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볍기로야 저 하늘의 구름을 이르겠으나 실상 그 구름 또한 지극히 무거움을 지녔음을 어찌 미리 예측이나 할까요.
2011년 3월 아이들이 학교에 막 개학을 했을 때로 10일 이전으로 기억되는데 메시지 하나를 받았었습니다. “주재 한국총영사가 덩싱밍이란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는데 이명박 정부는 이를 감추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뭔 소린가 싶었기에 그냥 누군가 제가 당시 이명박을 2mb로 기가바이트도 못 되는 2메가바이트 수준이라며 비아냥거릴 때니 덥석 물기를 바라고 미끼를 던졌나 보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메시지는 며칠 뒤 사실로 드러납니다. 정말 놀랄 일이었지요.
일개 이름없는 블로거에 불과한 제게 엄청난 정보를 도대체 누가 줬을까 궁금했지만 그 뒤로 다시는 같은 발신자도, 또 다른 정보다 받을 기회를 영 잃어버렸던 뼈아픈 기억입니다. 하지만 당시 짧게 단신으로나마 사실임을 밝히는 기사를 확인하고 3월 10일에서야 쓴 글을 사흘 뒤인 13일에 충청투데이 편집팀이 전화로 사용하고 싶으니 허락을 해 달라고 하더군요. 뭐 저야 선선히 그러시라 했었지요. 그 덕에 또 다른 저만의 기억 하나를 다시 소환하게 되었습니다.
날아갈듯 여린 몸매 中 5대 미인 조비연
가볍기로 따진다면 영사들도 못지않아
조비연(趙飛燕)이란 중국 미인이 있습니다.
그를 일러 ‘작장중무(作掌中舞)’라 했는데, 이는 ‘가볍기 그지없어 손바닥 위에서도 춤을 출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만큼 가녀린 몸매를 소유했던 미인으로 조비연을 꼽습니다. 예로부터 전하는 중국의 5대 미녀가 있습니다.
沈魚(침어)라는 내용인 '서시의 미모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조차 잊은 채 물밑으로 가라앉았다'는 서시와, '기러기가 날래짓 하는 것조차 잊어 땅에 떨어졌다'는 落雁(낙안)의 왕소군, '달도 그 미모에 부끄러워 구름 속에 몸을 숨기게 했다'는 삼국지연의에도 나오는 閉月(폐월)의 초선이 있으며, '꽃도 그의 미모엔 스스로 고개를 숙였다'는 羞花(수화)의 양귀비도 있습니다.
이들 미인들은 중국 고대 소설에서도 다루어질 정도로 널리 알려진 미모를 자랑하는데, 사실 실존인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조비연도 이에 못지않았던 인물로 조비연을 포함해 중국의 5대 미녀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들은 미모를 이용해 스스로 이득을 보았다기 보다는 오히려 시대의 변화에 이용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 영사관직원들이 제 할 도리조차 잃어버리고, 이명박 정부가 목소리 높여 외치는 국격인 국가체면을 땅속으로 쑤셔 박게 만든 덩모 여성은 측전무후라도 되는 모양입니다. 여색을 탐한 게 아니라 측전무후는 남색을 밝혔다고 전하더군요.
어쨌거나, 이명박 정부나 재 중국총영사관이나 가볍기로 따지면 조비연 못지않습니다. 일개 여자 하나에 놀아나는 꼬라지가 말입니다.
채규엽 선생의 희망가를 이제는 다시 불러야 하는 시대인가 싶습니다. 酒色雜技(주색잡기)에 침몰하여 세상만사를 잊은 놈들이 넘치는 세상이니 말입니다.
충청투데이의 기사로 보존되어 있던 제 글을 지금 다시 가져와 살펴보니 윤석열 정권도 이명박 정권이나 참으로 많이 닮았다 싶습니다. 비굴하고 더러우며 구차한 모습 말입니다. 당시 이 사건에 대한 내용은 ‘재 중국총영사’는 물론이고 ‘이명박 정부 재 중국총영사’로 검색해도 찾기 어렵군요. 하지만 글을 쓸 때 적어두었던 메모에 “중국 상하이 주재 한국총영사관/41남자로 법무부 파견·사직/영사가 덩신밍(鄧新明·33)이란 여성과 내연관계를 형성하고 대외비를 유출한 혐의로 1월 소환돼 조사를 받았음. 그 무렵 내연관계 여인 덩씨도 중국 공안 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음. 이 내용은 한국과 중국 정부 사이에 모종의 이해타산이 맞아 교감이 있었던 모양으로 감추어져 있다가 덩의 남편의 메일로 드러나게 됨”이 있군요.
분명 이 내용이 확실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러하기에 중국의 5대 미인 중 하필이면 가볍기 그지없어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춘다는 ‘작장중무(作掌中舞)’라 불리던 조비연을 예로 들었을까 싶습니다. 양귀비와 서시를 제쳐두고 말이지요.
다만 이 부분은 잠시 풀고 가야겠군요. 효성황후 조씨인 조비연은 수려한 용모에 더해 유연한 몸매와 출중한 춤 솜씨까지 후궁들 중 그야말로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다고 합니다. 전한의 성제는 그녀를 위해 궁궐 태액지의 영주 정자에 무대를 설치했고, 조비연은 ‘귀풍송원곡’이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게 되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바람이 불며 조비연을 못 가운데로 날려 버렸다는군요. 다행스럽게 풍무방이 그의 치마를 붙잡아 구했는데 이때 치마가 찢어지게 되었고, 이 찢긴 치마가 중국의 전통 의상에 흔적으로 남아 전하기도 한다는 군요., 조비연은 그 상황에서도 춤추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임금의 손바닥위에서 춤을 췄다고 전합니다만 진실은 알길이 없고, 그 정도로 가냘프고 어여뻤다는 예기겠지요. 그 이후 ‘물 찬 제비’ 또는 ‘나는 제비’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 정말이지 가볍기로야 윤석열의 그 초라한 주장만큼 더 가벼운 게 또 있을까 싶습니다.
이 조비연을 예로 들며 글을 쓴 다음 중국의 5대 미녀들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었었는데 그 내용들은 틈틈이 소개하기로 약속하며 이 글은 여기서 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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