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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향기

바람에 실려 올 그리움과 쓸쓸함…

by 한사정덕수 2025.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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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Titanic)은 단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침몰선이라 할 수 있으며 사고로부터 10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까지도 모르는 사람이 없고,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대중매체 등에서 많이 다뤄지지만 사실 많은 인명사고가 난 순위로는 7위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유명하게 되고 회자되는 이유는 대영제국의 배였고 기록이 상세하게 남아 있어서기도 합니다.

 

타이나닉호엔 세계적인 부자와 명사 및 귀족들이 탑승해 있었는데 이들 상당수가 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특히 탑승객 중 존 제이콥 애스터 4( John Jacob Astor IV, 1864713~1912415)’는 애스터 가문의 일원이자 세계적인 부호로 이 사람만 죽었어도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릴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메이시스 백화점(Macy's)의 공동 소유주였던 이시도르 스트라우스(Isidor Straus, 184516~1912415)과 그의 아내 로잘리 아이다 스트라우스(Rosalie Ida Straus, 184916~1912415)부부, 구겐하임 가문의 일원 중 하나인 철강왕 벤저민 구겐하임(Benjamin Guggenheim, 18651026~ 1912415)이나 귀족도 있고 심지어 선장 에드워드 존 스미스(영어: Edward John Smith, 1850127~ 1912415)도 유명한 영국의 선장이어서입니다.

 

1997년 개봉된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한 영화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케이트 윈슬렛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로멘스 멜로와 재난, 그리고 비극적인 스릴러로 그려집니다. 영화만큼이나 제임스 로이 호너(James Roy Honer)’가 곡을 쓰고 셀린 디용(Céline Marie Claudette Dion : 셀린 마리 클로데트 디옹)’이 부른 ‘My Heart Will Go On’도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악인데 셀린 디용이 원해서 부른 곡은 아니며, 정확히는 그냥 데모용으로 한번 불러주자정도로 리테이크 없이 한 번에 녹음을 끝냈다고 합니다.

 

셀린 디옹의 정규 앨범에 실린 것은 OST 버전과 다르게 재녹음한 것이라고 하니 우리가 아는 타이타닉 영화의 ‘My Heart Will Go On’은 셀린 디용의 정식 앨범에 다시 녹음을 한 곡이죠. 오카리나 연주곡으로 사명과 함께 많이 선택되어 연주됩니다. 유튜브 큐리뮤직tv’의 김규리 오카리나 연주로 들어보겠습니다.


봄은 남녘에서부터 올라오고 가을은 북쪽에서부터 찾아오지만 우리에겐 언제나 계절은 가슴 저 밑 아련한 그리움으로부터 시작될 겁니다. 사람들에게 가을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단어가 무엇이냐 물어 보았었습니다. ‘갈대, 코스모스, 하늘, , 쓸쓸함, 음악, 연주, 독서, 낙엽, 단풍여리고 애조를 띤 가락과 같은 단어들을 가장 우선적으로 이야기들을 하더군요.

▲ 4월의 설악은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풍경을 수시로 보여줍니다.

 

그런 이미지적인 단어들로 다시 연상되는 건 아련한 슬픔이요, 전혀 더럽지 않은 고운 때 절은 그리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의 영혼은 무한의 공간이라 봅니다. 그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는 심미적이며 이상적인 모양으로 전개되어 미려하기 그지없는 미학적 공간구성일 수도 있겠지만, 언어나 문자로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블랙홀처럼 엄청난 에너지의 소용돌이도 공존합니다. 그러한 세상의 어떤 사물보다 복잡하고 미묘한 마음(영혼)이라는 이름의 복합적인 공간에 이젠 가을이라는 계절에 실려 올 그리움과 쓸쓸함, 서글픔 같은 애상적인 상념이 틈을 비집고 공존하고자 하죠.

