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재료로 조리한 음식(요리)을 찾는 이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나물을 넣고 지은 밥이 건강식으로 식당에 떡하니 자리 잡은 지 오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경제적 여유가 생기며 살기위해 먹던 음식에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재료로 즐겁게 먹느냐로 옮겨진 결과도 한 몫 합니다. 기왕에 먹을 거 싱싱하고 건강을 지켜줄 수 있다면 상당한 대가를 치르고라도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건강을 위한다는 이유도 들지만 또 다른 이유로는 사람이 지닌 욕망 가운데 ‘식욕食慾’ 또한 빠트릴 수 없습니다.
▲ 생전의 임지호 요리사는 "태어나 요리로서 삶을 노래했다”며 때에 맞춰 변화하며 나타나는 온갖 자연의 산물을 요리에 적극 활용했습니다. 사진은 임지호 요리사의 ‘임지호의 밥 땅으로부터’입니다.
음식과 사람의 건강이 뭔 상관이겠느냐 하는 이들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거친 음식이라도 배부르면 된다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요. 전문적인 의학지식이 없어도 음식을 먹고 섭취한 영양소가 사람의 각 장기에 필요한 에너지원이 된다는 사실은 기본적으로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일생 동안 깨끗한 피부와 밝은 눈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건강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걸 대단하달 건 없지만 명쾌하게 구분하면, 끊임없이 재생과 퇴화를 거듭하는 세포 조직을 이루는 영양소가 적절하게 공급되느냐 덜 공급되느냐로 서로 나뉘겠지요. 필요한 영양소가 적절하게 공급이 이루어지는 쪽에서는 깨끗하고 맑은 피부와 청명한 눈을 좀 더 오래 유지하지 않겠는지요. 건강을 유지하는 영양소는 온갖 보약과 영양제가 넘치는 세상이지만 입으로 먹는 온갖 음식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남새(밭에서 파종을 하거나 모종을 심어 기른 풀)와 푸새(산과 들에 저절로 나서 자라는 풀)로 구분지어 같은 종류도 나뉘고 가치도 다르게 평가되곤 합니다. 곰취라 하더라도 밭에 심고 가꾸어 내 놓으면 남새가 되고, 산에서 자연을 호흡하고 자라면 푸새가 되는데요, 여기 재미있는 사연이 있습니다.
▲ 자연산 곰취입니다. 2001년 고향에 다시 돌아왔을 때 산엘 올라도 참취와 곰취를 만나기 어려웠습니다. 몇 년에 거쳐 씨앗을 받아 소독해 뿌리기를 반복한 끝에 이젠 산을 오르면 이처럼 자연산 곰취가 반기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작년 5월입니다. 날도 밝지 않은 이른 새벽에 산엘 올라 채취한 나물을 채운 배낭을 버스정류장에 내려놓았을 때였습니다. 근처에 있던 몇 분이 “나물 많이 했어”라며 “곰취 아직도 잘지”라 하기에, “곰취도 이젠 멀지 않아 꽃대도 올리겠고, 취나물도 많이 자라서 제법 빨리 배낭을 채울 수 있던데”라 대답했습니다. 그때 대청봉을 넘어 온 듯 보이는 몇 분 아주머니들이 산나물이란 말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아저씨, 곰취도 있으면 좀 팔아요”라 하자, 마을 주민이 “래은이 아빠, 곰취는 얼마씩 팔아요”라 묻더군요. “저울이 없어서 달기는 그렇지만 한 단에 6,000원씩은 받아요”라 했습니다. 그러자 곰취를 팔라던 분이 “뭐가 그렇게 비싸요? 곰취 백화점에서도 5,000원이면 먹을만큼 사는데…”라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마을 주민이 “백화점에서 파는 건 하우스에서 재배한 곰취고 이 양반은 자연산 곰취인데 당연하죠”라 했습니다. 안 사도 그만인데 곰취를 팔라던 분이 “곰취면 다 같은 곰취지 뭐는 좋은 곰취고 뭐는 나쁜 곰취란 말이죠”라 하더군요. 마침 근처에 재배를 한 곰취를 판매하는 아주머니가 식당에 가져다주었는데 다 안 받아서 남았다며 속상해 하시고 계셔서 셈을 치르고 곰취 두 묶음을 가져다 비교해 보여주었습니다.
