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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향기/시인의향기

동강할미꽃은 아라리 가락에 피고

by 한사정덕수 2025.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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뼝대 아스라이 동강할미꽃은 아라리 가락에 피고

 

정덕수 2019. 3. 28

 

정선은 아리랑의 고장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습니다. 지리적 여건은 비교적 넓은 범위의 내륙 산간 오지입니다그리고 한 때는 이 나라 전 국민이 사용하던 무연탄을 상당부분 생산하던 고장이었습니다. ‘함백탄좌 ‘사북탄좌가 바로 그 대표적인 장소였지요.

 

함백사북석항예미추전여량자미원증산고한구절리 모두 수 없이 많은 탄광들이 있었습니다그곳엔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 항간에 떠돌 만큼 물자와 물질이 넘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그만큼 7~80년대 한국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냈었습니다.

1980년 대 초반부터 이제까지 정선은 질긴 인연으로 맺어졌습니다다른 기회로 그 시절 처음 인연이 된 일에 대한 소회는 풀겠다는 약속하고오늘은 정선아리랑의 다양한 노랫말을 찾아다녔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정선아라리의 노랫말을 소개해 보겠습니다누군가에겐 처음 만나는 우리 민요의 다양성이겠고또 누군가엔 큰 힘 들이지 않고 거저 하나 챙긴 강원도 정선의 아라리에 대한 자료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저로서는 오랜 시간을 정선을 기웃거리며 만든 소중한 자료입니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萬壽山검은 구름이 막 몰려든다

 

고려 말 기울어가는 국운을 체감으로 느낀 이들이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인 정선 땅으로 숨어들었다 합니다그들이 부른 것이 정선아리랑의 시월이라고 하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가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미 땅의 기운은 쇠락한 상태라 음산한 자연의 영향을 받아 곧 꺾일 운명으로 여겨지는 시기였을 겁니다나라가 멸망하는 과정을 그대로 지켜 볼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인간의 심란한 감성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비교적 높은 학식을 지닌 학자가 지은 것으로 여겨지는 노랫말입니다순수 민초들이 시절과 시대에 따라 달리 불렀던 노래(소리)와는 상당한 문법적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조복을 갖춰 입고 서산에 올라 송경을 바라보며 목 놓아 운다

요순성대 간 곳 없으니 몸 둘 곳 몰라라

 

관직을 떠나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하나는 삭탈(削奪)이요둘째는 낙향(落鄕)이겠습니다임명권자에 의해 관직을 빼앗기는 삭탈을 당한 자가 조정에 나가 하례할 때 입던 복장을 갖춰 입고 서산에 오를 일 있겠는가어쩔 수 없는 조건에서 목숨이나마 부지하려 관직을 버리고 떠나왔기에 임금에 대한 충절을 지키지 못한 신세가 한스럽고임금의 안위가 염려되어 정선에서는 임금이 계신 곳과 가장 가까운 서산을 올랐으리라 생각됩니다.

 

명사십리가 아니라면은 해당화는 왜 피고

호춘 삼월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우나

 

맑은 모래 십리 바닷가도 아닌데 해당화가 피고좋은 봄 3월도 아니건만 두견이(종달새)는 왜 우느냐는 자조적 한탄을 할 수밖에 없는 서글픔을 노래했습니다인간은 반어적으로 심란할 때 음울한 노래를 불러 그 서러움과 음울한 기운을 풀어놓으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지 싶습니다결과적으로 음산한 느낌으로 보이는 자연과 사물은 오히려 서글픔을 위로하는 매개로 작용해내기도 하니 말입니다.

 

이 세 대목의 노랫말에 끌려들었습니다. 후렴구는 모두 동일하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로 길게 끌며 고개를 두 번 반복하는 특징이 이 지역의 지리적 풍토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1981년 처음 이 노래를 제대로 들을 기회가 있었지만 당시엔 더 이상 뭔가를 알아가는 일은 쉽지는 않았습니다. 1983년 드디어 정선을 갈 기회가 주어졌는데 전혀 엉뚱한 계기에서 시작됩니다. 혹시나 싶어 신체검사를 언제 받으러 가면 되는지 지금의 청구역이 있는 문화동로터리의 문화파출소에 물어보았습니다. 평소 자주 만나는 사이였기에 그곳 근무자들은 , 정 사장님 아직 심검 안 받았어요?”라며 놀라더군요.

