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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정

과거의 오늘로 기록된 2월 5일

by 한사정덕수 2025.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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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갈일도 없습니다. 그저 몇 년 전으로, 작년 25일이나 201025일 정도로만 잠시 되돌아 가보면 스스로의 역사 속에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를 만나게 됩니다. 과거의 내가 한 일이 지금의 나를 반듯하게 세웠다면 참 좋겠지만, 입춘을 무참하게 만드는 오늘 아침 기온만큼이나 쓸쓸하고 매서울 수도 있습니다. 제겐 201325일 의 흔적 하나가 슬픈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 입춘이면 물도 본격적으로 봄을 향해 나가는데 이번 입춘엔 도리어 다시 겨울로 향하듯 얼어붙습니다.

 

2011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페이스북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지 싶습니다. 어쩌면 그보다 2년 더 이전일 수도 있고요. 그 무렵 페이스북은 사용자가 아주 많지는 않았었습니다. 요즘처럼 누구나 스마트폰을 사용하진 않았었기에, 2G 폰이라고 하는 전화기가 여전히 많이 사용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인지 사용자들이 아주 많지는 않았습니다. 2013년에서야 저도 스마트폰으로 처음 바꿨습니다.

 

제게 페이스북을 처음 알려준 분은 박순백 박사님이십니다. 그리고 페이스북을 직접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 사람은 파주시에서 상상바다란 출판사를 운영하는 안중찬 아우인데 오색에 놀러왔기에 페이스북을 박순백 박사님께서 사용해 보라고 하시는데 아우는 그거 사용하나라고 물었었습니다. 그때 아우는 그의 부인에게 폰 줘 봐요라 하더니 깜찍하고 귀여운, 한 입 베어 먹힌 사과가 새겨진 전화기를 두 개 나란히 놓고 페이스북과 아이폰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아이폰을 욕심 내 본 적도 없고, 오로지 국내 기업들이 생산한 스마트폰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직후 페이스북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친구라고 해봐야 300명도 채 안 되어서 정말 오붓했습니다. 꾸러기 얄개로 유명했던 강주희씨가 캐나다에 머물며 말을 걸어와 이야기도 나눠 보았었습니다. 여러분을 부른 윤복희 선생도 종종 말을 걸어 오셔서 놀랐습니다. 임호란 친구는 페이스북이 서툰지 종종 제게 왜 이러냐는 질문을 했는데, 아마도 페이스북에 지금은 사라진 노트란 공간에 사진과 글을 자유롭게 올리는 걸 보고 그랬지 싶습니다. 저는 페이스북에서 일을 하지도 않고 같은 사용자일 뿐인데 자주 그러니 나중엔 짜증이 나더군요.

 

이 세 분 모두 조용히 친구를 끊었는데 임호를 가장 먼저 놓았고, 그 다음으로 강주희씨를 슬그머니 보내드렸습니다. 윤복희 선생은 아무래도 어려웠었는데 빨갱이란 말에 화들짝 놀라 그 순간 친구끊기를 했지요. 정치인들도 당을 가리지 않고 친구로 인연이 된 이들 많은데 여전히 저와 인연으로 있는 분은 이정희 전 민노당 대표님이십니다. 물론 더불어민주당에서 현역으로 활동하시는 분들은 여러분 지금도 친구관계를 유지하지요.

 

, 201325일 새벽에 페이스북을 보니 얼마전 친구신청을 해서 인연이 된 정원비구란 분이 정선생님 밤마실 왔어요. 추운겨울 어찌 보내시는지란 인사를 남기셨더군요. 그저 스님께서 많지 않은 친구들에게 이 시간 인사를 하셨구나 하며 넘겼는데, 몇 년 뒤 정원스님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저와 한 공간에서 매일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셨고 식사도 하셨는데 돌아가셨습니다. 그것도 돌아가시기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제게 사진 한 장을 보내주시며 저녁식사를 하신다고 해 놓으시고친구관계까지 끊으시고 제가 머물던 곳에서 불과 200여 미터 거리에서 소신공양으로 생을 마치셨습니다.

▲ 2017년 2월 5일은 일요일이었습니다. 토요일도 아닌 일요일에 광화문광장에서 무언가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장윤선·박정호 기자를 만났습니다.

 

201725일에 다시 기록을 남겼는데 이 날은 정원스님이 돌아가시고 한 달 가깝게 지났을 때입니다.

 

광장에서 80일째를 맞이하고 있다.

처음 광장은 낯설었다.

“선생님 뭐하시는 겁니까? 어서 집에 가요.”

그랬다. 이 말만 안 들었어도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된 시점에서 집에 갔을 일이다.

투쟁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활동가적인 성격도 아닌 내가 광장에서 활동하며 많은 부분 이질감도 느낄 수밖에 없다.

‘문화는 세상과 소통하는 창(窓)입니다.’란 말을 하는데 고막을 찢을 듯 외치는 구호를 들으며, 요란스러운 가두방송을 들으며 거기에서 문화적 빈곤만 느낄 뿐이다.

또 하나, 위의 ‘문화는…’이 블로그나 명함의 위에 자리하고 있다면 블로그 타이틀 아랜 ‘솔가지 위 나풀거리는 눈송이 가지를 부러뜨리네. 내가 던지는 한 마디가 솔잎에 내려앉는 눈송이 인 줄 아네.’가 있다.

