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맛좋은집/자연의향기

돌미나리, 낮은 곳에서 피어난 생명

by 한사정덕수 2025. 4. 8.
반응형

돌미나리, 낮은 물에서 피어난 생명의 노래

 

돌미나리는 낮은 물가에서 시작되는 식물입니다. 계곡이 아닌 묵은 논이나 수렁, 샘터로부터 시작되어 길게 이어지는 숲의 도랑 같은 곳에서 그 자리를 지키며 자라납니다. 사람의 발길이 자주 닿지 않는 곳, 물이 고이고 볕이 적당한 곳에 스스로 뿌리를 내리는 이 풀은,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성격을 가졌습니다.

 

이름에 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으나, 그것은 자라는 장소를 말할 뿐 성질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 들어가 있는 식물은 돌나물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돌은 곧잘 라는 말과도 어우러져 사용되거나 로도 혼용되곤 합니다. 이 모두 자연自然 상태 그대로의 환경과 연관지어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인위성이 전혀 간섭하지 않는 상태의 천연의 성품인 것이지요.

돌미나리는 거칠지 않으며, 조용한 향과 단단한 기운을 동시에 품은 식물입니다. 그 줄기는 자줏빛이며, 향은 다른 미나리에 비해 더욱 강하고 뚜렷한 결을 가집니다. 향을 맡고 있으면, 땅의 수분과 시간이 함께 코끝에 와 닿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전통적으로 돌미나리는 해독과 정화의 식물로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동의보감에는 음주 후 두통을 완화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대의 영양학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비타민 CA, 칼륨, 철분, 칼슘, 식이섬유는 물론, 플라보노이드 성분까지 고루 갖춘 이 식물은 단순한 나물을 넘어 하나의 생명 약속처럼 읽힙니다.

돌미나리는 봄이 오기 전부터 땅속에서 움직입니다.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봄을 준비하며, 물이 머무는 자리에서 천천히 잎을 틔웁니다. 그 모습은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생명력을 조용히 조율하는 행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저 한 줌의 나물로 여길 수 있으나, 그 이면에는 깊고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생명의 문장이 숨어 있습니다.

섭취법도 참으로 단정하고 정갈한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생으로 무쳐 먹으면 향이 온전히 살아나며, 해산물 조림이나 된장찌개에 넣으면 감칠맛이 더해집니다. 즙을 내어 마시는 이도 있는데, 이는 간 해독이나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그 모든 섭취는 절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과하면 복통이나 구토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매운탕이나 복어국, 또는 복어회와도 아주 잘어우러지고 궁합이 맞는 나물입니다.

보관은 신문지에 싸서 냉장고의 가장 아래 칸, 0도에서 5도 사이의 낮은 온도에서 이뤄져야 신선함이 유지됩니다.

 

물김치를 담글 때, 돌미나리를 넣는 것은 봄을 국물 속에 담는 일과 같습니다. 돌나물과 나박썬 무, 그리고 한 움큼의 돌미나리를 함께 담으면 맑고 투명한 국물 속에 산과 들의 기운이 번져 나옵니다. 향은 가라앉고, 맛은 부풀며 단순한 김치를 넘어선 계절의 풍경이 됩니다. 깍두기를 담글 때에도 돌미나리를 함께 넣습니다. 단단한 무의 단맛 사이사이에 퍼지는 은은한 향이 이채롭고도 조화로워, 그 맛을 기억해두었다가 다시 꺼내보고 싶어질 만큼 근사한 깊이를 남깁니다. 익을수록 더해지는 은근한 풍미는 여느 향신채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의 층위입니다.

돌미나리는 조리법에 있어서도 의외의 궁합을 자랑합니다.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한 줄기씩 곁들이면, 기름진 고기의 풍미를 정갈하게 정리해 줍니다. 향이 앞서지 않으면서도 입안을 깔끔히 비워주어, 고기와 풀의 조화란 무엇인지 다시금 느끼게 합니다. 미나리전을 부쳐 먹는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반죽 사이로 퍼지는 향과 아삭한 식감이 어우러지면, 봄을 입 안 가득 펼쳐놓은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 순간의 조화는 소박하지만, 계절의 기쁨을 입 안에 꽃피우는 일입니다.

