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의 아우성> / 평균 연령 70세 이상의 나이 든 예술가들이 깃발을 들었다. ⓒ 김진하
'광화문미술행동 깃발행진 -시각의 아우성', 참 근사합니다. 이 '시각의 아우성'은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5에 있는 미술관 나무화랑의 김진하 관장이 "‘깃발 부대'라는 용어보다는 '깃발 행진'으로 표기해 주세요. '부대'라고 하는 군사용어를 가능하면 쓰지 않으려고요"라는 요청에 의해 정해졌습니다.
지난 11일 광화문광장과 안국동에 이르는 길에서 바람에 힘차게 휘날리는 깃발, 말 그대로 펄럭이는 소리들이 엄청난 함성으로 들리는 듯합니다. 깃발의 아우성이지요. 저도 광화문미술행동 구성원이지만 최근엔 함께 거리에 서지는 못했습니다.
민중의 저항 방법
1980년대 초중반 관훈동과 인사동엔 신군부에 의해 만들어진 전혀 민주적이지도 않으면서 민주란 단어를 꼭 집어넣었던 '민주정의당' 당사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민정당이 지금 국민의힘의 과거라는 건 지금 환갑을 넘긴 분들이라면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그에 맞서 늘 항거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민정당으로서는 눈엣가시인 미술관이 있었는데 '그림마당 민'과 '청년미술관', 그리고 '제3미술관'입니다. 이때 태동된 미술계의 용어가 민중미술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지요.
40년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명맥을 이어가는 미술관이 두 곳인데 김진하 관장의 나무화랑과 정요섭 미술평론가가 관장으로 활동하는 미술관 '아르떼 숲'입니다. 민중은 말 그대로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는 다수의 일반 국민으로 피지배(被支配) 계급으로서의 일반 대중을 말하는 민중(民衆)을 의미하지요.
그 시절이나 이번 윤석열 정권이나 마찬가지로 국민을 개와 돼지로 보는 건 똑 같습니다. 그건 박정회와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과 박근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권력의 끝자락이 비참하다는 동일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권력엔 반드시 부역자들이 있었으며, 민중의 편에 서서 저항하는 이들도 있는데 광화문미술행동에 소속된 이들이 그 저항세력들 중에서 미술이란 특수한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무도한 권력에 저항하는 방식은 음악도 있고 문학과 춤(무용)도 있습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마음만큼은 모두 한결 같습니다. 사진으로도 가능한데 여기 보여드리는 사진을 촬영하신 조문호 작가님께서도 민중들의 삶을 현장에서 기록하시는 분이십니다.
▲<시각의 아우성> / 민중들을 위해, 미래를 살아갈 젊은이들을 위해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선 나이 든 예술가들 ⓒ 조문호
▲<시각의 아우성> / 미리 준비하여 오지 못한 이들은 현장에서 준비된 화구를 이용해 직접 깃발을 제작할 수 있도록 하며 깃발을 든 나이 든 예술가들은 거리에서도 민중과 함께했습니다. ⓒ 조문호
1980년대 언론은 지금처럼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신문도 일일이 사전검열을 받아야 발행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때 무도한 권력에 맞서던 방법이 민중가요로 말하는 노래와 함께 피로 얼룩진 그들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미술이 있었습니다.
광화문미술행동은 바로 그때부터 활동하시는 작가들이 주축이 되어 구성되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미술이란 장르는 저항의식을 지닌 작가가 작업을 하더라도 전시할 공간 자체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미술관(전시관)은 그들의 작품을 전시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전시가 가능한 공간이 그림마당 민'과 '청년미술관', 그리고 '제3미술관' 이 세 곳이었습니다.
광화문미술행동의 출발배경
1987년 민주화항쟁으로 대한민국 헌법이 새로 국민투표를 거쳐 시행되는데 지금의 우리가 누리는 자유로운 활동도 바로 이때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에 의해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학생운동권의 저항과 재야인사로 불리던 분들, 그리고 바로 광화문미술행동에 참여한 이들과 같은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당시엔 전시장에 경찰이 난입해 작품을 압수해가는 사건도 발생합니다. 표현의 자유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멈추지 않았기에 지금의 광화문미술행동이 남아 있는 겁니다. 그러나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이전의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보수주의 정권에 의해 문화예술인들을 낙인찍는 사건이 드러납니다. 자신들의 뜻에 동조하는 문화예술인들에게 지원을 하면서 그렇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에겐 불이익을 주었다는 사실이 밝혀진거죠.
