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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향기/시인의향기

《서평》하늘을 우러러, 윤동주의 봄

by 한사정덕수 2025.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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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언어로 계절을 건너는 길

 

봄이 오면 언제나 그렇듯 시인 윤동주가 생각납니다.

조만간 창문을 스치는 바람에 잎이 떨리고 오후의 빛이 방 안 가득 번질 때면 그의 시 한 줄이 조용히 떠오를 것입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이 문장은 시대의 고통과 한 사람의 마음을 동시에 품으며, 해가 바뀔수록 더 맑고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2025년은 윤동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여든 해가 되는 해입니다. 1945216,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광복을 몇 달 앞두고, 그는 조국의 하늘을 끝내 다시 보지 못한 채 스물일곱의 나이로 생을 마쳤습니다. 오랜 시간 그의 사인은 뇌일혈로 알려졌지만, 2009년 미국 국립도서관에서 공개된 전범재판 문서는 그의 죽음이 일제의 생체실험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드러냈습니다. 한 시인의 죽음이 아니라, 시대의 고백이자 늦은 증언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인 윤동주는 죽음조차 시로 이겨낸 사람입니다. 그의 시는 어둠 속에서 내민 한 줄기 불빛이었고, 침묵 너머 건네는 참다운 사람의 목소리였습니다. 자신을 깎아내며 써 내려간 문장들 속에 그는 끝까지 인간의 존엄과 언어의 가치를 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그의 시는 여전히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동시에 일으켜 세웁니다.

스타북스에서 펴낸 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윤동주의 시 126편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생전에 발표한 시와 유고작까지 아우른 이 책은 시인의 사유와 삶을 따라가는 가장 온전한 길잡이입니다. 단어 하나, 마침표 하나에도 오래 머물게 되는 이 시집은 그의 맑은 영혼을 지금 우리 곁으로 조용히 불러냅니다.

이 시집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감상은 윤동주의 시집, 다시 손에 들다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스타북스 판본)을 읽고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스타북스 판본)을 소상하게 밝힌 이 글은, 시인이 남긴 언어가 가진 맑음과 절망, 그리고 다정한 희망의 밀도를 그를 기리는 많은 이들의 다양한 글들과 함께 만날 수 있도록 안내하고자 했습니다.

또 하나, 윤동주 전 시집 필사북은 독자에게 특별한 독서 경험을 제안합니다. 그것은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따라 써보는 일입니다. 시인의 문장을 한 글자씩 옮겨 적다 보면 어느 순간 그의 호흡과 마음의 속도가 손끝을 타고 전해집니다.

필사는 침묵 속에서 자신을 다시 만나는 시간입니다. 빠르게 읽을 땐 스쳐 지나갔던 문장들이, 손으로 써 내려갈 때 비로소 마음속에 닿습니다. 비로소 시는 감상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되새김의 행위이자 되살림의 의식으로 거듭납니다. 그 순간, 윤동주는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지금 내 옆에 앉아 조용히 말을 건네는 이가 됩니다.

 

그리고 어쩌면 아주 오래전 자신 안에 숨겨두었던 문학소년, 문학소녀의 꿈을 다시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단어 하나에도 가슴이 뛰고 시 한 줄에 무한한 세계를 그리며 열정을 느끼던 그 시절의 마음. 현실에 치여 잊고 지냈던 그 투명하고 다감한 감수성이 윤동주의 문장을 따라 걷는 동안 다시 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누군가는 필사의 자리에서 조용히 자신의 첫 시를 꺼내들지도 모릅니다. 윤동주의 시를 따라 적어가다 어느새 자신만의 시를 쓰기 시작하는 그 순간, 한 줄의 시가 한 사람의 생을 깨우고 그 생이 또 다른 이에게 건네질 시가 되어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문학은 언제나 그렇게손에서 손으로, 그리고 숨결에서 숨결로 이어집니다.

 

시인 윤동주의 시는 오늘도 무대 위에서도 살아 있습니다.

1938년 북간도에서 동지이자 사촌인 송몽규와 함께 경성으로 온 청년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에서 외솔 최현배 선생의 조선어 강의를 들으며 우리말과 우리글, 우리 정신의 소중함을 배워갑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의 혼돈 속에서 그는 많은 것을 빼앗기고, 절필과 시 쓰기를 반복하며 고뇌합니다.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는 이러한 윤동주의 내면과 삶을 무대 위로 불러옵니다. 2012년 초연 이후 꾸준히 사랑받아온 이 작품은 윤동주 서거 80주기와 광복 80주년을 맞아 더욱 깊은 울림으로 돌아옵니다. 202559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공연되며, 연출에는 사일런트 스카이,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등을 연출한 김민정이 맡고, 안무에는 조인호, 무대디자인에는 이엄지가 참여합니다. 윤동주 역에는 김용한, 송몽규 역에는 윤태호가 출연하며, 이한수, 이기완, 이혜수 등 서울예술단 단원들이 함께 무대를 채웁니다.

시가 움직임이 되고 언어가 음악이 되어 피어나는 무대, 그것은 윤동주라는 한 존재를 기억하는 일이자 지금 이 시대의 우리에게 다시 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언어로 살아가고 있는가?”

윤동주 시인은 시로 살았고, 시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시를 통해 그를 다시 불러옵니다.

그의 시 한 줄이, 내 삶의 길잡이가 되어주기를그의 생 한 줄이, 나의 시간 속에서 숨 쉬기를 염원하며 말입니다.

그렇게 2025년 봄은 또 한 번 윤동주의 계절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다시 시를 씁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윤동주를 기억합니다. 제가 이 수필로 그를 떠올리듯, 누군가는 서평으로, 누군가는 독후감으로, 또 누군가는 그를 위한 추모시로 자신의 목소리를 더할 것입니다. 그의 언어가 시간의 벽을 넘어 우리에게 다가왔듯, 우리는 다시 그 언어를 다음 세대에게 건넵니다. 시로, 글로, 무대로.

이 모든 기억과 시, 문장과 움직임들이 어우러질 때 우리는 하나의 윤동주 에디션을 마주하게 됩니다.

시집으로 그의 언어를 읽고, 필사북으로 그의 사유를 따라 쓰며, 무대에서 그의 삶을 바라보는 이 구성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선 특별한 참여의 기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수필은 그 기억을 잇는 조용한 한 조각으로, 시인을 사랑한 누군가의 사적인 사유이자 공적인 기념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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