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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이야기

가지나물, 호박나물 그러는데 과연?

by 한사정덕수 2025.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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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나물, 호박나물 그러는데 과연 나물이란?

▲장터 풍경 / 양양읍엔 4일과 9일에 오일장이 열리는데 이때 온갖 산물이 넘쳐난다. ⓒ 정덕수

 

우리의 밥상문화에서 나물이란 용어는 다양하게 두루 사용됩니다. 나물은 날것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삶거나 데쳐 무치고 볶는 등의 조리과정을 거친 상태의 밥과 함께 먹는 음식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가령 콩나물의 경우 콩을 물을 이용해 기른 나물이란 의미인데 이를 활용한 음식으로는 국부터 무침과 해장국, 볶음, 찜은 물론이고 다른 재료와 함께 다양한 요리로 이용된다. 그리고 무나 호박, 가지 등의 뿌리채소나 과육을 이용하여 무치거나 볶아 낼 경우에도 무채나물이나 가지나물, 호박나물과 같이 이름을 붙여 사용해왔습니다.

 

콩나물밥이라 해서 예전엔 부족한 곡물을 늘리기 위해 겨울철엔 무청시래기는 물론이고 땅에 묻어두었던 무를 채 썰어 곡물과 함께 밥을 지었습니다. 말 그대로 나물을 넣고 지은 밥이라 콩나물밥, 무나물밥, 시래기나물밥이 됩니다. 대표적으로 정선과 영월지역에서 널리 알려진 곤드레나물밥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나물이란 용어는 태생부터 남새에서 발전한 것으로 산과 들에 절로 나고 자란 들풀이 그 원형질이라 보아야 합니다. 서양에서 수프로 부르는 요리가 우리에겐 국과 탕, 죽으로 나뉘는데 어찌 된 이유인지 무를 채를 썰어 볶거나 간을 맞춰 쪄내도 나물이라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무를 채를 쳐 양념을 해 무쳐내는 방식으로 담근 김치는 생채라 하는데 볶거나 쪄냈을 때만 유독 나물이라 하니 말입니다.

 

이는 제례문화에서 이유를 찾아야 될 듯합니다. 제사음식을 준비할 때 봄부터 가을까지는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재료가 그나마 다양하지요. 하지만 겨울철엔 구덩이를 파고 묻어두었던 무를 이용하는 방법이 가장 널리 이용되는데 아마도 이 무채를 볶거나 쪄낸 걸 도라지의 대용으로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하여 고사리와 시금치까지 3종류의 구색을 맞추며 3색 나물로 자리하게 되었으리라 유추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제례문화를 얘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제사로 기제사라 부르는 고인이 돌아가신 다음 생존해 계시던 날로 따져 매년 지내는 제사나 생일 등을 기억하며 지내는 제사 외에도 한식이나 한가위와 설에 지내는 차례와 성묘문화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시제時祭라는 철마다 지내던 제사를 최근엔 시향時享과 합쳐 음력 105대조 이상의 조상을 기리는 제례문화도 남아 있습니다.

 

가장 많은 친족이 모이는 제사로 시제도 있지만 가족들이 모두 모여 조상에 고하고 덕담을 나누며 음식을 차려 함께 나누는 설이 한가위와 더불어 민족 대이동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중히 여기는 풍습이지요. 이 설에 지내는 차례상에 빠뜨리지 않고 오르는 무채나물을 어떻게 조리해야 되는지 몰라 채를 친 무를 프라이팬에 널고 식용유까지 부어 소금으로 간을 해 볶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마늘과 파까지 넣고 말입니다. 이 채나물로 제사상에 올리는 무채나물은 마늘과 파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구덕하게 말린 명태를 코다리라 하죠. 그 코다리를 머리와 꼬리를 자르고 깍둑썰기를 한 무에 물을 잡고 소금으로 간을 해 탕국을 끓이는 솥에 가만히 올려둡니다. 그리고 채 썬 무도 흐트러지지 않게 한쪽에 가만히 올려두고 깍둑썰기를 한 무가 무르도록 끓여주면 한 번에 제사상에 올리는 3종류의 찬이 완성됩니다.

 

솥에서 쪄진 코다리는 흐트러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들어내어 그대로 접시에 올리면 생선찜이 되고, 무채도 접시에 그대로 올리면 무채나물이 됩니다. 탕국은 깍둑썰기를 한 무와 끓이는 과정에서 흐트러진 코다리의 살점이 들어가도 되고요. 무채나물과 탕국에 송이버섯이나 능이버섯을 말려두었다가 넣기도 합니다.