 

그들은 전국적으로 어디나 쉽게 전화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양양파출소를 거쳐 서면 지서로 연결하더니 제 얼굴을 한 번 쳐다보더군요. 그리고 정 사장님 주민번호 외우죠? 주민번호 불러줘요라 해서 알려주었습니다. 몇 마디 주고받던 경찰관이 전화를 끊더니 까딱했으면 전과자 될 뻔 하셨어요. 그래도 그런 일 안 당할 운명인가 보군요. 내일 당장 고향에 가서 면사무소 병사계로 가면 강원도 신체검사 마지막 치르는 곳으로 데려다 준답니다.”라 하더군요. 그 신체검사를 강원도에서 마지막으로 하던 곳이 정선군이었습니다.

 

고향에 오자 면사무소 병사계장이 아버님도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하셔서 걱정했는데 아침에 출근하니 지서에서 연락이 왔다며 기다리라고 합디다. 내일 신체검사를 하면 되니 준비해서 출발합시다.”라 하며 가방을 챙겨 나섰습니다. 그와 양양에서 강릉으로 이동한 다음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정선군으로 갔습니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 그는 여관방에서 쉬고 저는 정선읍내를 구경하러 나섰습니다. 어딘가에서 정선아리랑을 듣는 행운을 만날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고 나섰지만 양양군이나 정선군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습니다. 무작정 정선군청을 찾아 들어갔고, 거기에서 정선아라리라고 합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 테이프는 그냥 선물로 드리죠라며 그곳의 직원으로 보이는 분에게 정선아라리란 카세트테이프를 하나 얻었습니다.

 

여기서 우리 대중가요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해방 이전이나, 625를 겪고 난 직후의 우리 대중가요를 봐도 충분히 공감 할 수 있습니다사물의 음울하고 쓸쓸한 기운에 빗대어 자신의 비참함을 상쇄시키려 노력합니다시절 모르는 두견이의 애절한 소리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자 하는 발상의 전환인 것입니다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행복 추구의 또 다른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선은 또 다른 이유로도 들락거리게 되었습니다. 불과 10년도 안 지나서 이번엔 산에서 만나던 몇 사람이 함께 하자며 부탁을 해 옵니다. 저는 그 훨씬 이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몇 개월을 증산으로 불리던 무릉리에서 지냈기에 정선과 영월을 제법 여러 곳 둘러 볼 기회를 가졌었고, 동강할미꽃을 만나 푹 빠져있었을 때였습니다. 당장 동강할미꽃 자생지가 모조리 수몰될 수 있다는 판단에 동강댐 건설을 반대하는 이들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정선에서 만난 사람들은 양분되어 있었습니다. 일부는 자신의 땅이 수몰지구가 되면 큰 돈을 쥘 욕심에 나무를 심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그런 사람은 댐건설에 찬성을 하고 나셨지요.

 

, 정선 가수리로부터 영월에 이르는 강변에는 곳곳에 동강할미꽃이라는 고유종 할미꽃이 3월에 핍니다. 서울에서 동강할미꽃이 피지도 않는 늦가을에도 정선을 찾고, 영월에도 갔습니다. 겨울에 눈이 퍼부어도 주말이면 나섰습니다. 댐건설을 찬성하는 쪽에서 보면 이방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돈을 좀 만지겠다는 걸 배 아파하는 줄 아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귀엔 정선과 영월 일대는 석회암과 많은 광산들이 밀집되어 있다. 동강할미꽃도 그런 지형적인 영향을 받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 고장에서만 발견된 꽃이다. 댐건설은 어쩌면 엄청난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리의 주장은 거슬리기만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이후로도 최근까지 동강을 찾습니다. 봄이면 동강할미꽃을 만나러 찾고, 가을이면 물매화를 만나러 찾습니다. 들꽃을 촬영하러 나서면 많은 이들을 현장에서 만나게 됩니다혼자 조용히 둘러보려는 생각은 여지없이 깨지게 됩니다더러 “어떻게 하면 그 많은 야생화를 다 외워요란 질문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참 난감한 일입니다국어나 영어단어처럼수학공식처럼 외워서 기억한다면 좋겠지만 가능한 일이 아니니 말입니다그리고 외워서 배운다는 생각부터 뭔가 모순이라 생각합니다.

