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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마당

윤석열과 기모노의 숨겨진 비밀

by 한사정덕수 2025.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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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상은 우리 말을 이대로 글로 적으면 때때로 전혀 다르게 해석을 합니다. 가을의 찬 서리와 같은 음성이나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으나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어떤 대상의 본질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하여 단면들을 쪼개고 나누어 전혀 새로운 시선으로 조명하는 추상적인 표현으로 말입니다.

 

먼 미지의 희망 한 조각아

 

어둠 속을 헤매다가 돌아왔을 때

거기 누가 있어 날 반기랴

참혹한 어둠을 가로질러 달리던 바람

서로 부대끼며 살아갈 운명 있었으면

헤진 영혼 기워도 살가울 텐데

이미 어스름 날이 저무니

눈물겹게 다시 만날 시간 기다리는 맘

준비된 운명 있다면, 그대

내 쓸쓸한 희망 알아주면 좋겠어요.

 

쓸쓸함도 내 인생이라

고적함도 내 운명이란 생각의 강에 잠겨 보았다.

하지만 다시 어둠은 깊어가고

절망적인 먼 미지의 희망 한 조각아

달빛 아래 어디 있느뇨?

내, 다시 어둠 헤치고 새벽으로 돌아올 때

거기쯤에 기다려주면 좋겠다.

고되고 고달파 울었던

눈물자국 그대 손길로 씻어주면 좋겠다.

 

한사람 어둠 속에 헤맬 때

그대 또한 한사람처럼

그대만의 어둠 속을 헤매고 있을까

자정을 넘긴 시침은 새벽으로 향하는데

새벽길 안개 속에 나서면 만나질까

침묵하면 보일까

말없이 기다려보는 시간 속에선

먹빛 슬픔이 달빛을 지웠다.

 

다만, 그렇게 먹빛 슬픔만이 혼자서

달빛을 지우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 앞에 마치 아호처럼 시인(詩人)이라고 써 붙인 이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다른 계통에서 활동하는 이들보다 수가 정도를 넘게 지나치게 많습니다.

 

택시기사 OOO이나 주부 OOO와 같이 자신의 직업이나 위치를 표현한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는 문촌댁 OOO이나 여산집 OOO과 같이 택호를 이름 앞에 붙였어도 이는 전통적인 문화라 생각하겠습니다. 우리 정서에 여산에서 시집을 온 부인이나, 목포에서 살다 온 분이 있다면 지금 사는 고장과는 다른 고장에서 태어나거나성장기를 거쳤다거나 살던 이를 초면부터 서로가 마음을 나누며 말을 터놓고 하는 방법으로 고향을 먼저 묻습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여성의 경우라면 목포댁이란 호칭이 굳어지고, 남성의 경우라면 목포집 아저씨 정도로 부르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시인이라면 시로서 자신을 나타내면 될 일을 굳이 이름 앞에, 혹은 이름은 어딘가 감추어 두고 시인 寒士한사나 시인 鄭德洙정덕수라 스스로 드러내면 꼴불견 아닐까 싶습니다. 오히려 다른 이들이 우러러 보기는 커녕 인정을 받지 못한 습작기에 있다는 걸 드러내는 꼴로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 어떤 일을 하세요라 물었다면 그때 저는 글을 쓰는데 주로 시를 씁니다. 하지만 시를 쓴다고 해서 그게 직업은 아닙니다정도로 무얼 하는지를 밝히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친구나 어르신들께서 주신 아호가 몇 개 있습니다. 당연히 그중 하나는 이름 앞에 나타내야 도리인 줄 알지만이런 몰상식에 거부감이 들어 아예 아호까지도 떼고 보니 부모님께서 사랑으로 주신 이름 더 살갑게 느껴집니다. 정덕수란 이름 석 자 인디언 이름짓기식으로 하면 나라의 큰 물가정도 되는데, 일본인들의 성씨가 17만개가 넘게 17만개가 넘게 된 이유처럼 황당하지는 않습니다.

▲ 「 지금 KKday에서 도쿄 아사쿠사 야에 기모노 대여 체험을 예약해 보세요. 좋아하는 스타일을 골라 입으실 수 있으며 남, 여, 아동, 유카타, 화려한 후리소데 등 없는 것이 없습니다」라며 2000円을 받는다는 기모노체험을 그들의 기모노에 얽힌 사연을 알고도 자랑스럽게 할 것이며, 사진촬영을 해 SNS에 공개할 수 있을까? 전혀 부끄러움을 못 느끼며? ⓒ ‘KKday에서 도쿄 아사쿠사 야에 기모노 대여’후려왔음!

 

일본인들의 성씨가 그렇게 많은 이유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일본 여성의 전통 의상인 기모노와 남성들의 훈도시에 얽힌 얘기입니다.

 

일본 여성들이 기모노를 입을 때 허리에 두르는 넓고 긴 띠를 오비()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비에 걸쳐진 등 뒤의 베개 같은 두툼한 장식이 오비마쿠라(帯枕)라입니다. 그런데 이 기모노는 정장으로 차려입을 때는 팬티를 애초 입지 않는 것이 전통이라 합니다. 다소 그냥 지어낸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엄연한 전통적 관습이라 합니다.

