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소녀, 몸짓으로 피어오르다
저는 미리 “3∙1대혁명 106주년 기념대회”에 대한 그저 일반적인 정도의 내용을 ‘광화문미술행동’의 페이스북 안내를 통해 토요일의 ‘깃발행진 시각의 아우성’이 탑골공원에서 시작해 광화문으로 이어진다는 내용 정도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토요일 아침에서야 장순향 ‘한국민족춤협회 초대이사장’의 다음 메시지를 받으며 전체적인 과정을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3.1대혁명 106주년 기념대회
풍물패 집결:10시 탑골공원 앞, 치복, 악기지참
리허설 10시~10시40분
• 일시: 3월1일(토) 10:40~13:30
• 장소: 탑골공원, 탑골~안국-광화문
• 1 부:탑골공원 앞 예술행동(10:40~11:50)
- 풍물길굿,(동행풍물패, 촛불풍물단, 신바람), 미술행동 만장쓰기
- 광양떼버꾸놀이-버꾸를 좋아하는 사람들 모임
- 서예 걸개 퍼포먼스(광화문미술행동)
- 사물놀이(다국적 평화풍물패 기적소리)
- 역사의노래 평화의노래(가수 박정환)
- 독립군 사물판굿(국립전통예고 타악팀)
• 2 부: 기념식(11:50~12:30)
- 초청 연설 : 이용길(천안동단협), 하원오(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청년(소녀상)
- 독립군 용진가(소리 정대호, 반주 동동)
- 3.1 즉흥창작춤(장순향- 한국민족춤협회 초대이사장)
- 합창: 한울소리합창단(3.1절노래, 상록수, 임을위한행진곡)
- 시국 선언문 낭독 - 만세삼창
• 3부: 대행진(12:30~13:30)
- 서예퍼포먼스(미술행동),
- 큰기놀이(여현수)
- 행진(탑골~종각~안국~ 광화문) 동학실천시민행동, 동행풍물패, 촛불풍물단, 모두함께
행진 후 촛불행동, 비상행동 집회에 결합합니다.
미리 이런 내용을 전달받았다면 기사를 쓰고, 아니면 블로그에 글을 쓸 수도 있었는데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이런 행사엔 늘 함께 하시는 장성하 사진작가를 떠올리고 세로 사진이 아닌 가로로 촬영된 사진 7장 정도를 부탁했습니다. 그중에서 몇 장 선택해 내년을 위해서라도 글로 기록을 하나 남길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밤 10시가 넘어 44장의 사진을 메시지로 받았습니다.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장순향 무용가가 선보인 ‘조선의 소녀’는 단순한 춤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기억을 되살리는 몸짓이었고, 한 소녀의 절규를 담아낸 시간의 언어였습니다. 흑백의 한복 자락이 바람에 흩날릴 때, 우리는 1919년 그날의 거리로 걸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무용가는 독립선언문이 최초로 낭독되어지기로 했던 탑골공원을 무대로 선택했습니다. 106년 전 1919년 3월 1일, 기미년 독립선언문은 두 곳에서 낭독되었습니다.
민족대표 33인이 모여 독립선언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장소입니다. 원래 계획된 독립선언식 장소였던 파고다(탑골) 공원 대신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오후 2시경, 파고다 공원의 팔각정(육각정) 안에서 누군가가 독립선언서를 큰 소리로 낭독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주로 학생들과 일반 시민들이 모여 독립선언서 낭독을 들었던 것으로 전합니다.
장순향 무용가는 무대 위에 선 것이 아니라 일제의 총검에 쓰러진 소녀가 되어 있었습니다. 기도하던 손이 뻗어지고, 흙바닥에 닿을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전율을 탑골공원 31문앞에 모인 이들은 느꼈을 겁니다. 두려움과 용기,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몸짓이 바닥을 울렸고, 버선발로 내딛는 한 걸음 비틀거리는 그 순간 보았습니다. 만세를 외치며 거리에 나섰던 이름 모를 소녀들의 모습을, 장한 조선의 소녀들의 모습을 말이지요.
조선의 소녀
기도하던 작은 손이
만세의 함성 속에 펼쳐질 때
그 발은 조선의 흙을 딛고
심장은 조선의 바람을 품었네
버선발로 뛰쳐나간 거리
그곳에 자유가 파랗게 열리고
그곳에 조선의 봄이 꽃망울을 맺었네
그러나 자유의 외침보다 빠른 총성이 울리고
무자비한 총검이 그녀의 심장을 찔렀네
붉은 꽃잎처럼 흩어지는 살점
피어보지도 못한 봄이 스러지네
꺼지지 않는 불꽃같은 눈동자
하늘을 우러러 묻노니
"이제 우리 조선은 어디로 가나요?“
소녀의 그 물음이 바람이 되어 퍼지고
강물 되어 민족의 혈관에 피돌기를 할 때
슬픔은 저항이 되고
분노는 함성이 되어 다시 조선의 봄을 부른다.
