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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향기/시인의향기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공평동

by 한사정덕수 2025.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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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가 된다.”

 

2023년 스타북스 출판사를 방문할 때 안국동에서 인사동을 거쳐 공평동을 통과해 출파사가 입주해 있는 르미에르빌딩을 가며 저는 1980년대의 기억을 추억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엔 ‘중앙지도문화사’가 있어서 자주 찾던 곳입니다. 무교동 낙지골목과 청진동 해장국도 그 무렵 배운 음식이었습니다. 중앙지도문화사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필요한 지도를 구입하기 위해 자주 찾았던 겁니다. 그리고 전국의 산들을 오르기 전 반드시 이곳에서 그 산의 개념도를 파악하려 지도를 구입하곤 했습니다.

 

그 맞은 편에 있던 황지우 시인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라는 시가 간판에 적혀 있던 2층의 작은 레스토랑은 그 시절 서울의 상업적 변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석탄공사와 중앙지도문화사의 중간지점, 조계사와 벽을 맞대고 있었고, 그곳에서 나눈 식사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변화와 맞물려 지나온 세월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의 조각이었습니다. 겨울의 고통과 봄의 희망을 품은 그 시처럼, 공평동은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그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갈망과 희망을 담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공평동은 서울의 핵심 상업 지역인 광화문, 을지로, 남대문과는 조금 다른 속도로 서울의 변화를 견뎌냈습니다. 화신백화점과 같은 과거의 상징적인 건물들이 점차 변화의 물결에 밀려났지만, 공평동은 그 시대의 고요함과 추억을 간직한 채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의 레스토랑은 서울의 과거를 품고 있으며,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그 존재감을 이어갔습니다. 한지에 적힌 시와 겨울과 봄의 경계가 주는 감동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을 넘어서, 서울이 겪은 변화의 무게를 함께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1980년대 서울은 급격히 변화하던 시기였습니다. 상업적, 사회적, 정치적 변화의 중심에 서 있던 서울에서, 광화문, 시청, 을지로, 명동, 남대문은 도시의 상업적 심장부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롯데백화점, 미도파, 신세계 등 대형 백화점들이 서울의 소비문화를 이끌었고, 서울의 경제적 중심지는 급격히 변해갔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 시위와 같은 사회적 움직임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80년대 서울에서는 정치적 압박과 저항이 중요한 사회적 이슈였고, 광화문이나 청계천이 아닌 시청과 대학로, 신촌, 성북구, 관악구 등에서 시위가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그 시위들은 서울과 그 주변의 거리에서 변화의 상징으로 기억되었습니다. 1980년대의 시위는 단순히 정치적인 저항에 그치지 않고, 민중의 목소리와 권력에 대한 도전을 통해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시 서울의 거리는 시위의 장이었고, 그 시위 속에서 변화의 물결이 일었습니다.

그 과도기적 서울의 한 골목 공평동의 작은 레스토랑은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시절의 고통과 희망, 절망과 기다림을 함께 품고 있었습니다. 서울의 중심부에서 벌어지는 시위와 격렬한 분위기 속에서도 그곳은 조용히 존재하며, 서울의 역사적인 순간들을 품고 있었습니다. 상업적인 변화뿐 아니라 서울의 사회적 변동과 시위의 소리도 함께 담고 있는 기억의 공간이었습니다.

1980년대의 시위는 디지털 시대와 글로벌화된 사회 속의 시위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지금의 시위는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기술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지만, 1980년대의 시위는 거리에서 물리적으로 일어난 저항이었습니다. 서울의 거리는 정치적 압박과 저항의 현장이었고, 대학가에는 백골단이 상주하며 경찰차가 24시간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 충돌은 마침내 1987629,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진 6월 항쟁의 절정에서 시민들의 목소리로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저에겐 특별한 서울의 기억속에 깊이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해 말 개헌을 통해 대통령을 장충체육관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의원들이 선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국민들의 직접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직선제가 채택되었습니다. 7년이었던 비합리적인 임기도 5년 단임제로 바뀌며, 그해 연말, 국민들은 직접 투표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한 것입니다.

