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계령휴게소 안을 들어가 외부로 나서면 비로소 한계령 노래 악보가 그대로 동판에 새겨진 노래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노래비가 이와 같은 형태로 세워진 이유는 노래비를 세울 위치가 양양군의 서면 오색리라서입니다. 이 노래비는 2023년 10월 21일에 세워졌는데 이때가 처음 한계령에서 시를 쓰고 42년 지난 시점입니다.
어느 고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양양군에서도 고민은 있었나 봅니다. “우린 왜 알려진 작가가 없는지 몰라요. 이외수처럼 알려진 작가가 있다면 그런 사업(감성마을)도 할 만 한데…”란 말을 들은 게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으면 뭐가 변화가 있을까요? 양양군의 변화는 있었습니다. 관광문화과가 문화관광과로 간판을 고쳐 달았고(이 부분은 도대체 관광문화과란 부서가 하는 일이 뭔가요? 관광을 문화제로 만들겠다는 부서도 아니고, 문화가 관광자원은 되지만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군요란 지적을 몇 번 한 다음에 고쳐졌습니다.), 양양문화재단이 설립되고 ‘송이연어푸드 디자인센터’란 건물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양양문화원과 작은영화관도 새로 건축되어 속초나 강릉으로 나가지 않아도 신작 개봉영화를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문화를 관광자원으로 구축하는 작업엔 여전히 낙후된 지역입니다. 어쩌면 천혜의 자원이 많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설악산은 대표적인 우리나라의 명산으로 양양군으로서는 속초시와 인제군과 함께 설악산의 주요한 관광자원이 저절로 주어진 환경에 속합니다. 바다도 낙산해변부터 동호리만 하더라도 상당히 넓은 규모의 백사장까지 갖춘 천혜의 관광자원임에 틀림없으며, 서핑의 명소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또한 남대천은 연어와 은어가 회귀하는 하천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합니다. 거기에 더해 남대천으로 흐르는 계곡은 모두 여름철이면 많은 인파가 북적이는 캠핑장이며 물놀이터가 됩니다. 더구나 주전골이나 미천골은 또 다른 비경을 간직하여 많은 이들이 사계절 끊임없이 찾습니다. 온천과 약수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자원이죠.
그러나 이런 자원들은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어느 고장이나 조금씩 형태만 달리할 뿐 만날 수 있고, 도 다른 즐거움을 베푼다는 사실을 눈여겨봐야 됩니다. 그런 면에서 양양문화재단이 만들어졌을 때 양양의 문화자원을 발굴하고 알리는 역할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고 기대했습니다.
양양문화재단의 문화예술분야 지원사업이 있는데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024년도 문화예술분야 지원사업의 총 예산이 4,000만원입니다. 단체에 200만원부터 400만원까지 차등지원을 한다고 하는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상합니다.
문학 분야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시, 소설, 희곡, 수필, 아동·청소년문학, 문학평론 등 발간사업>이라고 명시되어 있다면 반드시 이런 도서는 개인이 발간할 수 있기에 개인에게도 지원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지원항목을 보면 <임차비, 홍보비, 재료비 등>으로 명시되어 있고, 자격요건으로 <공고일 기준 양양군에 주소를 두며 고유번호증(또는 사업자등록증)이 있는 단체 (개인 및 전문예술단체는 지원 대상이 아님)>라 밝히고 있습니다. 개인은 신청할 자격 자체가 아예 주어지지 않으니 양양에 살며 다양한 출판물을 발간하는 작가라 하더라도 개인인 이상 전혀 신청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좀 더 깊이 살펴보면 <문학분야의 경우, 책자 발간만을 위한 사업은 지원 제외>라고까지 밝혀놓았습니다. 이상한 논리입니다. 양양의 문화를 선도하는 기관이라면 반드시 작가들의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으나마 힘은 되어줄 수 있어야 되는데, 책자발간은 이 지원사업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며 개인은 전혀 자격자체가 없도록 하면 지원사업으로는 책자발간을 제외하면 책자 발간에 필요한 종이만 구입할 수 있다는 논리가 됩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말입니다.
이런 양양군에 비교할 대상으로 인제군의 사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인제군은 박인환 문학관과 만해마을, 만해문학박물관, 시집박물관, 여초김응현서예관, 인제산촌민속박물관 등 다양한 박물관을 갖추고 있습니다. 당연히 인제군의 문화재단이 이를 통해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더군요. 양양군과 비슷한 인구를 가진 인제군은 인제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하늘내린센터’는 극장과 공연장을 갖추었는데 규모가 대단합니다.