'블랙리스트'란 명단으로 사회적으로 파장이 일어났고 급기야 광화문으로 모이게 됩니다. 4대강사업에 반대를 했다고 불이익을 받고, 박근혜 정권의 실정을 비평한다고 불이익을 받던 이들이 광장에 모였습니다. 해고노동자와 비정규직 등 다양한 이들이 한 곳에서 목소리를 내며 미술이란 분야에서 작품을 하던 분들은 매 행사 때마다 현장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게 됩니다.
광화문광장에 천막극장을 세우고 미술관을 열어 전시를 했고, 민중가요가 매일 광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어려서부터 현장에서 일을 하며 살았던 저는 그 과정에서 몸에 익힌 기술을 활용해 이런 작업에 동참하며 광화문미술행동의 일원이 되어 지금에 이릅니다. 이때 현장에서의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이를 전달할 매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시각의 아우성> / 광화문에서 준비를 마친 광화문미술행동은 제작한 깃발을 들고 헌재방향으로 행진을 합니다. ⓒ 조문호
윤석열 내란 사태에서도 광화문미술행동은 여전히 불의에 저항하는 문화예술의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폭력적이지도 않으면서 많은 이들을 결속시키는 민중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나이 든 미술인들이 깃발 든 이유'라는 김진하 나무화랑 관장의 글에 등장하는 '광화문미술행동 깃발행진 - 시각의 아우성'에 참여하는 분들의 구성을 보면 놀라실 겁니다.
이번 첫 번째 깃발 행진인 <시각의 아우성>에 참여한 작가들은 나이가 많다. 두 번째로 어린 내가 환갑이 지난 지 한참이 되었을 정도이고, 나보다 바로 위인 작가가 67세, 그 위로 70세, 또 그 위로 74세, 75세… 평균 연령이 70세가 넘는다. 젊은이들이 주인공인 탄핵 집회에 나이가 든, 그것도 큰 깃발까지 든 할배 작가들이 나선 거, 흔치 않은 일이다.
- 김진하 '나이 든 미술인들이 깃발 든 이유' 중에서
김 관장은 왜 나이 든 미술인들이 깃발을 들고 거리에 나섰는지는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70세가 넘은 미술인이 무슨 개인적 이득을 바라겠는가. 또 사이버 능력 한계로 공개적으로 정책이나 행정에 관계할 통로도 없다. 그저 이렇게 깃발을 들고 몸으로 의사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발전한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능력 있는 문화부가 문화 예술계를 위해 보편타당하면서도 투명한 정책을 실행하기 바라는 것이다. 젊은 후배 작가들이 자기 작품 깃발을 들고 앞장서서, 이 선배들을 뒤로 밀어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도 미래도 당신들이 활동하는 세상이니까 당신들 스스로 그것을 찾아 나서라는 거다.
- 김진하 '나이 든 미술인들이 깃발 든 이유' 중에서
20, 30대의 젊은 미술인들이 아닌 나이 든 할아버지들이 깃발을 들고 앞장 선 이유가 지금도 미래도 그들이 활동하는 세상이고 자신들의 꿈을 펼칠 세상이라서 나섰습니다. 바로 지금의 직장 초년생들, 그리고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의 미래를 밝히기 위해서 말입니다.
역사는 민중들의 삶과 함께 앞으로 전진합니다. 그런 역사의 장에 주인공은 나이 든 우리가 아닌 젊은이들이기에 미래엔 그들이 기록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시사포커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란수괴 윤석열 기소, 재판정에는? (0) | 2025.01.27 |
---|---|
부정선거? 우리 선거제도에선 불가능 (0) | 2025.01.26 |
윤석열 변호인단 긴급 기자회견, 법원 연장 거부 (0) | 2025.01.25 |
‘헌재 변론’ 윤석열 측 주장에 반박 (0) | 2025.01.25 |
혼란과 폭력을 자유민주주의 수호라 외치다니 (3) | 2025.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