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후 승인’ 요구하던 김주리의 한계령
▲ 노래 한계령은 설악동 소공원에서 1981년 10월 1일 새벽에 출발해 화채봉과 대청봉을 거쳐 10월 3일 하산을 하며 설악루 바로 위의 바위에서 쉬며 쓴 ‘한계령에서’ 제목의 시로 만들어진 노래다.
이 이야기를 밝히는 건 소리꾼 김주리에 대해 음해를 하거나 그녀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없다는 사실부터 분명히 해둡니다. 노래를 부른 가수가 직접 저와 계약을 맺거나 실수를 한 것은 아니기에, 자칫 잘못 이해하여 발생할 오해를 불식시키고 김주리 가수에게 피해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혹 jtbc라면 제게 명예훼손 뭐 이런 걸 들이밀며 소송을 걸어올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없는 얘기 아니고 사실 그대로만 밝힐 뿐이니 그거야 걱정 없습니다.
2014년 12월 12일 오후 2시가 막 넘어서였습니다. 늦은 점심식사를 할 때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처음엔 안 받을까도 싶었지만 010으로 시작된 번호기에 받았습니다. “jtbc의 풍류대장입니다. 아시죠”로 시작된 통화 내용은 “오늘 저녁 방송되는 풍류대장에 한계령을 기주리란 가수가 부릅니다. 사용승낙하시는 거죠”였습니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었습니다. 잠시 뒤 다시 통화를 하자고 한 다음 전화를 끊고 노트북으로 ‘jtbc 풍류대장’을 입력하고 검색했습니다. 시선은 노트북 화면을 살피며 식사부터 마쳤습니다. 풍류대장이 방송되는 날, 그것도 준결승전을 치르며 한계령을 김주리란 가수가 부를 테니 승낙하란 참으로 황당한 통보였습니다. 한 달은 아니더라도 최소 2주는 미리 준비해서 가수가 연습까지 하고 방송분을 촬영했을 일인데 저작권 사용승낙을 방송 당일에 요구하는 건 횡포였습니다.
걸려온 전화번호를 다시 눌러 통화를 했습니다. “정덕수입니다. 오늘 방송되는 노래를 지금 승낙하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요? 제게 미리 허락을 구한다는 메일이나 문자라도 보내셨나요?”
전화통화를 했던 상대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알아보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시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생각엔 처음 전화를 했던 사람은 섭외담당자고 이번엔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사람이겠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jtbc 풍류대장을 대행하는 기획사입니다”로 자신을 밝히며 “오늘 방송이 확정되었으니 미안하지만 사용승낙을 해 주세요”라 하더군요. 그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것 보세요. jtbc고 기획사고 뭐고 간에 이런 일은 사전에 미리 허락부터 받고 작품을 사용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잠시 뒤 저녁에 방송을 하는데 지금 당장 승낙을 하라는데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내게 사전에 연락 한 번 없었으면서 지금 당장 승낙을 해달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듣기 싫으니 전화 끊읍시다.”
잠시 뒤 이번엔 또 다른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반복적으로 같은 내용의 말을 하더군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허락 못합니다. 방송 하지 마세요”라 딱 잘라 말하고 전화기를 그대로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혼자말로 투덜거렸습니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 대기업이면 무조건 껌벅 죽는 줄 아나. 하는 짓들이 막돼먹었어.”
그 말을 들었는지 어떤지는 모릅니다. 다시 몇 번의 전화가 울렸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컵에 따라 마시고 자리를 펴고 누었습니다.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잠결에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고, “선생님 jtbc입니다. 제가 직접 찾아왔으니 잠시만 말씀 좀 나누시죠”란 말이 들렸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정신을 차려보니 밖은 이미 날이 저물었는지 가로등 불빛이 창문으로 비칠 뿐 어두운 방이었습니다. 오후에 통화를 한 다음 전화기를 던져 놓았는데 확인해보니 10통이 넘게 전화가 걸려와 있었더군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선물 상자를 손에 든 젊은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풍류대장의 외부 담당 기획사 대표 ○○○입니다. 선생님 죄송한데 저와 차라도 한 잔 하시며 말씀 좀 나누시죠.”
