇다.험난한 길을 걸어온 세월을 묵묵히 지켜봐 준 증인이며, 친구이자 동반자였다.그리고 여전히 한이 서린 곳이면서도, 행복이 깃든 곳이며, 동시에 아직 풀지 못한 숙제 같은 곳이기도 하다.그렇게 한계령을.. 2025.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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