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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포커스

특권의 꽃대 위에 핀 이름, 심우정의 딸

by 한사정덕수 2025.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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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봄은 누구에게 오는가?

 

심우정 검찰총장과 그의 딸 심민경 씨의 채용 특혜 의혹은 단지 한 가족의 일탈로 보기에는 너무도 정교하고, 또한 너무도 침묵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은 한 사람의 이름을 호출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견뎌온 공정이라는 허상의 껍질을 벗기고, 그 아래 드러난 민낯을 응시하려는 시도입니다. 국가 권력이 보장하는 자리가 능력보다 혈연과 권력의 명함으로 채워지는 순간, 법과 제도의 이름은 허울뿐이라는 사실을 이 사건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립외교원은 석사학위 소지자이자 동일 직군 경력 2년 이상의 자격을 갖춘 이들에게만 응시 기회를 주는 자리에, 학위조차 취득하지 않은 심민경 씨를 합격시켰습니다. 외교부는 더욱 노골적이었습니다. ‘경제 분야 석사로 명시되었던 요건을 공고 과정에서 국제정치 분야로 변경하고, 경력 기준에도 미달하는 인물을 단독 선발했습니다. 이 바뀐 조건은, 마치 누군가의 이력을 따라가기라도 하듯 너무도 절묘하게 교체되어 있었고, 이를 우연이라 하기에는 그 배려의 결이 지나치게 섬세했습니다.

수많은 청년들이 철저한 준비와 노력으로도 넘기 어려운 문턱 앞에 서 있는 동안, 어떤 이는 경험과 요건조차 채우지 못했음에도 가장 높은 자리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 자리는 국민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할 국가 공무직이었고, 그 공채는 누구에게나 동등한 조건으로 주어져야 하는 기회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채용은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문으로 휘어진 채 닫혔습니다.

법의 집행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는 이가 정상적인 절차로 알고 있다고 말하는 장면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만약 그것이 그의 정상이라면, 그가 지휘하는 수많은 수사는 대체 어떤 판단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을지 가늠조차 어렵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과잉 수사가, 누군가에게는 침묵과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이 대한민국 법의 현주소라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 법 앞의 평등을 잃어버린 셈입니다.

불과 몇 해 전, 대한민국 검찰은 조국 전 대표와 정경심 교수, 그리고 그들의 딸 조민 씨를 향해 모든 칼날을 들이댔습니다. 대학 입학 과정에 대한 의혹 하나로 그녀는 입학이 무효 처리되었고, 의사 면허마저 박탈되었습니다. 자소서의 문장 하나, 인턴 증명서의 날짜 하나까지 언론은 실명과 사진을 동원해 파헤쳤고, 그 과정은 한 가정을 넘어 한 인간의 삶 자체를 철저히 해체해 갔습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검찰은 가차 없이 달려들었고, 언론은 그 뒤를 쫓으며 맹렬히 불을 지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 앞에서 그 검찰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심우정의 딸이라는 모호한 표현 뒤에 실명을 감추었고, 정치권 역시 한 발 물러난 채 눈치를 살피는 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법 앞의 평등이 철저히 무너지는 순간을 우리는 지금 생중계로 목도하고 있습니다.

 

제게도 자녀가 둘 있습니다. 1년 동안의 사회 경험을 접고 4학년으로 복학한 딸과, 대학 2년을 마치고 군 복무 중인 아들이 있습니다. 두 아이가 이와 같은 자리에 도전한다면, 그들에겐 과연 같은 조건과 배려가 주어질 수 있을까요? 혹여 저와 친분이 있는 누군가 저의 이력을 근거로 선의라며 채용을 시도한다면, 사회는 그 과정을 조용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단지 한 가정의 사정을 넘어서, 모든 시민이 품어야 할 윤리적 의심의 출발점이어야 합니다.

이 사건은 출신과 배경, 권력과 혈연이 여전히 제도를 유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우리가 말해온 공정은 구호일 뿐이었고, 특권은 무성한 이파리를 다시금 뻗어갑니다. 이름이 공고문을 바꾸고, 조건을 조정하며, 결과를 결정짓는 이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할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리를 지키는 이의 자격이, 그 자리를 열어야 할 자의 자격을 막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정의가 아닙니다.

