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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포커스

민주공화국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by 한사정덕수 2025.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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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2조 국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국민이란 무엇입니까.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말은 너무도 익숙하게 들리지만, 그 말이 표현하는 책임과 조건을 깊이 생각해 보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헌법 제2조는 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 그리고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이 짧은 두 문장 안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누구를 품어야 하며, 어떻게 품어야 하는지를 알리는 명확한 기준이 담겨 있습니다.

2014년 설악산 안내를 부탁한 한 노인분의 사연이 생각납니다. 그는 간호사로 독일에 나갔고 거기에서 광부로 온 남편을 만나 삶을 꾸리며 정착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낯선 타국에서 가족을 이루고, 조국을 그리워하며 독일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여전히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국가가 포괄해야 하는 국민이며, 헌법이 말하는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를 증명하는 사례입니다. 국적이란 단지 출생이나 행정적 수단으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선택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는 정체성임을 우리는 그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부와 자치단체는 종종 이 책임을 외면합니다. 20091120, 사이판 현지 실탄사격장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은 그러한 무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종업원이 임금체불에 불만을 품고 총기를 탈취해 사격장 주인 부부를 살해하고, 총기를 휴대한 상태로 관광객들이 찾는 만세절벽으로 나가 관광객에게 난사한 뒤 자살했습니다. 한국인 6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마산의 학원강사 박재형 씨는 중태에 빠졌습니다.


사건 직후 언론은 일제히 보도했지만
, 그 보도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당시 피해자 가족이 보내온 영상이 보도를 이끌었고, 저는 블로그를 통해 이 사건의 본질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서울대병원을 수차례 찾았고, 미국을 이야기할 때 떠 올리는 자유를 의미하는 두 개의 이미지 중 하나인 자유의 종에 새 발의 총격을 집어넣고 핏자국을 선명하게 표현한 다음 다음은 당신 차례입니다라는 문구를 넣은 배너를 스케치 한 다음, 웹디자이너를 하는 친구에게 깔끔하게 제작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해서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이 활동은 재외교민과 국내 네티즌의 연대로 이어졌고, 3,000명이 넘는 아고라 서명이 이뤄졌으며, 마리아나 관광청에는 항의 게시글이 쇄도했습니다. 블로거들은 100여 건의 글을 올렸고 조회수는 수백만에 달했습니다. 당시 저 혼자서만 37편의 해당 글을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사이판 당국으로부터 받아낸 공식문서는 바로 이러한 시민 연대와 활동의 결과로 얻은 성과였습니다. 사이판으로 여행을 간다는 건 수치로 여기게 만들었고, 그들은 매국노라고 몰아붙이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 경상남도, 창원시는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저 방관자였을 뿐입니다.

더 충격적인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KBS 예능 천하무적 야구단은 사이판으로 전지훈련을 떠났고, 방송을 통해 사이판 관광을 부각시키며 이 비극의 현장을 오히려 관광지로 소비했습니다. 언론은 이를 칭송했고, 조선일보는 이를 활용해 블로거들의 활동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마치 한 사람의 생명과 공동체의 고통이 예능과 흥행의 발판이 되어버린 듯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로 이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국민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행정적 신분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며 연대하는 윤리의 실천 속에서 완성되는 이름입니다. 국가가 외면할 때 우리는 서로를 지켜야 했고, 그렇게 지켜낸 경험은 헌법 제2조가 현실에 뿌리내리도록 한 실제적인 사례입니다.

국민은 국가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며 동시에 국민이 국민을 보호할 수 있을 때 그 국가는 진정한 헌정국가로 서게 됩니다. 이 수많은 블로거들과 시민들이 보여준 연대는 국가가 하지 못한 일을 해낸 국민의 힘이었습니다. 국가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며, 그 사람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명과 존엄의 연결입니다.

저는 이 조항 앞에서 다시 묻습니다. 나는 지금 국민인가. 나의 권리는 어떻게 얻어졌으며, 나의 의무는 어디까지인가. 그 질문은 제가 이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존재인지를 결정짓는 삶의 태도를 요구합니다. 헌법 제2조는 단지 국적을 부여하는 법 조항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국가가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물어보는 문장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저는 다시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국민이라는 이름. 그것은 감각이 아니라 사유이며, 조건이 아니라 연대입니다. 2조는 말합니다. 국가는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그 문장을 되짚으며 저는 이 땅과 바깥에서 살아가는 모든 시민들이 서로를 지키는 일에 더 많은 용기와 애정을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함께여야만, 진짜 국민입니다.

그리고 국가에게 당당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국민을 챙기지 못하는 정부는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으니 깨끗이 물러나라고그리고 진실로 국민을 챙길 줄 아는 반듯한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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