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겨울은 유난히 길고 매서웠다. 어머니가 떠난 후 처음 맞이하는 겨울은 더욱더 추웠다. 바람이 문풍지를 흔들 때마다 집 안까지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그해 겨울은 눈이 많이 내렸다. 아침이면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였고, 장작더미 위에도 눈이 쌓였다. 하지만 그 하얀 풍경과는 다르게 우리 집안은 점점 더 황량해져 갔다.
어느 날, 아침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형이 아무 말 없이 밥을 내주지 않았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가만히 기다렸지만, 형은 끝내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밥상이 올라오긴 했으나 그릇에는 겨우 옥수수죽이 담겨 있었고, 살점 하나 없는 맑은 국물만이 허기를 채워주려 했다. 밀가루까지 다 떨어졌는지 덩어리진 반죽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속이 텅 비어가는 듯한 허전함이 가슴 깊숙이 밀려들었다.
그런 옥수수조차 야속하게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이제는 국인지 죽인지 모를 것을 끓여 허기를 달랬다. 시래기를 된장에 풀어 넣어 끓인 국은 텁텁하고 걸쭉했지만 배 속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었다. 먹을 때마다 목이 칼칼해졌고, 국물 한 모금 삼킬 때마다 가슴까지 먹먹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보급품으로 밀가루 한 자루가 생겼다. 우리는 그것으로 술빵을 만들어 먹었다. 막걸리를 조금 섞어 익힌 술빵은 퍽퍽했지만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올라왔다.
밀가루 반죽을 조금 더 아껴 두고 소금만으로 간을 한 칼국수를 끓였다. 국물은 맑았지만 뜨거운 면발을 후루룩 삼키는 순간 속이 든든해졌다. 남은 밀가루로는 시래기를 넣고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다. 된장을 풀어 걸쭉하게 끓인 수제비는 허기를 채우기에 충분했지만,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맛과는 달랐다. 어머니가 있었다면 더 맛있게 만들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며칠 지나자 그마저도 다 떨어졌다. 아궁이에 불을 때도 맹물만 가마솥에서 끓었고, 우리는 그 물로 허기를 견뎌냈다. 속은 비었지만 허기를 느낄 힘조차 점점 사라져 갔다. 기운이 없는 우리 네 남매는 형의 눈치만 살폈고, 막내 인자도 지쳤는지 울지도 못했다.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숨을 삼키는 것만이 허기를 달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눈이 엄청나게 쏟아지던 어느 날, 내가 태어난 오목골에 살던 형의 친구, 복남이 형이 찾아왔다. 그는 도토리(굴암)를 옥수수와 강낭콩을 넣고 삶은 것을 한 바가지 들고 왔다. 허기가 진 우리는 망설일 겨를도 없이 그것을 받아 들었다. 쓴맛이 입안에 남았지만, 배 속을 채울 수 있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우리는 허겁지겁 씹어 삼키며 잠시나마 배부름이라는 감각을 되찾았다.
그날 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아버지는 집에 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없는 집은 적막했다. 14살 형은 가장이 된 듯 무거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형도 배가 고팠고, 지쳤다. 형이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내가 아무리 쳐다봐도 형은 외면했다. 형은 가장이지만 어른이 아니었다.
나는 형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6살짜리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눈 덮인 마당을 서성이며 눈을 먹어 보기도 했고, 형을 따라 장작을 날라 보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무거워 몇 걸음도 가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형은 나를 힐끗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다시 일했다.
4살 장수는 계속해서 형을 졸라댔다.
“형아, 밥 언제 먹어?”
하지만 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장수는 배가 고팠는지 몇 번을 더 물었다. 형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몰라.”
2살 인자는 이제 곧 3살이 되지만, 배가 고픈 날이 계속되면서 점점 힘이 없어졌다. 전에는 조금이라도 기운이 있으면 칭얼대고 울었지만, 이제는 울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방 안에 누운 채 그저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형이 나를 불렀다
“덕수야, 나가서 장작 좀 가져와.”
나는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장작더미로 갔다. 눈이 두껍게 덮여 있어 장작을 찾기도 힘들었다. 손을 눈 속에 집어넣어 장작을 꺼내자 손이 얼어붙을 듯 차가웠다. 몇 개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손끝이 저려서 도중에 몇 번이나 떨어뜨렸다.