▲ 한계령휴게소 바깥 데크에 노래비를 제막한 날 양희은 가수는 인제군의 하늘내린센터 대공연장에서 콘서트를 가졌습니다. 이때 소요된 예산은 도합 1억원에 가깝습니다.
양양군의 문화재단에서 제게 “양희은 가수를 한 번 부르려고 하는데 연락처를 아십니까?”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양희은 선생 연락처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 초청해 공연을 하려면 적어도 4,000만 원 이상 지불해야 가능하지 싶은데요”라 하자, 당장 “뭐가 그렇게 비사요”란 답이 돌아왔습니다. 양양군에서 비싸다고 한 양희은 가수는 2023년 10월 21일 한계령에서 노래비제막식을 치르고 저녁엔 하늘내린센터 대공연장에서 1시간 이상 되는 공연도 했는데 양양군에 제가 말했던 비용보다 더 지불했다고 합니다.
▲ 한계령휴게소 직전의 오색에서 필례로 넘어가는 길을 지나치면 곧장 이처럼 구절초가 10월초면 만개한 풍경도 만나는 고개가 한계령입니다.
▲ 한계령휴게소를 들어가지 않더라도 편한 서울양양고소도로를 피해 한계령을 찾는 이들은 이 풍경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대부분 <백두대간 오색령>을 크게 새긴 바위를 피해 사진촬영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양양군이 이 글을 보면 극도로 불편하게 여기겠지만 일부에서 한계령을 오색령이 원래 지명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 까닭에 한계령 정상에 ‘백두대간 오색령’이라는 엄청나게 큰 바위에 세긴 비를 세웠습니다. 사실 이 바위는 그 자리에서 바라보는 남설악 오색지역의 만물상과 등선대, 칠형제봉을 조망하는데 방해가 될 정도입니다. 그런 커다란 바위에 글을 새겨 비를 세우려면 적어도 2,000만 원 이상 되는 비용을 치러야 됩니다. 그뿐인가요. 글씨를 받기위해 비용을 치러야 되고 이 일을 하느라 공무원들도 여러 명 바쁘게 움직여야 됩니다. 더구나 이 비는 2005년 1월 1일 1차로 세웠던 ‘옛 오색령’ 표지석을 활용한 게 아니라 몇 배 더 큰 바위를 새로 구입해 세웠습니다.
그 표지석이 관광자원이 될 수 있을지는 저로서는 회의적이고 의문입니다. 전혀 쓸모없는 일에 막대한 비용만 지불했다 싶습니다. 혹 모르겠습니다. 생전에 신영복 교수님께 친필을 받아 세웠다거나, 종로통에 세운 녹두장군 전봉준 좌상의 명문을 쓰신 여태명 서예가께 친필을 받아 새겼다면 이를 기념하고 기리려는 분들이 찾으실 수 있습니다. 여태명 서예가님께서는 전주시로 들고나는 길목이랄 수 있는 전주톨게이트의 현판으로도 만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이 서체는 민체民體라고 하는 서체인데요, 효봉 여태명 서화가의 완판본체, 훈민정음체, 등의 서체중 하나로 쓰셨는데 이 민체는 말 그대로 백성의 글씨입니다.
▲ 전주시에서 외지로 나가는 방향엔 이처럼 자음 ‘ㅈ’이 크게 쓰여진 여태명 서예가의 작품을 새긴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들고남에 방해가 안 되는 위치입니다.
▲ 전주시로 들어오는 방향의 전주는 글자가 나가는 방향과는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전주란 글자는 들고나는 양 방향이 다르게 쓰여졌는데 여기엔 숨은 의도(의미)가 있습니다. 전주로 들어오는 방향에는 자음인 ‘ㅈ’을 작게 쓰고 모음인 ‘ㅓ’를 크게 써서 객지에 나갔다가 고향에 돌아오는 자식(자음)들의 눈에 어머니(모음)의 모습이 크게 부각됨을 표현하시고, 반대로 전주에서 나가는 방향에는 자음인 ‘ㅈ’을 크게 모음인 ㅓ‘를 작게 써서 객지로 나가는 자식이 크게 성공해 큰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을 담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자의 받침 ’ㄴ’은 특별히 전주시의 형상을 그리셨다고 합니다.