그 한 송이 눈송이처럼 오늘의 내 말과 행동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마중물이고 누름돌이었음 싶은 마음에 며칠 사용한 공구들을 닦고 손질한다.

곧 틈날 때마다 한동안 손을 놓았던 서각도 해 볼 작정이다.

 

같은 날 2개의 기록이 더 있군요.

 

광화문광장 세종대왕동상 뒤엔 주말마다 미술행동의 대형걸개그림들이 걸린다.

14차 집회가 진행된 2월 4일 오전엔 3미터 높이에 8미터 길이의 걸개그림을 걸 거치대작업을 했다.

1차 조립을 마치고 필요한 공구를 텐트에서 챙겨 현장으로 갈 때 장윤선 오마이뉴스 기자와 박정호 기자가 방송을 진행하고 있어 공구를 잠시 내려놓고 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거의 취재 대상이던 입장에서 방송하는 이들을 촬영했던 건 평소 이들의 보도내용에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왜곡하지 않고 생생한 현장을 전하는 게 진실보도고 기자의 본분 아닌가.

▲ 광화문광장 텐트 안에서 참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늘도 땅도 종일 우거지죽상이다.

이 앙다물고 억지로 눈물 쥐어짜는 못된 거짓 효자 꼴로 기분 우중충하게 한다.

퇴진행동과 선거무효를 외치는 서로 다른 입장이 동일한 공간에 있고, 거기에 탄핵을 기각하라는 주장이 공존하는 이 현상이 오늘의 진실이다.

“아버지와 스승의 말씀은 하늘이다”로 배웠지만 솔직히 회의적이다. 젊음이 모자람과 어리숙함으로 몰릴 일 없음이듯, 나이 많음이 대단한 힘과 현명함으로 주장되어질 수 없다.

진실로 어질고 현명한 행동은 먼저 모범을 보이고, 사리분별이 명료해야 하며 그 실천이 오롯이 이해타산 적이지 말아야 한다.

조금 더딘 걸음일지라도 반듯하게 걸을 줄 알고, 내 불편함보다 너의 불편함에 더 마음 쓸 줄 알 때 비로소 참다운 어른의 모습이 되고 존경받을 수 있다.

광화문광장 이순신장군동상 51번의 80일째 날이 저문다.

 

그 다음해인 201825일엔 정원스님의 기억을 소환하며 지냈었습니다.

 

스님과 페친이었다고 했을 때 스님의 분신을 계기로 뭔가 이득을 취하려는 행동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다.

스님과 오래전 인연이 되어 가끔 글 인사를 나눴는데 5년 전 오늘도 그랬다. 자정을 넘긴 시간 인사에 으레 작은 절집의 주지가 잠 못 이루고 컴퓨터로 세상과 소통하나 보다 했다. 때때로 강한 어조로 설법이 아닌 세상의 말 거침없음에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기도 했다.

거짓말처럼 광화문광장에서 만나게 되고, 실없는 농담으로 한겨울 추위를 다독일 때 결국 소신공양으로 박근혜 정권에 항거의 마지막 몸짓을 보냈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 광장에서 촛불집회가 있으면 함께 스님의 칠일 주기의 제사를 지냈다. 2월 5일도 바로 그런 제사를 올렸던 날이다.

▲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소신공양하신 정원스님의 분향소를 광장에 세우고 20일이 지났을 때입니다.

 

202325일엔 탑골공원을 지나치며 글을 남겼습니다.

 

대통령 되기 참 쉬운 나라가 됐다.

민주주의 만만세다.

윤석열이 대통령 될 정도면 변희재와 강용석, 강신업, 유창선이라고 대통령 못 되리란 법 없다. 국민의힘은 강신업에게 당대표부터 출마할 기회를 줘라.

검사가 옷 벗고 몇 달 안 돼 대통령도 되는데 변호사가 당대표 출마하는 건 자유다.

태극기부대와 어버이연합, 어머니연합 이들 모두 반발하면 골치 아프잖아.

▲ 입춘이 지난 오늘 정말 추운 날입니다.

 

202525일은 작년 1227일 서울에 다녀올 때 지갑을 잃어버리고 참으로 끈질기게 버텨오며 아끼던 연초를 자정을 넘겨가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혐의 국정조사특별위원회> 방송과, <내란수과 윤석열 탄핵 헌법재판소 5차 변론기일>을 다시보기로 지켜보다 구입하러 다녀왔다고 밝힐까요. 연초는 모두 떨어졌는데, 날이 밝기까지 참을 수 없어서 무언가를 구입할 때 받은 동전을 모아두었던 통을 털었습니다. 영하 13도로 기온이 내려간 새벽 130분에 편의점에 가서 동전묶음을 연초와 교환하는 장한 일을 했다고 말이지요.

 

다시 몇 년 지나 오늘을 되돌려 살펴보며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달라졌구나 하며 안도할 수는 있을지? 정말 바뀌지 않고 반복적으로 되돌이표를 찍고 자꾸 과거로 회귀하는 이상한 세상을 만나지는 않았으면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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