형이 장작을 아궁이에 넣고 불을 지폈다. 작은 불꽃이 살아나면서 장작불은 금방 활활 탔고, 방 안이 서서히 따뜻해졌다. 하지만 불길이 커질수록 배고픔도 더 선명해졌다. 따뜻한 방에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밤이 되자, 우리는 모두 이불을 덮고 누웠다. 형은 가장자리에 누워 있었고, 나는 장수와 인자를 감싸 안았다. 인자의 체온이 차가웠다. 나는 인자의 손을 꼭 잡았다.
“형아, 아버지는 언제 와?”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모르겠어.”
그의 목소리는 감정을 잃은 듯 텅 비어 있었다.
눈을 감았지만, 배고픔과 불안함에 잠이 오지 않았다. 장수는 어느새 잠이 들었지만, 인자는 숨소리가 약했다. 나는 더 가까이 다가가 그의 볼을 문질렀다.
“괜찮아, 인자야. 조금만 참자.”
하지만 인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우리는 모두 손을 잡고 눈 덮인 들판을 걸었다. 하지만 형이 갑자기 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형을 붙잡으려 했지만, 발이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뒤돌아보니 장수와 인자도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형의 이름을 불렀다.
"형아! 기다려! 형아!"
하지만 내 목소리는 허공에서 사라졌다.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갑자기 눈을 떴다. 방 안은 어둡고 조용했다. 인자의 미약한 숨소리가 들렸다. 손을 뻗어 그의 작은 등을 토닥였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이 먹먹했다. 그날 밤, 다시 잠들지 못했다.
사흘째 되던 날, 아버지는 지친 발걸음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손에 라면 다섯 봉지를 들고 있었다. 형에게 건네며 동생들과 함께 끓여 먹으라고 했다. 우리는 난생처음 라면이라는 것을 먹었다. 국물은 진했고, 면발은 칼국수보다도 부드러웠다. 배 속 깊이 스며드는 따뜻함에 정말 놀라운 맛이었지만, 더 먹을 라면이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그리고 다시 다음 날, 우리는 종일 맹물만 끓여 마시며 누워 있어야 했다. 배가 너무 고파 밖에 나가 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몸이 무거웠고, 기운이 없었다. 허기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말수가 줄어들었고,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숨만 삼켰다.
하루는 아버지가 지친 얼굴로 쌀자루를 메고 돌아왔다. 우리 모두의 시선이 쌀자루에 꽂혔다. 그 순간만큼은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형은 조용히 쌀을 받아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갓 지은 밥이 솥에서 김을 내뿜는 일은 없었다.
형은 쌀을 퍼내 작은 그릇에 담더니, 조심스레 시래기와 함께 솥에 넣었다. 쌀알이 넘치지 않도록 신중하게, 꼭 필요한 만큼만 덜어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속으로 질문했다. ‘왜 밥을 하지 않는 걸까?’ 하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형의 굳은 얼굴이 모든 답을 말해주고 있었다.
죽이 끓는 동안 우리는 주위를 서성이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장수는 바짝 말라버린 손가락을 입에 물고 있었다. 인자는 내 손을 잡고 힘없이 앉아 있었다. 죽이 완성되자, 형은 작은 국자로 한 그릇씩 떠서 우리에게 나눠 주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들었다. 국물은 묽었고, 듬성듬성 퍼진 쌀알들이 흐믈거리는 것 같았다. 다만 따뜻한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 순간적으로 몸이 나른해지졌다. 장수는 몇 번 숟가락을 놀리다가, 바닥이 드러난 그릇을 들고 형을 올려다보았다.
“형아, 더 없어?”
형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장수는 입술을 깨물더니, 결국 말없이 그릇을 내려놓았다. 인자는 작은 손으로 그릇을 감싸 쥔 채 그대로 멍하니 있었다. 형은 한숨을 내쉬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날 저녁,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배는 채워지지 않았고, 마음도 텅 비어가는 기분이었다. 언젠가 다시 쌀밥을 먹을 수 있을까. 한 공기 가득 퍼 담긴 따뜻한 밥을 먹는 날이 올까. 하지만 형의 눈빛 속에는 그런 날이 쉽게 오지 않을 거라는 답이 담겨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눈보라가 몰아치는 아침, 하얀 눈길을 뚫고 걸어오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가 할머니 온다는 소리에 마중을 나갔고,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할머니는 젖은 버선을 벗으며 우리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한숨을 길게 내쉰 할머니는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이래서야 쓰겠냐. 애들이 다 뼈만 남았구나. 조반은 먹었고?”