19871216, 6월 항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현행 헌법에 따라 직선제로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197210월 유신 이후 최초로 치러진 국민들의 직접선거였습니다. 그러나 김대중과 김영삼은 단일화를 이루지 못했고, 박정희의 조카사위 김종필이 후보로 나서면서, 결국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이 무렵의 괴상한 행태를 기록해두며, 5공화국의 후신인 민주정의당(민정당)1988년 총선에서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재창출하며, 여전히 국민들의 민주화와 군사정권 청산 요구에 압박받고 있었습니다. 민정당은 1988년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자,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비밀리에 '보수대연합'을 추진했습니다. 이 보수대연합의 기원은 19865·3 인천 사태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급진적인 민주화 촉구 데모와 반미 성향의 주장에 대한 충격이 사회에 퍼지면서, 민정당은 보수 정당들이 연합해 좌파 세력을 막아야 한다며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이 연합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1988년 제13대 총선 후 다시 보수대연합이 추진되었습니다. 결국 1990, 내각제 개헌 등을 조건으로 통합 신당을 구성하게 되며, 그 결과 민정당은 '괴물 여당'이라 불리게 되었고, 노태우는 취임 2년 만에 80%에 육박하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내부의 갈등과 지역주의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서울은 1980년대의 시위와 변화를 겪으며 성장했고, 그 결과물로 지금의 서울을 이루고 있습니다. 상업적 발전과 교통망의 확장은 서울을 오늘날의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공평동의 작은 레스토랑은 그 시절의 기억을 담고 있으며, 그곳에서 나눈 대화는 서울이 겪은 변화를 되새기게 했습니다. 시위와 상업은 다르지만, 둘 다 서울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상징하며, 서울의 변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가 됩니다. 그 몸이 온전히 나무로 변하는 것, 그것이 나무의 고유한 진리입니다. 추운 겨울, 영하의 온도 속에서 나무는 헐벗고 서 있습니다. 아무런 방비 없이, 바람과 싸우며, 차디찬 얼음 속에서 겨울을 견디고, 고독과 맞서 싸웁니다. 이 모습은 마치 사람과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내면에서 얼어붙은 시간 속에 서 있습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 무엇도 보호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세상의 무게에 눌리고, 그저 버티는 존재로 변해버리기도 합니다.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가 된다.” 이 말은 단순히 물리적인 변화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나무는 추위와 고통을 온몸으로 감내하면서, 자신을 나무라는 존재로 정의합니다. 마치 민중이 그들의 굴곡진 역사 속에서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의 모습을 잃지 않으며 버텨온 것처럼 보입니다. 나무는 그 고통 속에서 서서히 자신을 발견합니다. 자신의 뿌리를 땅에 박고, 스스로를 이루는 과정에서 한 번도 쉽게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저 '나무'로서 그 자체의 모습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민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때로 사회와 정치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자신들의 몸과 마음을 온통 희생으로 내놓습니다. 그 속에서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버티며, 세상의 부조리와 맞서 싸웁니다. 그러나 그들의 저항은 무력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비록 헐벗고, 고통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그 강렬한 의지를 꺾지 않습니다. 그들이 내는 소리는 단순히 외침이 아닌, 자기 존재의 선언이기도 합니다.

온몸을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며 저항하는 모습은 민중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각자의 삶에서 매일같이 터지며 부서지는 힘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 끝에서, 그들이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때, 마치 나무가 꽃을 피우듯, 그들은 새로운 시작을 맞이합니다. “푸른 잎이 되고 꽃피는 나무처럼, 민중은 고통 속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틔우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깨우고, 그 몸으로 사회와 역사 속에서 꽃피는 순간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 시는 그저 자연의 순환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본질, 고통과 희망, 부서짐과 다시 일어남을 동시에 이야기합니다. 나무가 겨울을 지나며 자신을 꽃피우듯, 민중도 그들의 삶 속에서 수많은 시련을 거쳐, 결국 자신을 꽃피우는 순간을 맞이한다고 생각합니다. 꽃피는 나무가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가 되듯, 민중도 결국 그들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정의하고, 그 정의 속에서 한 줄기의 빛을 발합니다.

이것이 바로 민중들의 저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삶은 고통과 시련 속에서 형성되지만, 그 고통이 바로 그들의 본질을 형성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들은 한 순간도 스스로를 잃지 않으며, 끝내 자기 몸으로 꽃을 피운다고 믿습니다. 그 꽃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며, 그것은 그들이 견디고, 살아남은 결과이자, 그들의 저항과 존재의 증거가 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민중의 저항이 단순히 '외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몸으로 세상과 싸우고, 자기 몸으로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겨울을 지나고 봄을 맞이하는 것처럼, 민중은 끝내 그 고통의 시간을 지나,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며 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그 꽃은, 그들이 겪은 시간의 증거로서,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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