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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향기/시인의향기

원로 시인의 시를 선물로 받고 ‘이생진’

by 한사정덕수 2025.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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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515일 스승의 날, 완주에서 임동창 형님께서 오색을 방문하셨을 때 함께 한계리를 들렀다가 서울로 향했던 기억이 납니다. 낮에는 양양에 있던 제가 저녁에 불쑥 인사동에 나타나자, 시가연 김영희 선생께서 놀라시며 말씀하셨죠.

“정 시인, 내일 특별한 일 없으면 이생진 선생님 댁에 가는데 같이 가요.”

그렇게 저녁 늦게 다시 양양으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시가연 가족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들고 선생님 댁을 찾아뵈었고, 인사동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양양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이생진 선생님께서 양양을 방문하셨습니다. 2004년 황금찬 시인의 시비를 낙산에 세울 때 오신 이후 오랜만의 방문이었고, 이번 일정은 오롯이 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너무도 감사하면서도 몸 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선생님의 방문을 문학회 분들과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회원분들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이생진 선생님께서 양양에 오시는데 함께하실 분이 계시면 연락 주세요.”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우리가 왜 그런 일까지 챙겨야 하는데? 정 시인이 알아서 해요.”

충격적이었습니다. 양양문학회는 예총 산하의 한국문인협회 양양지부이고, 이생진 선생님께서도 특정 단체에 소속되지 않으신 분인데, 마치 비용 부담을 요구하는 것으로 오해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선배 시인의 방문을 기꺼이 맞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더욱이, 선생님께서는 남에게 부담을 지우는 걸 극도로 꺼리시는 분이십니다. 언제나 조용히 모든 비용을 직접 감당하시곤 하셨죠. 그 일을 계기로 저는 양양에서 문학을 한다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며칠 후, 현승엽 가수께서 전화를 걸어오셨습니다.

“정 시인, 우리 양양 갔을 때 해준 산나물 이야기 있잖아. 산삼 말고 또 무슨 삼이 있었지? 그리고 산나물 이름이 뭐더라… 어, 뭔데?”

저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삼은 산삼 외에도 더덕을 ‘덕삼’이라 하고, 땃두릅을 ‘천삼’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만삼이라는 것도 있는데, 점봉산에 있다고 말씀드렸었죠. 산나물은 아마 어수리를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그 다음 날, 선생님께서 제 이름을 제목으로 한 시를 지으셨다며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순간, 선생님께서 제게 건네주신 따뜻한 마음이 오래도록 가슴에 기억되리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정덕수

 

이생진

 

ㅡ한계령

 

내 육신을 벗어 놓고

꽃으로 피어 노래 부르리

아,

무량하다 생각턴 인생 찰나刹那의 꿈

칭칭 감겨 울고픈 맘 접어 두고

바람 부는 산길 넘나드는 잡초인 양

스러지리라 비감悲感 고이 접고*

 

눈알이 부리부리하다

한계령 산나물 야생화 이름을 달달 외운다

아니 짐승 날벌레까지 달달

목소리가 우렁차다

산삼 천삼 만삼하며 하는 대로 흔들리는

수염이 산삼 뿌리 같다

산삼 어수리

가는 뿌리가 흔들린다

오색약수 물소리에

옛집을 생각하며 우는 목소리로

가난한 아버지 어머니 누이동생을 생각하는데

 

비가 내린다

 

그가 내게 암초를 밝히는 붉은 등대처럼

모자를 벗고 붉은 머리 정수리를 굽어보이던 밤

그의 아픔

그의 서러움

그의 외로움을

다 읽고도 남은 것이 있어

그가 BOHEM CIGAR에 불을 붙일 때

담배 연기에서

그의 비감悲感을 마셨다

 

비가 내린다

 

* 정덕수 시집 '한계령에서'/ 가을의 정적을 깨고 피는 꽃(부분)

 

이생진 선생님께서 금요일에 다녀가시고, 오늘이 세 번째 산행이었다. 토요일에 선생님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믿고 찾아주시는 분들과의 약속을 지키려면 주말 동안 산에 올라야만 했다. 월요일엔 택배 발송을 마쳤고, 화요일은 비가 내려 쉬었다.

