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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좋은집/자연의향기31

쌈밥, 잎을 펴면 마음이 열립니다 계절을 즐기며 자연을 품고, 사람의 정을 나누는 미덕   저에게 쌈의 중심은 언제나 쌈의 재료들입니다. 뜨끈한 밥을 한 숟가락 떠올려, 된장에 살짝 묻힌 고추 한 조각이나 마늘 한 조각을 얹어 쌈을 싸 먹는 일은, 그 자체로 한 끼를 온전히 누리는 일이 됩니다. 반찬이 많지 않아도, 싱싱함이 느껴지는 이파리 한 장 위에 얹은 밥이나 고기 한 점과 정성 가득한 쌈장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은 금세 부드러워집니다. 그런데 이 쌈밥이 품은 세계는 그보다 훨씬 넓고도 깊습니다.어제, 페이스북 ‘양양핫플gogo’ 모임을 함께하는 홍윤정 씨로부터 정규모임을 ‘쌈이랑’에서 한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쌈’이라는 말에 이끌려 저는 기꺼이 그 자리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홍윤정 씨는 제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줄.. 2025. 4. 10.
봄을 번역하는 정선의 농부 이희건 출판과 번역을 그대로 닮은 철학적 농법   강원도에서는 오래전부터 ‘멍이’라 불렀습니다. 한 음절 더 짧은 가 싶으면서도 한층 더 다정하고, 입술 안쪽에서 부드럽게 굴러 나오는 이름으로 산마늘, 혹은 명이나물이라 불리는 그 식물은 ‘멍이’라는 토박이말로 오랜 세월 사람들 곁에 있어 왔습니다.백화점 진열장에서 진공포장 된 채 이름표를 달고 있는 명이나물을 처음 마주했을 때, 많은 이들은 울릉도에서만 생산되는 줄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명이는 소백산과 태백산, 오대산, 설악산의 해발 1200미터를 훌쩍 넘는 고지대에서 눈을 뚫고 피어나는 가장 먼저 봄을 여는 산나물 중 하나입니다. 설악산 해발 1400미터에서 만난 명이는 울릉도 명이에 비해 잎이 좁고 줄기 색도 진한 자줏빛을 띱니다. 맛 또한 다릅.. 2025. 4. 9.
돌미나리, 낮은 곳에서 피어난 생명 돌미나리, 낮은 물에서 피어난 생명의 노래   돌미나리는 낮은 물가에서 시작되는 식물입니다. 계곡이 아닌 묵은 논이나 수렁, 샘터로부터 시작되어 길게 이어지는 숲의 도랑 같은 곳에서 그 자리를 지키며 자라납니다. 사람의 발길이 자주 닿지 않는 곳, 물이 고이고 볕이 적당한 곳에 스스로 뿌리를 내리는 이 풀은,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성격을 가졌습니다. 이름에 ‘돌’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으나, 그것은 자라는 장소를 말할 뿐 성질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돌’이 들어가 있는 식물은 돌나물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돌은 곧잘 ‘개’라는 말과도 어우러져 사용되거나 ‘들’로도 혼용되곤 합니다. 이 모두 자연自然 상태 그대로의 환경과 연관지어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인위성이 전혀 간섭하지 않는 상태의 천연의.. 2025. 4. 8.
머위, 경계를 넘어 봄빛 마음을 나누는 것 지독한 겨울을 지나 삶의 뿌리를 세우는 연두빛   1970년 저는 구룡령 바로 아래 갈천 증골 큰집에서 4월을 맞았습니다. 막 들에 풀이 돋기 시작하는데 큰아버지는 소로 밭을 가시면서 소의 입에 망(멍우)을 씌웠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큰아버지한테 물었습니다.“큰아버지, 왜 누렁이한테 입을 벌리지 못하게 그렇게 망을 씌우나?”제 질문에 큰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소가 풀맛을 보면 여물을 안 먹거든. 아직 소가 배부르게 먹을 풀도 자라지 않았는데 여물을 안 먹으면 소가 일을 할 수 없단다. 그래서 풀을 뜯을 생각을 못하게 망을 씌워서 밭을 간단다.”맨발에 낡은 옷을 입고, 소에 쟁기를 채워 비탈진 밭을 종일 가는 큰아버지는 소가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이러, 올라서, 이러, 와~ 와~, 돌아서.. 2025. 4. 7.
달래 자라는 들녘에서 봄을 담다 봄날의 밥상 위에 피어난 연대의 향기   봄날, 햇살이 부엌 창을 제법 오래 비쳐들 때쯤 달래를 손질하며 봄이 왔음을 실감하던 기억이 납니다. 설을 지나며 흙을 비집고 나온 달래는 마치 흙속에서 겨울을 꾹 참고 버틴 생의 기척 같습니다. 어릴 적 어른들은 이걸 “달래처럼 봄이 자란다”고 했고, 저는 그 말이 참 좋았습니다. 달래처럼 봄이 자란다는 건 봄이 왔다는 말이기도 했으니까요.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가방에 몇 장의 비닐봉지와 작은 곡괭이, 장갑이 자리합니다. 때로는 양지바른 둔덕을 찾아 맑은 풍경 속에서 책을 읽기도 하지만, 챙겨간 도구들은 앉았던 근처 땅에서 위력을 발휘합니다. 냉이와 씀바귀, 때로는 무더기로 자라는 달래를 만나면, 그 뿌리를 조심스레 캐냅니다.해토된 땅을 뒤집어 한 줌씩 뽑아 올.. 2025. 4. 7.
산불과 숲, 그리고 자연의 회복력 소나무와 활엽수의 적절한 배합이 답!   남부지방을 휩쓴 산불을 보며, 저는 조심스럽게 이런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산불은 자연의 일부분이라지만, 그것이 미치는 영향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깊고 광범위합니다. 우리는 자연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숲을 보존하려고 하지만, 숲이 어떻게 회복되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종종 간과됩니다. 최근 강원도에서 발생한 여러 차례의 산불을 떠올리며, 그동안 우리가 숲을 관리해온 방식이 과연 적합한지에 대한 의문이 솟아올랐습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소나무를 집중적으로 조림사업에 활용해왔습니다. 하지만 산불이 발생할 때마다, 어떠한 고민이나 연구 과정 없이 그 나무들을 모두 베어내고, 그 자리에 다시 소나무를 빼곡하게 심는 작업이 반.. 2025.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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