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만에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습니다. 따스한 봄볕이 살갗을 스치고, 공기 속엔 부드러운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포근합니다. 겨울의 마지막 자락을 움켜쥐던 차가운 바람도 한결 가벼워지고, 양양의 하늘은 맑고 투명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거마천로를 달리며 바라본 설악산의 줄기엔 여전히 눈이 덮여 있었습니다. 화채봉이며 관모봉, 대청봉 할 것 없이 하얀 빛이 찬란하게 반짝였습니다. 그러나 산 아래 양양의 땅은 달랐습니다. 며칠 전 내린 눈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햇살이 내려앉은 들녘엔 봄의 기운이 완연했습니다.
페달을 밟으며 길을 따라 달리다가 문득 멈춰 섰습니다. 밭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 거뭇하게 보여, 자전거를 길가에 세우고 막 초록의 잎을 지면에 덮기 시작한 보리밭을 지나 걸어 들어갔습니다. 디뎌지는 땅은 마치 어린아이의 볼처럼 보드랍고 포슬포슬했습니다. 손끝으로 살짝 만져보니 따스한 기운이 전해졌습니다.
거뭇하게 보였던 것은 다름 아닌 냉이였습니다. 아직 초록빛을 띠지 않은, 먹자줏빛의 냉이들이 땅을 비집고 막 싹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작은 생명들이 봄을 맞이하는 모습이 경이로웠습니다.
조금 욕심을 부리기로 했습니다. 가방을 내려놓고 물 한 모금을 마신 다음 냉이를 캤습니다. 손끝에 닿는 촉감이 땅속의 온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뿌리를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한 뿌리씩 뽑습니다. 그렇게 40분 남짓, 두 끼 정도의 봄향을 담을 만큼 손에 쥐었습니다. 냉이 한 줌이면 충분합니다. 그 정도면 봄을 맛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길을 달렸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곳곳에서 봄의 전령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산수유나무엔 노란 꽃망울이 맺혔고, 청매와 홍매도 막 터지기 직전이었습니다. 벚나무도 보름쯤 지나면 흐드러지게 꽃을 피울 듯했습니다. 나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봄을 맞이하고 있었고, 저는 그 흐름 속에 녹아들어 자전거 페달을 천천히 밟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냉이를 씻었습니다. 찬물에 담가 흙을 털어내고, 묵은 떡잎을 떼어내자 하얀 뿌리가 백옥처럼 말갛습니다.
손끝에 닿는 촉감이 보드랍고 향긋했습니다. 봄의 기운을 가득 머금은 냉이에서 싱그러운 봄내음이 은은하게 퍼졌습니다. 한 줌의 냉이가 주는 소박한 기쁨, 그 안에 담긴 봄날의 따스한 숨결이 마음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창문을 열어 봄바람을 맞았습니다. 포근한 바람 속에 산과 들, 그리고 갓 캔 냉이의 향이 뒤섞여 코끝을 간지럽혔습니다. 멀리 설악산의 눈 덮인 봉우리와 가까운 들녘의 푸릇한 싹이 함께 어우러지는 이 시간. 그 속에서 저는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조용히 봄을 맞이할 뿐입니다.
냉이로 만들 수 있는 요리 정리표
1 | 냉이된장국 | 된장 풀어 끓인 육수에 냉이, 두부, 대파, 다진 마늘을 넣어 한소끔 끓인다. |
2 | 냉이무침 | 데친 냉이에 간장, 들기름, 다진 마늘, 깨소금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
3 | 냉이전 | 부침가루(또는 밀가루+달걀+물)에 냉이를 섞어 프라이팬에 노릇하게 부친다. |
4 | 냉이튀김 | 씻은 냉이에 튀김옷을 입혀 달궈진 기름에 바삭하게 튀긴다. |
5 | 냉이된장볶음 |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다진 마늘, 된장을 볶아 냉이를 넣고 살짝 볶아낸다. |
6 | 냉이겉절이 | 깨끗이 씻은 냉이에 고춧가루, 간장, 다진 마늘, 설탕, 식초, 들기름을 넣고 무친다. |
7 | 냉이비빔밥 | 데친 냉이, 나물, 볶은 고기, 달걀프라이를 밥 위에 올려 고추장 또는 된장을 넣고 비빈다. |
8 | 냉이밥 | 쌀을 씻어 밥을 지을 때, 냉이를 잘게 썰어 함께 넣고 지어 참기름과 깨소금을 곁들인다. |
9 | 냉이수제비 | 된장국물에 손으로 뜯은 밀가루 반죽을 넣고 마지막에 냉이를 넣어 한소끔 끓인다. |
10 | 냉이달걀찜 | 달걀을 풀어 물이나 육수를 섞고 냉이를 넣어 부드럽게 찐다. |
냉이는 다양한 요리에 활용할 수 있으며, 된장과 궁합이 좋아 국물 요리나 무침으로 즐기기에 적합합니다. 또한 향긋한 봄나물로서 밥, 전, 수제비 등에도 잘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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