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 하나 글 한 편으로 바꾼 날
며칠 전 글을 쓰다가 냄비를 태웠습니다. 어제도 그제도 아닌 나흘 전의 일입니다. 그날 저는 새벽 5시에 일어나자 곧장 커피 한 잔 마시고 글을 쓰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어느새 열두 시가 넘었고, 아침 식사도 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제 마무리를 짓고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문득 떠오른 냄비 하나…
청국장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끓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떠올렸습니다. 허겁지겁 주방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냄비는 새까맣게 타 있었지요. 청국장 냄새도 호불호가 갈리는 법인데, 그걸 태워버렸으니 오죽했겠습니까. 쿰쿰한 냄새가 집 안 곳곳에 배어들고, 창문을 활짝 열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냄비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웃음이 나왔습니다. 글을 쓰겠다고 정신을 쏟다 보니 결국 이런 실수를 하고 말았구나 싶어서기도 하고, 도 다른 이유도 있어서입니다.
홍정원(국정원의 홍장원 1차장 아닙니다.) 춘천민예총 음악협회장이 이때 연락을 해 왔는데 그에게 이 사실을 얘기했습니다.
그는 “아이쿠야~ 우째요 그래.”라 하더군요. 그래서 “뭐 대충 김치랑 먹어야죠.”라 대답했습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한곳에 몰두하는 제 습관이 득이 되기도, 실이 되기도 합니다. 그날의 청국장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냄비는 스테인리스 재질이어서 수세미로 열심히 닦고 나니 다시 새것처럼 돌아왔습니다. 타버린 흔적도 말끔히 사라지고, 그때의 실수는 고스란히 추억으로 남게 되었죠.
냄비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새것처럼 반짝입니다. 제가 조리도구를 밥솥을 빼 놓고는 모두 스테인리스나 무쇠를 선호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데요, 불소코팅이니 다이아몬드코팅이니 하는 광고에 현혹되어 구입하는 조리도구는 모두 문제가 있습니다.
이 영화를 기억하시나요? ‘다크 워터스(Dark Waters)’라는 이 영화는 2020년 3월 한국에서 개봉했었습니다. 마크 러팔로가 주연을 맡았는데요, 세계적 화학기업 듀폰이 테플론 제조에 사용된 유해 화학물질 PFOA(과불화옥탄산)를 폐기물로 유출하여, 주변에 사는 주민들과 가축까지 독성 물질 중독에 빠트린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롭 빌럿이라는 변호사가 20여 년간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영화는 ‘시빌 액션(Civil Action, 1998년)’도 있는데 존 트라볼타 주연으로, 지역적 화학물질 오염 문제를 다룬 실화 바탕 영화입니다. 또한 ‘에린 브로코비치(Erin Brockovich, 2000년)’는 줄리아 로버츠 주연으로, 역시 지역 화학물질 오염 문제를 다룬 실화 기반 영화입니다.
특별히 ‘다크 워터스’가 주목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계적 화학기업 듀폰의 테플론 제조에 사용된 유해 화학물질 PFOA(과불화옥탄산)은 전 세계 주방의 조리 기구(냄비와 프라이팬)에 널리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제가 청국장을 이 듀폰의 유해화학물질로 코팅된 냄비로 끓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냄비는 아무리 비싸도 다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대로 버려야 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냄비를 가스레인지에 올려두고 잠시 다른 일을 하다 태워보신 경험들 있으실 겁니다.
근사하게 코팅이 된 멋진 냄비나 프라이팬,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에서도 이 화학물질이 용해되거나, 또는 조금씩 긁히며 우리가 섭취하게 되지는 않을지 두렵지 않나요?
이제 제가 청국장을 끓이다 냄비를 태웠음에도 웃은 또 다른 이유를 이해하시겠지요.
그날 이후로는 글을 쓸 때도 늘 커피나 차를 마실 물을 끓이는 버너나 가스레인지를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 또 비슷한 실수를 하지 않을까 싶지만요.
이렇게 또 하나의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태운 냄비 하나에서 비롯된 작은 기록을 남기며, 다음에는 태우지 않고 또 다른 음식을 맛있게 끓여 줄 냄비를 깨끗하게 닦고 마른 행주로 물기까지 꼼꼼하게 닦아줍니다.