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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향기/시인의향기

이 나이에? 뭐, 그래도 당당하게…

by 한사정덕수 2025.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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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밀하게 감추고 싶은… 그러면서도 내심 감추지 못할 호기심으로 다른 사람의 비밀을 들추고 싶고, 그로부터 우월감을 느끼고자 하는 이들의 질문을 받을 경우가 많습니다.

 

이 나이에 그래도 되나 모르겠습니다. 더러는 그 정도 살았으면 욕 좀 먹어도 된다고 하겠지요. 반면, “아직 젊은데 뭘 걱정해? 사람이 패기가 있어야지. 그냥 하는거야”라 등 떠밀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정말 “그 질문을 하는 의도가 뭐죠”라 반문하고 싶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고자 합니다.

 

가끔 뭔가 대단히 심오한 질문을 하려는지 비장한 표정으로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라 하는 분을 만납니다. 사실 그들 대부분 도시에서 제법 여유롭게 사는 자신들을 더 도드라지게 보이고 싶어서 그러지 싶지만 저로서는 어떻게든 자존심 안 다치며 최선의 대답은 하고 싶습니다. 그 질문의 깊은 바닥엔 아주 잘 감추어진 거친 맹수도 단숨에 포획할 함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이런 산촌에서 특별히 할 일도 없어 보이는데 뭘로 먹고 살아요”라 하면, “세끼 먹으면 행복합니다. 그리고 두 끼 먹으면 조금 섭섭하지만 뭐 가끔 그럴 수는 있지 하지요. 그리고 한 끼 먹어야 된다면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 한 끼도 못 챙기는 사람들은 얼마나 견디기 힘들까? 참으로 고맙고도 미안한 일이지만 일단 나부터 먹어야 되니… 뭐 이렇게 살아갑니다”라 대답하겠지만 질문은 아주 근사하게 포장된 형태로 “시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정도 되면 참으로 난감하지 않나요.

 

자칫 섣불리 대답을 했다가 “정말 내가 뭘 물으려했는지 그렇게 몰라”란 비웃음이나, “이 인간 이거 세상 헛살았구먼” 딱 이정도로 평가되는 일 당하고 마치 골리앗을 돌팔매 하나로 때려뉜 다윗처럼 의기양양하게 뻐길 면상에 “시는 최소한 천박은 면하게 한다고 봅니다”라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 시인은 떠나도 시인의 시는 여전히 세상에 남아 누군가의 위로가 되고 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진심으로 “시詩란 무엇인가”요란 질문을 받았어도 이렇게 고민하고 불편할 수만은 없습니다. 최소한 시는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만의 의견만큼은 어렵지 않게 말할 자세는 되어야 하겠지요.

 

제가 생각하는 ‘시란 무엇인가’와 ‘좋은 시의 기준’에 대해 공개적으로 밝혀보겠습니다. 시는 인간의 감정이나 경험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사상과 같은 걸 문자(언어)를 통해 표현하는 예술의 한 형태라 봅니다. 시는 일반적인 산문과 달리 시가 되어질 독특한 리듬과 음율, 비유와 상징 등을 사용하여 더 깊고 풍부하게 의미를 전달하는 문학의 최정점에 있는 한 장르라 하겠습니다. 당연히 좋은 시는 독자에게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주고, 그의 상상력을 최대치로 끓어오르도록 자극하며, 깊이 생각하고도 또 다시 고민의 과정을 거친 옹골진 생각을 이끌어내는 힘을 가진다고 봅니다.

