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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좋은집/메밀꽃향기

옛 처녀 만나듯 만나는 메밀국수

by 한사정덕수 2025.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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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을 목전에 두어야 겨울다운 모습을 만나게 되는 양양은 춘천이나 평창만큼 오래전부터 메밀로 국수를 만들어 먹던 고장이다.

 

설을 목전에 두었으니 이제부터 이곳 양양지역은 눈이 내리기 시작할 때입니다. 계절이 계절인 만큼 예전엔 겨울에야 본격적으로 즐기던 메밀국수(막국수)에 대해 얘기를 풀어보겠습니다.

 

막국수의 주재료인 메밀에 대해 빠트릴 수는 없는 일이고, 메밀하면 가산 이효석(1907223일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 196번지 출생, 1942525일 평안남도 평양부 기림정(평양시 모란봉구역 개선동) 자택에서 35세의 나이에 결핵성 뇌수막염으로 사망)의 메밀꽃 필 무렵(1936조광(朝光)지에 발표된 단편소설) 한 구절 정도는 음미하고 넘어가야겠지요.

“달밤이었으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 없어.”
허생원은 오늘밤도 또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조선달은 친구가 된 이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렇다고 싫증을 낼 수도 없었으나 허생원은 시치미를 떼고 되풀이할 대로는 되풀이하고야 말았다.
“달밤에는 그런 이야기가 격에 맞거든.”
조선달 편을 바라는 보았으나 물론 미안해서가 아니라 달빛에 감동하여서였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선 허생원의 이야기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적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멋에 적적하지는 않았다.
“장 선 꼭 이런 날 밤이었네. 객줏집 토방이란 무더워서 잠이 들어야지. 밤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지.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나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거기서 난데없는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단 말이네. 봉평서야 제일가는 일색이었지……”
“팔자에 있었나부지.”
아무렴 하고 응답하면서 말머리를 아끼는 듯이 한참이나 담배를 빨 뿐이었다. 구수한 자줏빛 연기가 밤기운 속에 흘러서는 녹았다.
“날 기다린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달리 기다리는 놈팽이가 있는 것두 아니었네. 처녀는 울고 있단 말야. 짐작은 대고 있으나 성서방네는 한창 어려워서 들고날 판인 때였지. 한집안 일이니 딸에겐들 걱정이 없을 리 있겠나? 좋은 데만 있으면 시집도 보내련만 시집은 죽어도 싫다지…… 그러나 처녀란 울 때같이 정을 끄는 때가 있을까. 처음에는 놀라기도 한 눈치였으나 걱정 있을 때는 누그러지기도 쉬운 듯해서 이럭저럭 이야기가 되었네…… 생각하면 무섭고도 기막힌 밤이었어.”
“제천인지로 줄행랑을 놓은 건 그 다음날이렷다.”
“다음 장도막에는 벌써 온 집안이 사라진 뒤였네. 장판은 소문에 발끈 뒤집혀 고작해야 술집에 팔려가기가 상수라고 처녀의 뒷공론이 자자들 하단 말이야. 제천 장판을 몇 번이나 뒤졌겠나. 허나 처녀의 꼴은 꿩궈먹은 자리야. 첫날밤이 마지막 밤이었지. 그때부터 봉평이 마음에 든 것이 반평생을 두고 다니게 되었네. 반평생인들 잊을 수 있겠나.”
“수 좋았지. 그렇게 신통한 일이란 쉽지 않어. 항용 못난 것 얻어 새끼 낳고, 걱정 늘고 생각만 해두 진저리가 나지…… 그러나 늙으막바지까지 장돌뱅이로 지내기도 힘드는 노릇 아닌가? 난 가을까지만 하구 이 생계와두 하직하려네. 대화쯤에 조그만 전방이나 하나 벌리구 식구들을 부르겠어. 사시장천 뚜벅뚜벅 걷기란 여간이래야지.”
“옛 처녀나 만나면 같이나 살까…… 난 거꾸러질 때까지 이 길 걷고 저 달 볼 테야.”
산길을 벗어나니 큰길로 틔어졌다. 꽁무니의 동이도 앞으로 나서 나귀들은 가로 늘어섰다.

 

평생 잊지 못할 유일한 첫날밤을 맺은 성처녀가 사라진 고장을 떠나지 못하고 평생을 장돌뱅이로 도는 허생원의 옛 처녀나 만나면 같이나 살까…… 난 거꾸러질 때까지 이 길 걷고 저 달 볼 테야.란 다짐은 슬프면서도 정말 아름다운 순애보입니다.

▲ 가산 이효석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은 가끔 펼쳐 보는 책이다.