“여기 이게 곰취인데 그냥 보셔서는 자연산과 재배의 차이가 잘 구분이 안 되실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습니다. 안 사도 좋으니까 먼저 그대로 한 번 맛을 보세요.”
배낭 머리에 산에 가지고 다니는 된장을 꺼내 곰취와 함께 맛을 보도록 했습니다. 물론 제 배낭에서도 곰취 한 단을 꺼내 같이 내놓았지요. 저마다 곰취를 집어 된장을 찍더니 맛을 보더군요. 정류소는 편의점도 같은 운영하는데 산에서 내려오면 종종 그곳에서 요기를 하거나 아예 저녁도 먹기도 해서 버너와 코펠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버너를 가져와 코펠에 물을 부어 끓여서 곰취를 데쳤습니다. 찬물에 한 번 헹궈 다시 맛을 비교해 보라고 했습니다. 자기들끼리 귓속말로 수군거리더군요.
“어떤가요? 같다고 느끼시나요?”
“뭐 별 차이 안 나는데…”
“그러시면 저기 계신 아주머니가 가져 온 곰취를 사 가세요. 저는 안 팔아도 괜찮습니다.”
이쯤 되면 조용히 물러나면 좋은데 뭔 심사인지 꼭 뒷말을 하는 이들이 있지요. 이 분들도 그렇더군요. “산에 가면 널린 게 산나물인데 그걸 뭐 그렇게 비싸게 팔아” 정도야 일상적으로 듣는 말입니다. 마음 상하는 말은 “자연산이라고 뭐가 달라”란 말입니다. 재배와 자연산의 차이를 모르고 하는 말이라 그냥 넘기곤 하는데, 이때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사연이 있어서였습니다.
2011년으로 기억되는데 어버이날 무렵이었습니다. 당시 아이들 학교 문제로 오색초등학교 관사에 살 때였습니다. 그날은 산엘 안 가고 며칠 만에 쉬려고 집에 있다가 창밖에 보이는 벚나무에 맺힌 버찌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익은 버찌가 떨어져 매일 마당을 치우는 일도 지겨울 정도였기에 “올해는 물 호스를 하나 장만해둬야겠어”라고 아내가 옆에 있는 줄 알고 중얼거릴 때였습니다. TV에서 “양구에서 곰취축제가…”로 시장되는 리포터의 목소리에 끌려 시선을 돌렸습니다.
좀 거친 표현으로 “요즘 TV 겁나 좋습니다. 사극에 남자 탤런트들 귀걸이 한 흔적 다 보이고, 솜털 보송한 아이들 천진난만한 표정 생생하게 보여요” 그대로 정말 1980년데 흑백TV를 자랑스럽게 마루에 내놓고 한껏 자랑하던 시절엔 꿈도 못 꾼 화면으로 곰취라고 소개되는 나물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건 곰취가 아니라 곤달비였습니다.
그길로 방송국 홈페이지 해당 프로그램의 게시판에 글을 하나 썼습니다. “양구 곰취는 곰취가 아니라 곤달비란 나물입니다. 곰취는 잎의 모양은 곤달비와 비슷해서 혼동할 수 있지만 줄기와 연결되어 잎이 시작되는 부분의 모양과 줄기부분만 구분할 줄 알면 실수를 하지 않을 일이 발생했군요. 소비자들은 양구곰취로 알고 구입할 텐데 확인하시고 정정보도를 하시면 좋겠습니다”란 글을 남겼습니다.