 

시는 단어의 선택과 배열을 통해 아름다움을 창조하게 되는데, 시인은 언어와 문자를 예술적인 도구로 사용하여 감동적인 독특한 리듬과 소리, 그리고 또렷하게 형상화되어질 이미지를 만들어 낼 줄 알아야 합니다. 시는 시인의 감정과 생각을 담고 있기 마련인데요, 사랑,과 슬픔은 물론이고 기쁨과 격정적인 분노를 넘어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모두 시를 통해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시는 상징과 비유를 통해 더 깊은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데, 일상적인 사물이나 상황을 통해 추상적인 개념을 표현해내며 현란한 마술처럼 감동적인 세계로 순간이동을 경험하게도 합니다. 때때로 시공을 초월하여 일순간에 분자보다도 더 작은 세계에 깃들어 유영하는가 하며, 무량한 공간을 자유롭게 노닐기도 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시는 짧고 간결한 형식으로 그런 많은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데, 긴 이야기를 풀어내며 몇 십 권으로 써야 가능한 소설을 극히 짧게 함축된 몇 단어의 조합만으로 가능하게 만들죠. 이 모두 시가 지닌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기에 각 독자는 자신의 경험과 관점을 바탕으로 시를 해석할 수 있게 함으로서도 가능합니다. 물론 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은 독자의 바로 이 부분 경험과 바라보는 능력의 정도에 따라 현저하게 같은 시를 놓고도 차이를 보이겠지만, 이미 시인은 그런 기회를 제공할 정도로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하겠는데 “좋은 시란 어떤 시인가요”라는 질문 말입니다. 좋은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것은 주관적일 수 있는 일이겠지만, 일반적으로 좋은 시의 특징을 설명될 수 있는 몇 가지 요소는 분명히 있습니다. 좋은 시의 주요 특징들을 예로 들어보면 시인의 진정한 감정과 경험을 담고 있어야 되겠습니다. 시인이 느낀 감정이 독자에게도 전해질 수 있도록 솔직하게 표현되는 것이 중요하고, 좋은 시는 단어 선택과 배열이 아름답고, 리듬과 음율이 조화로운 언어를 사용하며 목적을 이루게 됩니다. 이를 통해 시는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감동을 주겠지요.

 

그리고 좋은 시는 비유와 상징을 통해 깊은 의미를 전달하게 되는데, 일상적인 사물이나 상황을 통해 추상적인 개념을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시란, 시는 무엇이냐는 문제에 대한 대답이 목적을 달성하게 되었을 때와 동일한 해답을 공유합니다. 좋은 시는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고, 생각하게 만들며,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이 강하기에 시를 읽고 나서 감동하거나, 새로운 시각을 얻는 경험을 하게 만들 줄 압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좋은 시는 독창적인 시각과 표현을 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과 스타일을 통해 독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야 되는 겁니다. 가령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을 보면, 진정성 있는 감정 표현과 언어의 아름다움, 그리고 비유와 상징을 통해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데 이 시는 우리 민족의 민요적 구성을 택하고 있으며, 간결한 표현 속에 깊은 슬픔과 애정을 담고 있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저는 ‘노을 만 평’이란 신용목의 시를 참 좋은 시라고 생각합니다. 신용목 시인의 시에는 그의 진정한 감정과 경험이 담겨 있습니다. 노을 만평에서도 그의 감정이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저만 아니라 그의 시를 만나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신용목 시인의 깊은 울림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될 겁니다. 언어를 예술적인 도구로 사용하여 리듬과 음율을 아름답게 완성하며, 비유와 상징을 통해 깊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노을 만평은 길지 않은 시 속에 깊은 생각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감정을 자극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좋은 시로 성공적인 완성도를 이뤘다고 봅니다. 자, 시를 감상해 보시면 왜 제가 이 시를 좋은 시라 했는지 이해되실 겁니다.

비 개인 6월의 아침 설악산 소청봉에서 굽어보는 용아장성과 내설악을 스며드는 아침햇살을 보며 저는 신용목 시인의 노을 만 평을 조용히 마음으로 읊고 있었습니다.

 

노을 만 평

 

누가 잡아만 준다면

내 숨 통째 담보 잡혀 노을 만 평쯤 사두고 싶다

다른 데는 말고 꼭 저기 폐염전 옆구리에 걸치는

노을 만 평 갖고 싶다

 

그러고는 친구를 부르리

노을 만 평에 꽉 차서 날을 만한 철새

한 무리 사둔 친구

노을 만 평의 발치에 흔들려줄 갈대밭

한 뙈기 사둔 친구

 

내 숨에 끝날까지 사슬 끌려도

노을 만 평 사다가

친구들과 옛 애인 창가에 놀러가고 싶네

 

그렇습니다. 위의 시가 신용목 시인의 ‘노늘 만 평이고요, 또 다른 시로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을 먼저 만나 보시겠습니다.

