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겨울방학 전에 미리 졸업식을 치르는 학교들도 많더군요. 하지만 예전엔 2월이 졸업과 종업시즌이었습니다. 졸업과 종업식을 치르고 봄방학에 들어갔었지요.
▲ 2015년 2월 10일 화요일 제 첫째인 딸 래은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졸업식 뒤에도 학교는 운영위원과 지역 기관장들을 모시고 식사를 따로 하자고 하더군요. 아이들이 주인공이 아닌 졸업식, 아이들만 따로 다른 식당에 식사를 챙긴다는 말을 듣고 깨끗하게 거절하고 딸아이와 동생을 데리고 천리포 수목원이 있는 꽃지로 여행을 갔습니다.
2015년 2월 10일 화요일로 딸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2003년 1월 26일 태어난 래은이는 정말이지 부모마음 헤아리기라도 하는 듯 늘 밝고 건강하게 자라주었습니다. 무얼 특별히 가르칠 필요도 없었고, 크게 어려움에 처하지 않는 이상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성장과정을 함께 했을 뿐입니다. 봄부터 하교만 하면 들로 나서자 부탁하는 아이 데리고 나섰고, 여름이면 학교 앞 냇가가 큰물이 나가지 않는 한 놀이터였습니다. 그저 작은 텐트 하나 아이들 노는 근처에 쳐 놓고 책을 읽으며 간식이나 챙겨주었습니다.
단 한 번, 딸아이나 저도 마음 상했던 일이 있었는데요. 먼저 그 이야기부터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래은이는 늘 함께 어울리던 약수터 앞에 살던 언니와 놀다 버스로 양양에 가겠다고 하더군요. 시내버스 시간을 일러주고 저는 송이버섯을 살피러 산엘 가기로 했습니다. 놀러간 곳에서 약수터에 가보자는 언니가 말했다고 합니다. 따라 나서며 핸드폰을 넣어 다니던 작은 목걸이형 가방을 언니 할머니가 운영하던 가게 뒤쪽 테이블에 두었는데 버스시간이 다 되었겠다는 생각에 자리로 돌아오니 가방이 없더라는 군요.
아이가 엄마에게 가겠다는 말을 듣고 급하게 빌렸던 돈을 갚아야 되어서 30만원과 메모지에 계좌번호를 적어서 가방에 챙겨주었는데, 핸드폰과 돈을 모두 잃어버리는 일이 발생하게되었습니다. 산에서 버섯 4꼭지를 채취하고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딸아이가 아닌 함께 놀겠다고 했던 아이의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 듯 했습니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울먹이는 아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빠, 돈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해?”
“핸드폰도 잃어버려서 언니 전화기로 전화한 거구나?”
아이의 안전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당장 돈을 돌려달라는 사람에게 어떻게 사정을 이야기하지 싶기는 했지만 아이가 무사하다는 사실만으로 진정되었습니다.
“아빠?”
“잘 찾아봤니? 래은아 다시 어디에 두고 놀았는지 잘 생각해봐.”
“아빠 언니랑 둘이 다 찾아봤어. 언니 전화기는 그냥 있는데 내 전화기랑 아빠가 준 돈만 다 없어졌어… 어떻게 해야 돼?”
“큰아빠, 전데요. 래은이랑 둘이 전화기 테이블에 올려놓고 약수터에 내려갔다가 돌아오니 래은이 전화기가 없어졌어요. 금방 갔다왔는데 정말요. 그래서 둘이 계속 찾았고, 우리 큰아빠한테도 물어봤는데 거짓말 하지 말래요.”
래은이와 어울리는 아이의 큰아빠라면 당연히 함께 걱정하고 도와줄 일인데 괘심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해졌지만 제가 직접 목격하지 않았기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손버릇도 나쁘고 상종 못할 종자”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도 조용히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걱정하는 아이에게 “거짓말 하지마”라며 화를 냈다는 얘기를 듣고 확신을 가졌지만 직접 보지는 않았으니 어쩔 수 없더군요. 시간을 확인하니 버스 시간도 한참 지난 뒤였습니다. 1시간 이상을 전화기를 찾았을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래은아, 울지 말고… 아빠는 래은이가 양양에 엄마한테 놀러간다고 해서 돈을 맡겼어.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아빠가 금방 내려갈게. 여기서 부지런히 걸으면 10분 조금 더 걸릴 거야. 남설악식당 알지? 언니랑 거기로 가 있어. 어니랑 래은이 아직 점심도 안 먹었지?”