할머니가 부엌에 나가자마자 이고 오신 커다란 보퉁이를 풀었다. 아버지는 아궁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장작을 정리하고 있었다. 형은 바깥에서 물을 길어 오느라 부지런히 오갔다.
“어머니, 길이 많이 험했지요?”
아버지가 불쏘시개로 관솔에 불을 붙여 아궁이에 넣으며 물었다. 할머니는 두 손을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험한 정도가 아니었지. 갈천에서 나올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서림부터 눈이 어찌나 퍼붓는지 한 걸음 떼기도 힘들더라.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고, 발 한 번 뗄 때마다 기운이 쭉쭉 빠졌어.”
아궁이에서 파르르 타오르는 불길이 활활 살아났다. 아버지는 불길을 살피며 장작을 더 넣었다. 형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부엌으로 들어오면서 대화를 들었다.
“할머니, 그럼 어디서 주무셨어요?”
형은 물이 찰랑거리는 양동이를 부뚜막 옆에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물었다. 할머니는 허리를 곧추세우며 대답하셨다.
“요 아래 마산 거기 주막에서 하룻밤 묵고 왔다. 그 험한 길을 밤에 넘기는 건 무리라서 말이다. 주막집 아주머니가 날 보더니 ‘이 밤중에 거길 가겠다고요?’ 하면서 손사래를 치더라. 거기서 쉬면서 따뜻한 숭늉 한 그릇 얻어 마시니 몸이 좀 녹았다. 고 씨 그 양반 나이 좀 돼 보이던데 덕수 자만 한 애가 있더라. 그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잤다.”
아버지는 아궁이 불이 제대로 붙자 무쇠 솥뚜껑을 열고 쌀을 안쳤다. 형은 말하는 도중에 눈을 크게 떴다.
“주막에서 하룻밤요? 거기 사람들 많다던데. 할머니 그런데 고씨는 우리 친구넨데요. 홍엽이라고 저랑 동창이 있어요.”
할머니는 빙긋 웃으셨다.
“아, 그럼 너 만한 애가 홍엽이구마. 그래 봤다. 어젠 거기서 저녁밥을 먹으니 정신이 번쩍 들더라. 덕분에 오늘 아침에 다시 길을 나설 힘을 냈지.”
아버지는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솥뚜껑을 덮었다. 장작을 한 번 더 밀어 넣으며 맞장구쳤다.
“눈길이 험해도 거기서 하룻밤 묵으셨으니 다행이지요. 그냥 걸어오셨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할머니는 보퉁이에서 뭔가를 꺼내 놓으셨다.
“그래, 그 집 안주인이 여기 온다는 말을 듣더니 김장김치랑 무 한 덩이 챙겨 주더라. 이걸로 국 끓이면 맛이 그만일 거다.”
부뚜막 위에서 칼이 쓱쓱 소리를 내며 무를 써는 소리가 났다. 바깥에서는 아직도 눈이 흩날렸고, 부엌 안에는 따뜻한 아궁이 불빛이 퍼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할머니가 지으신 밥으로 아침밥을 먹고 난 다음 할머니는 지체 없이 솥에 물을 올렸다. 아버지가 장작을 더 넣자 부엌에서는 팔팔 끓는 물소리가 방 안까지 퍼졌다. 할머니는 뜨거운 물을 큰 함지박에 담고 손으로 온도를 확인했다.
“자, 이제 다들 옷 벗어라.”
나는 머뭇거렸지만, 장수는 겁에 질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고, 인자는 이미 축 늘어진 채 할머니 품에 안겨 있었다. 인자를 기저귀를 물에 적셔 얼굴부터 닦아주고 조심스럽게 인자의 머리를 감기고, 수건으로 부드럽게 몸을 문질렀다. 물기를 닦아 기저귀로 싸서 뉘어 놓으시며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어서 오너라, 덕수야. 뜨뜻한 물에 씻고 나면 기운이 날 거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따뜻했다.
할머니는 나와 장수도 차례로 씻겼다. 뜨거운 물이 몸을 감싸자 피곤하고 지쳐 있던 온몸이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 할머니의 손길은 거칠었지만 정성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때를 벗겨야 병이 안 난다.”
할머니는 힘주어 말씀하시며 손수 비누칠을 해주셨다.
목욕이 끝나자 우리는 따뜻한 이불을 뒤집어쓴 채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멈추지 않았다.
“자, 이제 빨래도 해야지.”