 

정선아라리의 고장은 동강할미꽃이 가장 널리 알려진 들꽃이니 그 예로 설명하겠습니다처음엔 그냥 할미꽃 하나만 알게 됩니다아니 할미꽃은 누구나 다 아는 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어려서 동요로 배워 어렵지 않게 기억할 뿐이지요. 저는 뒷동산에 할미꽃 꼬부라진 할미꽃으로 배웠습니다.

 

동산에서 할미꽃이 아무데나 피지 않건만 동요는 그렇게 일러줬었습니다이곳 양양에선 모양은 비슷한데 색이 연한 분홍색할미꽃이 있었습니다최근엔 만나지 못했지만 나중에야 그건 ‘분홍할미꽃으로 분류된다는 걸 배웠습니다그리고 노란색 할미꽃을 만나자 “분홍색 할미꽃이 분홍할미꽃이니 이건 노랑할미꽃이겠군이라 생각했고 틀림없이 예상이 맞았습니다.

 

그런데 난감한 문제는 언제든 일어나는 법입니다할미꽃은 분명히 할미꽃인데 고개를 숙이지 않고 하늘을 향해 꼿꼿이 고개를 새워 마치 하늘매발톱꽃 같은 모양이라니 사진을 보여주며 물어도 “할미꽃이네그냥 색만 다르구만 뭐라며 신통한 대답을 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었습니다십 몇 년 세월이 흐른 뒤에야 정식으로 ‘동강할미꽃이란 이름을 얻게 된 정선 동강의 할미꽃이 그것입니다.

 

단순하게 ‘할미꽃으로 시작을 한 다음 서서히 색상이 다르고 잎의 모양이 다르다는 걸 보고 배우게 됩니다그리고 꽃받침이 다르고자생지의 조건이 다른 걸 느껴가며 하나씩 배워가죠정선아라리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알아갔던 날들이 아득하기만 합니다.

 

아리랑은 아리랑인데 이건 뭐지” 처음 정선아라리를 부르는 걸 들었을 땐 그냥 지어서 부르는 걸로만 생각했습니다하지만 워낙 다양한 노랫말에 홀렸습니다. “그 양반 거 참 기억력도 좋고재주도 용하네란 생각을 했을 정도로 정선아라리를 부르는 정선의 어르신들은 참 신기하기까지 해 보였습니다그러면서 정선엔 그렇게 재미있게 아리랑을 노래하는 이들이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강원도 금강산

일만 이천 봉 팔만 구 암자

유점사 법당 뒤 칠성당에 모두 모여

팔자에 없는 아들딸 나 달라고

백일기도를 드리지 말고

타관객지 외로이 떠난 사람 괄시를 마소

정선읍에 물 나드니

허풍선이 굴굴대는 사시장철 물거품을 안고

요리조리 조리요리 비비배뱅글 돌아가는데

우리 집에 내 낭군은 돌아 올 줄 모르네

 

하춘화가 부른 ‘강원도아리랑으로 알려진 노래입니다. 1972년도 이 노래를 어린 나이에 따라 불렀던 기억으로 미뤄 그해나 그보다 일찍 하춘하는 불렀을 수 있습니다고봉산 작사작곡으로 된 이 노래는 요즘 같으면 표절시비에 휘말려도 할 말 없습니다. 이미 강원도에서는 정선이 아닌 이곳 양양에서도 어른들이 이 노래를 알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1983년 정선군에서 ‘정선아리랑을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를 판매하기에 구입하려했는데 관심을 가져주어서 고맙다며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테이프엔 “정선아리랑은 강원도아리랑에 잇대어 부른다고 밝혀 놓아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당시로서는 정선아라리를 상당한 인기를 끈 하춘화란 가수의 강원도아리랑에 붙여서라도 알리고 싶은 욕심은 아닐까 생각되어서였습니다.

여하튼 정선아라리는 우리 민족, 그 중에서도 민초들의 팍팍한 삶의 다양성만큼이나 ‘아리랑’ 중에서도 특히 파격적인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 소리요 노래입니다젊은 세대들이 부르는 ‘이 있습니다정선아라리는 오래전부터 ‘과 같은 형식의 소리까지 엮어냈으니 놀라운 일입니다엮음아리랑(엮음아라리)으로 불리는 가사들이 그것입니다그 중에서도 정말 특별한 부분 몇 수만 여기 소개를 하겠습니다.

