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사업을 추진하며 받은 정보화교육
2014년 11월과 12월에 강원미래농업교육원에서 ‘파워포인트’ 교육과 ‘동영상 제작과 유튜브 활용법’에 대해 연속으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미 4월에 ‘산채작목반’에 대한 교육과 10월의 마을리더 교육 등 4회에 거쳐 다녀간 경험이 있어 교육원의 환경도 익숙했고, 파워포인트와 동영상 제작은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양양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일정을 알려줄 때 망설이지 않고 참석하겠다고 했습니다.
교육을 받으러갔는데 파워포인트를 3일내 완전히 학습하기란 어차피 그른 일이지만 최소한 마을일을 할 때는 물론이고 인터넷에 글을 쓸 때 필요한 도표나 그래프만이라도 직접 제작을 하고, 프리젠테이션이나 문서제작에 활용하고자 하는 목적은 달성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파워포인트 교육을 받으러 온 수강생들은 강원도 시군에서 마을사업을 하는데 필요한 이들을 양성하기 위해 해당 시군의 농업기술센터에서 신청을 받거나, 직접 지정을 해 기회를 부여합니다. 그러하기에 숙식은 무료로 제공하고, 왕복 여비까지 지원하죠. 그런데 교육을 받으러 오는 이들이 워낙 다양한 구성이라 교육을 시키는 강사도 난감하겠더군요. 엑셀이나 한글워드 정도는 아주 능숙하다고는 못해도 제법 다루는 이들도 있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실력도 모두 다릅니다.
저는 그저 포토샵에서 사진을 필요한 크기 정도로 자르거나 밝기 정도를 수정하는 수준이고, 엑셀이나 파워포인트는 아예 할 줄 모르지만, 한글로 문서를 작성하는 정도는 아주 고급실력은 못되지만 기본적인 정도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이야 PC통신부터 시작해 30년 가까이 되기에 주어진 게시판에 글을 쓰거나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어 운영했던 경험으로 블로그를 만들어 사용할 정도는 됩니다.
그런데 인터넷 접속도 할 줄 모르는 이들까지 교육을 받으러 왔고, 사진촬영도 스마트폰으로도 대부분 수평도 잡지 못하고 촬영하거나, 아예 셔터를 누르는 순간 손을 흔들어 초점이 잡히지 않거나 사물을 형태 정도만 알아볼 정도로 촬영하는 이들까지 정말 다양하게 모였으니, 제대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합니다.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교육을 받으러 가보면 앞자리에 앉으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정말 배우고자 하는 열의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강의를 하는 강사와, 칠판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뒷자리부터 잡고 앉습니다. 저는 중심에서 조금 빗겨난 세 번째 줄 정도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리고 2인용이 아닌 좌석의 경우 통로 쪽을 선호합니다. 춘천시 신북면에 있는 강원미래농업교육원에 있는 정보화교육실은 2인용 책상에 컴퓨터들이 자리마다 비치된 구조입니다.
인사가 끝나면 강사는 준비된 교재나 강의 자료를 나눠줍니다. 그리고 일종의 반장 역할을 할 사람을 먼저 뽑습니다. 강사를 도와 강의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잡다한 일을 맡아 하게 되죠. 여기엔 자청하는 사람도 제법 많습니다. 각 농업기술센터에서 그나마 어떻게든 새농어촌건설사업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고자 시범마을로 지정된 마을을 우선적으로 선정해서 총무나 사무장 등 컴퓨터로 업무를 봐야 되는 이들을 보냈으니 대부분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는 성격들입니다.