 

이런 마음속 서러운 상념들을 달래는 방법으로 우린 곧잘 문화행사가 펼쳐지는 공간을 찾게 됩니다. 다양한 음악회와 시인들이 나서는 문학과의 만남의 장들이 도처에서 펼쳐 질 시기가 이제 서서히 다가오게 되는데, 미리 그런 공간을 찾아 그저 팸플릿에 소개 된 작은 조각 상식만으로 만족하기보다 먼저 다양한 악기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익혀두는 것도 좋으리란 생각에서 어제 첫 편으로 선보인 영혼을 울리는 악기 퀘나이야기에 이어 오늘 두 번째로 요즘 많은 이들이 직접 배우고 연주도 하는 오카리나(Ocarina)'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합니다.

▲ 2006년 가을에 처음 썼던 <바람에 실려 올 그리움과 쓸쓸함 그리고 오카리나 이야기>는 마름디자인의 오카리나와 퀘나 제작과정부터 모두 살펴보고, 오카리나도 하나 선물로 받아 썼습니다. 제가 마름디자인으로부터 선물로 받았던 오카리나는 팬 플루트 연주자로 활동하시는 성대현 선생님께 선물했는데, 이 분은 다시 이 오카리나를 팬 플루트의 본고장에 가서 흑단으로 제작된 마름디자인의 오카리나를 보고 놀라워하는 팬 플루트 장인에게 주고 대신에 탐나는 팬 플루트를 가져오셨다고 합니다.

 

오카리나가 우리나라에 급격하게 보급된 것은 일본의 노무라 소지로 (野村宗次郞, Sojiro Nomura)’가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되었던 ‘NHK의 다큐멘터리 대황하에서 배경음악으로 직접 연주하고 음악감독까지 맡아 알려지게 된 것으로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그 이전부터 오카리나는 들어와 있었고 극소수의 마니아들에 의하여 직접 흙을 빚어 오카리나를 제작하고자 시도되고는 있었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도자기를 빚을 줄 아는 민족은 어느 나라나 대부분 오카리나와 닮은 악기들을 오래전부터 사용하여 왔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된 오카리나의 원형으로 발굴 된 것은 잉카유적지에서 발굴 된 거북모양의 오카리나입니다.

 

폐관악기인 오카리나가 초기 단음만 내던 것에서 발전하여 현재와 같은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악기의 형태로 정착하게 되고 지금의 이름인 오카리나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은 150 여 년 전 이탈리아의 부드리오 지방의 장인 주세페 도나티에 의해서입니다.

1853, 17세였던 도나티(Giuseppe Donati : 1836~1925)는 생계를 위해 벽돌을 만들었고, 취미생활로 새 모양으로 흙으로 빚은 피리를 불었습니다. 그는 그 피리를 벽돌과 함께 구워서 그의 고향인 부드리오(Budrio)에서 일요일마다 열리는 장에 내다 팔았다고 합니다. 도나티는 유머가 있고 사람과 비교적 잘 어울리는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하며, 또한 좋은 연주자였나 봅니다. 이런 그의 성격이 피리를 만들 때마다 새로운 모양과 다른 숫자의 손가락 구멍을 가진 피리를 시도하게 만들었답니다. 도나티는 그의 피리들을 작은 거위혹은 오카리나라고 불렀고 그게 지금의 이름으로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도나티는 지금까지의 랭글러식에서 발달한 그의 새로운 악기에 이름을 부여한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그의 고향지역에서 기록으로 보존되어 전하는군요.

 

Il 2 dicembre 1836 nasce a Budrio Giuseppe Donati, inventore dell'ocarina. Donati era un musicista e suonava il clarino nella banda cittadina e l'organo nelle chiese. L'ocarina nacque da uno scherzo: il diciassettenne budriese pensò a uno strumento musicale simile alle ocarine di terra cotta che si vendono ancora nelle fiere, con becco, coda e panciute. Nella prima versione si poteva eseguire qualche facile melodia, contenuta però nell'estensione di un'ottava. In un secondo tempo, tolti imboccatura e la canna conduttrice del fiato, Donati arrivò alla forma definitiva, come la conosciamo noi ora. Ne fabbricò altre con buchi per tutte le dieci dita in posizioni comode. Il successo giunse rapidamente: realizzate cinque ocarine il giovane inventore formò un gruppo di appassionati musicanti, il "Concerto delle ocarine". Prima si esibirono nelle osterie e nelle case locali, poi furono invitati nei teatri: Molinella e Bologna (il Brunetti). Seguirono Ferrara, Padova, Trieste e Roma.   Link: L'ocarina di Budrio Foto: Giuseppe Donati in una foto del 1909 (prop. Archivio Montanari-Pazzaglia)

 

번역을 하면 다음 같은 내용입니다.

