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공기가 제법 부드러워졌습니다. 창문을 열면 봄밤의 차가운 기운이 방 안을 감싸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물소리에 섞여 세상은 서서히 소음을 보태며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립니다. 문득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밤이면 이미 내 몸을 지배하는 사악한 주신이 속삭입니다.
“마셔. 인생 뭐 있나. 더구나 근사한 봄밤이잖아. 즐기라고…”
결국 처참하게…, 아니 어쩌면 그러길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미 조리대로 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청국장을 데워 아침인지 점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식사를 하겠다고 올려둔 냄비를 잊고 글 한 편을 완성하고서야, 선물로 받은 횡성한우 흑양과 이틀 전 자전거를 타고 들녘에서 한 움큼 캐와 손질해 둔 냉이가 떠올랐습니다.
이미 어떤 천사가 와도 못 말릴 상황입니다. 입 안 가득 퍼질 냉이 향과 쫄깃한 흑양의 식감이라면, 이 밤을 더없이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의 성령의 은사(恩賜)를 바랄 일도 없이 충만합니다.
가족들이 함께 있었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 이런 시간에만 가능한 소소한 사치를 한껏 부리려 합니다.
우선 가스레인지에 냄비에 물 1리터 정도를 끓인다. 이 시점에서 창조자 신이 됩니다. 팔팔 끓는 물은 냉동실에서 견뎌온 흑양을 위한 축복입니다. 그 비좁고 시베리아…, 아니 캐나다 누나부트의 혹독한 흑야 그대로일 냉동실에서 꺼낸 흑양을 위한 은총이요, 성대한 축복의 기름부음입니다.
저는 더 높은 차원의 은사를 위한 물을 끓이며 프라이팬을 달구고, 식용유를 두릅니다. 다진 마늘을 넣자 기름 위로 절대자를 위해 예배해둔 은은한 향이 피어오릅니다. 마늘이 노르스름하게 변해갈 즈음, 성령의 은사를 받지 못한 흑양을 뜨거운 물에 한 번 헹구고, 또 한 번, 다시 한 번.
세 번의 뜨거운 세례식을 마친 흑양은 마침내 부드럽고 윤기가 돕니다. 이제 본격적인 훈육의 시간입니다. 프라이팬 위로 흑양을 광야로 내 몬 신처럼 야멸차게 던져 넣고, 냉장고에 넣어둔 냉이를 한 움큼 가득, 우리에 가든 어린 양들에게 성찬을 베푸는 목자처럼 인자한 미소를 보태 올립니다.
달궈진 프라이팬에서 흑양과 냉이가 기름을 머금고 서로 어우러지기 시작합니다. 향긋한 냉이 향이 기름과 만나며 더욱 짙어집니다. 이제 사해(四海)의 뜨거운 태양도 만났을 소금 약간, 그리고 이 땅의 온기와 볕을 듬뿍 품은 청장 한 수저를 더해 간을 맞춥니다. 마지막으로, 정말이지 이 색깔은 치 떨리지만 고춧가루를 솔솔 뿌려주니 붉은 가루가 흑양과 냉이 사이를 어루만지듯 내려앉습니다.
접시는 필요 없습니다. 이런 요리는 프라이팬째 테이블로 가져가야 제맛입니다. 소주 한 잔을 곁들이면 이 순간이 완벽해집니다. 누가 볼 것이며, 누가 잔소리하겠는가?
한 점 집어 입에 넣자 쫄깃한 흑양이 다시 생명을 얻어 퍼들거리고, 그 사이로 냉이의 봄 향기가 확 퍼집니다. 참으로 충만한 은사입니다. 쌉싸래한 그 향이 입 안 가득 차오를 때, 쓴맛마저도 이 시절의 일부처럼 느껴집니다.
봄밤은 이렇게 깊어갑니다.
흑양과 냉이를 볶아 잔을 기울이다 보니, 문득 하얀 밥 생각이 납니다. 米國의 맛, 참기로 합니다.
알지요, 당연히. 남은 볶음을 그대로 두고 밥 한 공기를 털어 넣어도 좋습니다. 흑양과 냉이, 고소한 기름과 청장의 감칠맛이 어우러진 볶음밥이라면, 봄밤의 마지막까지 따뜻하고 든든하게 채워줄 것이란 사실 자 압니다.
이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향과 맛, 흑양과 냉이 한 접시로 맞이하는 봄밤.
봄밤, 너무도 이른 시간에 준비한 흑양냉이볶음 냄새가 문틈을 넘어 창밖으로 퍼져나가지만, 서글프기만 합니다.
'장맛좋은집 > 자연의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잡나물의 노래, 들과 산이 주는 선물 (0) | 2025.03.18 |
---|---|
방송과 언론의 선택적 조명 문제 (0) | 2025.03.17 |
달래양념간장을 위한 시 한 편 (0) | 2025.03.12 |
백종원, K-Food의 과대 포장된 신화 (1) | 2025.03.12 |
냉이 한 줌으로 시작하는 봄 (0) | 2025.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