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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기억과 책임, 그리고 4월의 바다 4월 16일, 부모로서 다시 마주한 그 11년. 매년 4월 16일이 가까워오면 마음속 어딘가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거의 글을 쓰지 못한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 그날을 기억하는 일은 저에게도 참으로 고통스럽고 조심스러운 일이었습니다.저도 딸아이와 아들을 키우는 부모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어떤 말을 꺼내는 것이 조심스러웠습니다. 혹여나 제가 쓴 글의 한 문장, 한 단어가 아직 치유되지 못한 누군가의 마음을 다시 후벼파는 일이 될까 두려웠습니다. 감히 그 아픔을 안다고 할 수 없기에, 오히려 말없이 멈추는 것이 더 책임 있는 태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러나 기억한다는 건 때로 침묵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이제는 말없이 보내온 지난 시간의 마음.. 2025. 4. 16.
시대를 지킨 조용한 사람의 무게 조용한 품성이 남긴 시대의 울림   덕망(德望)이란 ‘덕(德)’과 ‘망(望)’의 합성어로, 도덕적 품성과 행실에서 비롯된 명망(명예와 명성)을 뜻합니다. 단순히 명성이 높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명성이 도덕성과 인격, 즉 ‘사람됨’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덕망 있는 사람은 권력을 앞세우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며, 공공의 선(善)을 위해 자신을 낮추는 태도를 지닙니다.덕망은 권위와 다릅니다. 권위가 지위나 힘에서 비롯된다면, 덕망은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존경입니다. 그러므로 덕망은 억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꾸준한 삶의 자세와 말, 행동을 통해 차곡차곡 쌓이는 것입니다.덕망 있는 이의 말은 무겁지 않아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존재만으로도 공동체에 신뢰를 줍니다... 2025. 4. 12.
퇴거하는 윤석열 입장문의 의미 헌법재판소 파면 이후의 침묵과 소음   물러나는 자의 발걸음은 무겁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경쾌했습니다. 헌법재판소로부터 대한민국 헌정사상 두 번째 8인 만장일치 파면을 당하고도, 한남동 관저를 나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발걸음엔 부끄러움도, 회한도 없었습니다. 그의 말은 여전히 단호했고, 그의 시선은 여전히 저 멀리, 현실과는 무관한 세계를 바라보는 듯했습니다. 그가 낸 입장문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새로운 길’로 시작하여, ‘자유와 번영의 대한민국’을 다시 말하며 끝맺었습니다. 말은 화려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저는 단 한 줄의 반성도, 한 점의 죄책감도, 국민에 대한 송구함도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계엄을 선포했고, 군경을 동원했으며, 선거관리위원회에 병력을 투입하려 했고, 헌법상 권한을.. 2025. 4. 11.
쌈밥, 잎을 펴면 마음이 열립니다 계절을 즐기며 자연을 품고, 사람의 정을 나누는 미덕   저에게 쌈의 중심은 언제나 쌈의 재료들입니다. 뜨끈한 밥을 한 숟가락 떠올려, 된장에 살짝 묻힌 고추 한 조각이나 마늘 한 조각을 얹어 쌈을 싸 먹는 일은, 그 자체로 한 끼를 온전히 누리는 일이 됩니다. 반찬이 많지 않아도, 싱싱함이 느껴지는 이파리 한 장 위에 얹은 밥이나 고기 한 점과 정성 가득한 쌈장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은 금세 부드러워집니다. 그런데 이 쌈밥이 품은 세계는 그보다 훨씬 넓고도 깊습니다.어제, 페이스북 ‘양양핫플gogo’ 모임을 함께하는 홍윤정 씨로부터 정규모임을 ‘쌈이랑’에서 한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쌈’이라는 말에 이끌려 저는 기꺼이 그 자리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홍윤정 씨는 제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줄.. 2025. 4. 10.
봄을 번역하는 정선의 농부 이희건 출판과 번역을 그대로 닮은 철학적 농법   강원도에서는 오래전부터 ‘멍이’라 불렀습니다. 한 음절 더 짧은 가 싶으면서도 한층 더 다정하고, 입술 안쪽에서 부드럽게 굴러 나오는 이름으로 산마늘, 혹은 명이나물이라 불리는 그 식물은 ‘멍이’라는 토박이말로 오랜 세월 사람들 곁에 있어 왔습니다.백화점 진열장에서 진공포장 된 채 이름표를 달고 있는 명이나물을 처음 마주했을 때, 많은 이들은 울릉도에서만 생산되는 줄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명이는 소백산과 태백산, 오대산, 설악산의 해발 1200미터를 훌쩍 넘는 고지대에서 눈을 뚫고 피어나는 가장 먼저 봄을 여는 산나물 중 하나입니다. 설악산 해발 1400미터에서 만난 명이는 울릉도 명이에 비해 잎이 좁고 줄기 색도 진한 자줏빛을 띱니다. 맛 또한 다릅.. 2025. 4. 9.
특권의 꽃대 위에 핀 이름, 심우정의 딸 정의의 봄은 누구에게 오는가?   심우정 검찰총장과 그의 딸 심민경 씨의 채용 특혜 의혹은 단지 한 가족의 일탈로 보기에는 너무도 정교하고, 또한 너무도 침묵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은 한 사람의 이름을 호출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견뎌온 ‘공정’이라는 허상의 껍질을 벗기고, 그 아래 드러난 민낯을 응시하려는 시도입니다. 국가 권력이 보장하는 자리가 능력보다 혈연과 권력의 명함으로 채워지는 순간, 법과 제도의 이름은 허울뿐이라는 사실을 이 사건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국립외교원은 석사학위 소지자이자 동일 직군 경력 2년 이상의 자격을 갖춘 이들에게만 응시 기회를 주는 자리에, 학위조차 취득하지 않은 심민경 씨를 합격시켰습니다. 외교부는 더욱 노골적이었습니다. ‘경제 분.. 2025.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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