국회 법사위·행안위·정무위·환노위·국토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은 검찰총장 심우정의 딸, 심민경 씨를 둘러싼 여러 의혹에 대해 상임위별로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주요 쟁점은 자격 미달에도 불구하고 외교부 공무직 채용 공고가 심 씨의 전공인 국제정치로 변경된 경위와, 120억 원대의 부모 재산과 9천만 원 상당의 해외 주식 보유에도 불구하고 서민정책 금융인 '햇살론유스' 대출을 받은 과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심 총장의 아들이 받은 장학금의 특혜 의혹 등입니다. 특히 심미경 씨가 스펙을 조작한 정황이 있는지 여부 또한 중요한 조사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현재 이 사안은 국립외교원의 채용 공정성과 공직자 가족의 도덕성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권의식이 만연한 사회에서 희망은 뒤로 밀리고, 능력은 손발이 묶인 채 정체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느냐는 언어가 일상의 권력으로 작동하고, 그 앞에 고개 숙이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때,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윤리적 붕괴를 겪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청년들에게 제공되는 인턴과 기간제 일자리는 흔히 경험을 쌓을 기회혹은 취업을 위한 발판으로 포장되지만, 실상은 구조적 불안정성과 저임금을 합리화하는 수단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인턴은 정규직 전환과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기간제 역시 채용이 반복될 뿐 안정된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경력으로 온전히 인정받기도 어렵고, 업무의 핵심에서 배제되며 단순 보조에 그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청년들은 자신의 시간을 헌신하며 진입 기회를 노리지만, 그 희망은 쉽게 착취로 이어집니다. 경력 없는 자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도, 경력 형성의 장조차 책임지지 않는 구조 속에서 청년들은 소모품처럼 소진되고 있습니다. 진짜 기회는 경험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고용에서 나와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겉으로는 공정과 기회를 말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자식에게만은 안정적이고 좋은 일자리가 주어지길 바랍니다. 남의 자식은 아르바이트나 한시적 고용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면서, 정작 자신의 자식에게는 정규직, 그것도 정년이 보장된 자리를 기대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이중적 태도는 사회 전체의 불공정을 고착시키고, 공정한 경쟁의 원칙을 무너뜨립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며, 누군가의 자식이 아닌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합니다.

조민 씨에게 들이댔던 그 정밀하고 집요한 검증이, 심민경 씨에게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주장해온 정의의 방식이었고, 법 앞에 서는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부과되어야 할 잣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검찰은, 그리고 언론은, 지금 고요합니다. 질문은 남아 있고, 대답은 없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심우정 검찰총장의 딸 심민경 씨는 고등학교와 대학,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정당하게 이수했는지조차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채용 과정에서 드러난 자격 미달과 경력 부풀리기, 기준 변경의 정황은 오히려 그 이전 학력의 형성과정에도 비슷한 방식의 특혜와 편의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듭니다.

부모의 직위와 영향력이 교육과 입시 과정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했는지를 묻는 것은 정당한 시민의 권리입니다. 공정의 원칙은 단지 최종 결과가 아니라, 그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 의혹을 묻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불공정의 사다리를 조용히 승인하는 셈이 됩니다.

오늘도 많은 청년들이 밤을 새워 자기소개서를 씁니다. 그들은 자신의 실력과 땀만을 믿고, 면접을 준비하며 내일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국가 기관이 그 기대를 배신할 때, 이 땅의 청춘은 더 이상 희망을 품을 수 없습니다.

이름 하나가 꺾어버린 수많은 가능성들 앞에서 우리는 묻습니다. 이 땅에 진짜 봄은 언제 오는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닌, 고르고도 정당한 기회의 이름이 채용 명단의 첫 줄에 오르는 그날. 우리는 비로소 공정한 봄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이름을 잃은 청춘들에게 말해야 합니다. 당신들이 옳았다고. 당신들의 질문이 이 사회의 윤리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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