 

긍정적인 밥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간결하고도 깊은 울림을 주는 시로 함민복 시인의 경험과 일상 속에서 느끼는 소중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긍정적인 밥’은 그의 진정성이 솔직하게 담겨 있습니다. 감동을 주지 못하는 시와 감동을 줄 수 있는 시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일상의 언어와 시인이기에 경험하는 일들이 그대로 시어로 자리하며 시인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독자가 만나게 합니다. “설월(雪月)이 만정(滿庭)한데 바람아 부지마라, 예리성(曳履聲) 아닌 줄은 번연(判然)히 알건마는, 그립고 아쉬운 마음에 행여 긴가 하노라”란 미련과 그리움을 표현한 시조가 있습니다. 작자는 누군지 저는 모릅니다. 그런데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에서도 이런 그리움도 읽힙니다.

 

끝으로 고정희 시인의 ‘하늘에 쓰네’에 대해 잠시 언급하겠습니다. 이 시는 자연 속에서 느끼는 평온함과 인간 내면의 성찰을 아름답게 담아내고 있는데 절로 거문고를 무릎에 올려놓고 마치 자신이 연주를 하듯 손가락을 튕기게 만드는 힘을 지녔습니다. 그리고 저절로 흥에 겨워 너울너울 춤을 추는 창망한 창공에 나부끼는 옷고름과 고운 비단자락이 그려집니다.

 

하늘에 쓰네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하늘에 쓰네

 

내 먼저 그대를 사랑함은

더 나중의 기쁨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내 나중까지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보다 더 먼저 즐거움의 싹을 땄기 때문이리니

 

가슴속 천봉에 눈물 젖는 사람이여

억조창생 물굽이에 달뜨는 사람이여

끝남이 없으니 시작도 없는 곳

시작이 없으니 멈춤 또한 없는 곳,

수련꽃만 희디 희게 흔들리는 연못가에

오늘은 봉래산 학수레 날아와

하늘 난간에 적상포 걸어놓고

 

달나라 광한전 죽지사

열두 대의 비파에 실으니

천산의 매화향이 이와 같으랴

수묵색 그리움 만리를 적시도다

만리에 서린 사랑 오악을 감싸도다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동트는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해지는 하늘에 쓰네

 

저는 이 고정희 시인의 ‘하늘에 쓰네’를 통해 엣 백제의 수도였던 사비성, 그러니까 지금의 부여 능산리에서 주차장을 넓히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의 출현을 미리 예견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싶다는 생각을 하며 만납니다. 고정희 시인은 백제금동대향로가 출토되기 2년 전에 지리산에서 세상을 떠났으니 이 시에 백제금동대향로의 개신부에 조성되어진 박산博山(봉래산蓬萊山)과 악공들이며 그 오묘한 새김을 어찌 이렇게 묘사해낼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가슴속 천봉에 눈물 젖는 사람이여

억조창생 물굽이에 달뜨는 사람이여

끝남이 없으니 시작도 없는 곳

시작이 없으니 멈춤 또한 없는 곳,

수련꽃만 희디 희게 흔들리는 연못가에

오늘은 봉래산 학수레 날아와

하늘 난간에 적상포 걸어놓고

 

달나라 광한전 죽지사

열두 대의 비파에 실으니

천산의 매화향이 이와 같으랴

수묵색 그리움 만리를 적시도다

만리에 서린 사랑 오악을 감싸도다

 

향로의 개신부를 전체적으로 그대로 옮겨 그려낸 듯 하지 않은가요? 어쩌면 정말 “내 나중까지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보다 더 먼저 즐거움의 싹을 땄기 때문이리니”를 예지몽을 꾸듯 미리 체험을 하였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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