 

오카리나를 발명한 주세페 도나티는 1836년 12월 2일에 부드리오에서 태어났습니다. 도나티는 음악가였으며 마을 밴드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했고 교회에서는 오르간을 연주했습니다. 오카리나는 농담에서 탄생했습니다. 부드리오 출신의 17세 소년이 박람회에서 여전히 판매되는 테라코타 오카리나와 비슷한 부리, 꼬리, 배가 불룩 나온 악기를 생각해냈습니다. 첫 번째 버전에서는 몇 가지 쉬운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범위가 한 옥타브로 제한되었습니다. 나중에 도나티는 마우스피스와 호흡관을 제거한 후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최종 형태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열 손가락이 모두 편안한 위치에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있는 손가락 받침대도 만들었습니다. 성공은 빠르게 찾아왔습니다. 오카리나 5개를 만든 후, 이 젊은 발명가는 열정적인 음악가들로 구성된 그룹인 "오카리나 콘서트"를 결성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지역 선술집과 집에서 공연을 했고, 그다음에는 몰리넬라와 볼로냐(브루네티) 극장에 초대되었습니다. 그 뒤를 페라라, 파도바, 트리에스테, 로마가 이어졌습니다. 링크: 부드리오의 오카리나 사진: 1909년 사진 속의 주세페 도나티(prop. Montanari-Pazzaglia Archive)

 

위의 내용은 좀 더 확실하게 오카리나의 역사에 대해 정립하고자 노력하던 중에 찾게 되었습니다. 다시 이전에 제가 오카리나의 역사까지는 완전하게 알지는 못하였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썼던 내을을 그대로 다시 옮겨봅니다.

▲ 2006년 마름디자인은 오카리나와 퀘나란 그들로서는 생경스러운 악기제작을 시작해 성공적인 상품을 선보였습니다.

 

그 후, 많은 실험과 새 악기를 사용해 음악을 하게 되고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감에 따라 도나티는 남은 일생 동안 오카리나 제작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도나티는 1870년대에 독일 시장을 겨냥한 수출 모델을 만들어 음악의 고장으로 자신의 오카리나를 선보입니다. 도나티는 오카리나 제작에 틀을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공예에서 느낄 수 있는 들쭉날쭉한 수제품의 거친 느낌을 그가 제작한 오카리나의 표면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이후 세계의 많은 장인들이 자신들의 오카리나를 제작하면서 도나티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참조하여 만들었습니다. 부드리오의 오카리나 장인들과 연주자들은 오카리나의 아름다운 소리를 세계에 널리 퍼뜨렸습니다. ‘실베스트리(Sylvestri)’피엔(Fiehn)’이 오카리나의 발명가로 알려져 있지만 도나티야 말로 오카리나의 진정한 발명가인 것이지요.

 

이쯤에서 오카리나의 발전과정이나 역사에 대하여서는 다음 기회에 다시 한 번 살펴보기로 하고 다시 우리에게 익숙한 현장에서 만나는 오카리나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오카리나를 연주하는 이들이나 공부를 하는 이들 모두 익숙한 곡 중 하나가 ‘A-moll'이란 곡일 겁니다. 이 곡 또한 소지로가 일본 야쿠시마의 숲을 테마로 작곡하고 연주한 곡으로, 그의 작품 10곡을 실어 19979월에 발매한 앨범 사랑스러운 숲(しの) A-moll의 타이틀곡입니다. 이 앨범을 발매당시 소지로가 앨범 해설서에 다음과 같이 제작 배경에 대해 밝히고 있는데 소하겠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기분 좋은 울림을 주는 소리는 ‘가단조(a-moll)’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다나 숲 속에서도 동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야쿠시마의 숲과 맨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맑은 기운은 바로 ‘가단조’의 느낌이었습니다. 수많은 나무들이 수천 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삶을 가꾸어 온 숲이기에 당연한 것이겠지요. 그곳에서 함께 살아온 사람들은 나무들과 영혼의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앨범을 원시의 숲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들에게 바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는군요.」

