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요리로써 삶을 노래했다. 때에 맞춰 변화하는 자연, 그 순환의 법칙 속에서 지고 살아나기를 반복하는 땅의 생명들에 언제나 도움을 청하듯 손을 내밀었다.
자연의 진솔한 흔적이 녹아든 음식은 땅에 발붙인 또 다른 생명, 사람을 살리기에.
임지호 요리사의 평소 신조였던 듯합니다. 이 내용은 <궁편책>에서 발간한 ‘임지호의 밥 땅으로부터’에 저자가 전하는 이야기 첫 구절입니다.
▲ 경칩이나 되어야 버들가지가 꽃을 피우는데 바위의 복사열 덕인지 일찍 꽃을 피우는 갯버들도 있습니다.
‘궁편’은 장구에 사용되는 용어인데 연주자의 왼쪽에 위치하는 두꺼운 가죽으로 매운 낮고 웅장한 소리를 내는 쪽을 이릅니다. 그런데 음악전문이나 국악과 관련된 책이 아닌 출판사의 이름에 특이하게도 ‘궁편’을 사용한 것은 이 출판사의 대표자 편집인인 김주원 편집인에게 임동창 선생님께서 “낮으며 웅장한 소리를 내는 ‘궁편’같은 책을 만들라”며 지어주신 이름이어서입니다.
저와 궁편책은 임동창 선생님과는 관계없이 인연이 되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임동창 선생님을 함께 알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장구의 왼쪽 말이나 소의 가죽을 사용해 두껍게 매움으로서 상대적으로 얇은 가죽으로 매워 높고 잔물결 같은 소리를 내는 채편이 아닌 궁편을 닮으란 의미로 주셨겠다 싶었던 겁니다. 그렇다고 채편이 궁편에 비하여 부족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채편이 있어야 장구는 각각의 역할을 할 수 있으니 어쩌면 궁편책의 편집실 누군가 그 채편을 이름으로 받으신 분이 있을 수도 있지 생각합니다.
저는 2000년대 초에 이 장구를 연주할 때 사용하는 채를 몇 벌 만든 적이 있습니다. 궁편에 사용하는 채는 오죽(烏竹)의 뿌리를 사용해 대를 만들고 끝에 박달나무로 목공선반을 사용해 깎은 지름 3㎝ 되는 방울을 끼웠습니다. 그리고 채편은 오죽을 쪼개 납작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사는 고장이 양양군이라 오죽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고, 박달나무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여서 누군가의 부탁으로 했던 일입니다.
사실 이 작업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궁편채를 두드리는 방울을 깎는 작업이나 손잡이로 사용할 오주의 뿌리를 얻는 작업보다 손잡이를 감싸는 가죽을 꿰매는 일이었습니다. 그 작업을 하느라 가죽가공 펀치와 바늘, 실까지 구입해야 되었거든요. 그 뒤로 어떤 악기를 보더라도 예사로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 장구를 연주하여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궁편에 알맞은 채와 채편에 알맞은 채를 사용하듯, 우리 건강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의 알맞은 재료가 있고 요리 또한 그러합니다.
글 한 편을 쓰더라도, 장구채를 만드는 과정을 떠 올리며 하게 되었습니다. 소재를 구하고 가공하며 용도에 알맞게 사용되도록 작업하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요리 또한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태어나서 요리로써 삶을 노래했다. 때에 맞춰 변화하는 자연, 그 순환의 법칙 속에서 지고 살아나기를 반복하는 땅의 생명들에 언제나 도움을 청하듯 손을 내밀었다.”처럼 자연으로부터 재료를 구하고, “자연의 진솔한 흔적이 녹아든 음식은 땅에 발붙인 또 다른 생명, 사람을 살리기에”에 충실하고자 하셨던 임지호 요리사의 말씀 참으로 존경받을 자세라 봅니다.
