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포커스

민주공화국 주인 된 권력의 이름으로

한사정덕수 2025. 4.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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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1장 총강 제1조를 다시 살아내는 일에 대하여

 

1987, 헌법 제1조를 처음 읽었을 때 저는 그 문장이 말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단번에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짧고 단호한 이 선언은 마치 국기에 대한 경례처럼 익숙하고 단정했지만, 그 의미는 생각보다 멀고도 깊었습니다. 그 한 문장의 무게는 나중에서야 제 삶과 연결되어 조금씩 실감이 되었습니다. 살아보아야 비로소 알 수 있는 말들이 있습니다. 이 문장이 바로 그런 말이었습니다.

공화국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그 말이 갖는 철학적 깊이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특권이 아니라 모두의 권리로 나라가 세워져야 한다는 뜻, 한 사람의 지배가 아니라 다수의 참여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곱씹으며, 점차 이 말의 윤리적 뿌리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공화국은 만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의 나라입니다. ‘민주공화는 결국 하나의 문장 안에서 만나야 합니다. 그것은 국민의 자유가 존중받는 동시에, 공동체의 책임이 함께 논의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 짧은 한 문장의 다음 줄에는 곧바로 이 말이 이어집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조항은 법률가의 선언이라기보다, 국민이 스스로에게 하는 고백입니다. 그 어떤 권력도 국민 위에 존재할 수 없으며, 국민 없는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주권은 헌법의 출발점이자, 민주공화국의 종착역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조항을 읽을 때마다, 과연 지금 이 대한민국에서 주권이 누구의 손에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촛불을 들었던 그 겨울의 밤들, 거리로 나아간 수많은 사람들의 외침 속에서 이 조항은 살아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시금 이 문장을 꺼내어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하지만, 권력을 쥔 자들이 자신을 국민 위에 올려놓는 모습을 너무도 쉽게 목격하게 됩니다. 권력이 국민을 대표하지 않고, 국민을 선동하거나 배제하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헌법의 정신을 왜곡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민주공화국이라는 말은 단지 정치 체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실천해야 할 윤리입니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조차 우리는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행동하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때때로 공화국을 구호로만 만들고, ‘민주를 선거철에만 꺼내드는 구실로 만듭니다. 이 조항이 살아 있으려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의 주체로서 깨어 있어야만 합니다.

저는 오늘도 이 헌법 제1조를 다시 외워봅니다. 글자가 아니라 삶으로 새기기 위해서입니다. 공장에서, 거리에서, 투표소에서, 또 일상의 가장 평범한 순간들 속에서도 이 한 문장이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도록 살아내려 합니다.

2016년 박근혜 탄핵을 외치며 광화문광장에서 겨울을 날 때였습니다. 서울시청의 공무원이 광장을 찾아와 늘 간섭을 하고 불법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습니다. 그때는 이미 2017년으로 접어들었고, 서울시청 앞 광장엔 태극기부대로 불리는 자들이 대형난로를 설치한 커다란 텐트로 광장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 대해서는 간섭도 하지 않으면서 박근혜 퇴진을, 탄핵을 외치는 우리에게 불법을 말하니 화가 났습니다.

 

“이것 봐요. 당신이 공무원이지요? 그럼 국가가 무엇인지는 잘 알 텐데, 한 번 그 국가가 뭔지 말해보세요.”

 

그는 쭈뼛거리며 선뜻 말하지 못했습니다.

 

“잘 들어요. 국가란 국민입니다. 박근혜나 저 잘난 권력자들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는 분명하게 대한민국 헌법에 밝혀져 있는 사실입니다. 헌법 전문 다음 총강 제1조 1항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1조 2항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자, 당신이 신봉하는 박근혜와 권력자들의 그 잘난 권력은 바로 우리가 잠시 맡긴 것일 뿐이고, 당신이 받는 월급도 모두 우리가 세금을 내서 가능한 사실을 알고 와서 불법이란 말을 하란 말이오.”

 

몇 사람 옆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박수를 치며 옳소!”를 외쳤습니다. 그는 더 이상 뭐라 하지 못하고 떠났고, 제가 광장을 떠날 때인 2017416일까지 저를 보면 피해 다녔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이 말은 제가 믿는 유일한 정치적 기도문입니다.

그리고 이 문장은 종로경찰서 정보과 과장에게도 주효했습니다.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뒤에는 6개의 돌기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돌기둥들은 두 줄로 배열되어 있으며, 각각 세종대왕의 주요 업적을 상징하는 황금 조각이 새겨져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조선 시대의 4대 왕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농업, 과학기술, 문학, 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을 이끌었던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돌기둥은 그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 동상과 함께 광화문광장의 중요한 역사적 요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또한 동상 아래에는 '세종 이야기'라는 전시관이 위치해 있어, 세종대왕의 삶과 업적에 대한 더 깊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새벽부터 저는 서둘러 일찍 아침을 먹고 그 기둥에 설치미술작업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몇 번 형사들과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불법시설물이라며 설치를 하지 못하게 방해를 하는 겁니다. 자연히 광장에 왜 나왔는지를, 그리고 누가 광장에 나오게 만들었는지를 말하며 바로 이 대한민국의 헌법 11항과 2항으로 그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이 문장을 믿는 시민이 많아질수록 이 나라는 점점 더 헌법다운, 그리니까 헌법의 가치가 넘실거리는 반듯하고 평화로운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먼 미래의 이상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지킬 수 있는 현실의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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