▲ 연어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이들을 가을이면 만날 수 있는 양양의 남대천 하구 기수지역입니다.

 

가단조!

 

가을의 느낌이 그렇습니다. 가을을 부르는 바람이 자연과 더불어 내는 소리와 모습이 바로 소지로가 야쿠시마의 숲에서 느낀 감동과 같이 그렇게, 진한 감동으로 우리에게 가장 기분 좋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오카리나의 운지법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이 좋겠군요. 그 이전에 자료를 빌려 준 ‘()마름디자인에서 제작한 오카리나에 대하여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오카리나는 흙피리로 알려져 있듯, 많은 제작자들이 흙으로 빚어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름디자인(Mareum design)에서는 흙으로만 오카리나를 제작하지 않고 가링이나 느티나무(괴목)’흑단등 강한 재질의 목제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폐관악기의 특성상 미리 주어진 정확한 데이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작년(2006) 마름디자인을 방문하였을 때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섬세하고 복잡한 가공과정을 거쳐 소리를 내는 악기로 변신한 마름오카리나는 외장의 미려함도 미려함이지만, 낮은 음부에서부터 높은 음 까지 비교적 편안하면서도 정확하게 음을 만들어 냅니다.

 

시판되고 있는 대부분의 오카리나를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것을 보면 높은 음으로 올라가면서 비틀어 꺾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이유는 완벽한 음을 낼 수 없는 까닭에서 오는 것으로 스스로의 호흡량을 조절하기 위하여 취구부를 입술과의 간격을 변경시키는 것입니다.

 

다양한 오카리나가 있고, 위에 소개를 한 이탈리아의 부드리오 지역의 오카리나도 국내에 수입되어 시판됩니다. 소지로가 사용한 오카리나가 고가에 국내에 경매가 되기도 하지만, 연주자에 따라 얼마간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제가 본 입장에서는 마름디자인의 오카리나만큼 정확하고 모든 악기가 같은 음을 내는 경우는 없는 듯합니다.

 

오카리나는 호흡의 여유치를 얼마나 지니고 있으며 같은 호흡량으로 연주가 가능하냐에 따라 연주를 듣는 이가 느끼는 감동이 달라집니다. 프로 연주자들이 복식호흡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충분한 여유치의 호흡량을 늘 갖추기 위한 것과 같은 이유지요.

▲ 2007년 3월 마름디자인의 장준호 대표는 마포구 만리동에서 작은 봉재공장을 운영하던 제게 퀘나를 안전하게 소지할 수 있는 주머니를 제작하자며 찾아왔습니다. 그때 이 가오리가죽과 똑같은 인조피혁을 선택해 작업을 했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마름디자인의 퀘나와 함께 마름디자인의 오카리나 이야기도 각각 <영혼을 울리는 악기 퀘나(Quena )’ 이야기><바람에 실려 올 그리움과 쓸쓸함 그리고 오카리나 이야기>란 제목으로 2006년 가을에 먼저 썼습니다. 그리고 20077월 다음(daum.net)에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을 시작하면서 약간의 수정을 해 옮겨 소개한 것입니다.

 

마름디자인에서는 장준호 대표께서 20073월 마포구 만리동에 있던 제 작은 봉재공장에 마름디자인의 퀘나를 포장하기도 하고, 사용자가 일상적으로 안전하게 퀘나를 소지하고 다닐 수 있는 케이스를 제작하고자 찾아오게 됩니다. 저는 장준호 마름디자인 대표와 함께 동대문종합상가로 나갔습니다.