전주시는 완주군을 바깥으로부터 빙 둘러싸인 형태의 도시입니다. 완주군의 입장에서 보면 전주시로 인해 3읍 9개면 중에서 이서면을 외진 곳에 뚝 떼어놓게 만든 모양이지만, 완주는 대부분 전주를 지나쳐 서로 연결되는 조건입니다. 이런 조건과 내용을 자세하게 배울 수 있었던 계기는 지금이야 형님이라 부르지만 2011년 무렵엔 예의를 최대한 갖추고 만나야 했던 임동창 선생님과의 인연 덕분입니다. 완주군 소양면의 풍류학교를 가기위해서는 전주톨게이트를 통과해야 되었고, 지도로 완주군을 검색하며 길을 확인하다, 전주시를 중심으로 외곽을 빙 둘러싼 모습을 발견해서지요.
▲ ‘전주’ 글자를 민체로 쓰신 여태명 서예가님을 중앙일보의 권혁재 사진기자가 취재를 하며 촬영하고 2023년 4월 20일 기사에 낸 여태명 서예가님의 모습입니다.
이 ‘전주’의 문패랄 수 있는 글씨를 쓰신 여태명 서예가의 민체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중앙일보에서 ‘권혁재의 사람 사진’을 연재하는 저와 친한 권혁재 사진기자의 2023년 4월 20일의 기사 내용을 빌려 소개하겠습니다.
“궁중 서체를 줄여서 궁체라 하듯 민간서체를 줄여 만체라고 하죠. 사실 예술가가 똑같은 작업을 똑같이 하면 재미없잖아요. 왕희지 글씨, 누구 글씨, 뭔 글씨만 따라 쓰고 있으니 그냥 복사하는 것 같았죠. 새로운 걸 찾고자 간 고서점에 옛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글씨가 있는 거예요. 그런 글씨를 보니 아주 재밌더라고요. 온 정성 들여 썼던 백성들의 글씨인 거죠. 그걸 수집해서 연구한 결과로 민체가 나오게 된 겁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런 분의 서체라면 사람들은 많은 이야기를 쓰고 나누게 되겠기에 문화적인 관광자원이 되는 것입니다. 아, 권혁재 사진기자는 저에 대해서도 ‘권혁재의 사람 사진’에 20121년 2월 10일 <한계령 시인 정덕수>란 제목으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기사의 끝 부분에 “그가 〈한계령에서1〉을 쓴 게 1981년이다. 올해 어느덧 40주년이다. 그는 한계령 품에서 40주년 기념으로 400여편의 원고를 책으로 엮는 꿈을 꾸고 있다.”라 밝혀놓아서 제가 한계령을 쓰고 40년이 되는 시기라는 걸 알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 중앙일보사의 권혁재 사진기자가 특별히 한계령 40년을 축하하며 2021년 2월 10일 기사로 내며 촬영해 준 사진입니다.
제 나름으로는 양양군이 한계령에 대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던 상관없습니다. 양양군 차원에서 한계령을 오색령으로 고집을 하더라도 제 시가 한계령을 제목으로 쓰여짐에야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한계란 2023년 12월 출판한 시집 ‘한계령’의 ‘시인의 말’에도 밝혀놓았듯 “어떤 대상, 대부분의 사물들이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범위나 경계로 읽히는 限界가 아니라, 막히거나 끊기고 단절되어지며 저지당하는 운명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물길들을 만나 섞여 어우러지고 도도히 흐르기 시작하는 차가운 시냇물인 寒溪임”을 분명하게 적었습니다.
▲ 2023년 12월 5일 스타북스에서 출판된 시집 한계령입니다.
▲ 한계령 시집을 구입하면 노래 한계령의 원작인 한계령에서1을 서북주릉에서 바라보는 남설악을 배경을 한 별도의 시화를 받게 됩니다.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오색빛깔 꽃이 피는 오색나무가 있는 마을에서 차용해 ‘오색령’이란 주장은 옹색하기 그지없습니다. 주전골엔 그렇다면 오색빌깔 물이 흐르며, 차갑지 않은 더운 물이 흐른다는 주장이라면 또 모르겠습니다. 분명 주전골은 맑고 시리도록 차가운 옥류가 굽이쳐 흐르며 절경을 빚어냅니다. 편협한 시각으로 더 많은 기회를 잃게 됨을 양양군과 양양문화재단은 이제라도 알고 바로잡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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