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향기/시인의향기

난생처음 스위스, 그러나 코로나19!

한사정덕수 2025. 3. 3.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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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제안을 하나 받았습니다. “스위스에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집이 있는데 왕복 경비와 수고비는 줄 테니 한 번 다녀갈 수 있겠느냐는 얘기였습니다. 산을 좋아하고 어딘가를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솔깃한 제안이었습니다.

알프스의 산군들과 루체른의 호수를 그리며 선 듯 대답을 했습니다. 속으로야 경비만 대준다면 수고비 없이도 가겠는데 이게 웬 떡이야싶었습니다.

항공권을 예약하는데 필요하다며 주민등록번호를 물어보기에 전화통화로는 잘못 전달될까 싶어서 또박또박 확인하며 문자로 전달했고, 여권을 만들라며 보내준 돈으로 여권사진을 촬영하고 양양군청에 들려 여권도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시작되었습니다. 혹시 이러다 스위스에 못 가는 거 아닌가 싶어 불안했지요. 그러나 약속한 310일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양양에서 공항버스로 한 번에 인천공항으로 갔습니다.

가방엔 KF80마스크 10장과 손소독제도 착실하게 챙겼습니다. 그런데 공항에서 손소독제를 이렇게 큰 건 가지고 갈 수 없어요라는 얘기를 듣고 부랴부랴 공항내 편의점에서 작은 용기를 구입해 5병을 가득 채웠어도 절반도 넘게 남은 건 포기해야 되었습니다. 도와주던 공항 여직원에게 쓰겠느냐 물으니 고맙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아무래도 이상했는지 그 여직원이 가방을 다시 열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사슴머리가 그려진 카키색 빅토리녹스 사냥용 나이프를 딱 찾아내더니 이건 가져가실 수 없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스위스에서 산에 가면 필요한데 가져갈 수 없다니

보관도 못 해준다고 하고 난감했는데, 오가는 항공편엔 동행은 하겠다며 나선 스위스에 집이 있는 주인이 알아서 잘 감춰두었다가 귀국길에 찾아가는 이들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빅토리녹스 칼 하나를 들고 숨길 장소를 찾는데 팜파스 그라스로 꾸며놓은 공항내 화단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침 그곳은 속을 5~10규격의 황토색 멀칭칩을 가득 채워서 팜파스 그라스를 고정해 놓았더군요. 그 속에 나이프롤 꽁꽁 숨겨두고 무사히 KLM에 몸을 싣고 스위스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자정이 다 되어 이륙한 KLM이 스키폴공항에 착륙했는데 그때까지도 날이 밝지 않았습니다. 촌놈이 어디 갈 데는 없고, 한국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 둘이 가는 방향으로 길을 잃지 않으려고 주변을 살펴 기억하며 따라갔습니다. ‘Heineken Bar’란 표지판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리곤 맥주를 손으로 가리키니 이 네덜란드 여성이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 있어야지요.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의자에 앉아 쉬는 줄 알았던 동행이 제가 혼자 어딘가로 이동하니 불안했던 모양인지 따라와 있었습니다. 그 덕에 맥주 한 잔을 받아들고 앉았었습니다. 그때 현지 시간은 540분이 채 안 되었으니 14시간 35분이나 날아왔건만 고작 6시간 정도만 지났다는 믿기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된 겁니다. 거기에서 취리히까지는 환승을 해서 1시간 반 채 안 걸린다고 하는데, 비행편은 7시나 되어야 집중적으로 있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유럽에서는 스키폴을 중심으로 여러 나라로 서로 국경을 넘어 출퇴근을 하는 거 같았습니다.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85분 정도 되었고 거기에서 짐을 찾고도 다시 1시간을 더 기다려야 된다고 하더군요.

정말 동행하는 집주인이 너는 필요 없으니까 마음대로 해라고 내팽개치면 그대로 미아가 될 판이라 목줄에 끌려가는 강아지 꼴이 되었습니다. 그가 기다려하면 기다리고, “여기 앉아하면 앉고, “저기로 가자하면 다시 졸래졸래 따라갔습니다.

