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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마당

족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知足則不殆)

by 한사정덕수 2025.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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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이란 제법 긴 시간이 흘렀나 봅니다. 2010124일이었지 싶은데, 남해를 다녀오는 길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서울 남대문로 근방엘 날이 저문 8시에야 도착했었습니다. 강원도()로 갈 차편이 여의치 않아 몸 쉴 곳을 찾아 들기 전 허기진 배를 채운 탓에 갈증을 느껴 어둑한 새벽에 잠이 깼습니다.

▲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는 화제를 붙이신 여태명 선생님의 산수 수묵화입니다.

 

밖에 나가 음료수 한 병을 구입해 갈증을 풀고 다시 잠을 청할까 하다 처음으로 리영희 선생님의 부고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멍해진 정신을 가다듬으려 컴퓨터를 끄고 찬물로 세수를 한 뒤 다시 침대에 걸터앉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머리는 무언가 둔중한 뭉치로 맞은 듯 무겁기만 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고, 어떤 말로 스스로를 각성시킬지를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저 멍하기만 했다는 기억만 지금 납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난 뒤였으리라, 그러나 분명 무언가는 해야 다시 온전히 맑아지리란 것을 알기에 제법 깔끔하게 꾸며진 호텔방의 화장대를 겸해 한쪽 벽에 길게 놓은 테이블 위에 컴퓨터가 있음에도 노트북을 꺼냈습니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시 한 편을 쓴 다음, 날이 밝으면 강원도로 가려던 일정을 수정해 오후에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들려 문상을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남북 간에 지난 휴전 이래 2010년이나 지금 2024년 연말이나 마찬가지로 살얼음판을 걷는 모양으로 한 발 앞을 모르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리어 2010년 당시엔 금강산은 막혔어도 개성공단은 여전히 기계가 돌아갔고, 북녘을 여행하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아 지금처럼 막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시절보다 더 이상하게 돌아가는, 이 시대를 꿰뚫어 진실을 말씀하시던 한 스승의 타계 소식은 슬픔이라 말하기를 앞서 절망으로 다가왔었던 것입니다.

 

참된 민주주의 시대라 감히 말 할 수 없는 이 시기에도 그렇지만, 이명박과 정권에서 온전히 국민을 위해 활동하고 진실과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려 하던 분들의 세상 떠남에 대해 안타까움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미 상식으로 말하는 자들이랄 수 없었습니다. 그랬습니다. 분명히 시대의 현실적인 상황을 호도하는 자들이 여전히 득세함을 알기에 더 큰 절망이었었습니다.

 

마치 전쟁이 일어나기를 원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하는 자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여론을 만들어가고, 대통령이란 자가 국민을 호도하며 온갖 추잡한 거짓말을 늘어놓다가 이제는 구치소에 임기중 구속 수감되는 기록을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정치인들이 말로야 국민을 위한다며 온갖 망나니짓을 벌이는 요즘 생각해도 마찬가지지만, 진정한 평화가 무엇이며 정직한 언론이 되어야 함을 주장하셨던 어른을 그때 배웅해야 되었던 그 참담함 이라니

 

“족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知足則不殆)”는 선생님의 말씀이 새삼 다시 생각납니다. 이 말씀은 노자 도덕경 44장에 名與身孰親(명여신숙친) “명성과 몸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란 질문에 나오는 말입니다. 리영희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족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知足則不殆)”는 바로 다음의 구절에서 차용된 몸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란 말씀이십니다. 知足不辱(지족불욕)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치욕을 당하지 않고, 知止不殆(지지불태) 적당할 때 그칠 줄 아는 사람은 위태로움을 당하지 않으니와 같은 의미입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겐 가장 큰 가르침임을 알고 실천함이 마땅하리라 생각하며, 2010125일 리영희 선생의 영전에 바친 추모시 뼈저린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스승을 다시 마음으로 읊어 봅니다.

 

뼈저린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스승

-리영희 선생님, 81세 일기의 흔적을 더듬으며

 

모진 삭풍 불어대는 산천에

눈물 꽃이 피는 걸 보셔야 했던 지요.

하늘빛 암울하게 내려앉은 어둑새벽

뼈저린 비보를 만난 후인들 가슴마다

준비 안 된 망극함으로

성애가 진득하니 들러붙습니다.

믿음을 상실한 시대를 걷어내고자 했던

그 자취를 좇아 걷는 이에겐 그윽한 향이었고

진실의 꽃이었던 선생님이시였기에

비통, 비통으로 눈물꽃을 먼저 피웁니다.

