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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좋은집/자연의향기

자연산만 이용해 밥집을 한다면…

by 한사정덕수 2025.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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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의 글들을 읽으며 정말이지 공감을 표하는 건 그 글을 쓴 사람의 수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데 너무들 인색합니다. 광고를 굳이 이용하라는 것도 아니고, 공감을 통해 블로거는 더 많은 독자를 만날 기회를 얻을 수 있는데 이를 외면하고 글을 보기만 하는 건 최소한의 성의조차 없다는 말이 되지요.

 

오랜만이랄 것도 없이, 해마다 반복되는 의식처럼 몇 사람이 모여 음식점에서 자리를 함께하였습니다. 명목상으로는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였지만, 실상은 봄 산나물의 향을 맛보고자 하는 속내가 분명하였습니다. 그것을 모르지 않기에, 저는 예닐곱 종류의 산나물을 준비해 가져갔습니다.

2017년 봄부터는 식당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특별한 선물을 준비할 일이 아니라면 아예 나물을 담을 접시까지 챙겨갑니다. 식당에서 나물을 담아 달라고 하면 자신들도 먹고 싶어 하니, 박절하게 거절하기 어려운 까닭입니다.

누리대와 명이를 썰어 고추장으로 무친 누리대명이무침, 두세 종류의 산나물 장아찌, 그리고 예닐곱 종류의 산나물 쌈을 준비하였습니다. 이를 모두 합하면 족히 20만 원어치는 될 산나물이었습니다. 달래와 초피를 된장에 듬뿍 넣고 버무린 쌈장도 곁들였습니다.

 

농약이나 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자연이 빚어낸 본연의 맛. 절집에서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이들이라 해도, 쉽사리 맛보기 어려운 귀한 재료들이었습니다. 누군가 한마디 합니다.

 

“산나물은 돼지고기와 잘 어울리지요. 역시 이 맛입니다.”

 

“맞아요. 기름진 고기랑 싸 먹으면 산나물의 향이 더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산중 움막에서 나물을 하던 이들은 고등어나 임연수어를 구워 나물과 함께 먹기도 하였습니다. 소고기는 값이 비싸니 차가운 샘물에 돼지고기를 담가 두었다가 구워 먹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들도 여건만 된다면, 소고기부터 챙겼을 것입니다.

 

“자, 모두 잔을 채우십시오. 그래도 건배는 해야지요.”

 

술잔이 오가고, 대화는 자연스레 산나물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곰취를 뜯다 길을 잃어 헤맨 일화, 어느 골짜기에서 병풍취가 가득한 자리를 발견했지만 이듬해 다시 찾았을 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경험담까지. 나무가 자라고 계곡이 흐르듯, 산나물의 흔적도 자연의 흐름 속에서 다시금 변하는 것이겠지요. 더러 사나운 욕심으로 성급하게 나물을 잡아당겨 뿌리가 빠지게 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런 경우 그 자리에서는 다시 그 나물을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요즘 산채 정식에 나오는 산나물, 참으로 다양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그 많은 나물을 어떻게 공급하는지 궁금하군요.”

 

누군가 묻습니다. 질문의 끝자락에서 저를 바라봅니다. 저는 답을 망설였습니다. 인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중국산 더덕을 국산이라 속였다가 논란이 된 이야기, 매년 중국에서 나물을 대량으로 구입해 오면서도 자연산만 씁니다라던 식당 주인의 위선적인 말. 이러한 현실을 아는 입장에서 저는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중국산이라도 자연산이고, 제대로 된 나물이라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중국산이라 해도 재배한 것과 자연산의 차이가 크지 않나요?”

 

누군가 되묻습니다.

 

“네, 맞습니다. 사실 자연산이라도 채취 시기가 맞지 않으면 향과 맛이 부족할 수도 있지요. 문제는 진짜 자연산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소비자가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누군가는 시장에서 자연산 누리대를 샀는데, 향도 이상하고 씹는 느낌도 달랐다고 합니다. 결국, 자연산이라 속여 팔린 재배 나물이었겠지요.

 

“정직하게 자연산으로만 음식을 내놓는 식당을 한다면, 정식 한 상에 얼마를 받아야 할까요?”