마지막 통화를 한 시간을 4시가 넘었다고 기억났습니다. 그 뒤로 전화를 안 받으니 저작권협회를 통해 주소를 알아내고 달려온 듯싶었습니다. 그냥 돌아가라 할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젊은 친구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선물은 안 받겠다고 해도 “이 선물은 제가 선생님께 몇 번 사용승낙서를 받았던 입장에서 준비한 겁니다. 방송국과는 아무 상관없는 제 마음이니 받아주세요”라 해서 받았습니다.
▲ 소리꾼 김주리가 부른 노래 한계령은 기존의 노래에 원작 시를 추가로 사용해 개작한 작품입니다. 이 방송이 jtbc에서 전국으로 송출되는 시간 방송사를 대신하여 찾아 온 기획사 대표를 만나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시청하지도 못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일도 아닌 일을 떠맡아 해결하겠다고 멀리서 달려온 사람을 그대로 돌려보내는 건 정말 도리가 아니겠다 싶어 양양시외버스터미널(구 터미널) 건너편의 헤이카페(Hey CAFE)로 눈발이 날리는 길을 걸어갔습니다. 걸어가는 동안엔 단 한 마디도 말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카페에서 터미널이 바라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서야 젊은 친구가 지갑에서 꺼내 건네는 명함을 받았습니다. 또 다시 속이 뒤틀린다고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고 설탕을 넣지 않은 커피 잔을 들고 찰랑거리는 커피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지금 방송되고 있겠네요.”
기막힌 일입니다. 사용허락도 안 받은 작품으로 방송을 제작해 공개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는데 이제야 사용승낙을 받겠다며 서류 한 장 안 내미는 처사가 괘심하지만 앞에 앉은 사람에게 말을 해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사실이 불편했습니다.
“이 문제는 제가 선생님 편에 서서 잘 마무리 하겠습니다. 믿어주시고 내일 서류 받으시면 날인하셔서 보내주세요. 신분증 사본과 계좌번호는 제게 있으니 서류만 날인하시면 됩니다.”
▲ 소리꾼 김주리가 부르는 한계령을 들어 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양희은은 물론이고 다른 가수들이 부른 한계령과는 전혀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 소리꾼 김주리가 부른 노래 한계령의 이 대목도 원작시 ‘한계령에서’의 4연에서 가져다 쓴 것입니다. 김주리의 한계령은 도입부는 ‘한계령에서’의 1연을 가져다 만들었고요.
그 문제는 더 이상 대화의 주제가 될 필요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이번 경우엔 처음 3곡 정도를 선택해 편곡해서 가수가 부르게 했고 그 중에 한계령이 가장 좋아서 결정을 하게 됐다고 하더군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PD는 이미 가수가 공연무대에서 부를 노래를 확정한 시점은 최소 일주일이란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런데도 미적거리다가 방송 당일에서야 저작권자에게 당연하다는 태도로 사용승낙을 하라는 건 이해 못 할 일이 분명합니다.
편곡을 하는 이들은 3곡의 노래를 모두 작업을 했다면 그 작업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될 일이고, 작사와 작곡자에게는 방송될 노래에 대해 방송이 준비되는 과정에서 사용승낙을 받아야 될 일이죠.
저작권료도 늘 “하덕규 선생님은 정 선생님이 받으시는 만큼만 받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정 선생님은 얼마면 되시나요”입니다. 왜 하덕규란 사람이 제 처분에 따른다고 한 것인지는 저는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먼저 당당하게 얼마에 사용하라고 하고 제게도 그에 맞춰 대우를 해 드려라 해야 맞지 않나요? 방송국들도 하덕규가 이렇게 승낙했는데 당신이 뭐 어쩌겠어 하는 의도가 내비치는 모습이 되게 만들며 말입니다.
