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드레스, 꿈을 짓는 손길
봄이 오면 결혼 시즌이 시작됩니다.
꽃이 피어나듯 신부들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드레스 한 벌을 완성하기 위해 누군가는 수많은 시간을 바칩니다.
저는 30년 전, 웨딩드레스를 제작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곳은 단순한 작업장이 아니라 꿈을 짓는 공간이었습니다.
입체적인 디자인, 섬세한 바느질, 그리고 최상의 원단을 사용하여 신부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습니다.
그 시절, 미스 황이 제게 찾아왔습니다.
명문대 의상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강남의 유명 업체에서 일했던 그녀는 2년 동안 단 한 번도 미싱을 잡아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2년 동안 그녀가 한 일은 오직 드레스에 장식할 꽃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디자인을 배웠지만 실전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녀는, 제대로 된 웨딩드레스 제작을 배우기 위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저는 그녀에게 하나의 과제를 주었습니다. 웨딩드레스의 치마를 재단을 해 그녀에서 처음부터 디자인을 한 스케치를 보고 거기에 맞춰 솔기를 작업하고, 4배 주름을 잡아 허리둘레에 맞춰 봉제하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사무실에서 또 다른 주문서를 살펴보며 디자인을 구상하다 작업실을 나갔을 때 이미 그녀가 주저앉은 바닥엔 오간자(Organza) 원단으로 된 겉감 두 장과 타푸타(Taffeta)로 준비한 안감이 치마형태로 솔기가 모두 봉제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저 없이 손바늘로 시침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웃으며 물었습니다.
“미스 황, 강남에서는 이렇게 작업했나봐요?”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작업 방식은 달랐습니다. 한복의 깨끼바느질 기법을 응용하여, 겉으로는 단 한 줄의 봉제선만 보이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치마의 선이 더욱 우아하게 흐르고, 비치는 원단 속에서도 봉제선이 아름답게 정리되었습니다.
미스 황은 제가 제작해둔 드레스를 살펴보았지만, 어떻게 그 선이 완성되었는지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겁니다.
그녀는 경이로운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드레스를 만든다면, 신부들이 알기나 할까요?”
저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해주었습니다.
“모를 수도 있지. 하지만 그들은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맞이할 거 아닌가요. 그게 중요하지 않겠어요?"
우리가 사용한 원단은 최고급이었습니다.
이탈리아산 새틴(Italian Satin), 프랑스 레이스(French Lace), 그리고 프렌치 튈(French Tulle) 등…
한 필의 원단에서도 처음과 끝이 미묘하게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전 세계의 고급 드레스 제작자들은 Italian Satin 395, Italian Satin 396과 같이 특정 코드 넘버로 동일한 컬러와 질감을 유지합니다. 그 작은 차이가 웨딩드레스의 품격을 결정하게 됩니다.
당시 웨딩드레스 대여료는 15만 원에서 30만 원 정도였고, 고급 숍에서도 80만 원을 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든 드레스는 150만 원에서 300만 원에 달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약이 밀려 있었습니다. 신부들은 한 번이라도 더 먼저 입기 위해 경쟁했습니다. 여러 업체를 돌고 돌아 자신에게 맞춰진 듯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웨딩드레스를 입어 본 신부들은 아예 사진사를 대동해 찾아와 여러 벌을 바꿔 입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드레스는 특별했습니다.
비수기인 여름과 겨울엔 더 바쁘게 보냅니다. 2개월가량을 심혈을 기울여 새로운 디자인을 준비하고 호텔이나 코엑스와 같은 장소에서 박람회와 웨딩쇼를 진행하기에 1년 내내 바빴습니다.
미스 황은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이제 그녀는 손바느질 대신 미싱을 잡고, 디자인을 고민하며, 주름을 손끝으로 읽어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가 작업을 믿고 맡겨도 되는 수준이 되었던 겁니다.
그녀는 더 이상 꽃만 만들던 사람이 아닙니다. 이제는 한 벌의 웨딩드레스를 완성하는, 꿈을 짓는 손길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웨딩드레스를 보면 그때가 떠오릅니다. 물론 이젠 내년이면 대학을 졸업하는 딸을 두어서기도 하겠지만, 하얀 원단 사이로 흐르던 바느질의 선과 섬세하게 잡아낸 주름이며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시간과 정성을 기억합니다.
결혼식은 하루지만, 그날을 위해 바쳐진 노력은 영원합니다.
누군가는 모르겠지만, 그 정성이 신부를 더욱 빛나게 해줄 것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웨딩드레스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자 하신다면 얼마든지 그 이야기를 풀어 놓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