다행스럽게 그 집주인이 9시까지 기다려야 된다고 한 이유는 스위스에서 사용할 유심을 구해주려는 배려였다는 걸 9시가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취리히 공항에서 구한 유심을 스마트폰에 끼우자 한국시간과 스위스 시간이 동시에 화면에 나타나더군요. 비용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스마트폰을 달라면 주고, 받으라면 받았지만 이젠 스위스에서도 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던 겁니다.

면세점의 양주도 탐나고, 담배도 탐나는데 인천공항에서 구입한 담배가 각 1보루씩 있으니 저 혼자 2보루면 20일은 아무 걱정 없이 일을 하며 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부지런히 작업을 하고, 몽블랑산맥의 어느 봉우리 하나 정도는 만날 기대에 부풀었던 거지요.

 

공항으로 마중을 나온 스위스 집주인의 친구 차로 Aargau Halwill(아르가우주 할뷜)이란 마을로 1시간 남짓 달려서 갔습니다. 여기에서 출발할 때는 스위스는 한겨울이라 생각했는데 한국보다 봄이 더 빨리 왔다 싶을 정도로 차창밖으로는 푸른 들판이 제법 많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비어있던 집 문을 열어주고, 공항에서 구입해 온 쌀과 빵, 치즈, 소고기와 소시지를 냉장고에 넣고, 집 여기저기를 돌며 설명을 해주더군요. 일주일도 안 걸려 모두 정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일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보름은 걸리겠다 싶더군요.

커피 한 잔을 함께 마시고는 침대는 전기장판으로 이용하면 되고 난방은 벽난로에 불을 피우면 되고, 샤워는 언제든 온수가 전기로 데워져 나온다고 알려주곤 우린 내일 올게요. 쉬세요란 말만 남기고 두 사람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동안 깨 있었는지 계산도 못할 정도로 310일 새벽 5시부터 깨 있었다는 기억만 하고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다시 깬 시간은 같은 날인지아니면 다음 날인지를 구분 못 할 정도였지만 암막커튼을 걷자 햇살이 환하게 비치고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니 고작 4시간 정도밖에 못자고 일어난 거였습니다.

밤에 잠을 자려면 더 누워있을 수는 없는 일이겠다 싶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가끔 집을 돌본다는 이웃이라고 인사를 시켰던 아주머니가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집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는데 한국에선 고작 산수유와 매화, 그리고, 복수초와 봄까치꽃만 보았는데 스위스는 봄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더군요. 그 종류만도 데이지와 수선화, 앵초, 바람꽃들, 거기에 솔채꽃과 민들레부터 동의나물까지믿기지 않았습니다.

작업은 다음날부터 하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기왕 밖에 나왔으니 가까운 곳을 모두 탐색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엔 파란 초지가 보여 그곳을 가로질러 걸었고, 잠을 잤던 방에서 창문을 통해 보았던 집에서 돌아보니 암막커튼을 반쯤 연 창문이 1층이 아닌 2층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집은 2층집이 아니라 3층집이었던 겁니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자 멀리 하얀 설산이 보였습니다.

 

그저 영국이 그쪽 방향이겠거니 정도로만 짐작될 뿐 방향을 안다고 하더라도 당장 서있는 위치가 지도에서 정확하게 어디며 어느 방향인지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해가 지는 방향이 무조건 서쪽이겠지 할 뿐입니다. 산은 해가 지는 방향에 높게 눈을 뒤집어 쓴 채로 보였습니다.