할머니는 부엌으로 나가 방금까지 우리가 입고 있던 옷을 한 움큼 쥐고 왔다. 물을 한 번 더 끓이고, 아버지가 찬물을 떠 오자 큰 대야에 섞어 옷을 담갔다. 빨래방망이가 부지런히 옷을 두드리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형은 옆에서 묵묵히 도왔다. 형은 할머니가 빨래를 헹구는 걸 거들었다. 장수는 피곤했는지 이미 개켜놓은 이불에 기대 잠이 들었다.
깨끗해진 옷을 마당의 빨랫줄에 널었다. 매서운 바람에 옷은 금세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따가 물기나 빠지면 방에 들여 말리자.”
할머니는 말하며 차가워진 손을 내리셨다.
겨울에는 밖에서 옷이 잘 마르지 않았다. 아침부터 햇빛이 들지 않는 날이면, 바람만 차갑게 옷을 스치고 지나갈 뿐, 축축한 기운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할머니는 해가 떨어지기 전 서둘러 옷을 걷어 방 안으로 들여놓았다.
목욕을 시키고 빨래를 하느라 군물을 많이 땐 방안에는 열기가 가득했다. 방바닥에는 어머니가 계실 때 밀가루 포대를 뜯어서 발랐는데, 누런 종이가 마르자 콩을 삶아낸 콩물을 고루 발라 말려 놓은 상태였다. 콩물을 바른 후 마르면 바닥이 매끄럽고 물이 잘 스며들지 않았으며 해가 비치면 은근한 광택이 났다.
할머니는 밖에서 걷어온 옷들을 하나씩 방바닥에 펼쳤다. 바깥 공기에 얼어 있던 천이 차갑게 굳어 있었지만, 방안의 훈훈한 공기에 닿자마자 서서히 부드러워졌다. 김이 살짝 오르는 방 안에서 축축한 옷에서 물기가 스며들어 방바닥에 자국을 남겼다.
“이따가 물기나 빠지면 개켜 놓으면 되겠지.”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장판 위에 널어놓은 옷자락을 손으로 반듯하게 쓸어 펴 주었다. 방 안은 금세 젖은 옷에서 올라오는 특유의 눅눅한 냄새와 더불어, 구수한 콩물 냄새가 뒤섞여 퍼졌다.
그렇게 겨울밤은 또 조용히 깊어가고 있었다.
그날 밤, 잠을 자려는데 할머니와 아버지가 나누는 말씀이 들려왔다.
“어머니, 아무래도 덕수 하나만이라도 당분간 형님 댁에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겨울이라 벌이도 시원찮은데 애들 네 명을 먹이려니 도저히 감당이 안 됩니다. 덕수가 몸이 약해서 어릴 때부터 자주 아팠는데, 형님 댁이라도 가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나는 이불을 끌어당겨 얼굴을 파묻었다. 숨이 턱 막혔다. 보내진다는 말이 이렇게 쉽게 오가는 것인가. 내 존재가 가벼운 먼지처럼 느껴졌다. 눈물이 차오르는 걸 억지로 삼키며 숨을 죽였다. 형님 댁에서는 나를 따뜻하게 맞아줄까, 아니면 낯선 집에서 남처럼 지내야 할까. 밤마다 혼자 잠들어야 할까. 나를 아무도 찾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지. 내 자리, 내 온기, 내 목소리는 사라지는 걸까.
꿈속에서 나는 깊은 눈 속을 혼자 걸었다. 발이 푹푹 빠졌고, 몸이 점점 가라앉았다. 어디선가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가거라, 덕수야.”
나는 손을 뻗었지만 아무것도 잡을 수 없었다. 점점 깊이, 깊이, 끝도 없는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몸이 덜덜 떨렸다. 꿈에서 깨어 보니 방 안은 캄캄했고, 내 몸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이불을 끌어당겼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은 먹먹했고, 머릿속에서는 아버지와 할머니의 대화가 계속 맴돌았다. 눈을 감아도 또다시 꿈속으로 떨어질 것만 같아, 나는 한동안 그렇게 어둠 속에서 눈을 뜬 채로 누워 있었다.
'소설한계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한계령 6 ‘100리 눈길을 걸어’ (0) | 2025.03.07 |
---|---|
소설 한계령 5 ‘따뜻한 밥’ (0) | 2025.03.07 |
소설 한계령 4 ‘할머니도 떠나신 설’ (0) | 2025.03.07 |
소설 한계령 3 ‘할머니와 따뜻한 밥’ (0) | 2025.03.06 |
소설 한계령 1 ‘어머니와의 이별’ (0) | 2025.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