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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향기/시인의향기

《서평》숟가락으로 날리는 통쾌한 반격

by 한사정덕수 2025.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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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으로 날리는 통쾌한 반격, 미오기

 

이솝과 톨스토이가 만난다면, 이 책을 두고 무엇이라 말할까?

김미옥 작가의 미오기은 단순한 자전적 에세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솝 우화 속 여우처럼 현실을 기민하게 읽어내고,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처럼 인간의 존엄과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 탐구 과정이 절망적이지 않고, 숟가락 장단에 맞춘 유쾌한 반격이라는 점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1김 여사 해탈기’ 16, 2세상의 밥 한 공기’ 16편에 인생극장 위대한 면서기’ 5부작, 그리고 3마이너들의 합창’ 15, 4소멸의 아름다움’ 14편으로 이루어진 미오기은 묵직하면서도 담백하고, 세상을 향한 주저없는 함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현실의 늑대와 마이너들의 여우 같은 생존법

이솝 우화 속 늑대는 힘이 곧 정의라고 믿습니다. 반면 여우는 영악하고 재치 넘치는 방법으로 늑대를 속이며 살아남지요.

현실에서도 조직은 늑대 같은 상사와 권력자들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많은 직장인들은 그 늑대들 앞에서 힘을 잃고 주저앉고 맙니다. 하지만 미오기의 주인공은 그 앞에서 여우처럼 기민하게 행동하며 생존합니다.

부당한 상사의 명령 앞에서 순응하는 대신, 가장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반격하며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이너들의 합창에 담긴 숟가락 퍼포먼스가 잘 보여줍니다.

그들은 회사의 억압적인 권력 구조 속에서 숟가락 하나로 늑대들을 웃게 만들고, 결국 승리를 쟁취해냅니다. 마치 제가 11살에 읽고 평생을 기억에 담은 이솝 우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처럼 말입니다.

이 책 미오기은 단순히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이용하는 지혜와 연대가 승리를 만든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제목 하나 하나가 모두 그렇습니다. 어머니, 저승에선 뻥 치지 마세요를 보면 세상 시어머니들이나 남편들 뜨끔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상처받은 자들의 유쾌한 연대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인간이 진정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사랑과 연대임을 그려냅니다. 이 책도 결국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마이너들의 합창은 이혼녀, 노처녀, 그리고 자신을 몰아세우는 조직과 맞서야 했던 주인공이 제대로 한 방 먹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대단한 팀이 아니었습니다. 삶에 찌들고, 외롭고,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던 마이너들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서로를 붙잡고 숟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며 새로운 길을 뚫어냅니다. 톨스토이의 미하일이 깨달았던 것처럼,

사람은 권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웃음, 그리고 함께 버텨준 사람들로 인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책이 유쾌한 이유는 단순한 복수담이 아니라 함께 버텨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계좌로 입금된 돈을 소외된 약자와 비정규직과 외국인 이주민들, 그리고 한국의 작가들을 지원하는 재단에 기부했다. 기부는 내가 아니라 대표의 오른손이 한 일이다. 왼손도 알아야 할 때가 있다.

나는 지금도 내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산다. 그분들의 선행을 세상에 되돌려주는 게 나의 할 일이다.”

 

-275쪽

 

숟가락이 가르쳐준 것 삶은 때론 곰국처럼 우려내야 한다

김미옥 작가는 자신의 글을 곰국같다고 표현합니다. 오래도록 끓이고, 우려내고, 씹어 삼켜야 하는 이야기들이란 걸 저도 미오기을 읽는 내내 생각했습니다.

 

쓰고 맵고 아린 시간에 열을 가하자 순한 맛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미오기이 가진 힘입니다.

과거의 상처를 애써 지우려 하기보다, 그것을 뜨겁게 끓여내어 유쾌한 기억으로 변환하는 힘,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미하일의 시련을 통해 깨닫게 했습니다.

고통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결국 인간을 성장시키는 과정이라는 것임을그리고 김미옥 작가는 그 과정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고통과 상처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에 대해 자상하게 일러주는 지침서라 하겠습니다.

 

누구를 위한 책인가?

부당한 현실 앞에서 속으로만 삼키던 사람들

유쾌한 저항과 통쾌한 복수를 꿈꾸는 직장인들

자신의 기억과 화해하고 싶은 모든 이들

이솝 우화가 지혜를 가르쳐준다면, 톨스토이의 단편들은 인생을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미오기은 그 둘을 결합한 유쾌한 생존의 기록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늑대 앞에서 주눅이 들고, 삶이 던지는 시련 앞에서 무력해지지만 그때 필요한 것은 화려한 반격이 아닐 수 있습니다. ‘숟가락 한 번 두드리는 것으로 시작하는 작은 연대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다시금 되세기며 이 글을 맺고자 합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때마다 나는 과거를 불러 화해했다.

쓰고 맵고 아린 시간에 열을 가하자 순한 맛이 되었다.

나는 술래잡기하듯 아픈 기억을 찾아내 친구로 만들었다.

내 과거를 푹 고아 우려낸 글, ‘곰국’은 이렇게 나왔다.

 

그동안 SNS에서 많은 분이 화답해주셨고,

덕분에 나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곰국은 활자 중독자의 책이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새삼 감사드린다.

 

책 제목은 『미오기傳』이지만 시간순으로 쓴 글은 아니다.

말하자면 통증 지수가 높은 기억의 통각점들을 골라 쓴 점묘화다.

서글픈 기억이 다시는 내 인생을 흔들지 않기를 바라며

쓴 글이다. 쓰다 보니 웃게 되었고 웃다 보니 유쾌해졌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운은 어쩔 수 없어도 성격은 바꿀 수 있지 않겠는가?

나쁜 기억은 끝끝내 살아남는 무서운 생존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마음을 열면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이 온다.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프롤로그’ - 2024년 4월 김미옥

 

숟가락 장단을 맞추며 함께 버틸 사람들과 함께 웃고 싸움에 임하며 다시 일어서는 그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이 책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으며 독자들은 저절로 숟가락을 들어 장단을 맞추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다 덤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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