 

영감은 할멈치고 할멈은 아치고 아는 개치고 개는 꼬리치고 꼬리는 마당치고

마당웃전에 수양버들은 바람을 휘몰아치는데 우리 집에 저 멍텅구리는 낮잠만 자네

 

우리 집에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얽어매고 찍어매고 장치다리 곰배팔이

노가지나무 지게위에 엽전 석 냥 걸머지고 강릉 삼척에 소금 사러 가셨는데 백복령 굽이굽이 부디 잘 다녀오세요

 

네 칠자나 내 팔자나 한번 여차 죽어지면 겉 매끼 일곱 매끼 속 매끼 일곱 매끼 이 칠에 십사 열네 매끼 참나무 댓가래 전나무 연춧대 스물두 상두꾼에 너호 넘차 발맞추어 시방시체 개명말로 공동묘지 석자 석치 홍대칠성 깔고 덮고 축 늘어지면은 어느 동기 어느 친지가 날 찾아오나

 

니 칠자나 내 팔자나 네모 반듯 왕골방에 샛별 같은 놋요강을 발치만치 던져놓고 원앙금침 잣베개에 앵두 같은 젖을 빨며 잠자보기는 오초강산에 영 글렀으니 엉틀멍틀 장석자리에 깊은 정만 두자

 

산진매 수진매야 휘휘 칭칭 보라매야 절끈 밑에 풍경 달고 풍경 밑에 방울 달아 앞 남산에 불까투리 한 마리를 툭 차가지고 저 공중에 높이 떠서 빙글 배뱅글 도는데 우리 집 저 멍텅구리는 날 안고 돌 줄 왜 몰라

 

당신이 날 마다하고 울치고 담치고 열무김치 소금치고 오이김치 초치고 칼로 물 치듯이 뚝 떠나가더니 평창 팔십리 다 못가고서 왜 또 돌아왔나

 

동네 어른들 들어 보시오 우리 시어머니 뒤로 보면 왕댓골 앞으로 보면 숫돌님 고리눈은 전등팔 옥니배기 주개턱 자래목 등곱새 배불래기 수중다리 밥자루 쥐고야 날 때리더니 강림도령 모셔가더니 지금은 소식이 없어요

 

아들 딸 낳지 못해서 강원도 금강산 찾아가서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 마다 봉봉 마루 끝에 찾아 가서 칠성당을 모다 놓고 주야삼경에 새움의 정성에 치성불공을 말고 타관객지 떠난다는 손님을 푸대접을 말게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 자자 봉봉에 칠성당을 모다 놓고 겉 돈 벌라고 산제불공을 말고서 힘대 힘대 일을 하여 자수성가합시다

 

자진모리장단이나 휘몰이장단을 넘어서는 파격적이고 숨 가쁜 민초들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소리고 노랫말들이 이닌가 생각합니다여기에서 맨 아래 두 가지 노랫말이 하춘화가 불렀던 강원도아리랑의 원형으로 봄이 옳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수 고봉산은 ‘울어라 기타줄을 손인호란 가수가 취입하자 오래 연습하고도 자신이 부르지 못함이 화가 나 용두산엘 올라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작곡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작곡자가 마음대로 곡을 다른 가수에게 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그렇게 해서 만들었다는 ‘용두산 엘레지의 고봉산이 어딘가에서 정선아라리의 이 엮음아라리를 듣고 일부 뜯어 고쳐 자신의 작사작곡으로 만들었다고 봄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대체로 긴아리랑(아라리)이 철학적이며 조금 은유적이라면 이 엮음아라리는 꾸밈도 없고 솔직담백하게 느껴집니다감히 사대부의 여인들로써는 상상도 못할 남녀 사이의 성(Sex)에 대해서도 여과 없이 보여주기도 하고요.

 

우선 이 정도만 얘기해도 한 번에 읽기엔 너무 길지 싶습니다일단 여기서 ‘시김새란 우리 가락의 중요한 구성요소 하나가 정선아라리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살펴보고 다음 편에 정선아라리의 또 다른 맛이 진득한 노랫말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정선아라리의 특징적 요소는 바로 이 후렴구로 부르는 부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산이 겹겹으로 싸여 외지로 나가려면 고개 하나로는 도저히 뜻을 이룰 수 없는 고장이 정선입니다자연스럽게 후렴구에 고개가 중복되어 나타나게 되었지 싶습니다끊어질 듯 애잔하면서도 길게 늘어지는 정선아라리만의 독특한 후렴구를 제대로 표현하면 다른 노랫말은 그 나름의 지닌 음률에 저절로 이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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