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수 소설2 소설 한계령 3 ‘할머니와 따뜻한 밥’ 3.아버지는 이른 아침, 할머니가 지으신 밥과 시래기 된장국으로 아침을 드셨다. 밥 한 숟가락을 크게 떠 된장국에 말아 후후 불어 드시던 아버지는 몇 번 씹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겠어.” 문풍지가 부웅 소리를 내며 찬 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들어 오는 거 같았다. 나는 두려움에 몸을 움츠렸다. 아버지는 마당을 내다보며 중얼거렸지만, 그 말이 꼭 바람에게 대고 하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바깥일을 미리 짐작하는 시골 어른의 감각— 나는 그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무서웠다. 아버지는 마치 바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할머니는 아버지의 밥그릇에 반찬을 하나 더 얹어주며 말했다. “배 든든히 채우고 가야 힘쓰지.” 아버지는 말없이 밥을 마저 비우고 물 한.. 2025. 3. 6. 소설 한계령 2 ‘어머니가 떠난 겨울’ 2.겨울은 유난히 길고 매서웠다. 어머니가 떠난 후 처음 맞이하는 겨울은 더욱더 추웠다. 바람이 문풍지를 흔들 때마다 집 안까지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었다.그해 겨울은 눈이 많이 내렸다. 아침이면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였고, 장작더미 위에도 눈이 쌓였다. 하지만 그 하얀 풍경과는 다르게 우리 집안은 점점 더 황량해져 갔다.어느 날, 아침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형이 아무 말 없이 밥을 내주지 않았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가만히 기다렸지만, 형은 끝내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밥상이 올라오긴 했으나 그릇에는 겨우 옥수수죽이 담겨 있었고, 살점 하나 없는 맑은 국물만이 허기를 채워주려 했다. 밀가루까지 다 떨어졌는지 덩어리진 반죽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속이 텅 비어가는 듯한 허전함이 가슴 깊숙이 밀려들었다.그.. 2025. 3. 6.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