이런 성격과 업무를 보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죠. 심지어 새농어촌건설사업에 7번째 도전을 한다는 마을에서는 이장이 직접 교육을 받으러 왔고, 정보화 교육만 6번째 참여한다는 분도 있을 정도입니다. 새농어촌건설사업이란 강원도만의 명칭으로 잘 사는 농촌마을을 만들고자 1차로 해당 시군에서 마을단위로 신청을 받아 시범마을로 지정해 협동심과 참여정신부터 함양하며 시작됩니다. 여기에 당연히 비용이 필요하기에 양양군의 경우 2010년 무렵 1개 마을에 3,000만원씩 2회까지 지원을 해 줍니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이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선 지원금으로 사무용품을 구입할 수 있고, 환경개선사업비와, 교육비 등 5개 정도의 항목으로 나누어 목적에 맞게 사용해야 됩니다. 이때 교육비와 사무용품비로 가장 먼저 컴퓨터와 프리젠테이션에 필요한 빔프로젝트와 스크린 등의 장비를 구입하게 됩니다. 사실 반드시 필요한 장비 중 하나가 카메라인데 요즘이야 스마트폰으로 어느 정도는 대치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마을에서 명목상 총무지만 사무장 역할을 해야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총무를 맡기 전 마을에서 미리 컴퓨터를 구입해 놓았는데 올인원 컴퓨터였고, 프로그램(소프트웨어)는 모두 정품이 아닌 불법복제였습니다. 이 불법복제품을 사용하면 문제가 많습니다. 저작권 뭐 그런 거 산촌에서는 신경도 안 씁니다. 한글문서를 작성하며 회의록이나 기타 다양한 문저를 생산하며 사진을 첨부하면 그때는 인쇄까지 무난하게 됩니다. 하지만 문서를 저장했다 다시 불러오면 그땐 사진은 지정한 자리만 덩그러니 있을 뿐 귀퉁이에 빨간색 가위표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포토샵, 한글, 한셀, MS워드, 파위포인트, 엑셀 등 문서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프로그램을 정품을 구입해야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고집 쎈 이들을 설득하는 일은 어렵고 지난합니다. 결국 서울에 간 길에 용산전자상가를 들러 몇 곳 알아본 결과 ‘한글&MS워드’프로그램을 패키지 박스를 뜯지 않고 중고시장에 내놓은 걸 사비로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마을에서 구입한 컴퓨터에 설치하기란 애초 무리였습니다. 하드디스크 용량 자체를 512GB밖에 안 되는 걸 구입해서입니다. 결국 제 노트북과 집에서 사용하던 컴퓨터의 오래된 워드프로그램을 지우고 교체하게 되었습니다. 2002버전을 그때까지 사용하고 있었으니…
반장과 총무를 선출하는 걸 보며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책상위에 올려놓고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나눠준 파워포인트 교재를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었을 때 여기저기서 컴퓨터에서 파워포인트를 어떻게 찾느냐는 말과 함께, “이 컴퓨터엔 파워포인트가 설치되지 않았어요”란 말까지 들렸습니다. 모두 똑 같은 연식의 컴퓨터와 동일한 프로그램들을 설치한 정보화교육실 컴퓨터에 어느 컴퓨터는 프로그램이 설치되지 않았다는 사람까지 있는 상황입니다.
강사가 모두 다니며 챙겨줄 수 없는 일인데 선출된 반장과 총무도 이건 자신들은 못한다고 하는 정말 황당한 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강사가 다니며 일일이 직접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 바퀴 돌아 제자리에 오더니 네임카드를 확인하고 “양양군에서 오신 정덕수 님 앞으로 나오세요”라 하더군요. 잘못도 안 했는데 앞으로 불려나가다니… 부르니 안 나갈 수도 없고 쭈뼛거리며 강사 앞에 섰습니다.
저도 작은 키가 작은데 강사는 저보다 더 작았습니다. 40대 중반 정도의 예쁘장한 여성분으로 이런 일엔 이골이 난 듯 보이더군요. 강의테이블 위의 A4용지를 보던 강사가 “정 선생님 저 좀 도와주세요. 여기 컴퓨터들은 점심시간에도 전원을 끄면 초기화가 되거든요. 그리고 강의를 하다보면 엑셀과 병행해서 파워포인트가 작동될 대도 있는데 열려있는 파워포인트를 창에 띄우는 것도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때 좀 도와주시면 됩니다. 부탁드려요”라 하더군요.
강의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반장과 총무를 뽑을 때부터 책이나 뒤적이며 딴 짓을 해서 부른 줄 알고 부른 줄 알았다가 이런 부탁을 받으니 마음이 푸욱 놓이더군요. 역시 나이를 떠나 강의실과 강사는 무서운 모양입니다.
진도는 정말 더디게 나갔고, 점심시간까지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데 소진하니 강사도 지칠법했습니다. 노트북에 한글문서를 열어놓고 인터넷을 연결해 메신저를 주고받으며 미처 처리하지 못한 마을에 필요한 자료를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런 자리에선 반드시 엉뚱한 질문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은 뭔가 대단한 수준이라도 되는 듯 나서는 이들까지 다양하게 있습니다. 파워포인트 강의에서 갑작스럽게 “조리방법調理方法 한문으로 어떻게 써요?”라 하는 사람 때문에 모두 한바탕 웃었습니다. 아마도 파워포인트에 요리에 대해 뭔가 만들려고 시도했는데 한자로 변환하는 걸 몰라서일 수 있습니다.
