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겨울을 지나 삶의 뿌리를 세우는 연두빛
1970년 저는 구룡령 바로 아래 갈천 증골 큰집에서 4월을 맞았습니다. 막 들에 풀이 돋기 시작하는데 큰아버지는 소로 밭을 가시면서 소의 입에 망(멍우)을 씌웠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큰아버지한테 물었습니다.
“큰아버지, 왜 누렁이한테 입을 벌리지 못하게 그렇게 망을 씌우나?”
제 질문에 큰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소가 풀맛을 보면 여물을 안 먹거든. 아직 소가 배부르게 먹을 풀도 자라지 않았는데 여물을 안 먹으면 소가 일을 할 수 없단다. 그래서 풀을 뜯을 생각을 못하게 망을 씌워서 밭을 간단다.”
맨발에 낡은 옷을 입고, 소에 쟁기를 채워 비탈진 밭을 종일 가는 큰아버지는 소가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이러, 올라서, 이러, 와~ 와~, 돌아서”를 노래처럼 부르며 소를 몰고 밭을 갈았습니다. 이때 소로 밭은 가는 윗밭 아래 우물에서부터 아랫밭과 마당과 이어진 밭 사이로 비탈을 따라 흐르는 물길 양 옆으로 머위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보드라운 꽃대들도 제법 여럿 보였습니다.
머위는 봄을 제법 일찌감치 알리는 나물입니다. 냉이가 막 꽃대를 올리기 시작하고 달래가 파랗게 잎을 변모시키기 시작하면, 머위도 조심스레 그 짙은 잎을 펴기 시작합니다. 숨어 자라다가도 어느 순간 툭 튀어나온 머위의 연초록의 꽃대와 꽃은 포근하면서도 단단하고, 찬 기운이 남은 봄바람을 맞으며 당당하게 자리를 잡습니다. 생의 경계를 넘는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머위 같은 식물일지도 모릅니다.
머위는 늘 경계 가까이에서 자랍니다. 울타리 안이 아니라 그 바깥, 마을과 산의 사이, 인간의 손이 머무르다 마는 곳. 어딘가 뿌리내리기에는 망설여지는 자리에 머위는 뿌리를 깊게 눕혀 자랍니다. 뿌리는 종종 돌 틈을 피하지 않고 통과하고, 줄기는 햇볕을 향해 비틀듯 솟아올라 거친 삶을 꿰뚫는 듯 보입니다.
머위는 채취할 때 뿌리가 깊고 줄기가 단단히 누워 자라기에, 손으로 잡아끊기보다는 포(苞) 위를 칼로 가볍게 도려내듯 자르는 게 좋습니다. 억지로 뽑듯 잡아채면 줄기 끝이 짓이겨져 흙과 오염이 쉽게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조심스레 도려낸 줄기를 모아 쥐다보면 손끝에 묻어나는 갈색 물은 봄의 노동이 주는 작은 흔적입니다.
이렇게 채취한 머위잎은 찬물에 가볍게 흔들어 헹군 뒤, 소금을 넣고 끓는 물에 살짝 데칩니다. 삶아낸 머위는 찬물에 식혀 물기를 빼고, 크고 넓은 잎은 쌈으로 쓰고, 잎이 작은 것들은 된장과 들기름, 들깨가루를 더해 조물조물 무칩니다. 국간장을 넣고 무쳐도 담백한 맛이 살아납니다.
머위는 꽃도 귀합니다. 머위꽃대는 잎보다 먼저 올라오기도 하고, 잎 사이로 엿보이기도 합니다. 땅을 밀어내고 솟구치는 머위꽃대는 꽃이라기보다는 ‘밥상 위의 봄’ 그 자체입니다. 잡티를 털어내고, 소금을 넣고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뒤 찬물에 헹궈 꼭 짜낸 다음 곱게 다지거나, 씹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면 저며썰기를 해 머위된장을 만들어 두면 그보다 더한 봄은 없습니다. 향이 진한 쌈장으로 만들어두면 어디에 내놓아도 계절이 피어납니다.