우리는 자연에 손을 내밀어 구하는 재료를 ‘푸새’라 합니다. 일상적으로 ‘푸성귀’란 말도 엄밀하게 말하면 푸새겠고, 자연에서 구하는 산나물이나 들나물을 이르는 말이라 보아야 겠지요. 밭에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어 기르는 남새와는 다른, 자연에게 손을 내밀어 수고를 해야 구하는 먹거리는 장구에 비유한다면 궁편에 해당되겠군요.
초정 김상옥님의 시조 중에 사향(思鄕)이란 시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또 다른 나물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눈을 가만 감으면 굽이 잦은 풀밭길이
개울물 돌돌돌 길섶으로 흘러가고
백양(白楊)숲 사립을 가린 초집들도 보이구요.
송아지 몰고 오며 바라보던 진달래도
저녁노을처럼 산(山)을 둘러 퍼질 것을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러운 꽃지짐!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 오리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오.
여기에서 이르는 멧남새는 다소 거친 나물을 가리키지 싶습니다. 멧둥지에서 채취할 수 있는 나물 정도로 보면 맞는 말이겠습니다. ‘멧’은 뫼의 방언으로 산을 이르는 옛말인데 어느 고장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나지막한 야산 정도로 보면 되겠군요.
▲ 정월대보름이면 추위도 많이 누그러지겠지요. 달래도 본격적으로 시장에 나오고요.
이런 나지막한 산자락에서 채취하는 산나물은 자연산 산나물을 이루는 푸새라 하여도 좋겠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푸새와 구분을 지어 놓았음은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일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푸새와 남새의 중간 정도라는 의미로 남새도 아니요, 푸새도 아닌 상태로 멧남새라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초정 김상옥 시인의 이 시에선 화전을 꽃지짐으로 표현하고 끼니마다 봄을 씹는다며 봄철에 나물반찬을 밥상에 올렸음을 시적詩的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이 시조의 풍정을 살펴볼 때 역시 멧남새는 산에서 구하는 산나물, 푸새가 맞겠다 보입니다. 굳이 멧남새라 함은 우리가 먹는 채소들은 밭에서 길러 구하는 반면, 자연이 기를 걸 구하여서 산(뫼)가 기른 채소 정도로 비교하여 사용한 말이 아니겠느냐 싶어서입니다. 다만 캐어온다는 표현으로 잎이나 줄기가 아닌 뿌리까지 이용하는 나물이라면 달래와 냉이 씀바귀가 가장 적절한 대상이겠고, 그 외 더덕이나 잔대와 같은 뿌리와 잎을 모두 먹을 수 있는 식물이 있습니다. 곰취나 나물의 여왕이라 할 정도로 향이 아주 좋은 병풍취는 줄기오 잎을 먹어도 뿌리를 캐지는 않습니다.
남새도 유기농인지, 친환경인지 나뉘기도 하고, 무농약과 저농약으로도 나뉘는 세상입니다. 정말 짜증날 정도로 먹을거리들에 대해서 복잡하게 구분되게 만든 방향에 선 이들은 농민이 아닌 소비자입니다. 깨끗하고 커야 되고, 보기 좋아야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농민들은 더 많은 화학비료를 땅에 뿌렸고, 해충과 농작물을 망치는 온갖 병균을 방지하기 위해 농약을 수시로 뿌렸습니다.