 

다시 읽어도 순박하고 살뜰한 메밀꽃 핀 보름달밤에 그려지기에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요즘 시기가 예전이라면 막국수를 뽑는 주요 재료인 메밀을 수확해 저장해 두었기도 하지만 농한기라 누구나 어느 집에서 모이자 하면 서슴없이 낮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기대 가득 찬 눈빛으로 나서던 때입니다. 산촌에서 겨울나기는 그렇게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모여 떡이나 술을 내어 나누기도 하지만, 막국수를 내려 말아 먹을 동치미나 김장이 제대로 땅속에 묻어둔 항아리에서 익었으니 메밀이 없으면 밀가루라도 반죽을 해 칼국수를 끓여 나누었습니다.

 

요즘이야 철을 안 가리고 언제든 동치미국물에 메밀가루를 반죽해 막 뽑아낸 막국수를 즐기게 되었지만, 그래도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볼 때 여럿이 어울려 추렴이라 하던 나누어 즐기기 좋은 철이기도 하니 몇 회에 거쳐 막국수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겠습니다. 막국수 하나로 몇 회에 거쳐 얘기를 풀어놓을 수 있느냐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제사를 지내는 방법 하나를 보더라도 지역에 따라 상차림이 다르고, 가문에 따라 제사양식이 다르듯 막국수도 음식점에 따라 차이가 크게 납니다. 뭐든 알고 나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법이기도 하지요.

 

냉면처럼 막국수도 물막국수와 비빔막국수로 나뉩니다. 물막국수는 돼지고기나 닭고기, 또는 달이나 돼지, 소의 뼈를 삶은 육수로 말아내기도 하고, 동치미국물로 말아 내기도 합니다. 더러 비빔막국수와 같은 상태로 제공하고 손님이 원하는 만큼 직접 육수를 부어 먹을 수 있게 하는 음식점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비빔막국수와 함께 나오는 국물을 붓는 양에 따라 비빔막국수와 물막국수로 나뉘기도 하지요. 이런 막국수집은 대체로 양념장이 메밀국수위에 얹힌 상태로 상에 오릅니다. 저는 이 양념장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데 과하게 달아서입니다.

 

비빔막국수도 다시 일반적인 양념장만 넣고 비비느냐와 회(대체로 황태채를 고추장으로 버무려 무침)를 넣고 비벼먹느냐로 나뉩니다. 저는 가끔 황태채무침으로 소주를 마실 때도 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삶아 찬물에 행궈 건진 메밀국수에 넣어 먹는 재료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지닌 음식이 막국수죠. 그렇게 새로운 막국수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계란과 편육 한 조각에 김과 들깨가루를 얹고 채 썬 오이를 곁들인 막국수집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구운 김을 가루로 만들어 듬뿍 넣은 곳도 있고요. 양념장을 어떻게 만들었는가도 다르고, 메밀가루로만 반죽을 하느냐와 전분을 배합하느냐도 각각 다르단 사실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아두면 좋을 내용입니다.

 

"냉면으로 하겠어요? 아니면 막국수로 하실래요"라고 누군가 물으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막국수요"라고 대답합니다. 특별히 면 음식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추운 겨울 콧등이 얼얼할 정도로 차가운 동치미에 만 막국수 한 그릇 먹고 뜨거운 아랫목을 파고들던 추억만큼은 잊을 수 없어서입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점봉산과 대청봉을 가장 빠르게 오를 수 있는 오색약수가 있는 오색리입니다. 오색약수와 오색온천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마을이지요. 자연히 산나물이 주요 먹거리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 입지조건을 지녔고, 산채음식이 유명한 음식점들이 많은 마을입니다. 그런 오색약수 인근에서 1970년대 이전부터 막국수를 주요 음식으로 영업하는 식당이 세 곳 있었습니다.

 

간판을 걸지 않고도 영업을 하던 시절이라 가정집에서도 가마솥과 국수를 뽑는 분틀만 있으면 언제든 막국수를 눌렀습니다. 2인분이든 3인분이든, 또는 20인분이든 즉석에서 메밀가루를 반죽해 물이 설설 끓는 가마솥에 걸친 분틀에 넣고 장정 두세 명이 누르면 메밀 고유의 색을 지닌 국수가 뽑아졌습니다. 그 풍경은 각별하게 기억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이 기회에 어느 시기부터 막국수를 양양지역에서 먹기 시작했으며, 막국수를 먹을 때 김가루는 왜 넣는지 등을 알아보기로 합니다. 계절의 변화를 이해했던 저의 초등학교 입학 즈음(1970년대 초)을 중심으로 기억을 더듬어보기로 다음 편을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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