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오래전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제가 태어난 집은 1960년대 이렇게 지어진 강원도의 산촌에서 쉽게 만날 수 있던 북방식 구조의 너와집이었습니다. 굴피지붕을 얹은 굴피집에서도 살았었지요. 이런 집의 주변엔 달래와 냉이, 씀바귀가 봄이면 정말 많았습니다.
'맛깔지다'는 느낌에 슬며시 입 안 가득 침샘을 자극하며 마음이 푸근해지는 계절, 가을엔 참으로 분주했을 밭을 봅니다. 김장에 사용하고, 명년 봄 고추장을 담글 고추가 빨갛게 익었나 싶더니 하루가 다르게 쇠락하는 모습을 보였을 수도 있고, 여름 한 철 쌈 재료로 잎도 내어주고 줄기째 뭉텅 잘리기도 하고도 나물을 무치거나, 암반에 한껏 쳐대고 길게 뽑은 가래떡이나 손자국 선명한 송편을 막 꺼내 들러붙을까 바르던 기름도 내어준 들깨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쩌면 가마솥에 풀 삶기고 처마 밑에 볏짚 띠 동여매여 줄줄이 매달린 메주로 거듭난 콩일 수도 있었을 눈밭에 그루터기만 조금 드러낸 밭은 농부의 성품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가을걷이를 한 밭도 어느 한편에 붕긋이 무덤처럼 쌓인 타작의 흔적이 보인다면 눈이 덮였다 하더라도 들깨나 참깨를 심었던 밭 이었구나 합니다. 둔덕 아래로 키 작은 관목을 거칠게 베어 흩어놓은 듯 잔상이 보인다면 고추밭일 수도 있지요.
들깨를 심었다고 확인되면 굳이 수고할 필요를 못 느낍니다. 들깨 심은 밭에서는 어찌된 영문인지 냉이와 달래는 찾기 힘듭니다. 무성한 잎 때문에 광합성을 통해 성장을 촉진시키는데 필요한 빛을 충분히 받을 수 없어서일까요? 그런 경우라면 옥수수밭이나 감자밭, 배추와 무밭이 더 냉이나 달래에게 빛을 받을 기회를 안 줍니다. 배추와 무밭, 옥수수밭은 달래와 냉이 잘 자랍니다.
▲ 제가 몇 년 살던 집이라면 그 주변엔 이처럼 달래와 참취, 냉이, 고들빼기와 같은 나물로 이용할 수 있는 식물이 자랍니다. 달래는 뿌리를 심거나 씨앗을 구입해 파종하지 않습니다. 한줌의 달래를 채취해 씻을 때 별도로 거름망을 하나 준비하고 흙과 함께 떨어지는 작은 하얀 알갱이들을 집 주변의 농사를 짓지 않는 공터에 뿌려주는 걸로 끝입니다. 2~3년 뒤면 매번 채취해 먹어도 그보다 더 많은 양이 새로 자라게 됩니다. 물론 달래를 손질할 때 매번 같은 방법으로 거름망에 받은 하얀 알갱이를 뿌려주기만 하면 됩니다.
더구나 김장을 담으려고 심는 무와 배추는 냉이와 달래가 새로 싹을 내는 여름에 파종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와 배추밭은 심지도 않은 달래와 냉이가 많습니다. 그 밭은 봄엔 감자를 심어서 6월을 전후하여 거둬들인 밭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왜 들깨를 심었던 밭엔 냉이와 달래가 있더라도 아주 드물게 있을까 싶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들깨는 가을에 잘라 단을 묶어 며칠 말린 다음 밭에서 그대로 터는 작업을 합니다. 대부분의 들깨밭이 그렇게 하더군요. 밭엔 들깨를 턴 흔적으로 깨를 성장시킨 둘깨껍질이 두껍게 쌓인 상태로 겨울을 맞고 눈 속에서 그대로 흙과 한 몸이 되어 봄을 맞습니다. 제 판단으로는 이런 문제로 들깨를 심었던 밭에 달래와 냉이가 자라지 못하는 환경이 되었다 싶습니다.
요즘에야 달래와 냉이, 씀바귀, 고들빼기를 다양한 종자를 판매하는 종묘사에서도 종자로 판매합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종묘사에서 구입해 파종하지 않아도 산이고 들이고 사람이 농작물을 심었던 밭이 있으면 달래와 냉이, 씀바귀, 고들빼기는 저절로 나고 자랍니다. 요즘에야 덜하지만 예전 소를 이용해 밭을 갈고, 소의 겨울나기를 위해 풀을 거둬 쌓아두었다가 외양간에 깔아주었던 풀을 갈아주며 모아 발효시킨 두엄더미를 밭으로 내어 거름으로 이용한 경우라면 이른 봄 밭을 갈 무렵엔 냉이가 하얗게 꽃을 피워 장관을 이뤘습니다.