곧장 전화기를 접어 주머니에 넣고 버섯 찾는 일을 포기하고 숲에서 나와 등산로로 나섰습니다. 갚아야 될 돈을 계좌번호와 함께 아이에게 맡긴 건 계좌이체를 하려면 은행이 있는 양양읍내로 나가야 되어서였습니다. 제가 나가야 되었지만 마침 아이가 놀러가겠다며 허락해달라고 해서 맡겼던 겁니다. 그리고 언니랑 조금만 놀다가 엄마한테 가겠다는 아이와 함께 걸어서 오색에 와서 아이가 약수터로 가는 걸 확인하고 대청봉 오르는 길을 따라 산엘 올랐었는데…
계곡물 바로 옆에 약수가 솟으니 전화기를 물에 빠트릴까 싶어 전화기를 안전하게 둔다고 했겠지요. 더구나 작은 점포 뒤란에 있어 손님도 사용하지 않는 테이블에 올려놓고 약수터로 내려갔다 돌아오니 사라졌다는데, 두 개 모두 사라지지도 않고 래은이 전화기 가방만 사라졌다고 하니 마음이야 당장이라도 달려가 멱살을 잡고 족치고 싶지만 어쩌겠습니까.
식당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밖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서성거리고 있더군요. 래은이가 먼저 달려와 “아빠 미안해. 그냥 양양 가야 했는데 언니랑 잠깐만 놀고 싶어서…”라 하더군요.
“래은아 괜찮아. 엄마한테 전화기 다시 알아보라고 할게. 돈은 아빠가 다시 벌면 되지. 밥부터 먹자. 삼겹살 먹을까?”
“큰아빠 저는 괜찮아요. 래은이가 걱정해서 같이 왔어요. 저는 그냥 갈게요.”
“○○야, ○○가 미안해할 필요 없어. ○○ 잘못도 아니잖아. 래은이랑 같이 삼겹살 먹자.”
그 사건 외엔 단 한 번도 무엇을 잃어버리거나 실수를 하지 않고 자란 아이가 졸업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전날부터 심히 기분 잡쳤다는 말이 절로 튀어 나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세상 어떤 일이거나 그들에게도 분명 이유가 있고, 그러할 수밖에 없는 사연 있겠거니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그런데 졸업을 하는 아이를 둔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상하고 말았습니다.
학교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위원장을 하던 아버지에게 직접 학교의 일과 관련해서 말을 하거나 연락을 하면 되는데, 저만 주민등록을 아이들과 옮겨 관사에 가족이 학교를 다닐 동안만 거주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아내는 같은 면소재지라 하지만 교통이 불편한 장승리에 주소를 그대로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주민등록도 되어 있지 않은 아이 어머니에게 몇 번 전화를 했다는 사실을 들어 알고는 있었습니다. 대부분 저라면 들어주지 않을 부탁이었지만 모른 척 눈감아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날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래은이 졸업식에 수반을 어떻게 하냐고 전화가 왔던데…”
“누가?”
“학교라며… 작년에는 OO이 부모가 했다면서 수반을 어떻게 하냐고 전화를 했던데. 어떤 걸 해서 보내야 하지?”
“그게 뭔 소리야. 졸업생 부모에게 꽃다발도 아닌 수반을 어떻게 하냐니? 꽃을 꽂은 장식용으로 말이지? 기다려 봐.”
“학교에 전화 하지마.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방에 들어 와 다른 학교 상황을 확인 할 생각으로 몇 곳 학교 운영위원장이나 행정실장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고 했습니다. 기막힌 일이라고까지 햇습니다.
“그런 일 절대로 없습니다. 그게 뭔 말이나 됩니까?”
“정 회장님, 오늘 따님 졸업식이군요. 제가 가봐야 되는데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 선생 누군데 그렇게 이상한 짓을 한답니까?”
교장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교장도 선생님이란 말이 입에 안 붙을 정도로 “이딴 걸 그냥 사형시켜버려야 돼요. 정당해산에 그냥 의원직 상실이라니 이게 말이돼요”라며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툐에 대한 기사가 난 신물을 흔들며 거친 말을 하던 자입니다.
“래은이 아빠 정덕수입니다.”
“네, 아버님 알고 있습니다. 어쩐 일이십니까?”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어서요. 학교에서 수반을 해 오라며 작년엔 누가 했다고까지 말을 했다는데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 궁금해서요.”
펄쩍 뛰더군요. 뭔가 불안하거나 속이 타면 으레 그는 “래은이 아버님”이 아니라 “위원장님”이라 불렀습니다.
“위원장님. 그럴 일이 없는데 무슨 이야기신가요?”
