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양양장날이었습니다.
겨우내 맛난 김장김치를 보내주신 분께 지난해 봄 초피순을 채취해 담가 두었던 초피순장아찌와, 8월 하순 초피열매가 빨갛게 익기 시작할 때 거둬 말려 곱게 가루로 만든 초피가루를 보내드릴 겸 길을 나섰습니다.
냉이는 눈이 내리기 전에 서둘러 준비해 두었지만, 뭔가 봄을 좀 더 풍족하게 느낄 원추리나 부지갱이나물이라도 싱싱한 것이 나왔을까 싶어 장터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나 성의 없이 놓인 냉이와 달래, 직접 채취했다고 믿기 어려운 나물들을 보며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택배를 보내고 다시 시장을 거닐었지만, 예전처럼 활기가 넘치지는 않았습니다. 대장간도 한가롭고, 모종을 파는 곳도 찾는 사람이 없어 상인들은 봄볕 아래 의자에 몸을 깊이 묻고 졸고 있었습니다. 냉이와 달래, 온실에서 재배한 머위와 곰취는 가격이 죄다 기본 5천 원이었습니다.
한 바퀴 돌고 오랜만의 외출이 아쉬워 ‘양양 소락’에 들렀습니다. 점심시간임에도 한산했습니다. 그만큼 경기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겠지요. 유병환 사장님께서 특별히 제육볶음 1인분을 내주셨습니다.
식당 안은 두 팀이 식사를 하고 나가고 저만 혼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더니 말을 하더군요.
“무좀 때문에 병원에 왔는데 점심시간인 모양이여. 처방을 받아야 발톱무좀에 바를 약을 사는데 언제 여나?”
식사를 하는 손님이 있는데서 발톱무좀 이야기나 하는 노인이라니 정말 한심하더군요. 그러면서 그의 시선은 텔레비전 화면에 쏠려 있었습니다. 뉴스에서는 정청래 의원이 나왔고, 맞은편에 앉아 있던 노인이 이를 지켜보며 아주 작정을 한 듯 들으라며 크게 떠들더군요.
“저 나뿐 놈의 새끼가 대통령을 탄핵해서 나라가 어려워.”
그 말이 귀에 들어오자, 순간 젓가락질을 멈췄습니다. 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노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럼 국민을 상대로 비상계엄령을 발동하고, 3천 명 이상을 죽이려고 작당한 윤석열과 내란사범들은 그냥 둬야 합니까?”
노인은 머뭇거렸습니다. 말문이 막힌 듯 얼굴을 살짝 찡그리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더군요.
“나는 그런 건 모르네. 그래도 대통령을 탄핵을 시키고 구속을 시킨 나쁜 놈이 잖어.”
저는 술잔을 거푸 두 잔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차분히, 그러나 단호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2군단에서 시체를 담을 영현백 3천 개를 준비하게 하고, 내란을 일으킨 자가 누구인지도 모르십니까? 윤석열 같은 자는 사형을 받아 마땅한데, 정청래 의원 같은 이들이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가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이나 해보셨습니까?”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텔레비전 속 인물보다 내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듯하더군요.
“이것보세요. 나이가 들어도 세상 이치는 제대로 알고 말을 해야 욕을 안 먹어요. 나잇값 못하면 그게 사람인 줄 알아요. 금수만도 못한 잡놈이죠. 8월에 시체를 담을 종이관을 1000개 구입하면 얼마나 되느냐고 문의를 하고, 종이관이 아닌 시체를 담을 영현백을 기본적으로 1800여 개 유지하던 상태에서 3100개 이상을 추가로 구입한 다음 비상계엄령을 윤석열이가 한밤중에 방송에 나와서 선포했어요. 그때 만약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해제를 시키지 않았다면 그 영현백을 어떻게 사용했을 거 같아요? 뭘 알고 말을 해야 참지, 이건 나이만 쳐 먹고 헛소리나 씨부리니…”
잠시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슬그머니 식당을 빠져나갔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여전히 뉴스가 흘러나왔고, 저는 다시 식사를 이어 하며 그 바람에 그 자리에서 소주 2병을 비웠는데… 오후 햇살이 좋아 다시 시장을 한 바퀴 더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른 저녁식사로 소주 2병을 더 곁들였고 날이 저물어서야 귀가하게 되었습니다.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에 취해 다시 장터를 돌았습니다. 결국 이른 저녁 식사로 소주 두 병을 더 곁들이고, 날이 저물 무렵이 되어 귀가했습니다.
습관처럼 자정을 막 넘긴 시각, 글을 쓰다가 새벽 공기가 차가워지는 걸 느끼고 조리대로 향합니다. 새벽 일찍 밥을 준비하며 두 번 가볍게 헹궈 받은 쌀뜨물이 냄비 속에서 맑게 거품을 일으키며 온기를 머금기 시작합니다. 달빛이 아직 조리대 창을 어루만지는 시간, 손끝은 오래된 습관대로 김장김치의 부스러기와 뿌리 쪽을 골라내었습니다. 나무도마 위에서 칼질하는 소리가 적막을 가르는 동안, 주변은 여전히 잠잠합니다.
김치에서 배어나온 붉은 양념이 국물 속에 남아 있으니 이를 그대로 냄비에 부어줍니다. 알맞게 익은 김치국물이 스며들며 부드럽게 퍼지는 향이 가슴을 채웁니다. 거기에 청국장 350g을 넣으니 구수한 향이 순식간에 퍼집니다. 쌀뜨물과 김치, 청국장이 한데 어우러져 끓어오르며 집안의 공기마저 데워지는 듯합니다.
간을 맞추기 위해 달래초피된장을 풀어 넣으며 한 번 더 국자로 저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순간이 왔습니다. 반드시 ‘강릉심해두부’ 340g 한 모를 통째로 썰어 넣습니다. “간이 잘 배는 두부”라는 말이 있지만, 그건 찌개를 끓이는 두부에 해당되지 않는 억지라 생각합니다. 누름이 약한 두부는 쉽게 무너져 본래의 식감을 살리지 못하지요. 그런 두부 두 모를 강하게 눌러야 ‘강릉심해두부’ 340g 한 모 분량이 될 것입니다.
바닷물로 만든 단단한 두부가 국물 속에서 부드럽게 흔들릴 때쯤, 마지막으로 준비한 대파와 냉이를 한 줌 넣습니다. 이른 봄의 향이 훅 퍼지며, 겨울 내내 닫혀 있던 마음까지 열어주는 듯합니다.
냄비 뚜껑을 덮고 불을 줄이자, 자글자글 끓어오르는 소리가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한 숟갈 떠 맛을 봅니다. 푹 익은 김장김치의 깊은 맛과 청국장의 구수한 향이 혀끝에 감깁니다. 여기에 달래초피된장의 짭조름한 감칠맛과 두부의 부드러움,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안 가득 퍼지는 냉이의 싱그러움까지.
이 한 그릇 안에 지나간 계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는 작은 의식처럼, 김장김치로 끓인 청국장 한 그릇이 몸과 마음을 넉넉하게 채워줍니다. 창밖에는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새로운 하루의 시작, 뜨끈한 냄비 한가득 정성을 담아 끓인 김장김치청국장처럼, 오늘도 그렇게 깊고 따뜻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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