우리는 잊지 않는다.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조선의 소녀가 꿈꾸던 광복을 향하여
조선의 민중이 함께 노래한 민주의 평화를 위하여.
사진을 보며 이 시를 써서 장순향 무용가에게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와 함께 “3∙1대혁명 106주년 기념대회”에서의 장순향 무용가의 즉흥창작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약속을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106주년을 맞은 3·1절의 탑골공원 행사를 ‘장성하’ 작가님의 사진을 받아 소개합니다.
30장의 사진으로 <조선의 소녀>를 공연하신 장순향 누님 고생하셨다는 인사와 함께 소개합니다.
조선의 소녀를 주제로 쓰는 글엔 박영근 시인의 시집 '취업 공고판 앞에서'(1984년 출간)에 실린 '솔아 푸른 솔아-백제 6'과 '고향의 말 4' 등의 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노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같이 써야 되겠군요.
아, 자연히 성효숙 화가도 거론 될 수도 있겠고요.』
이 약속을 하고 장순향 무용가가 메시지로 “동영상을 보면 더 정확하게 현장을 느낄 수 있어요”라 하셨던 내용을 기억하고 페이스북에서 영상을 보는데 정말 현장에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가 불려졌더군요.
춤은 흐느낌이었고, 울부짖음이었으며 꺼지지 않는 저항의 불꽃이었습니다. 그녀의 손끝이 떨릴 때… 그것은 단순한 동작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시대의 무게를 이겨내려는 마지막 힘줄이었고 이 시대 민중의 고통과 절규였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와 자유를 향해 뻗은 희망을 향한 몸짓이었습니다. 그 희망을 무참하게 짓이긴 총검, 그리고 마침내 바닥을 치며 흐느적이는 몸짓 속에서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그녀가 그날, 그곳에서 스러진 조선의 소녀 그 자체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춤은 슬픔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손짓이 하늘을 향할 때, 그리고 다시 죽음으로부터 일어나는 순간 우리는 보았습니다. 소녀가 남긴 질문을… 그날의 외침 "이제 우리 조선은 어디로 가나요?"
106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답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을 위해 우리는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조선의 소녀가 몸짓으로 피어올랐던 그날의 탑골공원을 말입니다.
저는 이제 다음에 다시 무대에 설 누군가를 위하여 이 글을 씁니다.
조선의 소녀가 부르던 노래
조선의 하늘 아래 한 소녀가 노래했네
아침이슬 같은 목소리 햇살처럼 맑은 꿈
그러나 바람이 거세지고
어둠이 길을 가로막을 때,
소녀의 노래는 떨리는 입술 위에서
핏빛보다 선명한 외침이 되었네
버선발로 달려 나간 거리
손끝에 닿았던 차가운 총부리
한 줄기 바람처럼 쓰러져도
그녀의 숨결은 꺼지지 않았네
얼마나 두려웠을까
또 얼마나 아팠을까
하지만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았네
두 손 모아 품었던 꿈이
쓰러지며 뿌려진 씨앗이 되었네
소녀의 노래는 피어보지도 못한 꽃잎
소녀의 몸짓은 피어보지도 못한 희망
다시 또 붉은 해가 솟아오르고
피 흘린 땅에서 자유의 새순이 움텄네
세월이 흘러도 잊지 않으리
그날, 그 함성, 그 눈빛 우리는 다시 부르리
조선의 소녀가 부르던 노래를
그날 이루려던 희망의 노래를
소녀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으리
오늘 우리의 심장 속에서
오늘 우리가 마주 잡은 손끝에서
그날 그녀가 꿈꾸던 봄이 피어나고 있으니.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그녀가 그토록 염원했던 자유와 독립이 실현된 세상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조선의 소녀가 목숨으로 지키고자 했던 가치는,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우리가 지켜내야만 그 뜻이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3월의 봄바람이 불어오고 전국에서 앞 다퉈 꽃소식이 들려옵니다. 그 바람 속에서 우리는 그녀의 숨결을 듣는 귀 만큼은, 그리고 반드시 이루어야 할 민주주의의 참된 세상을 향한 열정만큼은 깊이 새겨야 되겠습니다.
그날의 함성은 단순한 과거의 메아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란 사실, 우리는 잊지 않아야 되며 우리는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금 그녀에게 대답해야 합니다.
"조선은, 대한민국은 이제 우리가 지켜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