저보다 5~6살 위의 분들, 그러니까 1960년 이전에 태어난 분들은 초등학교에서부터 한문교육을 받았었습니다. 제가 입학한 그 시기에 초등학교에서는 더 이상 한자교육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에서는 그 이후에도 상용한자 3,600자를 배운 걸로 아는데, 몇 백자도 못 쓰는 친구들이 정말 많으니 이상한 일입니다. 못 쓰는 게 아니라 아예 읽을 줄도 모르는 경우도 많더군요. 하기야 원주율이니 백분율구하기 같은 걸 실전에서는 사용 못하는 사람도 많으니 학교에서 수업을 제대로 받기는 했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으나 강사는 친절했습니다. 한자를 찾는 방법을 일러주었습니다. 한글문서를 사용하면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음식을 조리하는데 이용되는 한자들을 모두 찾으려 하는 질문자의 고집에 결국 손을 들고 제게 “혹시 정덕수 선생님 한자 좀 아시나요”라 해서 제 노트북을 가지고 강의테이블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조리도구調理道具라 쓰면 되지만 이보다는 조리용구調理用具가 오히려 쉽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파워포인트 보다 이럴 때는 한글과 한자를 동시에 사용하기 편한 한셀을 사용하시면 쉽습니다.”라며 20분 정도 한셀을 찾아서 파워포인트와 똑 같은 형태로 보이는 작업 화면을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요리에 해당되는 음식飮食을 시작으로 요리料理와 요리재료料理材料, 요리과학料理科學, 재료선택材料選擇, 재료선정材料選定, 식품食品 등의 한자를 모두 찾아 보여주게 되었던 겁니다.
수업에 더 이상 지장을 줄 수 없었기에 노트북 화면을 빔프로젝트와 연결하던 케이블을 뽑고 점심시간이나, 저녁식사 이후에 추가로 음식과 관련된 한자들에 대해서 더 찾아보자고 하고 강사에게 자리를 돌려주었습니다.
결국 강의시간은 강사의 도움으로 저녁식사를 끝낸 다음에 다시 연장해서 밤 9시까지 하는 걸로 결정을 보게 됩니다. 저녁식사 이후 강의를 진행할 때서야 강사는 저녁에 무료할까 싶어 영화를 몇 편 준비해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저는 다른 이들이 수업을 받는 동안 강사가 별도로 ‘엑셀&파워포인트 2010’을 주며 “모르시는 건 따로 물어보시고 이 책을 보시며 혼자 한 번 해 보세요”라 해서 같은 강의실 안에서 따로 수업을 받는 모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식사시간이면 늘 강사와 한 자리에 앉아 교재에 대해 모르는 걸 배우게 되었는데 이걸 두고도 말들이 참 많았었습니다. 뭐 당연히 남자와 여자가 같은 자리에서 매번 식사를 하니 그걸 시샘하는 이들이 하는 뻔한 말이지요.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제대로 강의가 진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클립아트를 넣고,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법 등을 배우며 일반적으로 포토샵에서 이미지를 가공해 가져오는 수준이 아니라 이를 순서에 맞춰 보여주는 방법 등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이건 동영상 수업에서도 똑같은 일이 되었고, 그나마 동영상 수업은 파워포인트보다는 함께 강의를 들을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 강사에게 한글이나 MS워드를 사용하는 방법도 더 배우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는 지금까지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그때 그 강사에게 배운 파워포인트는 마을사업을 위한 문서들을 생산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가령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서면 오색1리의 ‘설악산 오색마을’을 지도상에서 차량을 이용해 이동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으로 거리를 보여주는 표를 만들거나, 마을의 경관들을 어떤 것이라 생각하느냐는 설문조사를 표와 함께 문서로 생산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한글을 사용하는 입장에서 별도로 MS의 파워포인트를 따로 이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셀을 사용하면 되니까요.
이를 통해 저는 혼자서 몇 명이 해도 못할 작업을 1년 반에 거쳐 해내게 되었고, 2700쪽이 넘는 엄청난 분량의 문서를 혼자 작업해냈습니다. 그 덕에 오색1리 마을은 시범마을로 양양군에서 지정을 받은 2년이 채 안 되었을 때인, 2015년 11월 11일 농업인의 날 초고의 성적으로 최문순 강원도지사로부터 강원도 우수마을로 표창을 받으며 3억원의 지원금과 함께 새농어촌건설사업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또한 동영상은 강의를 들은 덕분에 몇 개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채널을 개설해 올려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