 

주머니 형태로 제작할 소재로 처음엔 가죽을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장준호 대표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찾아왔던 것이고요. 저는 그때 이미 마름오카리나를 연주자들이 편하게 소지하고 다닐 수 있는 목걸이형 주머니를 제작해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오카리나는 수시로 꺼내고 넣어야 되기도 하지만, 연주자가 곡에 따라 두 개 이상의 오카리나를 동시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퀘나는 하나만 연주자가 가지고 다녀도 되기에 주머니를 제작하는 방법을 달리해야 되었습니다. 악기의 형태도 다르기도 했으니 그런 부분도 충분히 감안한 디자인을 구상해야 되었지요.

 

문득 스크래치가 심하게 발생하는 가죽보다는 인조피혁 중에서 가죽 이상으로 질기고 스크래치에도 강한 소재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준호 대표도 얘기를 듣고 , 정 시인님 좋은 생각이십니다. 마침 얼마 전 다녀가실 때 보셨던 그 자동차 디자인에 사용할 다양한 가죽 질감의 소재를 찾아야 됩니다. 잘 아시는데 있으면 가시죠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동대문종합시장 1층의 모전교 방향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몇 종류를 살펴보던 중 눈길을 확 끄는 인조피혁이 있었습니다. 장준호 대표도 만족스러워하시더군요. 짙은 그레이 컬러도 상당히 고급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문제는 워낙 질겨서 재단작업이 여러 겹을 겹쳐놓고는 할 수 없다는 겁니다. 더구나 인조가오리피혁을 깨끗하게 잘라도 단면에 엣지코트를 몇 번 바르는 작업도 해야 되고, 마름디자인의 로고를 자수로는 놓기 어렵단 단점이 있었습니다. “정 시인님 재단은 가능한가요?”라 장준호 대표가 물었습니다. 재단은 문제가 없다고 대답하고 1야드를 구입해 돌아왔습니다.

▲ 반달형 칼은 바이어스를 여러 겹 겹쳐서 일정하게 자를 때 사용합니다. 노란 손잡이의 원형 날이 일정하게 재단을 할 수 있는 롤러커터로 두껍고 질긴 인조피혁을 깔끔하게 자르는데 유용하더군요.

 

수제화를 만드는 제화점에서 사용하는 구두칼부터 예리한 커터칼도 있지만, 그보다 더 좋은 롤러커터가 있었습니다. 이 롤러커터는 당시엔 수입만 있을 때라 가격도 상당히 비쌌지만 날이 조금만 무뎌져도 곧장 교체할 수 있었고, 날이 예리해서 섬세한 재단작업에 접합했습니다. 더구나 직선으로 재단하고 한쪽 면만 하트형으로 중심부로 둥글게 돌려 자르고 그 중심에서 30를 더 자로 깔끔하게 칼집을 내듯 깊게 자르기만 하면 되는 재단엔 최적의 도구였습니다.

 

마름디자인의 장준호 대표는 재단과정에서부터 길게 자른 인조피혁을 반으로 접어 깔끔하게 봉제작업을 하는 전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고 만족스럽게 완성된 견본을 갖고 돌아갔습니다.

 

그 뒤에 마름디자인의 오카리나와 퀘나를 홍보하기 위해 디자인한 이미지를 부탁해 글을 완성하게 되었는데 마름디자인도 이 글을 홍보에 적절하게 이용하게 되어 지금 다시 글을 가져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CNC가공기란 기계를 처음 본 것도 마름디자인에서였습니다. 외부인들은 철저하게 출입제한을 받는 디자인업체의 사무실과 작업실을, 그것도 외부에 드러나면 안 되는 최신형 자동차디자인을 하는 도중에 세세하게 둘러 볼 기회를 얻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오카리나란 악기에서 시작해 음악과 봉재까지 얼버무려진 잡탕이 되었지만 분명히 오카리나 이야기 맞습니다. 아래 소개한 운지법을 보시며 충분하게 각 음을 연습하고 나면 시판되는 대부분의 오카리나를 연주 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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