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6 달래 자라는 들녘에서 봄을 담다 봄날의 밥상 위에 피어난 연대의 향기 봄날, 햇살이 부엌 창을 제법 오래 비쳐들 때쯤 달래를 손질하며 봄이 왔음을 실감하던 기억이 납니다. 설을 지나며 흙을 비집고 나온 달래는 마치 흙속에서 겨울을 꾹 참고 버틴 생의 기척 같습니다. 어릴 적 어른들은 이걸 “달래처럼 봄이 자란다”고 했고, 저는 그 말이 참 좋았습니다. 달래처럼 봄이 자란다는 건 봄이 왔다는 말이기도 했으니까요.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가방에 몇 장의 비닐봉지와 작은 곡괭이, 장갑이 자리합니다. 때로는 양지바른 둔덕을 찾아 맑은 풍경 속에서 책을 읽기도 하지만, 챙겨간 도구들은 앉았던 근처 땅에서 위력을 발휘합니다. 냉이와 씀바귀, 때로는 무더기로 자라는 달래를 만나면, 그 뿌리를 조심스레 캐냅니다.해토된 땅을 뒤집어 한 줌씩 뽑아 올.. 2025. 4. 7. 봄의 전주곡, 기쁨과 기다림의 미학 봄의 전주곡, 기쁨과 기다림의 미학― 기다림과 기쁨이 엮어내는 자연의 미학 봄은 언제나 그렇듯 불현듯 찾아옵니다. 자연의 모든 생명력이 일시에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때마다 기대와 설렘을 품고 봄을 맞이합니다. 여전히 바람은 차고, 눈도 몇 번 더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백두대간을 넘는 길목의 눈이 덮여 있던 산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는 것을 보며 봄이 왔음을 직감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봄은 온몸으로 준비하며 서서히, 그러면서도 불시에 다가옵니다.이맘때, 매년처럼 떠오르는 것은 쑥국의 향기입니다. 쑥과 달래의 싹이 눈을 뚫고 나오는 모습은 겨울을 끝내고 온 세상에 봄이 피어나는 전주곡처럼 느껴집니다. 아직 산의 모습은 적막하지만 한 뼘 자란 취를 만났을 때의 그 기쁨, .. 2025. 3. 25. 봄을 짓는 마음으로 시를 짓고… 봄은 거저 오는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힘차게 수관을 타고 오르는 물도 저절로 나무 속에 스며든 것이 아니듯, 봄은 부단한 기다림과 노력 속에서 스며들어 옵니다.나뭇가지에 꽃눈이 맺힐 것은 맺히고, 여린 잎을 먼저 틔울 것들은 분주히 준비를 마친 이즈음에야, 비로소 눈이 제대로 내리기 시작합니다.겨울 동안 서풍에 밀려온 구름들은 오는 도중 모조리 힘을 소비한 탓에, 여간해서는 눈다운 눈을 쏟아놓지 못합니다.그러나 2월을 넘겨 복수초가 산골짜기 양지바른 곳에서 노랗게 꽃등불을 밝히기 시작하면,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동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백두대간 안쪽으로 깊숙이 밀고 들어오면서, 기다렸던 눈이 쏟아집니다.이제야 봄이 오려나 싶지만, 그 과정은 여전히 더디고도 질서 있는 법이지요.변.. 2025. 3. 18. 봄, 경계를 넘어서 맞이할 우리들의 봄은 지난 겨울은 참으로 고단하고 슬펐지만 봄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눈이 내렸고, 곧 또 한 번 내릴 거라고 하지만 저의 눈에는 더 이상 겨울이 보이지 않습니다.많은 분들이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봄을 위해 깃발을 들고 항거의 몸짓을 보일 때. 그저 시와 글로 응원을 하며 함께 하려는 마음 정도만 보탰습니다.냇가로 나가 보니 봄이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찬 기운이 아직 냇물 위를 맴돌지만, 산곡의 나무들은 주저 없이 황홀한 완성을 위한 꽃망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자연이 제 몸에 스며든 습기를 밀어내고, 부푼 꽃망울을 터뜨리는 순간의 황홀함을 우린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 영광의 아침을 더 찬란하게 맞이하려, 작은 손들마다 따스한 빛살을 스스로 만들며 일어설 준.. 2025. 3. 15. 냉이 한 줌으로 시작하는 봄 며칠 만에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습니다. 따스한 봄볕이 살갗을 스치고, 공기 속엔 부드러운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포근합니다. 겨울의 마지막 자락을 움켜쥐던 차가운 바람도 한결 가벼워지고, 양양의 하늘은 맑고 투명했습니다.자전거를 타고 거마천로를 달리며 바라본 설악산의 줄기엔 여전히 눈이 덮여 있었습니다. 화채봉이며 관모봉, 대청봉 할 것 없이 하얀 빛이 찬란하게 반짝였습니다. 그러나 산 아래 양양의 땅은 달랐습니다. 며칠 전 내린 눈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햇살이 내려앉은 들녘엔 봄의 기운이 완연했습니다.페달을 밟으며 길을 따라 달리다가 문득 멈춰 섰습니다. 밭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 거뭇하게 보여, 자전거를 길가에 세우고 막 초록의 잎을 지면에 덮기 시작한 보리밭을 지나 걸어 들어갔습니.. 2025. 3. 11. 전혀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삶 ▲ 2월이 시작되었습니다. 들녘 볕이 좋은 자리엔 냉이와 달래가 기지개를 켜고 봄을 먼저 시작합니다. 본격적으로 산을 찾는 시기가 아니라면 대체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잠에 든 시간에 글을 쓰거나 책을 읽습니다. 그만큼 정신을 집중하기 좋은 시간이어서 그런가 생각되지만, 낮엔 이런저런 일로 연락이 오거나, 가끔 멀리서 찾아온 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느라 그렇기도 합니다. 늦은 밤, 창밖에 트럭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운전기사가 도로를 달려오는 도중에 잠을 쫓기 위해 틀어놓았음직한 트로트 가락의 노래가 울립니다. 그와 함께 먼데서 도착한 조간신문 배달차가 다녀가면 새벽 2시 무렵이란 걸 자연히 알게 됩니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나면 창이 환하게 밝아지고 햇살이 좋은지, 날이 흐리거나 비 소식은 없는지를 확.. 2025. 2. 2.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