 

이 질문에는 누구도 선뜻 대답하지 못합니다. 자연산 식재료가 귀한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가격과 경쟁입니다. 자연산만을 고집하면 최소 5천 원에서 많게는 1만 원까지 가격을 올려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단골손님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좋은 음식은 결국 손님이 알아주는 법이지요.”

 

예전에 친구와 나눈 대화가 떠오릅니다. “술맛이 좋다면, 아무리 깊은 골목에 있는 가게라도 손님이 찾아온다.”주향불파항자심酒香不怕巷子深이란 중국 고사처럼, 음식의 가치를 알게 된다면 손님은 저절로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산나물의 향과 식감은 재배된 나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릅니다. 게다가 가까운 거리에서 수확한 신선한 재료로 요리한다면, 먼 거리에서 이동한 식자재와의 비교는 무의미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관광지는 서울의 대형 도매시장을 통해 유통된 채소를 사용합니다. 최소 하루 이상의 이동 시간을 거친 식재료를 쓰는 것이지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적정량을 소비해 준다는 조건으로 계약 재배를 하면 됩니다. 이는 과거 제가 봉제 공장을 운영할 때도 적용했던 방식입니다. 직원들의 점심 식사를 위해 정육과 채소를 한데 모아 공급받았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변하는 식자재를 직접 확인하고, 신선한 재료로 조리하니 직원들도 만족하였지요.

그러나 음식점 운영에는 또 다른 난제가 있습니다. 적절한 가격을 책정해 자연산으로 음식을 내어도, 손님들은 늘 추가 반찬을 요구합니다. 유럽의 식당처럼 추가 음식을 원하면 비용을 더 내야 하지만, 우리 문화에서는 그러기가 어렵습니다. 남은 반찬이 있어도 손님이 요구하면 무조건 제공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먹지도 않는 반찬들이 버려지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그럼 차라리 처음부터 제공하는 반찬 양을 줄이면 어떨까요?”

 

동석한 한 사람이 의견을 냅니다.

 

“그렇게 하면 또 불만이 나오겠지요. 적게 주면 아쉬워하고, 많으면 남깁니다. 딜레마입니다.”

 

음식을 고르게, 적정량만 섭취하는 습관이야말로 건강을 지키는 길입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라도 과하게 먹으면 탈이 나고, 균형 잡힌 식사가 곧 건강한 삶으로 이어지는 법이지요.

음식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직접 산과 들을 누비며 신선한 재료를 구하는 일이 늘 가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가의 재료에만 의존하면 손님은 떠납니다. 좋은 재료를 합당한 가격에 조달하고, 정성껏 조리하여 제공한다면, 그 가치를 알아보는 고객은 반드시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가 막나물이나 잡나물이라 하는 나물들이 있습니다. 원추리와 쥐오줌풀, 쑥부쟁이, 단풍취, 마타리, 미나리냉이와 같은 들과 산에 제법 많은 개체가 군락을 지어 자라는 나물들에 대해 이르는 말입니다. 이 나물들도 쓰임이 다양한데 곰취와 병풍취, 명이, 누리대와 같은 나물만 산나물로 생각하기에 천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음식점에서 이런 나물들을 이용한 음식을 개발하고 낸다면 고객과 주인이 서로 충분히 만족할 방안이 마련될 수 있습니다. 이때 문제는 저장할 공간입니다. 대부분의 음식점들이 몇 개의 요식업용 냉장고와 냉동고를 갖추긴 하였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음식점을 시작할 때 최소 3(9.9)정도 되는 저온저장고와 냉동고를 갖추어야 됩니다.

수급된 자연산 나물들을 곧장 데치는 등의 과정을 거쳐 냉동시키면 연중 자연산 산나물을 이용한 음식을 요리할 수 있습니다. 제때 손질을 못하는 경우라도 저온저장고에서 보름은 거뜬하게 싱싱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게 자연산 산나물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결국, 음식이란 단순한 생존의 수단이 아니라, 정성과 신뢰가 담긴 하나의 철학입니다. 자연산이냐, 재배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음식을 대하고, 손님에게 내놓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좋은 음식은 결코 속일 수 없고, 진정성 있는 음식점은 언제나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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