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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향기/시인의향기

때는 문지르지 않으면 썩는다

by 한사정덕수 2025.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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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닦지 않는 자, 역사의 파도에 휩쓸리리라

 

저는 요즘 뉴스를 접할 때마다 한 가지 질문을 품게 됩니다. 왜, 기자들은 기자다움을 잃어버렸을까요. 검찰이 말을 흘리면, 그 말이 진실이 되고, 곧장 판결처럼 소비됩니다. 검사의 입에서 나온 언어가 기사 제목이 되고, 그 제목이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듭니다. 기자는 더 이상 진실을 파고들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준비된 문장을 받아 적고, 누군가의 의도 위에 문장을 얹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사실처럼 보이는 것'을 믿는 사람들 속에 또 하나의 '진실 같은 거짓'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이재명을 죄인으로 만들고, 조국과 정경심을 매장했던 칼은 검찰이 들었지만, 그 칼에 잉크를 묻힌 것은 기자들이었습니다. 기자는 언제나 수세미여야 합니다. 때가 낀 권력의 구석을 문질러야 하고, 닦아내야 할 더러움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기자는, 수세미를 내던진 채 권력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그 손에는 이미 묻은 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기자는 그것을 덧칠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검사들은 어땠을까요. 매년 수십억, 수백억의 재산을 축적한 그들을 보며 저는 상상해봅니다. 혹시 연예활동을 했던 것일까요. 드라마를 집필하거나, 국제문학상을 수상했을까요. 아니면 보이지 않는 주식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혜택을 독점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저는 그 금액 앞에서 눈을 비비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돈이 쌓이는 동안 누군가는 집 한 칸 없이 삶의 모서리에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삶에는 도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도전 앞에 선 사람들의 출발선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돈은 분명히 위력 있습니다. 기회를 만들고, 삶의 난이도를 낮춥니다. 누군가는 가볍게 오르는 계단이, 어떤 이에게는 오직 자신의 다리 힘만으로는 끝없이 높게 느껴지는 벽이 됩니다. 가난한 아이는 뒷받침할 아무것도 없는 채 도전해야 하며, 단 한 번의 실패가 곧 재기 불가능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압니다.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였던 저에게 실패는 끝의 다른 말이었고, 한 번의 추락은 거의 영원에 가까운 고통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이 있는 이들은 다릅니다. 모든 걸 망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는 반복됩니다. 부모는 자신의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으며,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습니다. 그 결과로 탄생한 엘리트들이 있습니다. 검사, 판사, 고위공직자, 기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길 바라는 건 아닙니다. 다만, 최소한의 책임은 다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시장통의 왈자패처럼 변해버렸습니다. 권력을 앞세워 약자를 휘두르고, 눈치를 보며 진실을 무기 삼아 사람을 찍어 누르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은 엘바섬을 탈출했습니다. 당시 프랑스 언론은 침묵했습니다. 정부 발표만을 보도하던 언론은, 그가 리옹에 도착하고 파리로 향하자 하루가 다르게 입장을 바꿨습니다. 처음엔 괴물이라 부르던 이를, 폐하라 불렀습니다. 언론은 권력의 향방에 따라 진실도 입장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같은 풍경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검찰이 흘린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기사로 내보냅니다. 기사의 제목은 곧 여론의 방향이 되고, 그 여론은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립니다. 나폴레옹의 귀환처럼, 오늘의 권력도 상황에 따라 괴물에서 폐하가 되고, 반역자에서 영웅으로 둔갑합니다. 기자는, 언론은, 그 변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수세미를 들어야 할 손에 쥐고 있는 것은 계산기와 권력의 열쇠입니다. 그 손은 닦아내는 손이 아니라, 계산하고 유리한 방향으로 미끄러지는 손입니다. 나라가 썩으면, 민중은 뿔뿔이 흩어지고 고난을 겪습니다. 하지만 썩음이 정점을 찍는 순간, 민중은 반드시 일어섭니다. 역사는 그것을 반복해서 증명해왔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권력자들은 외세에 고개를 숙이고, 성조기를 흔들며 미국에 구애하고, 과거를 망각한 채 일본에 아부합니다. 구한말, 외세의 그늘에 기대 위기를 모면하려 했던 그 얄팍한 마음과 무엇이 다릅니까.

 

지금 우리 사회엔 때를 닦는 사람이 없습니다. 닦기는커녕 서로의 때를 덧바르며 면죄부를 주고받습니다. 그 속에서 무너지는 것은 특정 개인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정신이며, 공동체이며, 언어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이 병이 더 깊어지기 전에 누군가는 다시 수세미를 들고 일어서야 합니다. 지금 그 손이 필요한 곳은, 더러움이 가장 두껍게 눌어붙은 자리입니다. 진실은, 그때 비로소 빛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빛이 우리를, 다시 사람답게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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