 

여기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는데요,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전쟁 임진왜란의 주역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본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오랜 내전으로 남자들이 너무 많이 전사하자 인구를 늘리기 위해 법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그는 여자들에게 외출할 때 오비와 오비마쿠라를 착용하고 다니다가 어디에서건 남자가 원하면 오비를 담요 대신 깔고 엉덩이를 오비마쿠라에 올려놓고 씨를 받아 임신을 하게 했다고 전합니다. 그 덕에 운이 좋아 전쟁에서 살아남은 남자들에게는 훈도시라는 기저귀 비슷한 것만 걸쳐 중요부위만 가리고 다니며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면 즉석에서 동침을 요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독일도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을 때 청소년들에게까지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섹스를 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바로 전쟁에 내보낼 남자들을 많이 낳게 하려는 정책이었지요. 심지어 어느 병원의 의사는 간호사가 자신과 함께 잠자리를 갖기를 원했으나 도저히 그의 도덕적인 판단으로는 안 되겠기에 거절을 했다가 간호사가 히틀러의 친위대에 고발을 하는 바람에 처벌을 받기도 했답니다. 인구를 늘리려는 히틀러의 정책에 반하는 행동은 적을 이롭게 만드는 행위로 간주되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여자가 임신을 해 아이를 낳기는 했는데 애 아버지가 누군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일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마치 우리가 택호를 지어 부르는 방식처럼 아이를 갖게 된 장소를 성씨로 쓰게 되었더랍니다. 그 예로 다음과 같은 성씨들이 만들어진 거라 합니다.

 

木下 목하 (기노시타) 나무아래

山本 산본 (야마모토) 산 속

大竹 대죽 (오타케) 큰 대나무

中山 중산 (나까야마) 산 중턱

村井 촌정 (무라이) 시골 우물

山野 산야 (야마노) 산기슭

川邊 천변 (가와베) 냇가

森永 삼영 (모리나가) 숲속 길

山下 산하 (야마시타) 산 아래

中村 중촌 (나까무라) 마을 중간

西村 서촌 (니시무라) 서쪽 마을

澤近 택근 (사와치카) 연못 옆

田中 전중 (다나까) 밭 가운데

石川 석천 (이시카와) 냇가 돌

麥田 맥전 (무기타) 보리밭

福田 복전 (후꾸다) 복 많은 밭

豊田 풍전 (도요다) 풍년 든 밭

竹田 죽전 (다케다) 대나무 밭

太田 태전 (오타) 큰 밭

山田 산전 (야마다) 산밭

 

이 성씨들을 보면 뭔가 공허한 마음에 막연하게나마 헛헛함을 채울 대상을 찾아 달빛 아래 들판을 어슬렁거리거나 마을 골목을 살피는 훈도시 차림의 못난 사내가 그려집니다.

 

그에 비하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얼금뱅이에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 생원과 성 서방네 처녀의 물레방앗간 잊을 수 없는 사연은 사뭇 낭만적이기까지 해 보입니다. 자식일지도 모르지만(소설에서 동이가 허 생원의 자식이라고 밝히지는 않았으니) 동이의 성씨를 물레방아라는 한자 표기는 없으나 水臼(물절구)라고는 쓰지 않음에야 어머니 성씨를 써서 성동이로 불렀을 수 있겠습니다.

 

일본식이라면 달밤을 의미하는 月夜水臼를 성씨로 하고 同異거나 洞梨로 배나무 골짜기를 의미해 메밀밭과 같은 하얀 배꽃이 핀 골짜기로 지었다면 水臼洞梨로 정말 일본식 이름이 된다. 더구나 가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발표된 시기가 일제강점기요 창씨개명으로 한국인의 뿌리를 말살하기 위해 발악을 하던 때 아닌지요. 어쩌면 일본인들은 그들의 왕이 이 땅에서 멸망한 백제의 후손이기는 하지만 자신들 모두 그렇지 못하기에 자신들과 똑 같은 방식의 성씨를 강요했을 수도 있습니다. 보리밭이요, 냇가거나 산중의 화전밭으로 말입니다.

 

유럽의 성씨가 직업이나 지역을 성씨로 사용하는 경우와 어찌 보면 많이 닮았다고 생각됩니다. 거기에 비하면 최근 모계의 성씨까지 함께 사용하거나 모계의 성씨만 사용하게도 법이 바뀌기 전까지는 우리는 아버지의 성씨만 대대로 물려받아 왔습니다. 근본을 모르는 불촉천민이 아닌 이상, 노비로 신분이 하루아침에 몰락하였다 하더라도 대체로 아버지의 성씨를 물려받았기에 우리는 일본이나 유럽처럼 다양한 성씨분포는 없지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부모님이 주신 이름 밝히기 싫어하고서야 어찌 자식에게 온전히 사랑과 명예를 일러주고 훈육을 할 수 있겠는가 싶습니다. 뿌리를 제대로 알아야 자신이 누구에게로부터 왔으며 어떤 역사를 만들어가며 그 과정을 거쳐 온 이들의 자손인 줄 떳떳하게 일러줄 수 있는 부모로 살아가는 일이 참으로 장하고 보람되지 않은지요?

▲ 6차 변론기일에서 윤석열은 박종근 전 특수전 사령관의 증인심문에서 윤석열 측 탄핵심판 법정대리인인 송진호 변호사의 질문과 박 전 사령관의 답변을 듣고 있습니다. 직접 증인심문을 할 수 없게 되어 답답해 하는 표정이 그의 심리적 갈등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윤석열의 아버지와 다시 그의 아버지가 자식을 어떻게 가르쳤으며, 자식 앞에 자신들의 삶을 보여주었겠는가는 지금의 윤석열을 보면 충분히 미루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좋은 학교를 다녔다고 좋은 인재가 되지도 않거니와, 제대로 배울 기회를 누리지 못하였다고 반드시 그가 부족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뿌리가 튼실하고 굳건하지 않으면 줄기와 잎이 온전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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