한재미나리는 그중에서도 널리 이름이 알려진 존재입니다. 경상북도 청도 화악산 자락, 해발 900미터가 넘는 산골에서도 자라는 이 미나리는 암반수를 끌어와 재배됩니다. 물은 연중 18도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미나리는 그 고요한 물속에서 천천히 자라납니다. 향은 선명하고, 질감은 부드러우며 씹을수록 봄의 깊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은 단지 식재료를 넘어 지역의 얼굴이 되었고, 사람들은 봄이면 이 미나리를 찾아 먼 길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 한재미나리로 특화된 미나리의 원형이 바로 돌미나리인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한재미나리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기엔 아직 조심스러운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이 미나리는 청도군 일대의 농가에서 벼대신 논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하고 안에 물을 채운 밀식 재배 방식으로 생산됩니다. 10제곱센티미터의 좁은 공간에서 1킬로그램을 수확할 수 있을 만큼, 생산성은 높지만 자연의 호흡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비닐하우스라는 인위적 공간 속에서 자라는 이 미나리는 철저히 통제된 환경에서 생산됩니다. 자연의 리듬과 계절의 흐름보다는 시장의 속도에 맞추어지는 경우가 많기에, 그 정성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양은 많지 않지만 자연산 돌미나리는 완전히 다른 결을 지닙니다. 5킬로그램의 돌미나리를 채취하려면 몇 십 미터에 걸쳐 습지를 찬찬히 살펴야 하는데, 다양한 수생식물과 습지식물들이 함께 자라는 환경 속에서 발견됩니다. 그러한 공존은 돌미나리에게 더욱 풍부한 양분을 제공하고, 그로 인해 맛과 향, 영양까지도 보다 깊어집니다.

낮은 도랑 옆, 볕이 드는 논둑길 옆 풀밭에 자리해서 제멋에 자란 돌미나리는 향부터 다릅니다. 햇살 아래 자연의 생태 속에서 자라난 돌미나리는, 때로 억세고 초라해 보일 정도로 작지만 그 안에는 깊은 생의 밀도와 자율이 배어 있습니다. 입에 넣는 순간 퍼지는 향은 단지 혀끝의 일이 아니라, 마음을 지나가는 일이라고 저는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4월 중순부터 가을까지 도랑가에서 우연히 만나는 그 한 포기의 돌미나리를 더 귀하게 여깁니다. 늘 자연으로부터 자작거릴 정도로 맑은 물을 공급받는 작은 도랑가, 그 수면 위로 퍼진 연초록 잎들이 바닥을 덮고 있는 풍경은 계절의 속살을 드러내는 장면과도 같습니다.

돌미나리는 그곳에서 다른 식물들과 함께 어우러져 자라며, 바닥의 이끼 위로 조용히 몸을 눕힙니다. 그러다가 볕이 점차 황도를 달리하며 보다 긴 시간 포근한 손길을 내밀면 곧게 일어서기 시작합니다. 서서히 자줏빛 줄기를 가진 어린 돌미나리는 갈대와 마른 풀 사이에 섞여 햇살을 받으며 들숨을 쉬듯 잎을 벌리며 말입니다.

흐르는 물 위로 가지런히 퍼진 자잘한 잎들, 그 위를 스치는 햇살의 떨림까지도 돌미나리의 숨결처럼 느껴집니다. 벚꽃이 흐드러진 산자락 아래, 물 고인 옛 논의 평온한 수면 위로 아직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돌미나리의 어린 포기들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산과 들과 물이 만나 이루는 이 고요한 생태의 풍경 속에서, 돌미나리는 계절의 중심이 되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 자리, 그 시간에만 존재하는 생명은 그 어떤 상품보다 소중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돌미나리는 하나의 식물 그 이상입니다. 생명의 문장이고, 철학의 식물이며, 계절이 가장 먼저 손을 얹는 자리에서 자라는 존재입니다. 그것은 봄을 말하는 나물이라기보다, 봄을 품고 있는 존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