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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마당

정성으로 받은 임동창 선생님의 편지!

by 한사정덕수 2025.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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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창 선생님의 편지를 받던 시기에 늦게 핀 구절초도 만났던 기억이 난다.

 

최근 매일같이 짬짬이 짐을 정리하며 지냅니다. 몇 개월 창고에 보관했던 짐들은 곰팡이와 쥐로 인해 책이며 옷이며 모두 손을 보고 세탁을 하거나 먼지를 털고 곰팡이를 어떻게든 닦거나 지워야하기 때문에 참으로 지난한 작업입니다. 그런 중에도 즐겁고 행복한 일은 언제나 찾아집니다.

 

오늘은 201210월에 받았던 편지 하나를 찾았습니다. 당시 다음에서 제공하던 블로그에 <피앗고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이란 글을 썼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 직접적으로 피앗고를 보진 못했으나 지금이야 자주 왕래하며 지내는 임동창 선생님의 문하생인 송도영씨로부터 메일을 하나 받았고, 피앗고란 피아노이지만 국악기에 맞춰진 음을 연주하는 악기에 대해 알게 되어 글을 썼었습니다.

 

지금에야 형님이라 부르고, 또한 임동창 선생님게서는 저를 하사로 부르시지만 당시엔 1990년대 한겨울 한남동에서 한 번 뵌 거 외엔 다른 분들이나 마찬가지로 다양하게 들어 아는 수준 정도였습니다. 다만 당시 제법 이름만 대면 서로 알만한 블로거들에게 같은 부탁을 송도영씨가 했는데 저만 그에 응했던 거지요.

 

사실 블로거들이 당시에도 가끔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돈을 받거나 상품을 제공받고 글을 써서 홍보를 해주는 일 같은 걸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말 좋은 상품이나 음식점이라면 그리 크게 나무랄 일도 아니겠지요. 하지만 아주 대단한 음식점이라도 되는 것처럼 과대포장을 한 글을 보고 찾아가서 실망하는 이들에겐 시간부터 비용까지 강탈당한 느낌이었을 겁니다. 더구나 돈이 안 되는 글을 애써 시간을 들여 글을 쓰는 건 그들에겐 기피하기 좋은 이유가 되었겠지요.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얼마 안 지났을 때 단풍이 제가 살던 마을에 한창이던 1020일 정도였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나뭇잎들이 속절없이 지워지고 나목들을 통해 점차 하늘만 평수를 넓혀갈 때 편지 한 통을 받았는데 송도영씨가 아닌 임동창 선생님께서 직접 보내신 편지였습니다. 그때 블로그에 글을 쓰고 오마이뉴스에도 기사로 보냈는데 두 곳에 동시에 써놓길 잘했다 싶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찾은 글입니다.

 

지난밤에 미친듯 휘몰아치던 바람 때문에 붉게 물들었던 단풍이 죄다 떨어져 뒹굽니다.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 둑 떼고 새파랗게 높기만 하고, 마지막 가을 햇살은 하늘을 지향하던 눈길을 물 위에 은빛 비늘로 붙잡습니다.

 

제가 한가위 직전인 지난 달 29일 임동창 선생의 공연소식과 피앗고에 대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 글 '싸이의 빌보드차트와 임동창의 피앗고!'를 읽으신 임동창 선생님께서 손수 쓰신 편지와 함께 피앗고로 연주하는 '우리 풀꽃 이야기'를 보내오셨습니다.

 

'국악인이 꼽는 국악 명인'인 동시에 연주자인 임동창 선생께서 바쁘신 가운데 보내주신 풀꽃향 그윽한 음악을 들으며 지금 이 글을 씁니다. 곱고 어여쁜 들꽃과 그 꽃들의 향기가 온전히 여러분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다른 곡조에 비하면 '얼치기완두'는 듣는 이들이 절로 흥이 날 경쾌함과 발랄함이 살아 넘치는군요.

임동창 선생님의 편지 블로그에 지난 9월 29일 소개한 임동창 선생님의 피앗고 이야기에 답으로 보내오신 편지. ⓒ 정덕수

 

먼저 선생님께서 보내신 편지부터 소개합니다. 글 읽기 불편하다 하실 분들을 위해 여기 쓰신 내용 다시 한 번 옮겨 적습니다.

 

한사 정덕수 선생님께

반갑습니다.

 

많이 바쁘실텐데

지극한 관심으로 도와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또한 선생님께서 쓰신 글

"피앗고로 강남스타일을"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따뜻한 가슴과

뛰어난 통찰력을 엿볼 수 있어서

마치 오랜 지기를 만난 듯

기뻤습니다.

임동창 선생님의 편지 '그냥 임동창' 선생님의 서명엔 다른 호가 없고 '그냥’으로 쓰셨습니다. ⓒ 정덕수

 

언젠가

형편이 되거든

뵙기를 원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많이 써서

사람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이어 주세요.

 

그냥 임동창 올림

 

어떠신지요? 요즘 이렇게 손 글씨 정성스럽게 쓴 편지를 받는 일이 없는 세상인데, 여전히 손으로 쓰신 편지를 보내시는 그 마음이 진정 음악인이 아닌가요.

 

더러 초면임에도 나이 몇 살 더 들었다는 걸 내세워 "자네보다 내가 위니 말 놓을게!"라 하는 세상 아니던가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편지 말미에, 나이도 어리고 세상 물정도 더 어두운 미천한 제게 '올림'이란 말씀을 하시니, 새삼 살며 겸손하지 못했던 모습을 들키기라도 한 모양 부끄럽습니다.

 

더구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볼펜이나 사인펜이 아닌 연필로 쓴 편지 고이 전달되길 바라신 마음이 따뜻합니다. 요즘 이런 정성과 인정 만나기 어려운 세상 아닌가 싶었는데 말입니다.

 

이 글을 2012.10.23. 16:09에 오마이뉴스에 보내고 2012.10.23. 16:59에 기사로 채택되어 9,410명이 읽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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