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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좋은집/자연의향기31

잠깐 피는 잎, 오래 남는 맛 홑잎나물과 부지런한 사람들에 대하여   산중의 봄은 조용히 시작됩니다. 흔히 봄이라 하면 터지는 꽃과 요란한 색부터 떠올리지만, 산사는 다릅니다. 그곳의 봄은 향기보다 기척으로 먼저 다가옵니다. 바람이 바뀌고, 짐승의 숨결이 부드러워지며, 새벽 예불 후 스님의 발자국이 땅속 깊이 스며들 때, 작은 변화 하나로 겨울을 조용히 밀어내고 봄은 화사하게 피어납니다. 그런 봄의 길목에서 저는 늘 ‘홑잎’을 기다립니다. 홑잎은 화살나무나 회잎나무 같은 작은 교목에서 돋아나는 새순입니다. 붉은 겨울눈의 껍질을 밀어내며 솟아나는 연한 초록빛 잎은, 생명의 첫 숨결과도 같습니다. 햇살을 머금고 나와선 며칠 안에 질겨지니, 그 짧고 정확한 때를 놓치지 않으려면 사람의 마음이 먼저 계절에 닿아 있어야 합니다.오래전부터 산사.. 2025. 3. 29.
머위, 봄이 먼저 돋는 자리 꽃부터 잎, 줄기, 뿌리까지… 손끝에 머문 봄의 기억   머위는 봄보다 먼저, 그보다도 앞서 마음을 움직입니다.머위꽃과 아이 손바닥만 한 머위잎을 보는 순간, 입 안의 모든 미뢰(味蕾)와 손끝이 먼저 반응합니다. 쌉싸름한 향, 고소한 여운, 껍질을 벗길 때 느껴지는 미세한 감촉까지, 맛과 감각이 먼저 달려와 서로 먼저 느끼겠다고 아우성칩니다.머위는 3월 중순이 지나면 꽃대가 먼저 올라옵니다. 작은 잎들이 함께 피어나는 걸 보면 얼음 밑에서도 계절은 움직이고 있었구나 싶습니다. 제가 어렷을 적에 할머니는 그 꽃대를 보자마자 잘라 오셨습니다. 마루 끝에 걸어 말려 두었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그 꽃대는 약이었습니다.머위는 꽃, 잎, 줄기, 뿌리까지 버릴 게 없는 식물입니다. 그와 비슷하게 식용으로 널리 알려진.. 2025. 3. 28.
봄의 전주곡, 기쁨과 기다림의 미학 봄의 전주곡, 기쁨과 기다림의 미학― 기다림과 기쁨이 엮어내는 자연의 미학   봄은 언제나 그렇듯 불현듯 찾아옵니다. 자연의 모든 생명력이 일시에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때마다 기대와 설렘을 품고 봄을 맞이합니다. 여전히 바람은 차고, 눈도 몇 번 더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백두대간을 넘는 길목의 눈이 덮여 있던 산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는 것을 보며 봄이 왔음을 직감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봄은 온몸으로 준비하며 서서히, 그러면서도 불시에 다가옵니다.이맘때, 매년처럼 떠오르는 것은 쑥국의 향기입니다. 쑥과 달래의 싹이 눈을 뚫고 나오는 모습은 겨울을 끝내고 온 세상에 봄이 피어나는 전주곡처럼 느껴집니다. 아직 산의 모습은 적막하지만 한 뼘 자란 취를 만났을 때의 그 기쁨, .. 2025. 3. 25.
겨울을 건넌 김치, 광장을 지킨 마음 겨울을 건넌 김치, 광장을 지킨 마음광장의 연대와 김장김치 한 포기의 철학 지난 겨울, 참으로 잔인한 계절이었습니다. 내란수괴 윤석열의 파면을 외치며 광장에서 싸웠고, 행진을 이어갔으며, 주말마다 촛불과 함성을 가슴에 안고 서울의 거리로 향했습니다. 그런 날들 속에서도 김진ㆍ조종주 부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단지 부부의 이름을 나란히 부른다는 이유만으로 기억되는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매주 광장에서, 그 누구보다 앞줄에서 함께 있던 사람들이었고, 또 누구보다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이들이었습니다.촛불다방을 운영하며 순대를 삶고 떡볶이 국물을 끓이며 작두콩차를 덖던 그 손길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운동가’라는 단어보다 훨씬 더 다정하고 뜨거운 정성의 이름이었습니다. 허리를 펼 틈도 없이 일하고, 집회.. 2025. 3. 23.
솥 안의 계절, 대접 속의 기억 솥 안의 계절, 대접 속의 기억 -사골곰탕 한 대접이 밀어 올린 봄의 철학 경칩이 지날 때였습니다. 개구리도 입이 터진다는 그 절기 그러나 하늘은 반대로 눈을 뿌렸어요. 대단한 폭설이지만 이미 이런 눈은 제가 사는 백두대간의 동쪽 마을들은 누구나 충분히 대비하고 있습니다. 춘분의 볕은 짧은 시간 만에 눈을 녹여내며 봄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조용히 알려옵니다.이맘때면 누렇게 변색되고 구부러지고 꺾인 대파도 몸을 곧추세우며 연둣빛 잎을 올리기 시작합니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강해진 이 대파들은 단지 부재료가 아닌 음식의 중심이 되곤 하지요. 그리고 저는 이 시기의 대파를 기다렸습니다. 냉동실에 고이 저장한 구지뽕상계탕의 사골곰탕을 위해서요. 부산 기장 철마의 아홉산 구지뽕상계탕 김영숙 선생님의 가.. 2025. 3. 23.
자연산만 이용해 밥집을 한다면… 블로그의 글들을 읽으며 정말이지 공감을 표하는 건 그 글을 쓴 사람의 수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데 너무들 인색합니다. 광고를 굳이 이용하라는 것도 아니고, 공감을 통해 블로거는 더 많은 독자를 만날 기회를 얻을 수 있는데 이를 외면하고 글을 보기만 하는 건 최소한의 성의조차 없다는 말이 되지요. 오랜만이랄 것도 없이, 해마다 반복되는 의식처럼 몇 사람이 모여 음식점에서 자리를 함께하였습니다. 명목상으로는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였지만, 실상은 봄 산나물의 향을 맛보고자 하는 속내가 분명하였습니다. 그것을 모르지 않기에, 저는 예닐곱 종류의 산나물을 준비해 가져갔습니다.2017년 봄부터는 식당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특별한 선물을 준비할 일이 아니라면 아예 나물을 담을 접시까지 챙겨갑니다. 식당에서 나.. 2025.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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