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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금동대향로의 음악사적 가치는!

한사정덕수 2025. 2. 14.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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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4월 11일 아주 짧은 시간을 겨우 만들어 부여를 찾았습니다. 다시 찾아가 찬찬히 둘러보고 싶은 곳입니다.

 

백제금동대향로에 대해 뭔 또 다른 할 이야기가 있겠느냐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잠시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단순()화가 아닌 보다 스펙트럼(spectrum)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도록 한다면 결과 값은 얼마든지 달라집니다. 어쩌면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극미량의 단위로 쪼개어 질 수도 있고, 원초적인 세상이 비로소 열리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입니다. 01로만 연산하는 그것도 더하기와 빼기, 나누기, 곱하기를 모두 사용하지도 않고 오로지 더하기란 연산방식만으로 컴퓨터가 얼마나 대단한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생각한다면 0부터 9까지 열 개의 수로 네 가지 연산법을 사용하는 사람의 한계를 굳이 둘 필요가 있을까요?

 

이쯤에서 복잡한 계산식 같은 건 잘라버리고, 생각의 진폭을 그만큼 넓고 섬세하게 가져봄이 좋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령 백제금동대향로가 출토된 능산리는 왜 부여란 지명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그것도 기원전 4세기부터 494년 고구려에 의해 멸망한 지금의 중국 헤이룽 일대의 고대국가 부여와 같은 이름으로부여란 지명은 당나라와 손잡고 백제를 정벌한 신라가 붙인 지명인데 왜 신라는 사비를 부여로 불렀을까를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백제나 고구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나, 지금의 우리 입장에서 보았을 때나 3국을 통일한 신라는 통일은 했으되 도리어 영토를 크게 줄이는 짓을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강성대국 고구려의 영토 대부분 중국에 넘겨주는 못난 짓을 벌인 국가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기에 족한 짓을 했으니 말입니다. 위로는 고구려의 영토를 대부분 차지한 발해가 세워지고, 이후 고려라는 말 그대로 한반도에 한정해 영토를 통일한 구가가 들어서는 단초를 제공한 사실은 부인 할 수 없습니다.

 

부여란 지금의 지명은 백제의 왕들로부터 출발합니다. 백제의 왕들의 성씨가 부여씨입니다. 고대 중국 영토에 존재하던 부여국의 후손이 세운 국가였고 부여왕과 같은 혈통을 지닌 왕들의 국가였기에 660년 멸망당시 도읍지였던 사비를 부여로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 2017년 4월 11일 잠시 들린 부여에서 고란사로 향하는 길에 만난 솔밭입니다. 이 솔밭 아래도 또 어떤 비밀이 잠들어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런 비운의 도읍지 사비의 능산리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는 의자왕(641~660) 대나, 직후인 융의 저항기(660~663) 마지막 항전기간 중 나당연합군에 사비성이 함락되는 과정에서, 왕실의 제사를 모시던 곳에서 급하게 후일을 기약하며 그 자리에 묻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가루베 지온이 도굴을 하지 않았다면 왕들의 무덤에서 부장품으로 또 다른 금동대향로를 만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가설을 제시하게 된 것입니다. 다급한 상황에서 제사에 사용되던 신물을 감추어야 될 정도로 귀하게 여겼던 향로라면 충분히 왕들의 시신과 함께 부장하였으리라 생각하는 건 당연합니다.

 

이제 백제금동대향로에 어떤 부분이 이야기가 될 수 있는지를 찬찬이 풀어보겠습니다. 백제금동대향로의 박산을 장식한 다섯 명의 악사들을 이미 밝혔습니다. 이들은 각각의 악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백제 시대의 음악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 백제금동대향로엔 우리가 팬 플루트라고 부르는 악기와 유사한 배소란 악기를 연주하는 인물상이 있습니다.

 

먼저 소()로 불리는 악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소는 대나무를 나란히 묶어 만든 관악기로, 오늘날의 팬 플루트와 유사한 형태입니다. 비슷한 악기로 남미의 안데스 지역 민속악기인 안타라와 삼뽀냐도 있는데 각기 다른 대륙에서 어떻게 이렇게 유사한 형태의 악기가 고대부터 사용되어졌을까란 의문이 듭니다. 어쩌면 남미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안타라와 삼뽀냐는 유럽의 팬 플루트의 원형질인지도 모릅니다. 정복국가 스페인이 남미지역을 초토화시키는 과정에서 유럽으로 남미의 악기가 넘어가지 않았겠느냐는 가설을 세우기에 부족하지 않으나, 이는 반대의 이야기가 충분히 성립되는 근거가 따로 있습니다.

 

팬 플루트는 유럽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악기입니다. 이 악기는 여러 개의 길이가 다른 관을 나란히 묶어 만든 것으로, 각 관은 다른 음정을 내며 다양한 멜로디를 연주할 수 있습니다. 팬 플루트는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하여 유럽 각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 루마니아 방식으로 제작된 팬 플루트입니다. 최근 많은 분들이 이 악기를 사용해 연주를 합니다.

 

전해지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팬 플루트는 그리스 신화의 목신인 팬(Pan)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전하는데요, 팬은 요정 시링크스(Syrinx)를 사랑했지만 시링크스는 팬을 피하기 위해 갈대로 변했습니다. 팬은 그 갈대를 꺾어 팬 플루트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전설같은 이야기의 팬 플루트는 현대에 이르러 루마니아 출신의 연주자 게오르그 잠피르(Gheorghe Zamfir)에 의해 대중화되었습니다. 그는 외로운 양치기(Lonely Shepherd)’와 같은 곡을 연주하며 팬 플루트를 세계적으로 알렸습니다. 팬 플루트의 소리는 매우 맑고 아름다우며 목가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탁월합니다.