머위잎으로 만든 쌈밥은 삶에 대한 예의를 차린 밥상입니다. 뜨끈한 밥을 한 숟갈 떠 머위잎에 얹고, 그 위에 머위꽃대로 만든 머위꽃쌈장을 올린 다음 매실청을 조금 섞어 간을 맞추면 깊은 단맛과 쌉싸래한 풀향이 어우러져 입 안 가득 봄이 깃듭니다. 그것은 그저 쌈이 아니라 지난겨울을 지나온 사람들의 연대를 담은 한 입입니다.
우리는 지난겨울, 민주주의의 회복을 염원하며 거리에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촛불의 깜빡임보다 더 간절했던 국민의 한숨과 기도, 그 절실함을 기억합니다. 혹독하고 매서운 계절을 견디고 맞이한 봄날, 들녘에서 돋아난 머위 한 포기와 마주하며 서로를 믿고 지탱해온 연대의 향기가 그 잎사귀 속에 깃들어 있음을 느낍니다.
머위는 조용한 식물입니다. 소리 내지 않고 살아내며,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뿌리를 내립니다. 그러나 그 삶의 구조는 단단합니다. 머위가 피어나는 봄은 조용하지만 위대합니다. 그건 한겨울의 끝자락에서 피어난 작은 승리이며, 온몸으로 살아냈다는 생의 증거입니다.
머위를 다듬는 손끝에, 지난 계절을 지켜낸 마음들이 모입니다. 머위는 결국 식탁 위로 올라와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이 봄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입니다. 쌈 한 입, 된장 한 숟갈 속에 담긴 생의 고백. 그 고백은 그저 향긋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진실입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 이치코가 머위꽃대를 다져 된장과 함께 볶아 만든 머위된장을 밥 위에 올려 먹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일본 북부의 눈 덮인 밭에서 캐낸 머위는, 한국의 들녘에서 자란 머위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머위를 손질하며 봄을 맞이하고, 된장 속에 계절을 담아 삶을 이어갔습니다. 머위의 쌉싸래한 맛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나고 자란 땅의 기억, 어머니의 손맛과 닮아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머위를 통해, 우리는 국경을 넘어선 공통의 감각을 만납니다. 그것은 자연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며, 계절과 함께 호흡하는 식탁의 철학입니다. 한 줄기 머위를 손질하며 우리는 묻습니다. 이 봄, 당신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지켜낼 것인가.
머위가 가진 향과 맛은 단지 입맛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머위 속엔 항산화 물질인 폴리페놀과 플라보노이드가 풍부해 세포 손상을 막고 해독 작용을 도와줍니다. 가래를 삭이고 기침을 완화하는 사포닌은 기관지염과 천식에도 효과가 있으며, 칼슘과 마그네슘은 뼈를 튼튼하게 지켜줍니다. 칼륨은 혈압을 낮추고 베타카로틴은 혈관 건강에 이롭지요. 비타민 A와 C는 피부와 눈 건강에 좋고, 식이섬유는 소화와 다이어트에 도움을 줍니다. 또 머위에 함유된 페타신은 진통과 항염 작용에 탁월해 두통, 관절염, 전립선염, 자궁염에도 효능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무엇보다 숙취 해소와 간 기능 강화에도 효과가 있어 오래전부터 산골 어르신들이 머위를 즐겨 드셨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머위의 뿌리 또한 오랜 세월 약재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뿌리를 캐어 깨끗이 씻은 뒤 어슷하게 썰어 정종에 담갔다 건져 볶는 과정을 7회에서 9회 정도 반복하면, 언제든 차로 우려 마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든 머위 뿌리차는 간을 보호하고 해독 작용을 도우며, 몸속 깊은 곳까지 따스한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단, 머위에는 알칼로이드 성분이 있어 생으로는 섭취하지 말고 반드시 데쳐서 조리해야 합니다. 삶고 나면 독성은 사라지고 머위 고유의 향긋하고 깊은 맛이 온전히 살아납니다.
그러니 머위를 조리하는 일은 단지 요리의 과정이 아니라, 자연을 존중하고 생명의 질서를 따르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이 봄, 머위 한 포기로 우리는 삶의 경계와 계절의 지혜를 함께 배우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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