이내 길이 나왔고, 길은 마을과 산을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저 숲엔 뭐가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몇 걸음 옮기지 않아 바람꽃이며 앵초와 같은 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꽃망울을 터트렸고 얼레지처럼 보이는 초록색 일들이 무수히 보였습니다. 가까이 가서 확인하니 얼레지가 아니라 산마늘 같더군요. 한줄기 따서 씹어보았습니다. 분명히 산마늘이더군요. 그런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고목이 쓰러지거나 커다란 키 큰 활엽수와 전나무 아래 빼곡하게 산마늘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날씨만 좋다면 사나흘 뒤엔 제법 샐러드나 쌈으로 이용할 수 있겠다 싶었고, 집주인이 오면 삼겹살을 구입할 수 있는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길을 따라 걷는데 앞에 말을 탄 모녀로 보이는 두 여성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숲을 말을 타고 산책을 하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걷자 작은 통나무 오두막이 나타났습니다. 살레는 통나무집으로 숙박시설로도 이용된다고 하는데, 이 오두막은 숲과 장 어울리긴 하지만 그보다 작았습니다. 옆엔 설거지를 할 물도 흐르고, 장작도 제법 많이 쌓여있는 걸로 미루어 주민들이 이용하는 공간 같았습니다.

 

사진을 촬영해 집주인에게 물었습니다. “발트휘테(Waldhütte)라고 하는 마을 주민들이 그곳에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데 주로 가족단위로 어울려 이용해요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영문 표기가 이상해서 이거 발트휘테라고 영어로 쓴 거 맞나요라 하자 독일어 표기라는 대답을 하더군요. 그리고 스위스는 독일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데 대부분 영어와 독일어를 기본적으로 다 하고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저는 그때까지 살레로 알고 있던 통나무로 된 집도 샬레(Chalet)”라고 일러주더군요.

진품명품의 친절한 위원님보다 더 확실하게 가르쳐주는 친절한 집주인이 언제든 전화로 대답을 해주니 든든했습니다.

 

시인의 저녁

 

이름도 낯 선 Aargau Halwill

사그라지는 숯불에 맡긴

은빛 옷 입은 감자 두 알

얼마나 따뜻한 저녁이냐.

 

소금 한 줌 없어도

배어든 숯불의 온기라면

눈물만으로 간이 될 터

 

이국의 낯 선 바람, 슬며시 문을 흔들고

모국의 달빛 창으로 내려앉으니

가난한 주머니엔 별빛 가득 채우겠네.

 

배고픔보다 깊은 고요 속에

입 안 가득 찬란한 별빛 감자의 온기

세상은 이만큼 따뜻할 수 있으랴

 

얼마간 더 걷다 해가 기울자 집으로 돌아와 벽난로를 피웠습니다. 그때서야 집주인이 술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걱정마세요. 뭐든 얼마든지 드셔도 돼요라 했던 말이 기억났습니다. 주방쪽으로 향하는 공간에 8명 정도는 함께 식사를 할 정도의 고급스러운 식탁이 있고, 그 옆에 벽면을 막고 선 벽장이 있는데 와인과 각종 양주가 제법 많았습니다.

주방으로 들어가 온더락스(On the Rocks) 잔과 벽장에서 Hennessy XO 1000를 하나 꺼냈습니다. 그리고 벽난로 앞으로 작은 테이블을 하나 가져다 놓고 전화를 했습니다. “헤네시 천미리가 있는데 이거 마셔도 돼요라고 말이죠.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양주겠죠. 드시고 싶은 거 아무거나 다 드세요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어차피 한국에 가지고 갈 수도 없잖아요란 얘기는 덤이었습니다.

 

Hennessy XO는 헤네시 하우스의 대표적인 클래식 제품으로, 10년에서 30년 간 숙성된 원액 100여 가지를 사용하여 제조되는 고급 고냑입니다. 평균 숙성 연도는 45년이라 하는데 이건 조금 이상하지만 뭐 그냥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믿어야 하겠지요. 하여튼 프리미엄 꼬냑으로 많은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레미마틴, 꾸브와지에, 까뮤, 마르텔과 함께 세계  5대 꼬냑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모스틀리(Bündnerfleisch)와 헤네시는 잘 어울렸지만 숯불을 보자 감자가 구어 먹고 싶어졌습니다. 저 시는 감자를 숯불 속에 묻어두었다가 꺼내놓고 사진을 촬영한 뒤 한 잔 더 마시며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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