 

팬 플루트는 루마니아와 남미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관을 고정하는데 남미에서는 관의 중심부를 앞뒤로 얇은 나무판으로 묶는 방식을 취하고, 유렵을 대표하는 루마니아식은 관의 하단부를 목판을 깎아 고정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개인적일 수 있으나 이 루마니아 방식의 팬 플루트의 음색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팬 플루트는 고전 음악뿐만 아니라 현대 음악에서도 널리 사용되며 독특한 음색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성대현 선생님과 장선희란 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장선희씨는 특별히 팬 플루트에서 만큼은 독보적인 연주 실력을 갖추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크게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이 팬 플루트와 유사한 악기인 소를 백제금동대향로 속 악사 중 한 명이 연주하고 있습니다.

▲ 이 인물상은 피리를 불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부는 악기로 피리 외에도 적(笛)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가는 대롱 형식이나 나팔도 있으며, 소금이나 대금도 있지요.

 

또 다른 악기로는 피리가 있습니다. 백제대향로에서는 세로로 잡고 부는 종적(縱笛)으로, 몸통이 굵은 것이 특징입니다. 이런 악기는 세계적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안데스 지역의 대표적인 민요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는 사이몬과 가펑클 듀오가 불러 크게 히트를 시키기도 했지요. 그런데 이 노래를 남미의 악기 퀘나와 삼뽀냐, 그리고 챡챠스로 연주하는 걸 들으면 정말 오묘한 느낌이 절로 듭니다.

▲ 이 인물상은 앉은 자세로 보아 여성으로 보입니다. 요즘의 기타와 유사한 완함이란 악기를 손가락으로 튕겨 연주하는 모습입니다.

 

또 다른 악사는 완함(阮咸)이란 비파와 비슷한 현악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구려의 삼실총 벽화에 그려진 완함과 유사합니다. 이와 유사한 악기들은 지금의 기타와 함께 남미지역에서는 차랑고란 악기가 있는데요, 정말이지 백제의 백제금동대향로에 어떻게 이런 악기들이 사용되어졌는지 놀라운 일입니다.

 

거문고는 평행하게 놓고 연주하는 현악기로, 백제금동대향로 속 악사 중 한 명이 이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와는 연주 방법에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거문고 또한 현악기인데 우리는 가야금도 있지요. 완함이나 비파, 만돌린, 우크렐레, 피아노, 하프 등 현악기의 세계는 참으로 넓고도 풍부하게 발전되어 왔으며 세계적으로 가장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연주되는 악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참으로 다양한 연주가 가능한 철현금은 대단한 악기인데 유경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공연예술원 교수께서 이 악기에 정통한 연주자입니다. 현악기인 동시에 튀겨서 소리를 만들어내기에 타악기로 분류됩니다.

 

또 다른 형태이긴 하지만 우리에겐 해금과 아쟁도 있습니다. 최근엔 철현금이란 악기도 있는데 이 철현금은 유경화 교수께서 널리 알려지셨습니다. 며칠 전 밤 늦은 시간에 완주군에 있는 임동창 형님께서 전화를 주셨을 때 그곳에 옛·새 팀원들이 함께하셔서 전화를 주셨다며 잠시 유경화 교수를 바꿔주셨습니다.

 

이 분의 철현금 연주를 들으며, 그리고 옛·새의 북의 김동원 교수와 장고의 김주홍 노름마치 대표, 아쟁을 연주하는 김영길 전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단장,  해금을 연주하시는 서은영 서울시관현악단 수석연주가까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생각했습니다.

▲ 무릎에 올려놓고 오른손 하나로 연주하는 북이 보입니다. 판소리에서 이와 유사한 북으로 장단을 맞추죠.

 

마지막으로 두들겨 소리를 만들어 내는 타악기로는 무릎 위에 올려놓고 연주하는 작은 크기의 북이 있습니다. 백제금동대향로 속 악사는 이 북을 연주하고 있는데 오른손에 북을 두드릴 수 있는 막대기를 잡고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북은 가장 보편적으로 인류가 연주를 한 악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초기엔 통나무를 막대기로 두들기기 시작했겠지만 점차 동물의 가죽을 이용해 각기 다른 음역의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점차 발전시켜 나갔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이 타악기에서만큼은 세계적으로 가장 다양한 악기를 가진 국가가 아닐까 싶은데요, 전쟁에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거나 신호에 이용되는 엄청난 크기의 북부터, 아주 작은 소고에 이르기까지 북은 종류가 많습니다.

 

더구나 장고, 또는 장구로도 부르는 악기는 장단까지 맞출 정도로 대단히 진보적인 타악기인데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의 삶에 녹아들었습니다.

 

이처럼 백제금동대향로의 다섯 명의 악사들은 백제 시대의 다양한 악기들을 보여주며, 그들의 음악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적 가치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가요? 이렇게 4회에 거쳐 살펴본 백제금동대향로 얼마나 놀라운 발견이며 문화유산인지 정말 자랑스럽지 않은지요. 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하지만 도 다른 세계인 음악의 자료로서도 정말 놀라운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음을 이젠 알게 되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아직도 풀어야할 많은 이야기들이 간직된 백제금동대향로에 담긴 비밀들을 찾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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