소를 가축으로 농가에서 기를 때는 외양간을 치우며 모았던 두엄이 있었고, 거기에 온갖 부산물을 모아 썩히고 발효시켜 땅의 힘을 높이기 위한 거름으로 내었습니다. 이렇게 자연으로부터 가져온 걸로 다시 충분히 발효과정을 거쳐 지력을 건강하게 만드는데 사용했습니다. 농약이라던가, 화학비료는 없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벌래 먹은 흔적이 없고, 고르게 성장한 야채를 원하니 화학비료를 더 많이 사용하고 농약을 사용해 해충을 퇴치하며 오로지 상품성 좋은 야채를 기르는 부분에만 공을 들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생활환경이 변모하여 건강에 더 좋은 먹거리를 원하는 이들이 나타나면서 농부들은 다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비료를 사용하느냐, 아니면 자연에 맡겨 발효시킨 퇴비로 땅심을 돋우웠느냐에 따라 수고한 보상이 다르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 농약을 사용하되 얼마만큼의 양을 썼느냐에 따라 무농약과 저농약이란 표현도 등장합니다. 마치 재배냐 자연산이냐가 다르듯 재배를 한 농산물도 유기농과 무농약, 저농약 등으로 다양한 구분법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왜 이런 구분법이 생겨났을까? 다른 이유가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바로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사람이 건강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벼농사를 짓는 농부가 정부에서 수매하는 벼나 양곡상에 내는 벼는 농약을 치고, 가족이 먹는 벼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이젠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만큼 농약이 사람의 건강에 이롭지 않다는 걸 알기에 농부는 경제적 이득을 올리는 벼는 농약을 쳐서라도 많이 생산하려는 것이고, 가족과 먹을 쌀을 도정할 벼엔 농약을 안치는 거야 소출은 적더라도 건강한 밥을 먹겠다는 지극히 평범한 발상이지만 좀 고약합니다.
결과적으로 남새밭에도 온갖 병해충과 보기 좋은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농약을 사용하고, 가족이 먹을 남새는 농약을 치지 않았는데, 이렇게 재배한 다소 거친 야채라도 건강에 더 좋다는 걸 알게 된 소비자들이 더 좋은 가격을 치르고서라도 구하려 하니 이젠 무농약을 넘어 완전 유기농을 내세우는 농가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비료와 농약을 많이 사용해 농산물을 기르는 농가가 많습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 물으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소비자는 농사를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일단 깨끗하고 보기에 좋아야 장바구니에 담으니 농약을 안 칠 재간이 없는 겁니다. 쌈거리를 판매하는 마트의 진열장을 보면,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고 쉼 없이 청량한 냉기를 뿜어내는 신선식품 진열장은 정말이지 그 자체로 5월 중순의 점봉산 어느 골짜기의 아침 해 뜨는 시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합니다. 여기에 진열된 다양한 쌈채소 가운데 벌레 먹은 청겨자와 벌레가 안 먹은 청겨자가 있다면 어느 걸 장바구니에 담는지 지켜보면 알게 되지요.
벌레가 먹은 건 외면 받다 결국엔 쓰레기통으로 들어갑니다. 사실은 벌레가 먹어 보기 조금 흉한 상태의 청겨자가 몸에 훨씬 이로운데, 벌레도 못 먹는 거라야 장바구니에 담다니 이렇게 웃긴 상황이 실제로 우리들 밥상의 현주소입니다.
마트 밖을 나와 양양시장을 돌아봅니다. 굳이 양양이라는 특정한 고장은 아니라도 좋습니다. 서울에서도 전국의 거래처를 둔 자연산 산야초를 취급하는 가게는 어렵지만 찾으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백두대간의 지근거리에 위치한 고장에서 닷새마다 펼쳐지는 장날이 제격이겠습니다. 철따라 제철 음식재료가 손님을 기다리는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계절은 물론이고 지금이 몇 월인지 달력을 볼 필요도 없습니다. 좀 더 엄밀하게 분석하면 같은 달이라도 대략 며칠인지까지 확인됩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이곳엔 전문적으로 야채나 나물을 파는 상인도 있지만, 장이 서는 날 아침 일찍 각 마을에서 출발하는 시내버스나 농촌버스(최근 인구가 적은 농어촌의 실정에 맞춰 대형버스가 아닌 좀 더 작은 버스로 농어촌의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지자체들이 늘었다.)를 타고 나온 아주머니들 덕입니다.
▲ 요즘에야 꽃다지를 나물로 이용하는 분들이 안 보이지만 예전엔 냉이만큼이나 많이들 먹었습니다. 냉이와 마찬가지로 십자화과의 들나물입니다.