목요일과 금요일에도 비 예보가 있었으니, 오늘은 충분한 양을 채취해야 했다. 다행히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했지만,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다. 선생님께서 제게 보내주신 시를 받아들고는 걸음이 무거워졌다. 아직은 내가 설익은 것만 같은데, 노시인께서 제 모습을 이렇게 표현해 주셨구나 싶어 가슴이 뭉클했다.

 

눈알이 부리부리하다

한계령 산나물 야생화 이름을 달달 외운다

아니 짐승 날벌레까지 달달

목소리가 우렁차다

산삼 천삼 만삼하며 하는 대로 흔들리는

수염이 산삼 뿌리 같다

산삼 어수리

가는 뿌리가 흔들린다

오색약수 물소리에

옛집을 생각하며 우는 목소리로

가난한 아버지 어머니 누이동생을 생각하는데

 

비가 내린다

 

그가 내게 암초를 밝히는 붉은 등대처럼

모자를 벗고 붉은 머리 정수리를 굽어보이던 밤

그의 아픔

그의 서러움

그의 외로움을

다 읽고도 남은 것이 있어

그가 BOHEM CIGAR에 불을 붙일 때

담배 연기에서

그의 비감悲感을 마셨다

 

비가 내린다

 

-2021526일의 페이스북 기록.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시를 받은 날의 기억을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이날 원래는 설악산 대청봉을 거쳐 중청봉에서 짐을 채운 뒤 하산하려던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몇 사람과의 약속이 엇갈리며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양양에서 택시로 오색용소폭포로 이동했습니다. 해가 뜨고 나서야 12폭포를 지나 망대암으로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한여름처럼 몹시 더운 날이었지요.

12폭포 상단, 백두대간 능선 갈림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숲속까지 햇볕이 깊이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망대암봉을 지나 본격적으로 산나물을 채취하던 중,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시를 받았습니다. 5월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땀이 흐르고 오전 10시가 넘어선 햇볕까지 숲을 달구고 바람도 없는 그런 날씨, 그때 받은 이생진 선생님의 시 속에 담긴 따뜻한 시선과 깊은 이해가 마음에 파고들었습니다.

 

 

산의 날씨는 언제나 변덕스럽습니다. 예보가 비라고 해도 화창할 때가 있고, 맑다는 날에도 하루 종일 비를 맞기도 합니다.

택배 발송과 신선도를 유지해야 하는 산나물의 특성상, 될 수 있으면 금요일과 토요일은 휴식을 취하고, 일요일부터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등산객이 집중적으로 몰리는 연휴나, 주말이라면 최대한 그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는 일정을 준비합니다.

산에서 나는 나물은 인공 재배한 것과 다릅니다. 밭에서 기른 나물은 당일 발송해야 좋지만, 야생 산나물은 저온에서 하루 정도 보관했을 때 본연의 맛과 향이 더 살아납니다. 산에서 채취한 산나물을 그늘에서 적당히 숨을 죽게 한 다음 마지막에 배낭을 꾸리지만, 하산길에 산나물을 스스로 생존본능을 발동하게 됩니다. 그러하기에 당일 배송이 불가능한 경우 하루 정도는 서늘한 밖에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새벽 일찍 포장을 하지 못한다면 애초 저온저장고에 보관을 해 숨을 쉬지만 햇볕엔 노출되지 않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언젠가 200이상의 저온 저장고가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4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는 산나물 채취의 절정기인데 이 시기엔 거의 매일 산엘 오릅니다. 하지만 어느 날은 주문에 비해 채취한 양이 부족하고, 어떤 경우엔 산나물이 남아 돌 정도가 되니 넉넉한 용량의 저온저장고 하나 있었으면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하기에 5월은 유독 일정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대부분 산엘 오르고, 택배를 발송하기 어려운 날에 휴식을 취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산에 오르지 않는 날이 곧 휴식인 건 아닙니다.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저는 계류를 따라 걸으며 낚시를 합니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길을 따라 걷다 보면, 뭉친 근육이 풀리고 마음도 한결 가벼워집니다.

하지만 그날은 산길을 내려오면서도 마음이 자꾸만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시로 향했습니다. 어쩌면, 선생님께서 제게 보내신 시 한 편이 한 계절을 지나가는 힘이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한계령과 주전골이 조망되는 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위의 글을 적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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