 

아마도 제사음식을 준비할 때 이 정도만 젊은이들이 알고 있어도 어른들에게 참으로 대견하다는 칭찬 듣는 거 어렵지 않습니다. 명절이나 집안 어르신의 제사를 모시는 이들이 요즘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전통적인 유교문화에 뿌리를 두고 부모형제간의 우애를 최우선으로 하는 가정일수록 제례문화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설에 세뱃돈을 욕심낸다면 먼저 조상을 모시는 차례를 지내고 나서야 살아계신 어르신께 세배를 올린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어야겠지요.

 

이런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꼰대라는 소리야 듣겠지만, 아주 어린 간난아이만이 죽은 조상보다 귀하게 대접받을 뿐 세뱃돈 욕심나는 설엔 죽은 조상이 먼저입니다.

▲코다리 / 우리 민족이 가장 즐겨 먹는 생선이 이 명태가 아닐까. 코다리는 동태포를 떠 부침가루를 묻혀 지져내는 생선전과 함께 제사음식에도 사용된다. ⓒ 정덕수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 외 호박나물이나, 가지나물이니 하는 용어는 여타 다른 남새처럼 조리과정을 거쳤다는 의미로 최근 부쩍 사용하게 된 걸로 보는 게 타당하지 싶습니다. 1980년 이전의 기억으로 호박볶음이나 가지볶음, 가지찜, 감자채볶음은 들어보았어도 이들을 지금처럼 나물이라고까지는 하지 않았음이 잘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남새로 통칭되는 풀이나 나무의 순 상태 그대로 처음부터 나물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이름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대표적으로 참나물이 있고, 그 다음으로 참취를 취나물이라 합니다. 그리고 우산나물, 기름나물이 식물의 이름을 나물이라 부르고 있으며, 한때는 나물로 이용했다고도 하는 삿갓나물과 선밀나물, 윤판나물 정도가 나물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들풀입니다. 최근엔 윤판나물은 정원의 화초로 더 많이 가치를 인정받고, 삿갓나물은 우산나물로 오인하여 가끔 독성사고를 일으키며 식용으로는 이용하지 않습니다.

 

그 외 고유의 이름을 지녔음에도 나물이란 이름을 붙여 식용이 가능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조상들이 그리 이름 지었으리라 유추 가능합니다. 가령 금낭화를 며늘취나물이라 하고, 원추리를 원추리나물, 다래순을 다래순나물로 불렀고 홑잎을 홑잎나물로 부르며 여린 순을 채취해 반찬으로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요리에 잘 이용하지는 않으나 겨울철에도 따뜻한 양지쪽에서는 꽃을 피우는 꿀풀과의 광대나물이 있는데 이 광대나물 또한 원래 이름은 광대수염이지만 나물로 이용하면서 광대나물로 부르지 않았나 싶군요.

▲월동추 / 최근엔 저장법도 발달하고 하우스재배를 통해 사계절 언제나 싱싱한 채소나 나물을 만나지만 한겨울에 먹는 월동추는 겉절이로나 나물로나 여전히 많이 이용된다. ⓒ 정덕수

 

결론적으로 나물이란 이름은 반찬이나 밥을 대용하는 음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 그러니까 어느 정도의 독성은 있더라도 독성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쳐 식용으로 이용이 가능한 경우 붙여진 이름이라 보면 맞겠군요. 이런 예는 동의나물에서도 확인 가능한데 곰취와 함께 비교해서 구분이 쉽지 않은 이 동의나물도 제독과정을 거쳐 식용으로 이용했었습니다. ‘바람난 처녀란 꽃말이 있는 얼레지도 데쳐 흐르는 물에 담가 제독과정을 거쳐 나물로 이용합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인 형질은 들이나 산에서 자라는 풀이나 나무의 새순 정도만 나물이라 했고, 콩으로 길러낸 싹이라 하여 나물이라 불렀을 뿐, 오이나 감자를 볶고, 무치고 조리는 등의 조리 과정을 통해 반찬으로 먹는다하여 나물이라고는 오래전엔 하지 않았단 얘기입니다. 산이나 들에 나물하러 간다고 하지 부엌으로 나물하러 간다고 하지 않듯 말입니다.

 

끝으로 우리 문화에서 외국인들이 보면 깜짝 놀랄 음식문화가 있는데 커다란 냉면대접에 이것저것 고루 넣고 고추장이나 자작하게 지져낸 된장을 넣고 밥과 함께 비벼 먹는 비빔밥도 이와 같은 나물들을 먹는 생활에서 파생된 음식문화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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