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4년 6월 9일 전날 한계령에서 출발하여 종일 비를 맞으며 걷고 날이 개어 기분좋게 천불동으로 하산을 했었습니다.
며칠 전 주홍수 감독께서 속초에 후배들을 만나러 온 길이라며 들렸었습니다. 그날로 속초에서 속초클라이밍짐에서 근무한다고 소개된 남정아란 분이 친구를 맺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 분이 주 감독이 얘기하신 속초의 후배겠거니 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입니다. 두 분 모두 서로 친구가 아니시니 말이지요.
하여튼 이분이 최근 사진에 노산 이은상의 설악기행문 ‘설악행각’에서도 맨 끝에 쓴 시를 몇 번 인용하여 보여주시는데 그때마다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이참에 산꾼들이라면 노산이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제대로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 잠시 그의 족적을 더듬어 보겠습니다. 남정아님께 별다른 감정은 절대로 없으니 오해는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1980년대 이 시는 대청봉에 표구가 되어 걸려있었는데 저는 띄어쓰기를 완전히 무시한 표구의 내용을 안 보고도 외웠었습니다.
대청봉에 이옥모 선생께서 산장지기로 계실 때 부탁을 받고 경운기엔진과 선박용 제네레다(알터네이터)를 구해서 인부들을 동원해 올려서 조립을 할 때였습니다. 산나물이 대청봉에 조금 늦긴 했어도 제법 먹을 만 했으니 6월 중순이었던 듯합니다. 제법 햇볕이 뜨거웠고,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갔던 상태라 겉옷을 벗어젖히고 런닝셔츠 차림으로 엔진을 조립하는데 등산객이 더듬거리며 노산의 시를 읽더군요. 띄어쓰기가 안 되어 있으니 “설악산 이여이 밤 만자면 나는…”, 아, 정말 듣기 괴로웠습니다.

▲1966년 노산이 환갑을 지난 뒤 설악산을 돌아보며 남긴 ‘설악행각’의 맨 끝자리에 쓴 시입니다.
그래서 “설악산이여! 이 밤만 자면 나는 당신을 떠나야 합니다. 당신 품속을 벗어나 티끌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마지막 애닯은 한 말씀 맹서와 기원을 드리렵니다”를 쭉 읊었지요. 뭐 잘 난체 하려고 한 짓은 아니었습니다. 하도 답답해서 저도 모르게 그냥 외우고 있었기에 읊게 됩니다. 그렇다고 제가 노산을 존경하느냐면 절대로 아닙니다. 그냥 그의 책을 몇 권 읽었고, 설악행각을 몇 번 읽었기에 거기 기록된 시 몇 편 외워진 것입니다.