씀바귀 종류는 산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변이를 하여 나타나고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달래와 냉이는 씀바귀와는 다르게 인가 주변의 구릉지나 들판, 둔덕과 같은 곳에서는 발견되어도 산에서 만나지는 못합니다. 사람과 가축의 발길이 닿는 위치라야 자라는 현상, 달래의 경우엔 산소(무덤墓)에서도 제법 자주 찾을 수 있습니다. 공동묘지에도 달래는 흔합니다.
산에서 만날 수 있는 달래와 비슷한 풀은 부추가 있습니다. 산마늘도 같은 종에 속하긴 하지만 형태가 아무래도 산부추나, 두메부추와는 달리 잎이 넓고 줄기도 굵기에 산마늘이라 하니 여기에선 열외로 하겠습니다. 야생의 부추 종류를 찾아보면 깜짝 놀랍니다. 자생종 부추종류만 무려 스무 가지나 되거든요. 산부추, 강부추, 돌부추, 한라부추, 두메부추, 갯부추, 참산부추 등의 이름들은 자라는 환경에 따라서 이름이 붙은 것 같습니다.
▲ 강변이나 냇가 비탈 어디든 나무가 별로 없는 자리라면 이른 봄 달래와 냉이, 고들빼기와 같은 나물을 찾기 어렵지 않습니다. 질경이와 소루쟁이, 원추리 모두 좋은 나물입니다.
이런 다양한 부추들 중에 산부추는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나 볕이 잘 드는 비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서울에 살 때도 매봉산이나 종암동과 고려대 뒤를 거쳐 창신동으로 이어지는 보문산자락 어디에서나, 금호동 고개에서 한남동으로 이어지는 매봉산에서도 4월이면 산부추가 바위틈이나 산비탈 어디에서나 정말 많이 발견되어 한줌 채취해 오징어와 맛난 반찬을 만들어 즐겼습니다.
양양에서 가까운 강릉에 사진촬영도 하시고 블로그에 글도 열심히 쓰시는 선배님이 한 분 계시는데요, 4월말에 이 분과 함께 양양의 골짜기 한 곳을 찾았습니다. 풍경사진을 촬영하시라 하고 주변을 살펴보니 산부추가 10㎝ 길이로 자란 상태로 제법 무리지어 눈에 띄더군요. 부인께서 요양중이시란 말씀을 하셨었기에 산부추를 채취하며 말씀을 드렸지요.
“형님 이 산부추 아주 좋은 나물입니다. 살짝 데쳐 그대로 초장을 찍어 드셔도 되고 오징어와 함께 볶아도 맛있습니다. 그리고 요구르트를 넣고 갈아 드셔도 훌륭한 음료가 되며 건강에 아주 좋은 약용식물입니다. 자양강장제라 절집에 사는 이들은 먹지 않는 오신채의 하나입니다.”
오신채란 수도를 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불교에서 먹지 못하게 하는 다섯 가지 채소를 이르는 말입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분명히 절집에서 특별히 먹지 못하게 하는 음식이 맞습니다. 그 종류로는 마늘(대산)·파(혁총)·부추(난총)·달래(자총)·아위(흥거])의 다섯 가지인데 대부분 자극이 강하고 냄새(향)가 강하게 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여기에 열거된 다섯 가지 중에서 저는 지금까지 아위는 못 보았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식물은 아닌 듯합니다. 그런데 같은 백합과의 식물군 중에서 파와 부추, 달래를 금기시하는 스님들이 산마늘을 드시는 분들이 많으니 그것도 의문입니다.
그렇게 그 선배님께 산부추를 채취해 드린 다음 제가 일이 있어 한동안 만나지 못했었습니다. 그 뒤로 몇 번 얼굴은 마주쳤지만 산부추 맛이나 어떻게 드셨느냐고는 못 물어보았고요. 하지만 두 분 모두 이런 자연의 소산들에 대해 각별하게 여기시기에 아주 잘 드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어쩌면 인터넷 검색을 해서라도 이 산부추에 대해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시고 직접 채취를 하실지도 모릅니다.
▲ 더도 덜도 필요없이 딱 이만큼 채취하면 하루 반찬으로 충분합니다. 냉이를 넣고 된장찌개를 끓이고 달래로 앙념간장을 만들면 봄은 이미 충분히 난끽하게 되는 것입니다.
입춘부터 시작된 추위가 올해는 제법 매섭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날이 풀려 2~3일만 푸근해지면 달래와 냉이는 양지쪽 볕이 잘 드는 밭이나 들에서 얼마든지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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