2월의 장 풍경이 다르고, 3월이 도 다릅니다. 그리고 현남 지역에서 나온 아주머니와 복골(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에 있는 설악산 자락의 산촌마을)에서 나온 아주머니가 보자기를 풀어 내놓는 물건이 다릅니다. 4월이 시작되면 달래와 냉이 사이로 4일장엔 현남에서 먼저 두릅이 나오고, 9일장엔 두 곳 모두 두릅이 손님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다시 14일 장이면 현남은 또 다른 푸새가 더해지는 순서로 장날 풍경은 새로 나오는 온갖 푸새로 계절을 알립니다. 14일 장엔 두릅이 넘쳐나고, 19일장부턴 곰취와 참취가 장에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 장터에서 만나는 곰취와 참취는 푸새랄 수는 없지만 남새 중에선 그나마 봄나물의 왕이랄 수 있습니다.
예전처럼 산에 기대 사는 이들이 적은 요즘은 곰취는 물론이고, 누리대나 병풍취는 푸새로 만나기 어렵습니다. 물론 해발 1000m 이상 되는 산에서 채취하는 나물 좋다는 거 이 아주머니들이라고 모르진 않으나, “하이고 그거 누가 가서 따와요. 다 늙어 무릎고뱅이가 말을 안 듣는데…”란 말 그대로 산촌에도 산을 오를 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산나물 얘기를 누군가 꺼내면 젊어서 산에 올라가 나물 뜯던 얘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며 각자 얘기 보따릴 푸지게 풀어냅니다.
아주머니들이 내놓은 물건을 잘 살펴보면 푸새도 제법 있습니다. 지장가리나 지장보살나물로 부르는 풀솜대, 돌미나리, 며늘취로 부르는 금낭화는 물론이고 야산 비탈에서 종류를 가리지 않고 뜯어 와서 ‘잡나물’이나 ‘막나물’이라며 파는 게 그것입니다. 이 마구 섞어 뜯었다는 나물엔 쥐오줌풀, 마타리, 뚝갈(은마타리), 삼나물(미나리냉이), 잔대, 모시대, 미역취, 부지갱이나물(쑥부쟁이), 원추리 등 그야말로 온갖 야산 나물이 뒤섞여 있습니다.
더러 “이거 다 먹는 나물 맞아요?”라 묻는 이들도 있고, “어머, 이거 산에 많던데. 그런데 이것도 먹어요?”라며 야속하게 나물을 사지도 않으며 이것저것 뒤집어가며 몇 번씩이고 확인하는 이들도 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산에 많더라”고 하는 이들이 꼭 사고를 칩니다. 봄철에 나는 온갖 풀이 비슷하게 보여도 먹을 수 있는 것과 독초가 서로 닮은 게 얼마나 많은데 그걸 직접 산에서 뜯어 먹겠다고 욕심을 부릴까 싶은데…
넌지시 “아주머니 그거 닮은 거 엄청 무서운 거 많아요. 잘못하면 단 한 번 먹고 영영 맛난 거 못 먹는 일 생깁니다”라 하면, 응원군을 얻은 양 나물 파는 아주머니 금방 표정이 펴집니다. “거봐 내가 전문가란 거 저 사람이 인정하잖우. 암말 말고 어여 이거 사가” 딱 이 표정으로, 검정비닐봉지 먼저 꺼내들고 “얼마치 주세요” 하길 기다립니다.
▲ 궁편 김주원 편집인이 운영하는 궁편책에서 발행한 ‘임지호의 밥 땅으로부터’입니다. 이 책엔 임지호 요리사가 재료를 구하는 모습부터 다양한 형태로 자연을 이용해 요리를 선보이는 모습까지 두루 만날 수 있습니다.
임지호 요리사의 책을 읽다 시장풍경을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다음엔 기회를 만들어 ‘임지호의 밥 땅으로부터’에 대해서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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