노산은 분명히 설악행각을 쓸 때도 짐꾼을 부려 지게위에 턱 허니 걸터앉아 짐꾼이야 무진 애를 쓰거나말거나 유유자적 콧노래 흥얼거리며 유람을 했을 겁니다. 그는 이승만만큼이나 이중적인 행동을 하는 인물이었기에 틀림없이 그리했다고 저는 믿습니다. 1838년이면 1903년 10월생인 노산의 나이 35살 남짓했을 때도 그런 짓을 한 자가, 1966년이면 63살인데 자신의 두 발로 그 험하디 험한 장수대를 넘고, 남교리를 돌아 구곡담이며 봉정암과 오세암, 마등령으로, 와선대에서 다시 그 위의 비선대를 돌아 계조암을 구경하고 다녔을 턱이 없습니다.
환갑을 넘긴 그라면, 대단한 노인 행세를 하며 잘 먹어 피둥한 몸뚱아리 엄청 아꼈을 위인이 설악산을 기행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지게위에 걸터앉아 발바닥 각질 긁어대며 썼기에 설악행각이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친일행각에, 친독재 행각을 한 그의 성정을 익히 앎에야 어찌 존경의 마음이 일겠는지요. 그에 대한 논란에 굳이 발을 담그고는 싶지 않으나 잠시 드러난 사실만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노산 이은상은 잘 알려진 그대로 경남 마산 출신의 시조시인입니다. ‘그리움’, ‘가고파’, ‘그 집 앞’ 등 그의 많은 시조는 가곡으로도 만들어져 불렸습니다. 이와 같이 시조문학의 현대화에 이바지한 공이 크다는 평가를 받기는 합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친일․․친 독재 논란으로 여전히 평가가 엇갈리는 상황입니다.
고향 마산에서 노산 이은상의 친일과 독재 권력에 부역한 전력을 추적해 온 ‘열린사회 희망연대’ 김영만 대표는 10여 년 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는 않았다. 아직 확실한 증거자료를 찾지 못했지만 친일 의혹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입을 통해 친일 의혹이 제기되었고, 일제 강점기 만주국의 대변지인 ‘만선일보’에 재직하는가 하면 친일 잡지인 ‘조광’의 주간이라 밝힌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자료로 입증된 친일 전력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설명만으로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입을 통해 친일 의혹이 거론되었다면 반론의 여지는 무의미 합니다.
친일과 관련된 행적은 그렇다 하더라도, 독재 권력에 부역하고 적극 참여한 전력은 기회주의자의 표본이라 할 정도로 다양하다는 게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그 예로 이승만 정권 당시 일명 사사오입 개헌으로 불리는 헌법 개정안 통과 직후에 있었던 이승만의 80회 생일엔 그를 찬양하는 송가를 헌시하였답니다. 그리고 3․15 부정선거 때는 ‘문인유세단’을 조직해 이승만을 지지하는데 앞장섭니다. 그의 고향 마산에서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의거가 일어났을 때 ‘무모한 흥분’이란 표현과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라고 모독하기까지 했답니다. 그리고 4월 11일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전국적으로 시위의 불길이 다시 타오르게 되며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단초를 제공하는데 앞장 선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4․19혁명 직후에는 4․19를 찬양하는 비문을 쓰기도 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집니다. 이후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공화당을 창당할 때는 창당선언문을 작성하고, 청구대(현 영남대) 교수로 재직할 땐 당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과 모의하여 청구대를 박정희에게 헌납하는 작업도 했다는군요.
그 뒤로야 1980년대 행적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지요. 전두환이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에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으로 보아 무엇보다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 일반적 여론”이라는 글을 바치고, 그 에 대한 보상인지는 전두환이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듬해 국정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비선대에 곳곳에 새겨진 이름들을 보며 불유쾌하다고 했는데 아래 옮겨봅니다.
여기서 냇물을 바로 외로 몇 번이나 건너면서 한 20분을 더 오르면 이번에는 비선대飛仙臺라 부르는 폭포가 몇 동강이나 꺾이면서 허공에 떠 있는 것은 참말 신선의 깃옷羽衣 자락이 펄럭임과 같습니다. 반석 위에는 빈틈없는 제명題名이 있는데, 얼마나 불유쾌한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바윗바닥에 새겨 놓은 비선대飛仙臺 석자는 누구의 글씨인지 알 수 없으나 내가 보기에는 저 내설악의 대승폭 건너 편 언덕 위에 새겨 놓은 구천은하九天銀河의 필치와 같은 솜씨인 것이므로 혹시 양봉래楊逢來의 글씨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는 어쨌든 과연 이 비선대의 절경만은 영원히 그 아름다움을 자랑할 것입니다.
일찍 저 불행한 일생을 보낸 눈물의 시인 김삼연金三淵이 이 곳에 와서 비폭층담飛瀑層潭이라는 제목으로 읊은 시가 있습니다.
바위에 올라 앉아 「금담」(金潭)을 굽어볼 제
오른 편엔 부채살같이 청봉이 늘어섰네
괴인 물 솟은 산이 온갖 묘함 갖췄거니
장하다 기이하다 그 말로만 그치리요
명산을 찾아 들어 이곳저곳 두루 밟아
신선 생각에 비로소 맛이 들어
앗차! 금강암에 떨어질까 하다 말고
깜짝 놀라서 막대를 고쳐 짚네.
瓊臺俯金潭 右扇排靑峰 融時備衆妙 豈惟勢奇壯 名山蠟屐遍 始愜丹丘想 慾落金剛岩 驚吁更柱杖
이 시는 다만 김삼연의 심경을 보여 준 것만이 아니고 바로 이 곳의 실경을 묘사한 것이라고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시에 쓰여진 금담金潭이니, 금강암金剛岩이니 하는 것은 이곳의 부분적 명칭으로 보아야 할 줄 압니다.

▲ 노산이 승폭이라 밝힌 폭포는 소승폭포를 이르는 것인지 대승폭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전혀 다른 폭포를 승폭이라 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노산을 싫어하면서 이미지에 이름을 적은 이유는 그냥 두면 누가 수고를 했는지도 알 수 없게 이리저리 돌아다니기에 이를 방지하고자 함입니다.
노산의 시야 그럴싸하지만 그가 산 흔적이 아름답지 못하기에 비선대 암반에 쓰여진 각자 중에 친일행적이 뚜렷한 자에겐 부러움을 느꼈을 일이겠고, 자신의 이름 석자 남기지 못한 아쉬움에 기분이 나쁘진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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