 

이승과 저승의 길목에서

걸으셨던 산천 굽어보실

그 모습 아직 형형하기만 한데

저희들 마음엔 여전히 형형하기만 한데

먹먹한 가슴으로 잡는 손 물리치시고

단호히 떠나셔야만 했을 시간이셨던가요.

 

벅차게 진실을 외치던 울림 귓가에 여전한데

시대는 여전히 진실을 외면한 허구로 가득하고

어용의 펜 끝이 날카롭게 유린하는 현장

심장을 열어 치시던 호통 쟁쟁하건만

이제 섬세한 진실을 잊어야 한단 말인가요.

黃塵(황진)이 하늘을 덮은 새벽 길

다시 못 들을 맑은 목소리 그립습니다.

치열함으로 그리움을 배우게 하신 어른

정직으로 진실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던 분

허망한 공소장 몇 구절로 囹圄(영어)의 오라를 지어

참 시대정신을 가두고 싶어 하던 저들 여전한데

이빨 으스러지도록 악물고 그 진실의 스승을

저희는 보내드려야 한단 말이지요.

 

버려질수록 진실이 빛나고

고통을 가할수록 아름답게 피우는 꽃이 된다는 걸

몸으로 정신으로 가르치신 참 진실의 스승

못 견디게 그리운 날을 맞고야 말았습니다.

세상에 글 빛을 밝히고자, 도리를 지키고자

자유를 박탈당하기를 마다하지 않으심에

향기로움은 더 크게 번지었고

모독의 역사에 당당히 일어서셨음에

시대의 정신으로 꽃이 피어납니다.

 

이 땅에 참 사랑의 들불이 번지고

막힌 물꼬를 터 동토 가득히

봄 물결 충만한 기운이 지피어 지듯이

시대의 빛으로, 진실의 꽃으로 지피신 큰 뜻에

따뜻한 존경의 마음 전하기 어찌 주저하고

눈물 곱씹어 마음 맑게 헹구길 어찌 주저하며

참 된 진실의 웃음이 넘실거릴 세상 여는 일

어찌 우리 주저하겠는지요.

 

저희 후인들의 다짐 믿으시어

세상 속 된 모습 잊으시옵고

풍진 세상 떠나시는 시간

편안히 영면의 길에 드시옵기를

진실의 스승 리영희 선생님 영전에

가장 깨끗한 꽃 한 송이 바치옵니다.

참 된 시대의 진실!

그 진실의 스승께 올리나이다.

 

“리영희 선생님은 정직한 언론인의 참된 표상이었습니다.”

 

지금 리영희 선생님처럼 오직 진실만을 향한 기자들이 몇이나 있을까요? 자신의 비굴함과 진실하지 못함이 드러날까 싶어 악다구니를 쓰지는 않는지조차 고민하지 않는 모습들을 만납니다. 허위로 가득한 속을 들킬까 지레 헛헛한 미소를 지으며 현란하게 키보드를 두들기는 그들도 기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성질이 조급하고 마음이 거친 자는 한 가지도 이루어지는 일이 없고 마음이 화평하고 기상이 평탄한자는 온갖 복이 절로 모이게 된다」는 화제를 붙이신 여태명 선생님의 작품입니다.

 

오래 쓴 가구라도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지고 정성껏 관리하면 낡음을 피할 수 없어도 새로 들인 가구보다 애틋하고 정겨운 법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오래 써 정이든 가구처럼 살펴야함에도 하릴없이 저녁이면 술잔을 기울이려 기웃거리는 못난 모습이 나는 아닐까 돌이켜 봅니다.

 

산골의 순박한 소녀는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라도 싱그럽게 느껴집니다. 도시에서 잠시 놀러오는 처녀들의 화사한 모습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 본 적 없다고는 못하겠지요. 아무리 화사하게 보이려 꾸며도 본성을 바꾸지 않고서야 그저 조용히 침묵하느니만 못하다는 걸 알 까닭이 없는 일입니다.

 

기억의 곡간에서 오래 숙성되어 깊은 맛이 나는 그런 삶이면 족합니다. 그런 글을 만나면 향기롭습니다. 그림이나 노래도 그러하더군요. 한 시절 유행하다 사라지는 노래는 화려합니다. 유행을 따라 그려진 그림은 당장은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 노래가 있고, 명화로 인정받는 그림이 있듯, 사람도 먼 훗날에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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