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향기/시인의향기

망해사(望海寺)에서 처용가를 ‘구경영 낭송’

한사정덕수 2025. 2. 2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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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하나씩 정리하며 쓰다 보니 줄줄이 사탕처럼 꼬리를 물고 이전에 썼던 글들이 하나씩 꿰어져 나옵니다. 누군 생일이라고 오만원권 지폐가 평생 끊이지 않고 나올 거 같은 케이크를 선물로 받아 자랑하던데… 저는 왜 이렇게 손가락 고생하는 일만 줄줄이 꿰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을사업을 추진하며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수자격증을 어떻게든 챙겨야 되었기에 주민들을 대상으로 신청자를 받았지만 턱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을일을 챙겨야 하는 총무로서 자진해서 강원미래농업교육원에서 진행하는 교육을 6개나 받고 이수증을 취득해 절반 가까운 요건을 혼자 해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풀다가 동영상 교육도 이수했다는 사실과, 몇 개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둔 걸 기억해냈습니다. 거기 시낭송 영상이 있는데 그중 하나입니다. 울산에 사는 구경영이란 시낭송가인데 정말 마음이 움직이게 감동을 전달합니다.

처용설화를 통해 만나는 망해사를 김태수 시인은 아래와 같이 공업도시와 미국자리콩에까지 침범당한 아픔을 노래했습니다. 처용 자체가 아랍에서 들어 온 귀화인이었으나 상당한 미모의 아내와 정착해 살아가던 중, 장안의 어느 곳에선가 놀다 집에 돌아가 보니 아내가 남모를 사내와 한 이불 속에서 정을 통하고 있는 걸 목격하게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삼국유사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東京明期月良(동경명기월량) : 동경(東京) 밝은 달에
夜入伊游行如可(야입이유행여가) : 밤들어 노닐다가
入良沙寢矣見昆(입양사침의견곤) : 들어와 자리를 보니,
脚鳥伊四是良羅(각조이사시양) : 다리 가랑이 넷일러라.
二肹隱吾下於叱古(이힐은오하어질고) : 둘은 내해이고,
二肹隱誰支下焉古(이힐은수지하언고) : 둘은 뉘해인고.
本矣吾下是如馬於隱(본의오하시여마어은) : 본디 내해지만,
奪叱良乙何如爲理古(탈질양을하여위리고) : 빼앗겼으니 어찌할꼬
 
時神現形(시신현형) : 그때 역신이 본래의 모양을 나타내어
跪於前曰(궤어전왈) : 처용의 앞에 꿇어앉아 말했다.
吾羨公之妻(오선공지처) :"내가 공의 아내를 사모하여
今犯之矣(금범지의) : 이제 잘못을 저질렀으나
公不見怒(공불현노) : 공은 노여워하지 않으니
感而美之(감이미지) : 감동하여 아름답게 여기는 바입니다.
誓今已後(서금이후) : 맹세코 이제부터는
見畵公之形容(견화공지형용) : 공의 모양을 그린 것만 보아도
不入其門矣(불입기문의) :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
因此(인차) : 이 일로 인해서
國人門巾占處容之形(국인문건점처용지형) :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형상을 문에 그려 붙여서
以僻邪進慶(이벽사진경) : 사귀(邪鬼)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들이게 되었다.
 
王旣還(왕기환) : 왕은 서울로 돌아오자
乃卜靈鷲山東麓勝地(내복령취산동록승지) : 이내 영취산(靈鷲山) 동쪽 기슭의 경치 좋은 곳을 가려서
置寺(치사) : 절을 세우고
曰望海寺(왈망해사) : 이름을 망해사(望海寺)라 했다.
亦名新房寺(역명신방사) : 또는 이 절을 신방사(新房寺)라 했으니
乃爲龍而置也(내위룡이치야) : 이것은 용을 위해서 세운 것이다.
 
-삼국유사의 처용가에 대한 내용

 

아내와 통정을 한 사내는 실상은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었던 것입니다.

 

이 삼국유사의 처용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이해하지 않으면, 바람난 아내를 보고도 저 홀로 탄식이나 하는 못난 사내 정도로 처용에 대해 판단의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구경영 시낭송가의 목소리로 김태수 시인의 ‘망해사(望海寺)에서 처용가를’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 시와 제목은 낭송을 할 때 김태수 시인이 구경영 시낭송가에게 낭송하기 좋게 고쳐 보냈던 것 같습니다. 제목부터 ‘망해사에서 부르는 처용가’로 되어 있고, 시의 본문도 몇 곳 다르게 낭송되어지는데 이 부분은 첫 머리에서는 원형 그대로의 시를 소개하고, 자막엔 낭송되어지는 그대로를 실었습니다.

 

망해사(望海寺)에서 처용가를 / 김태수

 

울산 망해사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이따금 바람 몇 바다 쪽에서 와서는

잠시 머물다 옹아리 한 타래 풀어놓고는

대웅전을 한 바퀴 돌아 나간다 무심코

푸른 솔바람과 몸 섞고 바다로 간다

 

아직도 동해 바다를 희망이라고 했는가

보지 않아도 안다 적조와 폐유 뒤엉켜 누운 바다

검붉게 시든 돌미역과 이름 모를 바다풀을

아직도 닦아내고 있을 늙은 어부의

굵은 눈 주름을 타고 눈물이 흐를 것이다

 

그 옛날 아련했을 안개와 구름은 어디 갔을까

처용이여 그대의 땅은 온통 공장 굴뚝만 무성하고

매운 연기 지천에 가득하다 병든 들판은 불임 중

저녁답 소슬바람에도 눈을 감는다

미국자리공의 붉은 대궁에 황혼이 내린다

 

그래, 서울 밝은 달에 밤새도록 노닐다가

돌아와 잠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 것인가

본래 내 것이지만은 빼앗긴 것은 어찌할거나

 

망해사에서는 끝끝내 바다를 볼 수 없다.

 

사흘간 강원미래농업교육원에서 동영상 교육을 받은 경험을 살려 그 직후 사진들을 이용해 제작한 동영상입니다. 이제 가끔 이렇게 동영상을 다시 만들어봐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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