몇 분 정도 지나서 전화벨이 울려 받았습니다. “KBS 생방송 OOO의 작가 OOO입니다”로 자신을 밝힌 앳된 여성분과 잠시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게시판에 올리신 글을 보았습니다. 곰취라고 해서 촬영하고 소개를 했는데 방송화면만 보시고도 곰취가 아닌 곤달비라고 하시니 궁금해서요. 줄기만 알아도 실수하지 않았을 거라 하셨는데 뭐가 다른가요”라 묻더군요. “줄기와 잎이 구분되는 부분의 잎을 보면 곰취는 잎이 많이 파인 형태고 곤달비는 거의 밀착되어 붙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줄기는 곤달비는 홈이 없이 둥글게 보이고, 곰취는 줄기에 무늬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깊게 파인 골이 있습니다. 곰취는 이 파인 골의 양쪽 나사의 산보양 위치에 자주색 줄이 발달되어 있으니 확인해 보세요”라 설명하고 이틀인가 지나서였습니다.
뉴스에 <곤달비가 곰취로?… 농산물 신뢰성에 ‘금’>이란 자막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뉴스가 시작되고 앵커가 “향이 뛰어나 봄철 미각을 돋구는 산나물 '곰취'를 아실겁니다. 강원도 양구 곰취가 유명한데, 이 곰취가 '곰취'종이 아닌 '곤달비'종으로 밝혀졌습니다”로 시작하더니 취재기자를 부르더군요. 그리고 양구 현지에서 취재를 한 모양인지, “8년째 이어지고 있는 양구 곰취 축제…”로 시작되어 누군가를 카메라 앞에 세워 인터뷰까지 합니다. 기자가 “곰취 맛이 어떠세요”라 묻자 “뒷맛이 좋죠”란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걸로 끝이 아니란 걸 알기에 식사를 하던 수저를 손에 쥔 채 시선을 TV화면을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이 '양구 곰취'는 곰취 종이 아닌 곤달비종입니다. 곤달비는 식물 분류학상 곰취와 속까지는 같지만 엄연히 종이 다릅니다. 곰취와 곤달비는 모양이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곰취는 줄기에 깊은 홈이 패이고, 가장자리에 자줏빛이 뚜렷하지만 곤달비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음매도 곰취는 곡선이지만, 곤달비는 V잡니다”라 하며 제가 설명했던 내용 그대로 기자가 말하더군요.
양구곰취축제장을 찾은 관광객과 양구군민을 인터뷰한 장면이 나오고 이어 “양구군도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라 기자가 말하며 화면은 바뀌더군요. “곰취로 해서 인지도를 많이 알렸는데, 곤달비로 바꾼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란 설명을 하는 이의 아래로 <양구 농업기술센터 관계자>가 자막으로 나왔고, “정확한 이름조차 표기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역 특산 청정 농산물의 신뢰성에 금이 갔습니다”란 기자의 멘트와 예의 “KBS OOO기자입니다”를 끝으로 양구곰취가 순식간에 양구곤달비로 밝혀졌습니다.
그랬던 양구곤달비가 다시 양구곰취로 여전히 소비자들에게 팔리고 방송까지 적극적으로 이용되더군요. 2023년 봄엔 방송국 게시판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논쟁까지 벌어졌습니다. “양구에서는 기술센터에서 인정한 곰취를 재배한다. 곰취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양구곰취는 곤달비와 모양은 닮았지만 다양한 종류의 곰취 가운데 한 종류다”란 주장을 하더군요.
아, 곤달비가 양구에 가면 곰취가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곤달비는 줄기와 잎이 구분되는 부분이 하트형의 V자인 반면, 곰취는 이 부분이 시위를 당긴 활처럼 완만한 곡선으로 이루어졌는데 말입니다. 줄기도 곤달비는 둥글고, 곰취는 홈이 파였으며 두 줄의 자주색 무늬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조만간 동의나물도 곰취라 하게 생겼습니다.
▲ 점봉산과 설악산을 동시에 가깝게 둔 양양시장에서도 자연산 산나물은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두릅 정도만 재배와 자연산이 함께 판매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곤달비를 백화점에서 15장 포장해 몇 천원에 파는데, 재배곰취와 자연산 진짜 곰취를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든 가격을 후려쳐 사려는 그 분들에게 저는 맛만 보여줬습니다.
자연산 곰취는 데치면 비단처럼 매끌거리지만 재배곰취는 데치면 가랑잎처럼 어석거리는 느낌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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