“아이 졸업식에 작년엔 OO이 엄마가 수반을 해와서 졸업식장을 멋지게 꾸몄다며 아이들 엄마 일하는데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교장선생님도 알고 계시는 일인가 싶어서요?”
“래은이 아버님, 아니 위원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내일 학교에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하겠습니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무언가를 할 수는 있습니다. 초등학생이라고 그런 마음 지니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더구나 래은이라면 당연히 그런 생각도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당연히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엄마에게 선생님한테 선물을 하고 싶다며 읍내에 나가 선물도 구입해 온 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교 명의로 꽃을 꽂은 수반을 요구한다면 가격을 떠나 크게 잘못 된 일이라 봅니다. 꽃다발도 어지간하면 2~3만원은 줘야 하는데 어딘가를 장식할 수반이라니 터무니없는 요구가 아닌가 실었습니다. 그리고 나 홀로 졸업을 하는 처지가 왜 발생했는데… 그동안 학교를 살리고자 했던 마음에 찬물을 학교에서 끼얹었습니다. 래은이와 래원이가 오색초등학교에 입학을 한 이유도 아빠의 모교가 입학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가 “아빠 나도 아빠가 다닌 학교 다닐래”라 해서였습니다.
처음엔 학교에서 아이들을 국어시간에 글쓰기를 배울 기회를 주고 싶다며 “래은이 아버님께서 시인이시니 잘 되었습니다”라고 까지 했던 학교였습니다. 관서를 사용하게 된 일도 아이는 아빠가 다닌 학교를 자기도 가겠다고는 하지만 교통이 도저히 연결할 수 없는 조건이라 망설일 때 “관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래은이 오색초등학교에 입학 시켜주세요”라 먼저 나섰었습니다. 그런데 2년 뒤 관사 사용료를 달라고 해서 난리를 치렀고, 아이들 글짓기를 가르치도록 하겠다던 말은 “요즘 보조강사도 교육대는 물론이고 서울의 유명 대학교 졸업생들도 어렵습니다”란 말로 어물쩍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학교 형편이 안 되어 없으면 없는 대로 치르는 게 졸업식이고, 주인공이 졸업생인데 그 부모에게 “수반을 어떻게 하겠어요?”라며 전화를 해 대단하게 무얼 주는 양 전화를 한다는 건 정말이지 불쾌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차라리 촌지가 필요하면 촌지를 달라고 하지 말입니다.
그해 강원도내엔 졸업생이 단 한명도 없는 학교와 졸업생이 1명인 초등학교가 10곳이 훌쩍 넘어 30여 개 학교에 달했었습니다. 오죽하면 강원도의 심각한 학교현실을 방송국이 나서게 되었을까요. 강릉에서 방송국이 래은이 졸업식을 뉴스로 내보낸다고 찾아와 있을 때까지 그 문제로 전화를 했던 선생과 논쟁이 있었습니다. “래원이 아버님”이란 말이나 하지 말던지, “졸업생 부모가 그 정도는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작년에은 OO이 어머니가 수반을 해 오셔서 얼마나 좋았는데요”라 하더군요. 결국 이 문제 때문에 아내는 딸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에도 오지 않았습니다.
▲ 2015년 2월 10일 졸업한 아이들을 데리고 태안의 꽃지로 여행을 갔습니다. 다음날부터 며칠 동안 아이들은 꽃지에서 저녁 노을 속에 새우깡을 들고 갈매기를 부르거나,천리포수목원을 들려 일찍 핀 봄꽃을 보며 즐겁게 보냈습니다. 아이들은 처음본 풍년화와 설강화를 특히 신기해 했습니다.
2015년 2월에 졸업생이 없거나 1명뿐이었던 강원도의 학교들입니다.
졸업생이 없는 학교
● 홍천(주봉초등학교 와동분교)
● 정선(백전초등학교, 벽탄초등학교)
● 철원(도장초등학교)
● 인제(인제초 가리산분교, 부평초 신월분교, 서성초등학교, 월학초등학교, 한계초등학교)
● 고성(명파초등학교)
● 영월(영월초등학교 연하분교)
● 횡성(춘당초등학교)
졸업생이 1명인 학교
● 춘천(추곡초등학교)
● 원주(금대초등학교, 원주비두초등학교)
● 홍천(동창초교, 반곡초등학교, 율전초등학교)
● 삼척(오저초등학교, 소달초등학교)
● 속초양양(송포초등학교, 오색초등학교)
● 횡성(유현초등학교, 횡성초등학교 당평분교, 갑천초등학교, 안흥초등학교 덕천분교)
● 인제(기린초등학교 진동분교)
● 고성(광산초등학교 흘리분교)
● 영월(영월초등학교 연상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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