참고로 이와 같은 과정에 저작권과 관련하여 방송사와 교환하는 서류를 사실 그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노래를 방송국이나 가수가 사용할 경우 1차 저작권을 소유한 저작권자(작사자와 작곡자)에게 사전 승낙을 받아야 되는데 이때 3장의 서류를 서명 날인하여 교환합니다.
방송사와 가수를 여기에서 함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기존의 노래를 처음 발표한 가수가 아닌, 다른 가수가 재 취입을 할 경우에는 이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방송국이나 재 취입(리바이벌)하는 가수는 동일한 방식으로 편곡이나 개작을 하여 노래를 부르거나 방송을 하게 되어서입니다. 참고로 방송사가 방송을 하며 가수가 이 글과 같이 방송에 참여하는 경우엔 방송사가 가수의 몫까지 대행하여 서류를 교환하게 됩니다.
▲ 이 서류양식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저작권자와 개작동의를 구했음을 알리는 동시에 새로 저작권이 성립되었음을 등록하기 위한 서류입니다.
▲ 이 서류양식은 저작권자와 방송사 또는 기획사가 저작물에 관하여 사용을 승낙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종의 계약서입니다.
▲ 이 서류양식은 저작권자와 방송사 또는 기획사가 저작물에 관하여 사용을 승낙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동시에 사용하는 목적과 사용분야에 대해 명시되어 있어야 되며 저작권협회에는 제공되지 않습니다.
방송사에서 2021년 12월 14일 방송된 노래에 대해 사전에 교환했어야 할 서류의 작성일자가 모두 그 다음날입니다. 이런 사례가 또 다시 발생되어서는 안 되겠단 판단으로 제가 보관하고 있는 서류 원본을 공개합니다.
사건을 저질러놓고 난 뒤에서야 문제가 되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서류를 만들어 승인을 받는 걸 ‘차후 승인’ 또는 ‘차후 재가’라고 합니다. 전두환이 12·12 사건으로 참모총장이던 정승화 대장을 체포하고 최규하 권한대행에게 서류를 내민 경우가 이에 해당됩니다. 정승화 대장을 체포하겠다고 권한대행에게 재가해줄 것을 요청해봐야 거절당하리란 계산에서 전두환은 사건부터 저질러 무고한 군인들을 다수 사망케 합니다.
이 노래가 된 시 한계령에서는 그 시기를 막 넘어선 뒤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명명된 전두환의 신군부가 저지른 군을 동원한 만행이 발생하고 전두환이 당시 대통령으로 임기를 시작한 최규하를 강제로 밀어내고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투표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980년 8월 27일 임기를 시작한 직후에 썼습니다.
그날 저녁 방송엔 장충체육관에서 전두환의 거수기 노릇을 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몇 명을 불러 전두환을 칭송하기 바빴습니다. 그중에선 전두환이 직접 주머니에서 꺼내서 건네주는 담배를 받아 피웠다고 자랑하는 못난 인간도 있었습니다. “각하께서 취임식이 끝나고 단상에서 내려오셔서 걸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담배를 피우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렇다고 대답을 하자 각하께서 주머니에서 솔담배를 꺼내셔서 한 개비 주시고 주변에도 나눠 주셔서 피웠습니다”라며 황송해 하던 목소리,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전두환이 그 시절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잠시 언급하겠습니다. 1980년 3월, 2년 전 소장으로 진급했던 전두환이 중장으로 진급하더군요. 그리고 불과 한 달 남짓 되었을까요, 4월엔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되더니 5월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이란 거창한 직책을 만들어 꿰찼습니다. 그리고 6월에 대장으로 진급하는데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별들이 막 쏟아지나봐. 그냥 막 주워 다네”라 말입니다. 그리고 7월엔 개신교 목사들이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란 걸 전두환을 모셔다 진행하며 TV로 생중계를 하는 진풍경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방송을 미싱사를 구하려 붙인 공고를 보고 연락한 여성분을 만나러 금호동으로 넘어가는 신당동의 문화동로터리에 있던 문화다방에 간 덕에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