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온유, 그는 1988년 활동했던 ‘작은 평화’란 남성 듀엣 박종남의 조카였습니다. 사실 박종남을 검색해도 잘 안 찾아지던 이유가 다로 있었는데요, 그는 최근 ‘박푸른숲’이란 이름으로 시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겁니다. 그이 부인 김솔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 등… ‘박종남’이나 ‘박종남 가수’로 검색해도 그저 웬 나이 든 이가 트롯트를 부르는 영상만 찾아진 까닭이 ‘온유’란 가수에 의해 ‘시노래 라이브 가수’를 시작으로 검색하며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만든 시노래를 몇 곡 들어보았는데 이제까지 시노래를 부른다고 하는 이들과는 차별화된 ‘박푸른숲’만의 시노래는 맛이 달랐습니다. 조만간 좀 더 그의 노래들을 찾아서 들어 보려합니다. 여하튼 그런 삼촌을 둔 박온유 가수 또한 그런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직접 시도 쓰고, 자신의 시로 노래를 만들기에 “이 친구 뭔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는 그의 정규 1집 『온유야, 사랑해』를 들으며, 어느 순간부터인가 마치 온유란 가수의 시간 속을 함께 걸어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앨범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온유란 가수가 살아온 시간, 버텨온 순간,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을 담은 기록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공허해서 혼자 메시지를 써 내려가다가도 결국 사라지는 말들처럼, 우리의 감정도 그렇게 사라지는 것만 같을 때가 있죠. ‘카톡’을 들으면 마치 저도 그 공허함 속에 머물러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때로는 말하고 싶어도 전할 곳이 없고, 전해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써 내려가는 우리의 마음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트랙의 ‘인형’을 들을 때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남들의 기대 속에서,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 속에서 살아가고 있구나. 꼭두각시처럼 움직이지만 정작 내 의지는 어디에도 없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온유는 이 곡을 통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인형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단조’를 들을 땐 마음이 아팠습니다. 깊은 우울 속에서 살아가며, 죽음과 맞닿아 있던 시간들. 하지만 지금 온유란 가수는 살아 있고, 이 노래도 우리 곁에 남아 있으니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 노래를 듣는 누군가도, 어둠 속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곡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기록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리운 사람을 떠올릴 때, ‘그리움’을 들으면 어떨까요.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 스쳐 지나가는 기억,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마음 그런 거 있잖아요. 하지만 그리운 만큼 소중했던 순간도 함께 남아 있으니까, 그때 온유의 속삭이는 노래 속에서 따뜻함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종일 방 안에만 있어’를 들을 때는 마치 저도 그 방 안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나갈 수 없는 날들, 커튼 뒤의 세상과 멈춰버린 시간이 아득하기만 한 이상한 세계 말입니다. 하지만 결국 온유는 다시 방 밖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도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겠지요.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면 지금은 얼마간 기다려도 좋습니다.
‘압화’는 특히 마음 깊이 스며든 곡이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울 때 꺾여버리는 것! 그것이 운명이라면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흔적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압화처럼- 우리의 시간도 그렇게 아름다웠음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리향’을 들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떠올렸습니다. 익숙하지만 한없이 외로운 그 길 말입니다. 그리고 가끔은 혼자가 너무 익숙해서 더 쓸쓸할 때도 있지요. 하지만 사람의 향기는 생각보다 멀리 퍼진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몰랐던 사이에, 우리의 온기가 누군가에게 닿았을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아홉 번재 트랙의 ‘온유야, 사랑해’ 이 곡은 온유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 나일까 싶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너무 힘들어서, 다 내려놓고 싶을 때도 있더군요.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스스로를 꼭 안아주고, 다독여 주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온유야, 사랑해.”처럼 스스로에게 “덕수야 사랑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을 저도 박온유 가수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온유 님, 살아 있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날은 너무 버거워서 무너질 것 같고, 어떤 순간은 끝이 없을 것처럼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유님께서는 살아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스스로를 조금 더 따뜻하게 안아 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꼭 기억해 주세요. 온유님은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입니다.
온유 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당신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어쩌면 박온유 가수에겐 지금 이런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편지 한 통이 절실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스무 살 이전엔 형들 부탁으로 거의 반강제로 연애편지를 제법 많이 써 봤습니다. 어느 날 한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누군가 “신랑 어디가 좋아서 반했어요”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 신부는 “저는 처음엔 이 사람 정말 싫었거든요. 그런데 연애편지를 보내는데 처음엔 안 보다가 동생이 그러는 거예요. ‘언니 이 사람 정말 괜찮은 거 같은데 왜 편지도 안 봐’ 그래서 편지를 봤어요. 그리고 언젠가부터 편지를 기다리게 됐는데 편지 대신 왔다면 직접 만나러 왔더라고요”라 하더군요.
몇 년 지나서 놀러오라고 해서 갔는데 그 자리에 두 분이나 제 편지를 받아 본 분들이시더군요. 그때 “이 친구가 그 편지 썼던 친구여!” 그 형님이 자신이 강제로 시키고, 꼬드겼다는 소리는 쏙 빼고 그렇게 말을 하는 바람에 그날 어떻게 그 자리에 있었는지 절말 아득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이들 엄마에게 편지를 써 본 기억도 없군요. 하여튼!
온유님,
이 글을 쓰면서 온유님의 노래들을 한 곡 한 곡 오늘 하루 중 오후 내내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가사가 아니라 마음으로 들었어요. 그 안에 담긴 감정들, 지나온 시간들, 그리고 그 순간들을 버텨낸 온유님의 이야기들이 조용히 스며들었습니다.
어떤 날은 말 한마디가, 어떤 순간은 한 줄의 가사가 우리를 붙잡아 주기도 하죠. 온유님이 이 곡들을 만들면서 지나온 시간들을 생각하면, 그때의 온유님에게 누군가 꼭 해주고 싶었던 말들이 떠오릅니다.
혼자였던 시간, 말로 다할 수 없는 공허함 속에서도 온유님은 글을 남겼고, 노래를 만들었군요. 사라지는 문자처럼 보낼 곳 없던 마음들이 결국 이렇게 노래로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닿게 되었네요. 공허한 어둠 속에서도 온유님은 온유님을 놓지 않았고, 끝내 스스로를 감싸 안아주었어요. 그리고 그 마음이 이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어떤 기억들은 아프게 선명하고, 때론 가장 예쁜 순간이 가장 아픈 기억이 되기도 하죠. ‘압화’처럼요.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온유님이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눌리고, 버티고, 아팠던 순간들이 지금 이 노래들을 만들어 냈고… 그 덕분에 누군가는 조금 더 덜 외로울 수 있을 거라 생각되는군요.
온유님, 제겐 지금 대구에서 경북대 4학년에 복학하는 딸이 있어요. 그런 제 딸을 떠올리며 온유님이 온유님을 다독이며 했던 그 말을 저도 조용히 되뇌어 봅니다.
“온유야, 사랑해.”
그 말이 가사가 되고, 제목이 되고,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힘이 되었어요.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같은 마음으로 온유님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을 거예요.
“온유님, 우리 모두가 온유님을 사랑합니다.‘
온유님이 지나온 시간들이 의미 없이 흘러간 것이 아니라는 걸, 온유님이 견뎌낸 그 순간들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있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그리고 앞으로도 온유님이 온유님을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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