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명곡’, ‘나는 가수다’에 몇 번 한계령이 방송됐습니다. 조금 의외로 풍류대장에서도 소리꾼 김주리(1993년 5월 23일 전라북도 전주시 출생)란 이가 한계령을 불렀습니다.
1985년 이후 지금까지 한계령을 부른 수많은 가수들이 있으나, 양희은이란 가수의 벽을 뛰어넘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이끌지는 못했습니다. 다양한 무대에서 한계령을 부르는 걸로 미루어, 김주리에겐 한계령이 대표곡이고 방송사들도 적극적으로 김주리를 무대에 세울 때 한계령을 부르도록 배려하는 듯싶습니다. 김주리는 4살 때 소리를 시작한 신동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더구나 8살에 판소리 수궁가를 3시간 이상 완창을 해 기네스북에도 올랐다니 대단한 소리꾼이군요.
그렇기에 여타 가수들과는 전혀 다른 국악인만의 풍부한 성량과 恨(한)을 풀어내는 듯한 애절함이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이한 점은 김주리가 부른 한계령만이 원작을 최대한 살려 읊조리듯 시의 일부지만 끌어다 노래로 재구성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시의 전체를 그대로 끌어들이지는 않았습니다. 1연을 최대한 끌어다 약간의 각색을 했는데 ‘푸른 별은 돋을까’를 ‘푸른 별을 돋을까’로 직접 불을 돋아 올리듯 한다는 식으로 해석한 부분은 조금 생경스럽기도 하고, 저로서는 듣기 거북합니다.
몇 년 새 여러 방송에서 같은 노래가 다양한 음색으로 불려졌습니다. 제가 저작권을 찾은 2007년 이전엔 남궁옥분과 팝페라가수로 알려진 임형주가 한계령을 발표한 상태였습니다. 2010년 이후로는 ‘맨발의 디바’로 불린다는 이은미를 필두로, 진달래꽃으로 크게 이름을 알린 마야, 뮤지컬 배우인 소냐와 여러 가수들이 각기 다른 음악 프로그램에서 한계령으로 경연을 펼치게 됩니다. 하지만 모두 하덕규 원작의 곡을 그대로 편곡을 한 노래였습니다. 검색을 하다보면 정말 많은 대중가수부터 성악가도 몇 분 한계령을 부르는데 저작권권을 체결한 성악가는 신영옥이 유일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소리꾼까지, 풍류대장에서 김주리가 한계령을 부를 때 함께 다른 노래로 만났던 김준수가 한계령을 불후의 명곡에서 부르기도 했습니다.
▲ 최근 유튜브를 통해 김주리가 국악한마당에서 한계령을 부르는 모습을 만났습니다. 별도로 사전녹화를 했음이 분명한 화면입니다.
한계령에서 1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혼돈 중에 헤매일지.
삼만육천오백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상처 아린 옛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 되어
빈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온종일 헤매던 중에 가시덤불에 찢겼나 보다
팔목과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빗물 젖은 옷자락에
피나무 잎새 번진 불길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증(愛憎)의 꽃으로 핀다
찬 빗속
꽁초처럼 비틀어진 풀포기 사이 하얀 구절초
열 한 살 작은 아이가
무서움에 도망치듯 총총이 걸어가던 굽이 많은 길
아스라한 추억 부수며 관광버스가 지나친다.
저 산은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함성 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 김주리가 국악한마당에서 한계령을 부르기 이전 풍류대장에서 처음 이 노래로 경연을 펼칠 때부터 원작을 최대한 끌어다 새로 구성된 노래로 많은 점수를 받고 결승에 오릅니다.
1981년 10월 3일 설악산을 며칠에 걸쳐 종주하고 한계령으로 하산을 하며 지금의 한계령휴게소가 있는 지점에서 위로 보이는 바위에 앉아 쉬며 이 시를 쓸 때부터 한계령에서 1은 아니었습니다. 고향(오색리)가 지척이고 단풍철이, 시작될 때라 두 시간 정도만 걸어서 가면 친구와 아버지를 만날 수 있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고등학생이 된 친구들을 만나는 걸 꺼려서가 맞지 싶습니다.
한계령을 처음부터 연작으로 쓸 생각까지는 없었습니다. 당연히 ‘한계령에서’로 제목이 지어졌습니다. 제가 앉아 시를 쓴 자리가 한계령이었으니 당연한 이유고, 또 다른 하나는 지척에 집을 두고도 들리지 않고 한계령에 머물다 간다는 의미도 제목에 그대로 담았던 겁니다.
▲ 원작시엔 「피나무 잎새 번진 불길처럼」인데 여기에서 「피나무 잎새 불길처럼」으로 바뀌었습니다. 피나무의 나무잎은 빨갛게 단풍이 들지 않습니다. 노랗게 물이 들지만 그 또한 빨간 불꽃보다 더 강한 열기를 지니고 있기도 하고, 피나무가 지닌 어감이 처음 시를 쓰던 날 상황과도 관계가 있는 구절입니다. 인가목과 댕댕이나무 같은 가시가 많거나 잔가지로 숲을 채워 발길을 묶기 일쑤인 관목들이 무성한 숲으로 길을 들어섰을 때 긁히고 찢긴 상처로, 남방셔츠를 축축하게 적시던 핏물을 그려내는 방법으로 쓴 대목이지요.
이 영상을 만나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한계령을 왜 한계령이 아닌, 그렇다고 산도 아닌 바다에서 부르지?” 저만 그렇게 생각할까요? 제가 만약 이런 방송에 사용할 영상을 제작한다면 당연히 한계령에서 촬영을 할 겁니다.
겨울이야 매서운 바람과 살을 파고들며 찢을 듯 사나운 추위 탓에 어렵겠지만 눈이 푸근하게 내리는 날이라면 겨울도 촬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단 한 번의 방송분을 촬영할 때 노래가 연주되는 시간만큼만 추위에 노출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복적으로 촬영을 한 다음 가장 좋은 장면들로 재편집을 하기에 몇 시간이 걸릴 수 있지요.
하지만 봄이나 가을이라면 언제든 한계령을 노래의 배경으로 이용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이런 영상은 인제군이나 양양군이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방법도 지역의 문화상품을 개발한다는 측면에서도 충분히 고려할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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